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수업 - 삶에서 무엇을 지켜낼 것인가 스토아철학 4부작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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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너무 거대한 담론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던 차에 책 소개에 쓰여있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동했다. "이 책을 통해 이기심과 냉소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허무함과 무력감에 빠져들지 않고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혐오의 시대라고들 냉소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혹할 문장이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1부는 개인, 2부는 타인, 3부는 세상으로 타이틀을 점차 확장시켜 나간다. 저자 소개를 보면 스토아 철학의 네 가지 핵심 덕목인 '용기, 절제, 정의, 지혜'를 소개하며 스토아 철학 4부작 시리즈를 집필 중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중 3부인 '정의'에 관한 책이다. 철학이라니, 너무 어려운 방법론이 아닌가 싶지만 읽어본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서문에서 저자는 정의를 다루는 태도를 확고히 한다. '정의'의 의미를 철학적, 정치적, 윤리적인 해석이나 해설에 첨착하지 않고 보다 실천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삶의 방식이 가지는 수단으로써 정의를 풀이한다는 점이 책 자체는 물론이고 그가 다루는 정의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논쟁을 멈추기 전까지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도록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p.15



1부 냉소와 이기심을 넘어서 : 개인의 정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정의를 바라보는 1부는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의 개인적인 삶과 갑작스럽게 주어진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그가 어떻게 다루는지 그의 삶 속에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살펴본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정직했던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해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적국과의 포로 약속을 지킨 고대 로마의 장군 레굴루스, 미국 사회에서의 내부 고발자들, 야구선수, 편집자, 작가, 현대 무용가….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보여줬던 용기, 책임감, 의무,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고결함, 신뢰 등의 인간적인 속성들이 어떻게 '정의'로운 방식으로 귀결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를 도운 사람에 대한 의무가 있고, 우리를 존재하게 해준 곳에 대한 의무가 있고, 우리에게 충실한 사람에 대한 의무가 있고, 진실과 대의에 대한 의무가 있고, 또 탄압과 고통을 받는 자들과 친구가 필요한 자에 대한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에서 손을 놓아서도, 방관해서도 안 된다. 폭풍이 닥칠 때마다 우리가 탄 배를 버릴 수는 없다. p.128



2부 책임의 무게를 지탱하려면 : 타인을 위한 정의


2부에서는 타인을 위한 정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정의를 공동선의 추구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개인들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해 타인을 도우며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의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한 예시를 토머스 클라크슨이 어떻게 노예제 폐지 운동을 시작하고, 그 파동이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고 넘어서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잘 보여준다.


여러 명이 다른 사람의 권리에 대해 분노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p.159


이러한 예시는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며 이루어지는 정의의 파도가 어떻게 다른 시민권 운동으로 퍼져나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노예제 폐지 운동은 여성의 참정권 운동으로, 이러한 운동은 또 성 소수자의 인권운동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었는데 각각의 개인들이 타인이 처한 부정 앞에서 서로 연대하며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는 실제적인 흐름이 각기 다른 시민권 운동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타인과 타인이 점차 응집되는 하나의 운동이 더 나아가 또 다른 운동과 접점을 이루며 확대되는 연대의 의미로서의 정의의 모습도 보여준다.


시민권 운동의 모든 일은 계획되고 훈련된 엄격한 절제의 결과였다. 다이앤 내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가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과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사이에 끼어드는 훈련을 했습니다. (…) 누군가가 우리를 때리더라도 되받아치지 않는 연습을 했습니다." 이러한 대치 상황이 거듭되면서 경찰의 권한과 정치적 권력구조는 폄하되었다. 되받아치지 않는 시위자에게 심한 타격이 가해졌기에 오히려 시위자들의 용기와 도덕적 정의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p.160


2부에서 다루는 타인을 위한 정의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친절, 악의를 방관하지 않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선의와 이러한 친절과 선의를 바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책임감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며 이 모든 속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흥미로웠던 점은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는 이런 속성과 함께 그 정의가 곧게 행해질 수 있게 만드는 권력과 대의를 이룰 수 있게 만드는 적절한 타협으로 이루어지는 실용주의적 관점이었다. 타인을 위한 정의에서 이러한 실용적인 능력이 강조되는 것이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실천적인, 삶의 방식을 이루는 도구로서의 정의를 다시 끔 상기시킨다.


정의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정의는 실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에도 정의는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 정의는 함께 힘을 합친 사람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통해 실현된다. 또한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정의는 훌륭하게 실현된다. p.162



3부 사랑과 연민으로 나아가는 길 : 세상을 향한 정의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되는 2부를 넘어서 3부에서는 세상을 향한 정의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의 세상은 2부에서 다루는 나와 네가 만나 우리를 이루는 세상보다 더 큰 개념이다. '세상'이라는 개념을 현존하는 세대를 넘어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세상을 향한 정의는 1부와 2부에서 다룬 정의보다 더욱 초월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킨다.


3부에서는 이런 초월적인 정의를 실천한 인물로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의 일생과 업적을 예시로 든다. 영국의 식민 통치 아래 인도의 독립을 위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던 간디의 생애는 저자가 말하는 세상을 향한 정의의 정점에 선 인물로 보인다. 폭력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서는 적대 세력의 폭력 앞에서도 끝까지 비폭력을 관철시키며 그 폭력이 간디가 주창하는 사상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지 평생의 삶에 걸쳐 증명하고자 한 노력을 말한다.


간디를 비롯한 역사의 여러 인물들이 행한 거시적인 범위에서의 정의들은 자못 사명처럼 거대해 보여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지만 뒤따르는 예시들을 보면 이것 또한 우리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 여러 가지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과오를 만회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또한 이런 기회를 나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베푸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나와 타자 사이의 구분을 뛰어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정신으로 2부에서 언급한 공동선을 추구하며 확장해 나가기를 요구한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면서 공감과 사랑과 연민의 연대가 비단 현 세대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며 미래 세대를 위해 세상을 더 이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궁극적인 정의를 말하며 저자는 우리에게 정의를 실천할 것을, 미루지 말 것을 자신의 경험을 첨가하며 당부한다.




정의를 실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점과 여러 인물들의 예시를 들어서 보여주는 점은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특히 나처럼 정의를 거대 담론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인물들의 일화는 '정의'의 여러 속성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폭넓게 보여주며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다만 스토아 철학이라는 학문을 개념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실천적인 관점의 대중 철학서이다 보니 조금 아쉬울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철학을 적용하고 실천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적절하고 친절한 책이다.


정의는 끊임없이 횃불을 전해주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시대마다 각 세대가 참여하고 자기 방식대로 계속 이어가는 미완성된 행진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다. p.163




책을 읽으면서 아무래도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작금의 사태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의 곳곳에 줄을 그으면서 때로는 한숨을, 때로는 희망을 읽었다. 특히 개인에서 출발한 정의가 타인과 세상으로 점차 확대되어 적용되는 모습이 우리 사회가 바로 지금 보여주는 정의의 연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개인의 정의들이 삼삼오오 모여 거대한 탄핵 집회를 이루는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었고, 이는 현 세대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다음 세대에게 건강하고 정의로운 정치 사회를 물려주고자 하는 소명의식과 열망이 응집하여 세상을 향한 정의가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아래에 갈무리한 인용 문장들은 특히나 현시대에 마주한 비상계엄 사태와 이를 타도하며 극복하고자 응원봉을 들고나온 평화롭고 성숙한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 쉬는 정의를 목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변화, 대부분의 정의에는 본질적으로 혼란이 수반된다. 정의의 현실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심지어는 무례하고 불쾌하며 모욕적인 말을 듣는 일이다. p.242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대체로 선하지 않고 옳은 일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좌절감을 주는 일 중 하나다. 사람들은 보통 옳은 일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법하지 못한 일을 한 후에도 온갖 변명을 쏟아내고,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형벌을 받은 후에도 잘못을 계속 저지른다. 완강하게 버티며 그만두지 않는다. p. 252


오래전의 세대가 과거보다 더 나은 삶을 선사했듯 미래세대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우리에게 달린 문제다. 다음 세대로 이어질 횃불의 행렬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횃불을 전달할 임무가 있다. p.371



자신을 계단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인종차별주의자인 어느 경찰 간부에게 한 C. T. 비비언 목사의 일갈은 우리가 정의를 고민할 때마다 떠올릴 보편적이고도 핵심적인 기준이 되어줄 것 같다. 특히나 불의의 선 사람들에게 가닿았으면 하는 표어.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밤에 아이들한테 뭐라고 할 것이며,

아내에게는 뭐라고 할 겁니까?


라이언 홀리데이의 『정의 수업』 중에서 C. T. 비비언 목사의 일갈 p.160



*출판사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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