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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딸인 내가 태어나고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한 가지 걱정을 토로하셨다고 한다. 얘가 커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수 뒤꽁무니만 쫄쫄 따라다니면 어떻게 하냐는, 배냇저고리를 입은 나를 보며 그런 걱정을 하셨다고. 추측건대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키던 것을 보며 하셨던 기우였던 것 같다. 그것은 정말 한낱 기우에 불과했고 오히려 나는 그 어떤 가수에게도 절대적인 팬이었던 적이 없다. 시절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뜨내기 리스너였고 그런고로 친구들이 여러 오빠들을 추앙하고 분노하고 빠가 까가 되어버리는 일련의 과정을 목도하면서도 초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케이팝을 다루는 이 책도 조금 무감하게 펼쳤는데?

분명 그랬는데? 일단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팝핑 캔디를 입에 물고 그 달달함과 따가움을 동시에 느끼는 기분이랄까. 그야말로 케이팝에 대한 애증을 가감 없는 표현으로 드러내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자기 고백이다. 무엇 하나를 깊이 파다 보면 으레 마주하곤 하는 심연 속에서도 저자는 기어코 무엇을 길어내고야 만다. 케이팝에 대한 사유와 철학,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 담론은 저자의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흐르며 요동친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고독에 몸서리치며 분노에 치를 떨지만 그럼에도 과연 케이팝, 케이팝, 케이팝!
내가 어떤 음악을 굿처럼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내 감정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꿔주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도 숨 쉴 구멍이 열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머리가 감기가 가장 일상적인 주술 행위이기 때문이다. 케이팝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시끄럽고 불쾌한 음악이지만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삶을 견딘다. p.186

케이팝과 케이팝으로부터 파생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팬픽이나 팬덤 문화는 물론이고 케이팝의 착취적인 사업 구조, 팬과 아티스트의 미묘한 관계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범죄 사건, 자기모순적인 태도와 현상 등에 관해 비판적인 비평 또한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를 대하는 저자의 개인적인 속내를 솔직하게 곁들인다. 아이돌 팬픽에서 파생한 '팬픽이반'과 '팸 문화'를 주체적인 정체성 탐구의 측면으로 해석하거나 '러브 송'에 갇힌 수동적이고 관습적인 여성상을 지적하거나 90년대 여성 아이돌에게 가해진 폭력적인 행태 등을 짚어보는 젠더적인 시점은 케이팝에 관한 사유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케이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그 팬덤 문화를 다루던 다큐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좀처럼 한데 묶기 곤란한 사람들이 아티스트를 구심점으로 모여 동심원을 그렸다.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반짝거리며 빛이 났다. 다큐를 보며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렇게 성실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펑펑》을 읽으며 그것은 참으로 지독한, 고도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역동하는,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이는 무어라 감히 명명할 수 없는 무엇으로 읽힌다.
(…) 어쨌든 우리 둘에겐 한 그룹을 사랑하며 공유한 시간들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케이팝을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만 골몰하던 나는 그날의 만남 이후 이 사적인 사랑이 공동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37

자신의 사랑과 그 사랑의 좌절을 살피는 그의 태도는 얼마나 성숙한가? 대상이 남기고 간 분노를 어루만지는 것까지가 사랑이라니. 케이팝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좆같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얼버무리곤 했던 나는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과 마주한 한 사람의 용기 앞에서 눈부신 모멸감을 느꼈다. p.26 (오세연 감독의 <성덕>을 본 저자의 소회)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는, 미치지 않고서는 케이팝을 사랑할 수 없는 정서를 《펑펑》을 통해 읽어낸다. 통속적인 가사, 귀에서 귀로 흘러가버리는 멜로디, 화려한 비주얼 등 케이팝을 떠올리면 단박에 떠오르는 납작한 연상들에 《펑펑》은 다양한 통로에서 발현하는 서사와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내밀한 정서를 불어넣는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펑펑》이 선사하는 케이팝의 세계는 비로소 다채로워진다. 그렇지만 마냥 알록달록하지 않다. 곳곳에 얼룩까지 조명하는, 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를 기어코 인용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독한 케이팝에 관하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