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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은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 정책 생태계의 민낯과 가능성
이창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얼마 전에 치른 제9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를 앞두고 여지없이 선거 공보물이 한가득 도착했었다. 빨갛고 파란 공보물들을 넘겨보며 그저 활자로만 존재하는 정책 공약들을 무신경하게 읽어나갔다. 지역의 후보들은 변별력 없이 지하철 관련 공약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여기는 듯했고 현실의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그런 공약들은 별다른 소구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선거의 대의적 명분을 일정 부분 수긍하면서도 현실과 괴리된 정책 공약들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느끼며 투표소로 향했더랬다. 선거를 앞두고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가 출간된 것은 시의적절했고 지난 내란 사태 이후 정치 뉴스를 간헐적으로 기웃거리며 이번 선거를 목도하는 한 개인에게도 과연 그러했다.

《정책은 왜 실패하는가》는 대한민국의 정책 생태계를 비판적으로 세세하게 톺아보면서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관계자들의 특성과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폐해를 지적하는 한편 저자 나름의 정책 생태계를 건강하게 건설할 수 있는 혁신과 방법, 비전을 제시한다. 보통 '정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입법을 주관하는 국회와 이를 집행하는 정부만 떠올랐는데 참으로 다양한 집단이 정책 과정에 얽히고설켜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비서실, 정책에 관련한 예산을 총괄하는 경제 부처, 정당과 국회, 사법부, 싱크탱크와 더불어 시민단체, 노동조합, 이익집단, 대학교수, 언론 그리고 바로 시민까지. 이들은 모두 '정책 생태계'를 구성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책을 전문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과학적 설계의 산물로 여기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책은 치열한 정치적 타협과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 그리고 날 선 권력의 충돌 속에서 탄생하고 변주된다. p.19
그러나 시민이 느끼는 정책적 효능감은 실로 요원하다. 정치권에서는 권력 다툼에 치중하고, 경제 부처는 모피아가 되고, 사용자 단체와 이익 집단은 관피아와 유착되어 있고, 정책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와 교수들은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민주화 이후 시류에서 도태되었고, 언론이 표방하는 저널리즘은 자본화에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거칠게 요약한 내용이지만 각 챕터별로 살펴보는 위와 같은 정책 행위자들의 폐단과 이로 인해 붕괴되는 유기적인 관계 읽다 보면 앞서 선거 공보물을 보며 느꼈던 정책과 현실의 괴리감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이런 생태가 실로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정책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충돌, 제도적 제약,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비토 권력(Veto Power)'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 산물이다. p.361

저자는 현재를 '복합 위기 시대'로 정의하면서 이를 '우리 삶의 문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실재적 변화(p.17)'로 인식한다. 이러한 복합 위기 시대 속에서 발생하는 위기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정책적 선택과 방관이 빚어낸 인위적인 결과물(p.17)'이라 지적하며 오작동하고 있는 현재의 '정책 생태계'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최종적인 방향은 결국 시민의 삶과 일상으로 향하고 있기에 그 피해는 또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그런고로 올바르고 효능 있는 정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책 과정에 참여하여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그 과정과 방향을 감독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를 독려하면서 모두를 위한 '건강한 공론장'과 그러한 공론장에서 건전한 토론과 토의를 거치며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할 것을 제언한다. 국가적 정책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책 형성 과정에도 주민자치회나 마을 공동체 등을 통해 참여하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이는 정책적 효능을 경험하고 학습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워나가는데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10 민주 항쟁에 더하여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을 거치며 민주화 과정에서 항상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시민들의 힘을 믿는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는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선거라는 짧은 국면이 지나면 시민과 권력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깊은 단절이 발생한다. 선출된 대표가 시민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경청하기보다 정당의 이해관계나 권력 유지에 몰두하게 될 때, 정책은 시민의 일상과 유리된 채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설계되기 시작한다. p.24
빛의 혁명으로 내란을 극복하고 '국민 주권 정부'를 제창하며 출범한 이번 정부가 시민들의 정책 참여를 독려하며 타운홀 미팅을 주최하는 것이나 국무 회의를 실시간 생중계하여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논의되고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숙의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작은 희망일 것이다. 일상에서 정책과의 괴리를 느끼는 거리만큼 시민으로써 우리는 정책과 그 과정에 충분히 부대껴야만 그 간극을 좁힐 수 있을 것이다. 체념과 회의의 정서를 잠시 걷어내고 우리 또한 정책 생태계의 주요한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