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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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육아'는 여전히 삶의 대척점에 있는 단어입니다. 뉴스나 미디어에서 '노키즈존'을 둘러싼 논쟁이나 '맘충'이라는 일종의 혐오 현상, 그리고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생률이 동시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회 속에서 어딘가 어긋난 것만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현상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에 앞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더 간절한 시점이 아닐까 싶거든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자녀 양육을 공동체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선을 제공했던 《탐욕스러운 돌봄》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생생한 현실 육아의 현장으로 관심을 기울여봅니다.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 아이와 함께 등장했던 MBC 아나운서를 기억합니다. 바로 임현주 아나운서인데요, 《한영 육아 번역기》는 그녀의 남편인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와 사랑스러운 두 딸인 아리아와 릴리를 출산하고 육아하며 기록해 낸 한 권의 '번역서'입니다. 영국인 남편과 문화적 차이를 비롯해 양육에 대한 가치관이 여느 부모들처럼 여지없이 충돌합니다. 같은 문화적 정서를 공유한 파트너와도 쉽지 않은 것이 육아인데 다른 세계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육아'라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며 겪는 고충은 조금 더 복잡했으리라 짐작했는데 의외로 이 차이가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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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결혼 생활은 늘 중간지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함께 김치를 먹고 홍차를 마시는 것처럼,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나란히 존재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p.6-7 





 핍진한 육아 현실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만 같은 '국민 육아템'이나 고가의 유아차, 위생을 위한 아이 전용 조리 도구와 아이 전용 세탁세제 등 'K-육아'의 길은 이토록 빡빡합니다. '다른 아이는 다 하는데 우리 아이만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에서 시작하는 불안과 더불어 위생에 대한 유난한 강박은 안 그래도 험난한 육아의 난이도를 훨씬 높이기 마련이죠.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저자는 연년생 아이 둘을 키우며 적절한 타협점을 찾고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며 점차 자신만의 양육을 깨달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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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정말 유용한 물건인지, 부모의 불안을 잠재우는 물건인지. 그러고 보면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이 아니라 부모의 불안을 다루는 과정 아닌가 싶다. p.8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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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K-육아'를 경험하고 다니엘은 "안 되는 건 끝없이 많고, 해야 하는 것만 남아 있다."라고 요약합니다. 또한 익숙하지 문화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고백합니다. 낯섦에 끊임없이 적응해가며 가끔은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 같다고 하죠.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식 양육에 안정감을 느끼는 아이를 보며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한 양육의 다양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간극은 서로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확장을 가능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육아에 몰입하려는 나의 뇌를 종종 흔들어 깨운다. 내가 꿈이나 여러 아이디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빛나는 눈으로 반가워하며 귀를 기울인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육아와 무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서로를 육아 동지로서만 매몰되지 않도록, 나아가 내가 아이 엄마의 정체성에만 너무 깊게 뿌리내리지 않도록 하는 데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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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 보호자, 파트너 혹은 공동 양육자로써 저자와 다니엘이 서로를 대하는 그들만의 관계적 특성은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와도 같은 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 신경이 육아에 쏠린 저자를 다니엘은 의식적으로 육아 밖 세계로 불러들입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 시간, 태도, 말투 등 자칫 육아로 소홀해지기 쉬운 '서로'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죠. 이렇게 쌓인 탄탄한 정서적 지지는 서로의 부모로서의 정체성도, 오롯이 자신으로서의 정체성도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강박적인 육아 방식이나 태도를 좀 더 유연하고 여유롭게 만드는데 적정한 토양이 되어주기도 하죠.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우리 가족 안에서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가족은 아이들이 다름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첫 세계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정성껏 번역하며, 어른들도 아이들도 매일 함께 자라나고 있다. p.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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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을 거치며 저자와 저자를 둘러싼 세계들은 분열하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수렴합니다. 서로의 거리와 자신의 괴리를 좁히고 줄여나가죠. 서로 다른 세계가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의 요소들이 적절히 섞이며 새로운 세계가 탄생합니다. 이런 조화를 가능하게 한, 서로의 세계를 번역하는 이 아름다운 수고로움이 '양육'이라는 차원의 세계를 통과하며 저자가 경험한 경이로운 총체로 기록됩니다. 《한영 육아 번역기》는 공동체를 공유하는 타인의 자리에서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에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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