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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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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위태로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곳곳에 '아름다운' 노거수와 나무, 숲의 생태에 관한 실태를 여러 관점에서 탐구하고 기록한 내용이다. 다루는 주제가 평소의 읽는 관심사와는 사뭇 다른 분야라서 궁금한 마음으로 기대 반, 주제가 낯선 것에 대한 낯가림 반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나의 삶과는 그다지 큰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 조금은 건조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의 시작은 그러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유난히 많았다. 곳곳에 존재하는 노거수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는 책은, 노거수의 수령은 기본 수백 년 단위에다가 묘사하는 크기는 쉽사리 가늠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분명 아름답다고 했건만 언급하는 노거수의 이력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개발에 떠밀려 그 위용에도 불구하고 생의 터전을 잃기도 하고, 옮겨 심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의 목적으로 사지를 절단 당하는 수모와 더불어 실화(失火)로 인해 어이없게 소실되기도 한다. 벼락을 맞고도 굳건하게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기도 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외면한 노거수를 개인이 거두어 관리하기도 한다.


언급하는 문제점들을 읽다 보면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치고는 황당할 정도로 허술한 면모들이 많았는데, 방법론 자체도 그렇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 대한 인식 수준도 처참할 지경이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나무를 하나의 '재해'나 '구조물'로 규정할 때마다 무자비해진다. 종종 목격하는 뭉뚝하게 잘려버린 가로수는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에서, 자연재해 피해 시 손해 배상 청구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주민 민원 청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여타 이유를 불문하고 쉽게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가로수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어렴풋이 들던 이유 모를 불편한 마음의 기원이 여기 있던 것이다.








나무와 나무가 이루는 숲에 관한 이런 처참한 인식 수준은 '도시 개발, 환경 정비'라는 명제와 만나며 그 불온한 시너지가 최고조에 이른다. 나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식생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무지하게 심어진 봉산의 편백 인공림은 자생하지 못한다. 물탱크를 설치하고, 관계 기관 직원들이 수시로 관리를 해줘야 하는 '밭'으로써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봉산의 식생에 맞춰 자생하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이토록 억지스러운 환경을 조성한 것은 다분히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허울 좋은, 아니 어쩌면 허영뿐인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수많은 개발에 희생되는 나무와 숲의 생태계에 관한 예시는 책에 차고도 넘친다. 특히나 고양 산황산 부지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더하여 이를 확장하겠다는 건설사의 취지는 읽다가 코웃음이 날 만큼 뻔뻔했는데 이 사업은 관련 공무원과 건설사 간의 뇌물 수수 혐의와 해당 건설사의 부도로 일단락되는듯했으나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관련해서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고양시 의회에서 해제 권고안이 통과됐으며 범대위 측에서는 해제 촉구 도보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녹지 생태를 파괴하는 일은 그것을 수호하는 일보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수호하는 자들의 노고를 목도하며 깨닫는다.


"산황산이 훼손돼 보존 가치가 낮아서 그린벨트 역할을 못 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만들어서 '도시 내 녹지 기능 유지 및 훼손된 기존 자연 경관 복원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골프장 쪽이 밝힌 사업 목적이에요. 이 숲이 골프장을 만들어야 할 만큼 훼손됐다고 보이세요?" p.205


나무 한 그루가 주는 도구적인 효용성이 아니라 나무를 중심으로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생물체들이 나무를 중심으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모습은 소우주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는, 불가사의하게 신비로운 모습이다. 철새의 둥지가 되고 곤충과 애벌레의 집이 되어주며 떨어진 낙엽과 열매는 토양의 비료가 되어 순환한다. 광합성과 증산 작용을 통해 대기 환경에 영향을 주며 나무의 뿌리는 토양을 단단히 붙잡아 주기도 한다. 나무가 생성하는 미기후는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해 주는 것을 물론이고 걷다 지친 누구에게나 너른 그늘 아래를 무람없이 허락한다.


나무에 대한 '못된 말과 행동'의 기저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신화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이용할 대상이고, 그것이 나무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이지요. 정말 나무는 인간에게 이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p.99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되는 노거수의 실태와 실제적인 문제점, 노거수를 비롯한 나무와 숲 생태 보호와 보존 방법에 관한 몰이해와 명칭에서 비롯된 나무에 관한 오해와 편견들을 차근차근 톺아본다. 자신의 터전에 알맞고도 유연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생존해 온 나무와 숲의 변천을 읽다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런 경이로움은 책을 읽다가 마주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발로하는 이기심과 무자비함에 무너지곤 했다. 치적을 쌓기 위해서, 돈에 눈이 멀어서, 몰이해와 무지 그리고 혹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아름다운 거인들이 스러져간다.







행간에 스며든 저자의 나무와 숲, 생태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기자의 시선으로 취재한 현장의 실태를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무 자체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화적인 가치 또한 두루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폭넓은 이해와 깊은 애정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p.188)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직접 나무를 관찰하고 좀 더 들여다보자는 저자의 권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내일은, 길을 나서면서 스쳐 지나가던 가로수에 시선이 조금 더 머물 것 같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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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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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서사에다가 몰입도가 강렬한 소설을 읽고 싶던 참이었다. 그러나 서사 자체에 압도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소설을 찾는 행운은 좀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캡처 된 책들만 차곡차곡 쌓이던 와중에 발견한 《나의 작은 무법자》의 신간 소개 글을 읽는다.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수상하는 골드대거상 수상을 비롯해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제작 확정, 유명 범죄심리학자의 추천사 등의 굵직한 소개 내용과 더불어 한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나의 죄, 나의 영웅, 나의 살인자'라는, 상충하는 단어들의 역학 관계를 간략한 줄거리와 곁들이니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행운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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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_


소설의 시작은 실종된 소녀를 수색하는 장면으로 다짜고짜 시작한다.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고, 시시 래들리의 죽음은 주변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다. 범인은 빈센트 킹. 그는 시시 래들리의 언니인 스타 래들리의 연인이었다. 이 비극은 마치 유기체처럼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현재에 이르는 시점까지 여러 인물들의 삶을 관통하면서 꿈틀대며 살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비극의 원흉인 빈센트 킹이 수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 우리의 작은 무법자, 더치스라는 소녀가 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무법자'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정체성을 부여한 소녀는 바로 스타 래들리의 딸이었다. 약과 술에 취해 딸인 더치스와 아들인 로빈을 돌보기는커녕 하루하루를 그저 평범하게 보내기에도 벅찬 스타를 대신해서 더치스는 동생 로빈을 살뜰하게 보살핀다.


충분히 고달픈 더치스의 인생에 무엇을 더 더할 것이 있을까 싶지만 비극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었다. 스타 래들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현장에는 피를 묻힌 빈센트 킹이 가만히 앉아 경찰에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부터 소설은 과연 빈센트 킹이 스타 래들리를 죽였는가? 하는 질문을 워크를 통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추적하는 자, 워크


질문을 추적하는 인물은 빈센트 킹의 오랜 친구이자, 케이프 헤이븐의 보안관인 워크라는 인물이다. 이 모든 비극을 목도한 인물인 워크는 킹에게도, 스타에게도 안타까움과 연민을 가지고 스타의 아이들인 더치스와 로빈을 조용히 돕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옥에 수감될 위기에 처한 킹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의 무죄 증거를 찾아 나선다.


킹을 대하는 워크의 태도는 과거 시시 래들리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 그들의 학창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킹과 연인이었던 스타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복잡하고도 농도 짙은 회한에 가깝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친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빛바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유력 용의자의 배경을 파고들면서 그가 보던 일면이 무용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또, 자신이 평생을 알던 이웃들의 숨겨진 불쾌한 면면을 발견하면서 내적인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결정적인 단서는 요원하고, 오히려 진실로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레드 헤링(red herring)은 의혹의 씨앗에 불을 지필 뿐이다. 방법의 도덕성일랑 잠시 차치하고서라도 워크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분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건과 인물을 가장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인물인 워크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한 인간 군상의 모순을 목도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여백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살아남은 자, 더치스


우리의 작은 무법자 더치스의 인생은 지독하게 고달프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직 어린 소녀에게 이렇게나 많은 비극을 선사하는 서사를 마뜩잖게 목도하는 독자였던 나는 결말을 읽고 나서도 씁쓸한 마음에, 어쩔 도리 없이 마음대로 더치스의 미래를 아주 밝게, 지난 삶의 그림자에 대한 보상으로도 차고 넘치게 밝게 밝게 그려 넣었다.


더치스의 삶은, 삶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 모두 상실된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리고 더하여 최소한의 것들도 모두 스러져가는 상황에서 소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법자로 설정한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선택한 무법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로 그녀를 자꾸만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어지럽게 얽힌 인과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더치스의 삶은 평범한 일상의 궤도를 잠시 회복하기도 하지만 이내 앗아가버린다. 이런 상실의 상태를 기본으로 두는 더치스의 건조하고도 퍼석한 현실 인식을 마주할 때마다 서늘해진다.


더치스는 너무 지쳐서 그의 토실토실하고 친절한 얼굴과 감정이 넘치는 눈을 마주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부드러웠고, 젤리나 푸딩 같았다. 부드러운 웃음, 말랑말랑한 몸, 소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길. 부드러운 것은 더치스에게 쓸모가 없었다. p.83


이따금 더치스는 어떤 느낌일지, 좀 더 평범하다면, 좀 더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떨지 궁금했다. p.123


더치스는 코코아를 들어 숟가락으로 마시멜로를 퍼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너무 달아서 깜짝 놀라버린 자신이, 마치 삶의 좋은 것들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p.322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천연의 색을 보며 감탄하기 보다 지난했던 삶 속에서 고통의 흔적을 먼저 발견해 내고야 마는 이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지만 무기력한 분노가 일었다. 같은 장면에서 어떤 삶은 아름다움을, 어떤 삶은 고통을 읽을 수밖에 없는지…. 답을 구할 수 없음에 작은 한숨만을 토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가장 애련했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소녀는 다시 무법자 더치스의 정체성을 꺼내들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나선다. 그 종착점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의 구원을, 이것을 구원이라 불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구원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목도하게 된다. 인생 전반을 흩뜨려놓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참과 거짓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상황들은 기필코 더치스의 거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나서야 종료된다.




OUTRO_


소녀의 얄팍한 생을 이토록 야멸차게 흔드는 서사에 비교하면 그녀가 맞이하는 결말은 결코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추미스 장르를 읽고 난 후, 그러니까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응당 카타르시스가 흐르기 마련인데, 반면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먹먹함이었다. 생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성하고, 보다 긍정적인 무엇을 기대하지만 더치스의 구원은 삶에서 거의 모든 요소가 소거된 상태로의 구원을 이야기한다. 너무 야박한 구원이 아닐까 싶지만 생각을 곱씹을수록 핍진한 현실 인식인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추리의 서사는 마치 마르틴 베크 시리즈처럼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단서들을 꼬깃꼬깃 손에 쥐고 느리디 느린 속도로 전개된다. 범죄가 일어나고 추리를 시작하지만, 이 서사의 본질은 더치스의 성장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뒤에 남겨진 피해자 가족들의 비극과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후유증을 가진 채 너덜너덜 해진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점이 여타 추미스와는 구별되는 특장점이다. 더불어 워크가 여러 인물들의 면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인간 군상의 입체적인 속성들도 서사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한 글이 표현하는 정서나 묘사되는 표현들도 굉장히 문학적이어서 다방면으로 풍성하게 읽힌다.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내밀하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자연스레 더치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미래가 어떠할지 섣부르게 단언하지 않고 그저 미래가 앞에 있다는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더치스 삶의 어느 지점에서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핼이나 워크, 셸리 그리고 돌리 같은 조력자들은 삶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생의 희망을 상기시킨다. 거나한 희망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사건의 종착점인 동시에 생의 시작점에 선 더치스를 보며 원제의 의미를 곱씹는다. WE BEGIN AT THE END.



길지 않은 기간에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서 뭔가가 있는 처지로 옮겨갔고,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기는 해도 분명히 소녀 앞에 있었다. p.560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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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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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힙'의 영향으로 이번 긴 연휴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마다의 책을 집고 연휴를 읽어 내려갈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 틈에 나도 자리를 잡아본다. 새해, 새로운 마음, 새로운 책 그리고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소설. 여섯 명의 신인 작가들의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셋셋 2025》 이야말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 표지의 푸릇한 색감 또한 이른 봄에 싹을 틔우는 새싹 같은 은유를 닮았다.


출판사마다 이런 종류의 시리즈쯤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한겨레에서도 작년부터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셋셋'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셋셋'은 작가, 출판사, 독자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의미로, 문학적 역량을 지닌 신인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작년 시리즈의 작가들이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이번 시리즈 작가들의 이번 연도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여름방학> 김혜수 |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은진은 아버지의 보험료를 노리는 친척들을 피해 도망치듯 이사를 오게 된다. 전학 온 학교에서 만난 세희는 또래보다 조숙했고, 은진과 세희는 곧 친밀해진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구원을 갈급하던 어머니는 종교에 투신하다시피 빠지기 시작하고,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부재를 마주한 은진은 세희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만의 구원을 생각하게 된다.


맹목적인 믿음만큼 우매하고 잔인한 것이 있을까. 공란으로 가득한 카세트테이프에서 구원을 바라던 엄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은진은 또한 자신의 구원은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녹음되지 않는 테이프에 도깨비 말로 녹음을 하고는 침대 밑 깊숙이 밀어 넣는 은진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종교를 통해 구원의 허상을 깨닫지만 은진은 그저 목도할 뿐이다. 셀로판테이프의 도깨비 말을 녹음하는 행위도 허상의 허상을 더할 뿐이라는 생각에, 어쩌면 구원이란 실체는 없고 그 행위만이 존재할 뿐임을 너무 빨리 깨달은 은진이 안쓰럽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헛헛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이 눈치껏 자라면 분명 무언가를 놓친 상태로 자라버린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때 놓친 것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찾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p.27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wawa109, 버디버디, 도깨비 말, 기절 놀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짧은 서사 속에서도 읽는 나를 은진과 세희 곁으로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무언가 결핍되었거나 부재한 시절 속에서 서로의 빈틈을 파고드는 관계 속에서, 어쩌면 구원은 그런 식으로 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은진처럼 자신만의 구원을 생각해 본다.



<지영> 이서희 | 영화감독 지망생인 규호는 지영을 우연히 만나면서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울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규호와 지영은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나누게 되고 규호는 농담 아닌 농담처럼 건넨 말에 지영의 종교적인 신념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나는 지영의 눈을 마주 봤다. 나는 지영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구원받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한다고. 그 순간 지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더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사실 때문에 지영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p.71


안타깝게도 규호의 신념과 지영의 신념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면서 규호는 포교를 목적으로 자신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었던 선생님에게 받았던 위로를 떠올린다. 믿음과 구원과 신념. 뒤틀리고 왜곡된 신념 안에서도 누군가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소망하며 위로를 받는다. 구원의 방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고 그저 저마다의 구원을, 그 방식과 형태를 찾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삶의 한 방식으로써의 구원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 김현민 |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해연은 산책길의 길고양이를 보며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이라며 겁먹는 어머니를 보며 좌절한다. 여름이라는 덥고 눅눅한 계절이 겹쳐지면서 해연의 돌봄 노동이 더욱 고되게 그려진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점점 피폐해지는 해연은 과거 가족에게 드리운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아늑하면서도 불안한 품속. 주저앉은 우리를 의아하게 보는 가족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나는 조금만 더 이 순간을 견뎌보기로 한다. 엄마의 몸보다 훌쩍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품에 안긴 아이들로 남기로 한다. p.104


읽고 난 후에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 또는 고양이'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머니는 왜 그토록 표범 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고, 해연은 왜 그토록 어머니의 공포를 부정했을까. 그것은 다른 결의 죄책감의 현현이었고 이를 다루는 두 사람의 태도가 동물원에서 비로소 합의를 보았을 때, 해연은 그 '불안한 품속'에서 견뎌보기로 한 것이다. 다시 돌아 마지막 장면에서 불어난 고양이를 보며 주저앉은 어머니에게 이제 해연은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한다. p.107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모녀 사이의 미묘한 간극에서 비롯된 애증의 감정이 축축하고 두텁게 쌓여있다가 비로소 치유되는 순간은, 사실 그렇게 극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공포 앞에 서로를 껴안을 따름이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치유와 구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실현될 수 있다는 방증과 함께 묘한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다. 이런 구원은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위로보다 그저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결심한 해연의 고백이 더 확실하고 선명한 희망의 모습이다.



<아이리시커피> 이지연 | 잘 다니던 대학 병원을 그만두고 카페를 창업한 전직 간호사이자 현직 카페 사장인 희수에게는 믿음직스러운 아르바이트생인 소미가 있다. 한가한 시간, 메뉴에 없는 달콤 쌉싸름한 아이리시 커피를 소미와 함께 나누어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평화로운 한때에,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순식간에 덮쳐온다.


부지불식간에 덮친 불행은 희수를 죄책감에 몰아넣는다. 소미의 부재에 희수는 어떤 감정과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평소 소미에 대한 희수의 태도와 닮아있다. 적당한 거리로부터 얻는 부담감의 해소. 이러한 희수의 태도에 나는 많은 공감이 일었다.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감내해야 하는 종류의 실망과 상처를 기꺼이 포기하는 선택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일이 끝나고 빈집으로 돌아가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날이면 소미에게 같이 맥주라도 한잔하자고 해볼까 싶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어쩌면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게 부담 없는 건지도 몰랐다. p.117


같은 공간에서 생존해버린 희수에게 희수의 어머니는 '축복'이라 말하며 교회에 떡을 돌린다고 말한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실은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대한 경멸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어머니는 축복을 하고 죽은 자의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 희수는 병원 근무 시절 유민이라는 어린 환자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 시절 온기 같은 어떤 마음에 대하여….


"언제 저랑 같이 갈까요, 소미 보러." p.136


희수는 소미의 어머니를 찾아가 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소미를 보러 같이 가자고 말한다. 어쭙잖게 서있던 희수의 마음이 마침내 바로 앉는다. 관계의 거리를 좁히고 마음을 쓰기로 한 결정에 뭉클해진다. 희수의 어머니는 그녀의 생존이 축복이라 말했지만 희수 또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PTSD를 겪는 피해자였고, 소미의 어머니는 희수에게 괜찮냐는 안부를 먼저 묻는다. 이들에게 소미를 위한 애도는 또 하나의 치유 과정이자 연대의 힘인 것이다. 나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다분한 사람이지만 이런 결말은 언제나 좋다.






<호날두의 눈물> 양현모 | 우리는 개저씨를 욕하지만 개저씨의 입장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여기, 개저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휴대폰 매장의 매니저인 화자는 근처 편의점에 근무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주장하지만 치근덕거리지 말라는 편의점 사장의 일갈에 화를 내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과거 연인이었던 현주와 헤어지던 날, 호날두가 노쇼를 했던 그날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날강두를 '씨발 새끼'로 명명하기에 이른다. 스크린 도어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간과하고는….


스크린 도어에 숫자 7이 크게 쓰여 있는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이 비쳤다. 이게 다 호날두 때문이었다. 씨발 새끼. p.164


자신의 삶이 이렇게 하찮지는 않았노라고 한탄한다. 메시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호날두의 경기를 부러 찾아보며 양가적인 태도를 취한다. 전성기가 지난 호날두에게 사람들은 조롱과 비꼼을 퍼부어대지만 어쩐지 이 개저씨는 진물이 터진 상처보다 어딘가가 더 아프다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시시하게 끝난 경기를 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울더라도 현역에서 뛰는 게 어딥니까.

댓글을 달았다. 내가 단 댓글은 순식간에 밀려 올라가 없어졌다. p.171


누구나 호시절이 있고 과거의 망령을 붙들고 변명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잘못된 선택과 우연이 겹쳐서 남들과 다른 곡절의 세월을 겪기도 한다. 사회가 규정한 삶의 평탄한 수순에서 밀려난 개저씨의 변명 아닌 변명이 일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 우리 모두 그런 시절을 한 꼭지처럼 달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다양한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호날두 탓은 그만하고 스스로를 스스로가 구원하기를, 바라본다.



<경유지> 전은서 |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하여 그의 시신을 인도하러 해외로 가야 한다면 그 기분은 더욱 어떠할까.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을 가지고 예은은 전 남자친구인 상민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그의 누나인 민경과 함께 비행길에 오른다.


그 짧은 여정에서 예은은 상민과의 과거를 추억한다. 그와의 첫 만남과 동거, 애매하게 헤어진 그들의 마지막과 예은이 떠난 뒤의 상민에 대하여 생각한다. 차가운 상민의 시신을 보며 느끼는 낯선 이질감과 상민의 장례식장에서 듣는 그의 이야기들은 예은으로 하여금 그가 알던 상민이 과연 상민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두 명이 곤란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앓는 편이 낫다는 데 나 역시 동의하게 되었다. 혼자 내버려두면 저절로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p.189


그리고 마침내 상민의 잠긴 휴대폰에서 예은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무용함을 깨닫는 동시에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 특히 그들의 관계도 결혼이라는 완결을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의 '경유지'로서 그 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에서는 생각을 곱씹게 된다. 우리는 다만 여러 방면으로 상대를 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타인의 다면적인 면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조각들이 모여 타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책에는 다양한 구원이 등장한다. 때로는 관계의 형태로, 신념의 형태로, 또는 시절의 형태로… 구원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희망이라고 부를 수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종종 괴랄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끝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하며, 너무나 명백하게 빛나기도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구원을 향해 성실하게 고군분투할 뿐이다. 읽고 있는 나 또한 그들 각자의 구원을 조용하게 응원할 뿐이다. 그렇게 현실에서의 우리도 각자의 구원과 서로의 구원을 성실하고 조용하게 응원하는 것이다.


대략 30에서 40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다음을 위해 기억하려 몇몇 작가의 이름을 따로 적어놓는다. 혹시나 다른 작품이 있을까 인터넷 서점 상세 페이지에서 찾아 본 여섯 작가의 이력은 《셋셋 2025》을 제외하고는 깨끗하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짧지만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가 소개에 뒤이어 적혀 나갈 작가들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덕분에 올해 설 연휴 독서 계획은 '텍스트 힙'에 더욱 부합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만족스러운 자기 평가를 해보며….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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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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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로, 나에게는 《너무 한낮의 연애》로 유명한 작가 김금희의 에세이집인 《나의 폴라 일지》는 작가가 <한겨레>의 특별 취재기자 자격을 부여받고 비로소 남극 세종 기지에서 한 달 정도를 체류하게 되며 겪은 일을 엮은 글로, 10개월 동안 <한겨레>의 기고한 뒤, 전면 개고를 거쳐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과학도가 아닌 작가가 다녀온 남극 이야기는 어떤 서사로 흘러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왜 하필 남극이었을까?





'남극'이라니…. 나에게는 아득한 이름이자 생경한 풍광이었지만 저자는 오랜 시간 남극을 열망하며 그곳을 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부단한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극행이 확정되고 사전 준비 과정을 거치는 도입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남극 자체보다도 그 남극에 가고자 하는 저자의 열망은 과연 어떤 온도의 마음일까. 나는 어딘가, 무엇을 이토록 순수하게 열망한 적이 있었던가? 저자가 그리는 남극의 모습을 기대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남극이라는 순수한 열망


남극에 가기 위해 선발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선발 후 교육 과정이나 남극으로 가기까지의 여정도 굉장히 험난하다. 해양에서의 조난을 대비한 생존 훈련을 배우면서 '먹깨비처럼 기대감에 휩싸인(p.23)'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모든 과정을 기꺼이 인내하는 모습에서 작가의 남극에 대한 순수한 열망에 관한 초반의 나의 궁금증은 작은 경탄이 되었다. 게다가 비행기를 타고 여러 번의 환승을 거치는 과정은 활자로만 그 과정을 더듬어도 피곤한데, 어디에 있든 집이 항상 최고인 내향인인 나로서는 그것마저 더욱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잠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머무르며 인간종種으로서 작고 단순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겪어보기를 원했다. p.14


남극에서 인간이라는 종種으로서의 존재로 자아를 단순하게 만들어 보기를 소망한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남극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감상에서 드러난다. SNS 속에서 자신을 한껏 드러내기 바쁜 현대 사회에서 역설적이게도 '작고 단순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째서인지 안도감마저 들었다. '주권도 화폐도 국경도 없는 세상의 끝'을 상상하면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빙원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남극이라는 압도적인 환경이 선사하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겸허해지는 안도감이랄까? 남극의 서사를 따라갈수록 형언할 수 없는 감상이 남는다.




남극의 비펭귄 인간들


남극에서 작가는 여러 사람들과 만난다. 남극의 옆새우나 지의류 같은 생태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 남극의 대기를 연구하기 위해 매번 풍선을 띄우는 대기학자들 외에도 식량을 담당하는 셰프, 기상청에서 파견되어 온 기상청장이나 해군의 SSU 대원, 소방 공무원 시험 합격 후 대기 발령 중인 미래 소방관 등 이력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인 것이 놀랍기도 하고 그들의 이력 자체만으로도 흥미롭기도 하다. 이과들만 가득한 곳에서 문과인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경계를 넘나들며 더욱 다채롭게 그려진다.


특히 기지 내의 여러 과학자를 만나면서 나누는 대화들도 흥미로웠는데, 종종 연구 목적이나 계기를 묻는 작가의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에서 생물의 근원에 대한 원초적이고도 순수한 호기심을 엿볼 수 있던 점이 그랬다. 그들을 추동하는 호기심과 탐구욕을 보고 있자니 가슴에 남극을 품은 사람들의 제법 순수한 구석에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인간'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섰고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종'이었다. p.252


경계 없이 자유로운 남극은 동시에 폐쇄적이고 제한적이기도 하다. 대원들은 기지 안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생활을 한다. 기지 외부에서는 남극의 생태 보호 때문에 최대한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탐구나 채집을 위한 외부 활동 시 안전을 위해 꼭 2인 1조로 동행해야 한다. 사람의 수는 확 줄어들었지만 밀도는 높아진 세계에서 작가가 그리는 비펭귄의 존재들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서도 마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의 몸을 밀착시키는 펭귄처럼, 한 종種으로써 남극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과 잘 지내기 위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남극의 생동하는 층층

나에게 남극의 이미지는 귀여운 펭귄으로 시작해서 기후 위기 속에 녹아내리는 빙산으로 끝나는 스펙트럼의 어디쯤에 있었다. 눈이 시릴 만큼 하얗기만 하다고 생각한 나의 편협한 남극은 《나의 폴라 일지》에서 다양하게 변주한다. 민트처럼 푸른빛을 띠는 유빙, 바닷속에 가라앉은 짙푸른 빙산의 뿌리, 땅이 얼고 녹으며 만든 그라운드 서클, 하얀 빙원 위에 우뚝 솟은 위엄의 플로렌스 누나탁…. 빨간 구명복을 입은 비펭귄 인간들이 총총 거리며 남극을 누비는 모습을 상상하면 펭귄에 비견할 만큼 귀여운 모습일지도?





남극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각하는 작가의 감상은 종종 마음 어딘가를 떨리게 만들기도 했다. 장엄하면서도 유려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 인간종으로서 작고 단순해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이 독자인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 또한 어느새 그렇게 감각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감각과 동시에 드는 '기이한 상실감(p.138)'에 대한 언급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종종 느끼곤 하는 경이로움과 함께 드는 기묘한 감정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었다. 남극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유를 통해 자연 앞에서 느끼는 뭉뚱그려진 감정들이 작가의 언어를 빌려 비로소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정작 나는 추워 덜덜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녹듯이 포근해졌다. 일면 슬퍼지기도 했는데 너무 순정한 것, 아름다운 것, 들끓는 자아 따위와는 무관한 자연 자체의 풍경과 맞닥뜨릴 때 느끼는 기이한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남극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실제 내 삶은 이곳과 얼마나 다른가를 동시에 감각했다. p.138


우리가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자연 그 자체의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내 안의 무한한 것을 표현해 내려는 욕망이 깨어나기 때문이라는 어느 책의 말이 떠올랐다. p.269


감각하는 남극은 동적이다. 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생동한다. 남극에서 발생하고 발견되는 모든 것들은 다시 지구 전체로 확장하며 그 생동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후나 생태계뿐만이 아니라 활자를 거쳐 사람에게까지 발산한다. 마음 한켠이 웅장해지는 까닭은 그런 역동성이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감각으로 환원된 남극은 희고 차갑기도, 베일 듯이 아리기도, 익숙하고도 낯선 냄새들이기도 했다.





연휴를 앞두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밤마다 열이 올라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얼음찜질을 하며 책을 읽었다. 열 때문에 달아오른 몸을 모로 뉘여 이불 속에서 책으로 읽는 남극은 해열제가 따로 없었다. 하얗고 푸른빛의 차가운 유빙을 매번 상상하고, 얼굴이 베일 것 같이 날카로운 남극의 바람은 고통의 해갈이었다. 특히나 '창문 밖 유빙을 바라보며 느끼는 투명한 느낌'을 상상해 보는 순간에는 무거운 몸이 한없이 가볍고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구를 한참 돌아 펭귄들 앞에 서 있는 나도 이 순간을 손쉽게 얻은 건 아니었다. 살아남기를 잘했다고 나는 해변에서 생각했다. 그건 반대의 순간들 또한 있었다는 얘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위기들이었을 것이다. p.63


책 속에서 작가의 사유를 따라 남극을 유영하다 보니 많은 것이 해소되었다. 특히나 거대한 자연물 앞에 선 인간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언어들이 그러했다. 남극에 관한 작가의 열정은 과연 그럴만했다. 남극으로 가는 것은 사람 세상으로부터 자연 세상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남극에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고. 자연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극에서도 저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펭귄과 해표. 갈매기를 비롯해 각종 식생들까지…. 남극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인간을 인간종種으로 겸허하게 만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에겐 궁금하기만 했던 남극으로 대표되는 '어떤 무엇'을 향한 작가의 열정이 납득을 넘어서, 이제는 조금 부러워졌다.




*본 서평은 한겨레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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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업 - 삶에서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ㅣ 스토아철학 4부작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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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너무 거대한 담론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던 차에 책 소개에 쓰여있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동했다. "이 책을 통해 이기심과 냉소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허무함과 무력감에 빠져들지 않고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혐오의 시대라고들 냉소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혹할 문장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1부는 개인, 2부는 타인, 3부는 세상으로 타이틀을 점차 확장시켜 나간다. 저자 소개를 보면 스토아 철학의 네 가지 핵심 덕목인 '용기, 절제, 정의, 지혜'를 소개하며 스토아 철학 4부작 시리즈를 집필 중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중 3부인 '정의'에 관한 책이다. 철학이라니, 너무 어려운 방법론이 아닌가 싶지만 읽어본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저자는 정의를 다루는 태도를 확고히 한다. '정의'의 의미를 철학적, 정치적, 윤리적인 해석이나 해설에 첨착하지 않고 보다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삶의 방식이 가지는 수단으로써 정의를 풀이한다는 점이 책 자체는 물론이고 그가 다루는 정의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논쟁을 멈추기 전까지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도록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p.15



1부 냉소와 이기심을 넘어서 : 개인의 정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정의를 바라보는 1부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의 개인적인 삶과 갑작스럽게 주어진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그가 어떻게 다루는지 그의 삶 속에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살펴본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정직했던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해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적국과의 포로 약속을 지킨 고대 로마의 장군 레굴루스, 미국 사회에서의 내부 고발자들, 야구선수, 편집자, 작가, 현대 무용가….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보여줬던 용기, 책임감, 의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고결함, 신뢰 등의 인간적인 속성들이 어떻게 '정의'로운 방식으로 귀결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를 도운 사람에 대한 의무가 있고, 우리를 존재하게 해준 곳에 대한 의무가 있고, 우리에게 충실한 사람에 대한 의무가 있고, 진실과 대의에 대한 의무가 있고, 또 탄압과 고통을 받는 자들과 친구가 필요한 자에 대한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에서 손을 놓아서도, 방관해서도 안 된다. 폭풍이 닥칠 때마다 우리가 탄 배를 버릴 수는 없다. p.128



2부 책임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 타인을 위한 정의


2부에서는 타인을 위한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정의를 공동선의 추구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개인들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타인을 도우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의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한 예시를 토머스 클라크슨이 어떻게 노예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고, 그 파동이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고 넘어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잘 보여준다.


여러 명이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해 분노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p.159


이러한 예시는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며 이루어지는 정의의 파도가 어떻게 다른 시민권 운동으로 퍼져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노예제 폐지 운동은 여성의 참정권 운동으로, 이러한 운동은 또 성 소수자의 인권운동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각각의 개인들이 타인이 처한 부정 앞에서 서로 연대하며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실제적인 흐름이 각기 다른 시민권 운동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타인과 타인이 점차 응집되는 하나의 운동이 더 나아가 또 다른 운동과 접점을 이루며 확대되는 연대의 의미로서의 정의의 모습도 보여준다.


시민권 운동의 모든 일은 계획되고 훈련된 엄격한 절제의 결과였다. 다이앤 내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가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과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사이에 끼어드는 훈련을 했습니다. (…) 누군가가 우리를 때리더라도 되받아치지 않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거듭되면서 경찰의 권한과 정치적 권력구조는 폄하되었다. 되받아치지 않는 시위자에게 심한 타격이 가해졌기에 오히려 시위자들의 용기와 도덕적 정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p.160


2부에서 다루는 타인을 위한 정의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친절, 악의를 방관하지 않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선의와 이러한 친절과 선의를 바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책임감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며 이 모든 속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흥미로웠던 점은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는 이런 속성과 함께 그 정의가 곧게 행해질 수 있게 만드는 권력과 대의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적절한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실용주의적 관점이었다. 타인을 위한 정의에서 이러한 실용적인 능력이 강조되는 것이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실천적인, 삶의 방식을 이루는 도구로서의 정의를 다시 끔 상기시킨다.


정의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정의는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에도 정의는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 정의는 함께 힘을 합친 사람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통해 실현된다. 또한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정의는 훌륭하게 실현된다. p.162



3부 사랑과 연민으로 나아가는 길 : 세상을 향한 정의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는 2부를 넘어서 3부에서는 세상을 향한 정의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세상은 2부에서 다루는 나와 네가 만나 우리를 이루는 세상보다 더 큰 개념이다. '세상'이라는 개념을 현존하는 세대를 넘어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세상을 향한 정의는 1부와 2부에서 다룬 정의보다 더욱 초월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3부에서는 이런 초월적인 정의를 실천한 인물로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의 일생과 업적을 예시로 든다. 영국의 식민 통치 아래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던 간디의 생애는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향한 정의의 정점에 선 인물로 보인다. 폭력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적대 세력의 폭력 앞에서도 끝까지 비폭력을 관철시키며 그 폭력이 간디가 주창하는 사상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평생의 삶에 걸쳐 증명하고자 한 노력을 말한다.


간디를 비롯한 역사의 여러 인물들이 행한 거시적인 범위에서의 정의들은 자못 사명처럼 거대해 보여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뒤따르는 예시들을 보면 이것 또한 우리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 여러 가지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또한 이런 기회를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베푸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나와 타자 사이의 구분을 뛰어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정신으로 2부에서 언급한 공동선을 추구하며 확장해 나가기를 요구한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면서 공감과 사랑과 연민의 연대가 비단 현 세대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며 미래 세대를 위해 세상을 더 이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궁극적인 정의를 말하며 저자는 우리에게 정의를 실천할 것을, 미루지 말 것을 자신의 경험을 첨가하며 당부한다.




정의를 실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점과 여러 인물들의 예시를 들어서 보여주는 점은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특히 나처럼 정의를 거대 담론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인물들의 일화는 '정의'의 여러 속성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폭넓게 보여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다만 스토아 철학이라는 학문을 개념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실천적인 관점의 대중 철학서이다 보니 조금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철학을 적용하고 실천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적절하고 친절한 책이다.


정의는 끊임없이 횃불을 전해주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시대마다 각 세대가 참여하고 자기 방식대로 계속 이어가는 미완성된 행진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다. p.163




책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작금의 사태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의 곳곳에 줄을 그으면서 때로는 한숨을, 때로는 희망을 읽었다. 특히 개인에서 출발한 정의가 타인과 세상으로 점차 확대되어 적용되는 모습이 우리 사회가 바로 지금 보여주는 정의의 연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개인의 정의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대한 탄핵 집회를 이루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었고, 이는 현 세대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 건강하고 정의로운 정치 사회를 물려주고자 하는 소명의식과 열망이 응집하여 세상을 향한 정의가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아래에 갈무리한 인용 문장들은 특히나 현시대에 마주한 비상계엄 사태와 이를 타도하며 극복하고자 응원봉을 들고나온 평화롭고 성숙한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정의를 목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변화, 대부분의 정의에는 본질적으로 혼란이 수반된다. 정의의 현실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심지어는 무례하고 불쾌하며 모욕적인 말을 듣는 일이다. p.242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대체로 선하지 않고 옳은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좌절감을 주는 일 중 하나다. 사람들은 보통 옳은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법하지 못한 일을 한 후에도 온갖 변명을 쏟아내고,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형벌을 받은 후에도 잘못을 계속 저지른다. 완강하게 버티며 그만두지 않는다. p. 252


오래전의 세대가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선사했듯 미래세대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다음 세대로 이어질 횃불의 행렬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횃불을 전달할 임무가 있다. p.371



자신을 계단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인종차별주의자인 어느 경찰 간부에게 한 C. T. 비비언 목사의 일갈은 우리가 정의를 고민할 때마다 떠올릴 보편적이고도 핵심적인 기준이 되어줄 것 같다. 특히나 불의의 선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하는 표어.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밤에 아이들한테 뭐라고 할 것이며,

아내에게는 뭐라고 할 겁니까?


라이언 홀리데이의 『정의 수업』 중에서 C. T. 비비언 목사의 일갈 p.160



*출판사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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