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주문 - 일하는 여자들을 지탱하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마음, 개정증보판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근길에 가장 많이 읊조렸던 주문은 '퇴근'이었다. 미처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부터 염원하던 마음에 경각심이 퍼뜩 들어 제미나이에게 '이런 마음, 괜찮은 것인가'를 물었다. 이는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자 직장인 최고의 유머 코드라고 너스레를 떨며 혹시나 번아웃의 증상은 아닌지 스트레스를 점검하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 제미나이. 책을 받아들고 제목만 보고 막연하게 떠오른 잡상을 뒤로하고 책을 읽어 나간다. 사막 같은 출근길에 타는 목마름으로 퇴근만을 연상하는 출근자가 오아시스 한 사발을 들이켜는 기분으로 《출근길의 주문》을 읽어 나간다. 





 '언어, 네트워크, 마인드셋, 커리어'에 더하여 '프리랜서의 도'라는 부록까지. 일터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언을 담는다. 언어 챕터에서 과도한 쿠션어 사용을 지양하고 뚜렷하고 단호한 언어 사용을 권하면서도 나이와 직급이 올라가며 발생하는 위계 속에서 비롯할 수 있는 부정적인 권위를 상쇄하기 위해, 언어가 아래로 향할 때는 조금 더 유연할 수 있도록 첨언한다. 구업을 많이 짓는 인간인지라 이 챕터는 꽤나 집중하며 읽었다. 그러한 스스로를 반추하며 그러지 말아야 할 것과 그렇게 해왔던 것,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을 가늠해 본다. 



 스무 살 대의 정체성으로 한평생 대나무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나름 대단하지만, 깍듯한 예우를 받을 때는 나이 든 자신인 게 어색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조심해야 할 때만 철부지였던 시절을 고수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p.22 [쿠션어, 여성어] 





 나는 여자들이 침묵을 연습하기를 바란다. 회피하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의 시선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법을 배우기를. p.51 [때로는 침묵을 견디기]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이 여전히 만연한 '기울어진 운동장', '유리 천장'에 더하여 '유리 절벽'까지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관련한 문제들을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꾸준히 일해주기를, 함께 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실제 일터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며 설명할 수 없이 어렴풋하게 느꼈던 불편한 감정이나 '으레 그러한 것'이라고 퉁치는 체념의 정서를 저자의 경험이 벼리어낸 구체화된 언어로 선명하게 인식하는 순간들은 특히나 귀하게 느낀다. 일터에서 사라져 간 여성 동료들과 지금도 분투하고 있는 여성 동료들을 향한 일종의, 응원의 샤라웃.




 네트워크와 커리어, 프리랜서를 다루는 내용에서는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실용서인가 싶다가도, 일터에서 체득한 경험과 조언을 나눌 때는 에세이처럼 술술 읽어 나간다. 그러다가 여성 노동자로써 겪은 차별을 서술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할 때는 사회비평서처럼 날카롭게 읽힌다. 자신의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하고도 오래 활동해 온 저자의 시간에 빚을 진 기분이 든다. 앞서 걸어간 이들이 닦아낸 길 덕분에 현재의 이들은 조금 수월하게 그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앞에서 읽은 계속해달라는, 지금 이곳에서 길을 만들어 달라는, 프롤로그에서의 저자의 말이 맴돈다.


 계속해 주세요. 거기에 길을 만들어주세요. 시야 안에 머물러 주세요. 

 계속해 주세요. p.9 [프롤로그] 





 감상적이거나 피상적인 위로의 단어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깊이 마음에 파고드는 구석이 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기술과 같은 어떤 무엇을 요구하거나 자신만의 기조를 종용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써 자신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나가며 일터에서 마주한 부침을 목도하며 농숙해진 통찰을 바탕으로 담담히 조언할 뿐이다. 출근길마다 '퇴근'을 주문처럼 읊어대던 스스로를 돌아본다. 대체적으로 성실하고 때로는 묵묵하게 가끔은 소리 내며 일터에서 각자의 길을 닦아내는 여성 동료들과 희미하고도 느슨하지만 확실한 연대를 떠올리며 이것이 진정한 '출근길의 주문'은 아닐까, 무람없이 넘겨 짚어본다. 


​

1.주문 主文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방식으로 해 줄 것을 요구

2.주문 呪文

어떤 바람이나 원망을 실현시킨다고 믿으며 외는 글귀

​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