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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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의 이름은 친할머니가 작명소에 가서 지어 온 이름이라고 했고, 내 이름은 아빠가 옥편을 찾아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맑고 밝게'라는 의미가 들어간 내 이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름이 함의하고 있는 밝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나의 실재는 다소 다크(?) 한지라 그 간극에서 오는 괴리가 있다고 줄곧 생각해왔다. 타인에게 내 이름 끝자의 발음을 교정해 줄 때마다, 과하게 입을 벌린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머쓱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작명의 과정과 호명의 역사, 명명의 서사들이 쌓인 것이 곧 나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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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몹시도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일상적인 것에는 쉬이 깊은 관심을 보이기 어렵다. '이름'이 바로 그러한데 저자는 《이름의 빈자리에》에서 바로 그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노래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시 속에서, 에세이 속에서 미처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소거된, 끝내 얻지 못한, 갈급하게 찾아 헤매는, 스스로 쟁취해낸 혹은 비로소 버려야만 할 '이름'의 존재들이 눈앞에 현현한다. 그런 존재들을 탐색하며 '이름'이 지닌 의미와 그것이 존재에게 부여하는 상징성에 관하여 탐구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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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에 관한 정체성에 대하여 고찰해 볼 수 있는 시선들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니, 놀라면서도 여러 작품들이 등장하는 와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들이 있다. 영화 <송곳니>에서 이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딸이 각성하여 스스로를 '부르스'라 명명하는 장면은 폭력적인 구조 속에서 탈출하고자 스스로 송곳니를 깨부수는 장면과 맞물리며 더욱 강렬해진다. 반대로 소설 《시녀 이야기》에서 '오브○○'라는 소유격 전치사로만 존재하는 시녀들은 '이름'의 거세로 완전한 몰인간성을 완성하고 있다. 빼앗기거나 혹은 다시 쟁취하거나 아니면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처럼 끝내 얻지 못한 이름은 결국 존재의 근본적인 속성까지 뒤흔들며 삶의 궤적까지 통째로 뒤흔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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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복이를 버려요. 한국 이름을 기억하지 말아요. 그래야 당신이 살 수 있어요.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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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는 반면에 비로소 버리고서야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할 희망이 보이는 이름에 대한 것은 더욱 인상적이다. 한국계 입양인 작가 미야 리 랑그바드의 에세이 《그 여자는 화가 난다》가 그렇다. 친가족을 찾고 끝내 '이춘복'이라는 이름을 찾아냈지만 그 이름은 네 자매 끝에 아들을 기대했던 부모가 성의 없이 지어준 이름이었고, 그런 기대는 결국 그녀가 입양되어야 했던 이유였다. 저자는 그런 그녀에게 '춘복'이라는 이름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이름', '이름'이라는 닻을 내리고 삶의 좌표를 찾아 부유하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소망. 비로소 찾아낸 '이름'은 닻이 아니라 덫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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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수많은 얼굴을 통과한 뒤에야, 아리아는 처음으로 "나는 아리아 스타크야!" 소리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름과 존재가 완전히 일치한 사람이 된 것이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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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는 가족의 복수를 다짐하는 '아리아 스타크' 또한 '노바디'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비워낸다. 자신의 이름을 지워내고 비워낸 후에야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이름 하나의 절대적인 속성을 부여하며 이름으로 대변되는 절대적인 정체성을 부여하는 반면에 에세이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에서 나오는 '참사람 부족'은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고정 불변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기에 자신의 특기를 발굴하거나 성장할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새로이 부여한다고. 나이테 마냥 특성에 따라 부여된 이름의 변주, 근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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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원주민은 몸과 영혼이 성장함에 따라 한 사람이 어려서 받은 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된다고 여겼다. 어릴 때는 어릴 때의 몸과 상황에 맞게, 나이를 먹음에 따라 각자 자기의 현재에 맞게 어울리는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p.219 








 "당연하지! 내가 '비정상'인 건 지극히 정상이야. 멋지지 않아? 이제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 한계에 주목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울 거야. 내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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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함의하는 정체성, 욕망, 근원 등은 다시 사회와 타자 사이에 관계성으로 확장한다. 부르고 불리는 일의 숭고한 행위. 그래픽 노블 《제가 좀 별납니다만…》에서 마그리트가 자신의 병명을 찾아 고군분투한 끝에 비로소 확진 판정을 받는다. 자신의 병이 비로소 '명명'되는 순간, 마그리트의 '비정상'은 '정상'이 된다. 그저 '이름'이 주어졌을 뿐이고, 그저 '이름'이 없었을 뿐인데 인물의 세계는 비약적으로 확장하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쪼그라들기도 한다.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을 호명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명명 혹은 작명, 그리고 호명. 그것을 타고 흐르는 묵직하고 찬란한 생동성은 존재를 존재롭게 하는 힘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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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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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인 내가 태어나고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한 가지 걱정을 토로하셨다고 한다. 얘가 커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수 뒤꽁무니만 쫄쫄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냐는, 배냇저고리를 입은 나를 보며 그런 걱정을 하셨다고. 추측건대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던 것을 보며 하셨던 기우였던 것 같다. 그것은 정말 한낱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나는 그 어떤 가수에게도 절대적인 팬이었던 적이 없다. 시절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뜨내기 리스너였고 그런고로 친구들이 여러 오빠들을 추앙하고 분노하고 빠가 까가 되어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목도하면서도 초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케이팝을 다루는 이 책도 조금 무감하게 펼쳤는데?





 분명 그랬는데? 일단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팝핑 캔디를 입에 물고 그 달달함과 따가움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이랄까. 그야말로 케이팝에 대한 애증을 가감 없는 표현으로 드러내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자기 고백이다. 무엇 하나를 깊이 파다 보면 으레 마주하곤 하는 심연 속에서도 저자는 기어코 무엇을 길어내고야 만다. 케이팝에 대한 사유와 철학,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 담론은 저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흐르며 요동친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고독에 몸서리치며 분노에 치를 떨지만 그럼에도 과연 케이팝, 케이팝, 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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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떤 음악을 굿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내 감정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도 숨 쉴 구멍이 열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머리가 감기가 가장 일상적인 주술 행위이기 때문이다. 케이팝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시끄럽고 불쾌한 음악이지만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삶을 견딘다. p.186 







 케이팝과 케이팝으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팬픽이나 팬덤 문화는 물론이고 케이팝의 착취적인 사업 구조, 팬과 아티스트의 미묘한 관계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범죄 사건, 자기모순적인 태도와 현상 등에 관해 비판적인 비평 또한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를 대하는 저자의 개인적인 속내를 솔직하게 곁들인다. 아이돌 팬픽에서 파생한 '팬픽이반'과 '팸 문화'를 주체적인 정체성 탐구의 측면으로 해석하거나 '러브 송'에 갇힌 수동적이고 관습적인 여성상을 지적하거나 90년대 여성 아이돌에게 가해진 폭력적인 행태 등을 짚어보는 젠더적인 시점은 케이팝에 관한 사유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케이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그 팬덤 문화를 다루던 다큐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좀처럼 한데 묶기 곤란한 사람들이 아티스트를 구심점으로 모여 동심원을 그렸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다큐를 보며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렇게 성실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펑펑》을 읽으며 그것은 참으로 지독한, 고도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역동하는,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이는 무어라 감히 명명할 수 없는 무엇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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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쨌든 우리 둘에겐 한 그룹을 사랑하며 공유한 시간들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케이팝을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만 골몰하던 나는 그날의 만남 이후 이 사적인 사랑이 공동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37 







 자신의 사랑과 그 사랑의 좌절을 살피는 그의 태도는 얼마나 성숙한가? 대상이 남기고 간 분노를 어루만지는 것까지가 사랑이라니. 케이팝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좆같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얼버무리곤 했던 나는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과 마주한 한 사람의 용기 앞에서 눈부신 모멸감을 느꼈다. p.26 (오세연 감독의 <성덕>을 본 저자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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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는, 미치지 않고서는 케이팝을 사랑할 수 없는 정서를 《펑펑》을 통해 읽어낸다. 통속적인 가사, 귀에서 귀로 흘러가버리는 멜로디, 화려한 비주얼 등 케이팝을 떠올리면 단박에 떠오르는 납작한 연상들에 《펑펑》은 다양한 통로에서 발현하는 서사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내밀한 정서를 불어넣는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펑펑》이 선사하는 케이팝의 세계는 비로소 다채로워진다. 그렇지만 마냥 알록달록하지 않다. 곳곳에 얼룩까지 조명하는, 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기어코 인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독한 케이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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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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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치른 제9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지없이 선거 공보물이 한가득 도착했었다. 빨갛고 파란 공보물들을 넘겨보며 그저 활자로만 존재하는 정책 공약들을 무신경하게 읽어나갔다. 지역의 후보들은 변별력 없이 지하철 관련 공약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여기는 듯했고 현실의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그런 공약들은 별다른 소구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선거의 대의적 명분을 일정 부분 수긍하면서도 현실과 괴리된 정책 공약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투표소로 향했더랬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가 출간된 것은 시의적절했고 지난 내란 사태 이후 정치 뉴스를 간헐적으로 기웃거리며 이번 선거를 목도하는 한 개인에게도 과연 그러했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는 대한민국의 정책 생태계를 비판적으로 세세하게 톺아보면서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관계자들의 특성과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폐해를 지적하는 한편 저자 나름의 정책 생태계를 건강하게 건설할 수 있는 혁신과 방법, 비전을 제시한다. 보통 '정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입법을 주관하는 국회와 이를 집행하는 정부만 떠올랐는데 참으로 다양한 집단이 정책 과정에 얽히고설켜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비서실, 정책에 관련한 예산을 총괄하는 경제 부처, 정당과 국회, 사법부, 싱크탱크와 더불어 시민단체, 노동조합, 이익집단, 대학교수, 언론 그리고 바로 시민까지. 이들은 모두 '정책 생태계'를 구성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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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정책을 전문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과학적 설계의 산물로 여기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책은 치열한 정치적 타협과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 그리고 날 선 권력의 충돌 속에서 탄생하고 변주된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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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시민이 느끼는 정책적 효능감은 실로 요원하다. 정치권에서는 권력 다툼에 치중하고, 경제 부처는 모피아가 되고, 사용자 단체와 이익 집단은 관피아와 유착되어 있고,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와 교수들은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민주화 이후 시류에서 도태되었고, 언론이 표방하는 저널리즘은 자본화에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한 내용이지만 각 챕터별로 살펴보는 위와 같은 정책 행위자들의 폐단과 이로 인해 붕괴되는 유기적인 관계 읽다 보면 앞서 선거 공보물을 보며 느꼈던 정책과 현실의 괴리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생태가 실로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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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충돌, 제도적 제약,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비토 권력(Veto Power)'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 산물이다. p.361 






 저자는 현재를 '복합 위기 시대'로 정의하면서 이를 '우리 삶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실재적 변화(p.17)'로 인식한다. 이러한 복합 위기 시대 속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정책적 선택과 방관이 빚어낸 인위적인 결과물(p.17)'이라 지적하며 오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 생태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최종적인 방향은 결국 시민의 삶과 일상으로 향하고 있기에 그 피해는 또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그런고로 올바르고 효능 있는 정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책 과정에 참여하여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그 과정과 방향을 감독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를 독려하면서 모두를 위한 '건강한 공론장'과 그러한 공론장에서 건전한 토론과 토의를 거치며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할 것을 제언한다. 국가적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책 형성 과정에도 주민자치회나 마을 공동체 등을 통해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정책적 효능을 경험하고 학습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워나가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민주 항쟁에 더하여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을 거치며 민주화 과정에서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시민들의 힘을 믿는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선거라는 짧은 국면이 지나면 시민과 권력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깊은 단절이 발생한다. 선출된 대표가 시민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경청하기보다 정당의 이해관계나 권력 유지에 몰두하게 될 때, 정책은 시민의 일상과 유리된 채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설계되기 시작한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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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혁명으로 내란을 극복하고 '국민 주권 정부'를 제창하며 출범한 이번 정부가 시민들의 정책 참여를 독려하며 타운홀 미팅을 주최하는 것이나 국무 회의를 실시간 생중계하여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논의되고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숙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일 것이다. 일상에서 정책과의 괴리를 느끼는 거리만큼 시민으로써 우리는 정책과 그 과정에 충분히 부대껴야만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체념과 회의의 정서를 잠시 걷어내고 우리 또한 정책 생태계의 주요한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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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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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에 가장 많이 읊조렸던 주문은 '퇴근'이었다. 미처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부터 염원하던 마음에 경각심이 퍼뜩 들어 제미나이에게 '이런 마음, 괜찮은 것인가'를 물었다. 이는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자 직장인 최고의 유머 코드라고 너스레를 떨며 혹시나 번아웃의 증상은 아닌지 스트레스를 점검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 제미나이. 책을 받아들고 제목만 보고 막연하게 떠오른 잡상을 뒤로하고 책을 읽어 나간다. 사막 같은 출근길에 타는 목마름으로 퇴근만을 연상하는 출근자가 오아시스 한 사발을 들이켜는 기분으로 《출근길의 주문》을 읽어 나간다. 





 '언어, 네트워크, 마인드셋, 커리어'에 더하여 '프리랜서의 도'라는 부록까지. 일터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담는다. 언어 챕터에서 과도한 쿠션어 사용을 지양하고 뚜렷하고 단호한 언어 사용을 권하면서도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며 발생하는 위계 속에서 비롯할 수 있는 부정적인 권위를 상쇄하기 위해, 언어가 아래로 향할 때는 조금 더 유연할 수 있도록 첨언한다. 구업을 많이 짓는 인간인지라 이 챕터는 꽤나 집중하며 읽었다. 그러한 스스로를 반추하며 그러지 말아야 할 것과 그렇게 해왔던 것,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가늠해 본다. 



 스무 살 대의 정체성으로 한평생 대나무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나름 대단하지만, 깍듯한 예우를 받을 때는 나이 든 자신인 게 어색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조심해야 할 때만 철부지였던 시절을 고수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p.22 [쿠션어, 여성어] 





 나는 여자들이 침묵을 연습하기를 바란다. 회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의 시선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법을 배우기를. p.51 [때로는 침묵을 견디기]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 여전히 만연한 '기울어진 운동장', '유리 천장'에 더하여 '유리 절벽'까지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관련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꾸준히 일해주기를, 함께 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실제 일터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설명할 수 없이 어렴풋하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나 '으레 그러한 것'이라고 퉁치는 체념의 정서를 저자의 경험이 벼리어낸 구체화된 언어로 선명하게 인식하는 순간들은 특히나 귀하게 느낀다. 일터에서 사라져 간 여성 동료들과 지금도 분투하고 있는 여성 동료들을 향한 일종의, 응원의 샤라웃.




 네트워크와 커리어, 프리랜서를 다루는 내용에서는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실용서인가 싶다가도, 일터에서 체득한 경험과 조언을 나눌 때는 에세이처럼 술술 읽어 나간다. 그러다가 여성 노동자로써 겪은 차별을 서술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할 때는 사회비평서처럼 날카롭게 읽힌다. 자신의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하고도 오래 활동해 온 저자의 시간에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앞서 걸어간 이들이 닦아낸 길 덕분에 현재의 이들은 조금 수월하게 그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앞에서 읽은 계속해달라는, 지금 이곳에서 길을 만들어 달라는, 프롤로그에서의 저자의 말이 맴돈다.


 계속해 주세요. 거기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시야 안에 머물러 주세요. 

 계속해 주세요. p.9 [프롤로그] 





 감상적이거나 피상적인 위로의 단어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파고드는 구석이 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술과 같은 어떤 무엇을 요구하거나 자신만의 기조를 종용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써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나가며 일터에서 마주한 부침을 목도하며 농숙해진 통찰을 바탕으로 담담히 조언할 뿐이다. 출근길마다 '퇴근'을 주문처럼 읊어대던 스스로를 돌아본다. 대체적으로 성실하고 때로는 묵묵하게 가끔은 소리 내며 일터에서 각자의 길을 닦아내는 여성 동료들과 희미하고도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를 떠올리며 이것이 진정한 '출근길의 주문'은 아닐까, 무람없이 넘겨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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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문 主文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방식으로 해 줄 것을 요구

2.주문 呪文

어떤 바람이나 원망을 실현시킨다고 믿으며 외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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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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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나이를 묻는 질문에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를 고민하다가 출생 연도를 말해버리고 만다. 새삼 생각하니 나이를 세는 셈법이 뭐 이리 복잡한지. 게다가 여기에 빠른 연생이 더해지면 사회에서 맺는 관계 속 서열 정리는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토록 복잡하고 민감한 나이 셈법은 '나이' 그 자체가 한국 사회 속에서 하나의 계급과 권력으로 통용되기 때문에 누구나 무람없이 나이를 묻는다. 스스로도 나이를 묻는 타인의 질문에 그다지 문제의식 없이 답하며 자연스럽게 관계 설정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나 또한 그렇게 이용해왔다. 그러나 《나이 묻는 사회》는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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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나이로 재단하는 순간, 그는 고유한 삶을 지닌 주체가 아니라 그저 나이라는 틀에 묶인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만 여겨지고 만다. 개인을 개인으로서 평가하지 않는 집단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속성이 연령차별주의에도 담겨져 있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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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포티', '잼민이', '틀딱충', '급식충', '할매미' 등은 모두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멸칭이다. 개중에는 가치중립적으로 사용되던 일종의 밈이었으나 혐오의 시대에는 너무도 쉽게 조롱과 비난, 멸시의 단어로 뒤바뀌고 만다. 나이를 묻는 질문만큼이나 위의 멸칭들 또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해왔던 터라 각 멸칭이 함의하고 있는 차별과 배제, 조롱과 비난을 톺아보는 장에서는 마치 선인장을 보듬고 있는 것처럼 마음속 어딘가 따끔거리기 일쑤였다. 이렇듯 저자는 나이를 기반으로 한 멸칭은 특정 세대를 배제하기 위한 일종의 권력 행위로 정의하며 한국의 연령차별주의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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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칭'은 권력 행위다. 멸칭이 다수자 집단에 붙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멸칭은 주로 소수자 집단에게 사용되는데, 이들 전체를 일반화하여 호명하는 이름이 붙는다.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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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저자는 나이가 권력이 되는 한국의 계급 사회 속에는 '연령차별주의'가 끈적하게 녹아들어 있어 사회 구성원조차 그 문제를 자각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지적한다. 전 생애에 걸쳐 존재하는 연령 혐오적 멸칭들이 일종의 기이한 평등성을 부여하며 으레 그러한 것으로 치부되고 마는 것이다. 각 세대 별 멸칭이 함의하고 있는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시각은 점차 사회구조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인식을 반영하고, 사회를 투영하는 언어적인 관점에서도 이러한 멸칭의 무분별한 사용은 세대 간의 혐오와 갈등을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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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어려서 또는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들어 누군가는 공간적 권력에서 배제되고 연령차별은 점점 확장된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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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저출생과 초고령화로 양극화되고 있는 시대, '노 키즈 존'과 '노 시니어 존'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아이러니하고도 극적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이 중요시되며 이런 궤도에서 이탈한,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어버린 세대를 사회의 변두리로, 주변화 시키며 배제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연령차별주의적 문제들은 정치적 혹은 정책적인 분야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나이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차별과 배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라는 기준이 그다지 변별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감이 중요하다. 이 공감은 교육과 소통에서 나온다. 어떤 종류의 차별이든지 간에, 교육은 편견을 해소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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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세대 간 갈등과 혐오, 차별의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저자는 한국은 확실히 둔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연령차별주의적 멸칭 사용, 미디어 환경에서 조성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양산 등으로 세대 간의 갈등 혹은 몰이해를 부추기고 있다.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접촉과 소통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발전한 여러 사례들처럼 사회적인 차원에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나이를 묻지 않음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더 자유로워지는, 더불어 한껏 다채로워지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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