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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텍스트 힙'의 영향으로 이번 긴 연휴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저마다의 책을 집고 연휴를 읽어 내려갈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 틈에 나도 자리를 잡아본다. 새해, 새로운 마음, 새로운 책 그리고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소설. 여섯 명의 신인 작가들의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은 《셋셋 2025》 이야말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을 한다. 책 표지의 푸릇한 색감 또한 이른 봄에 싹을 틔우는 새싹 같은 은유를 닮았다.
출판사마다 이런 종류의 시리즈쯤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한겨레에서도 작년부터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셋셋'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셋셋'은 작가, 출판사, 독자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의미로, 문학적 역량을 지닌 신인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작년 시리즈의 작가들이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만큼 이번 시리즈 작가들의 이번 연도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여름방학> 김혜수 |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은진은 아버지의 보험료를 노리는 친척들을 피해 도망치듯 이사를 오게 된다. 전학 온 학교에서 만난 세희는 또래보다 조숙했고, 은진과 세희는 곧 친밀해진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구원을 갈급하던 어머니는 종교에 투신하다시피 빠지기 시작하고,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의 부재를 마주한 은진은 세희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만의 구원을 생각하게 된다.
맹목적인 믿음만큼 우매하고 잔인한 것이 있을까. 공란으로 가득한 카세트테이프에서 구원을 바라던 엄마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은진은 또한 자신의 구원은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녹음되지 않는 테이프에 도깨비 말로 녹음을 하고는 침대 밑 깊숙이 밀어 넣는 은진의 모습이 자꾸 생각이 난다. 어머니와 종교를 통해 구원의 허상을 깨닫지만 은진은 그저 목도할 뿐이다. 셀로판테이프의 도깨비 말을 녹음하는 행위도 허상의 허상을 더할 뿐이라는 생각에, 어쩌면 구원이란 실체는 없고 그 행위만이 존재할 뿐임을 너무 빨리 깨달은 은진이 안쓰럽다.
어른이 되어 그때를 돌아보니 헛헛한 마음이 든다. 아이들이 눈치껏 자라면 분명 무언가를 놓친 상태로 자라버린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때 놓친 것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찾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다. p.27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wawa109, 버디버디, 도깨비 말, 기절 놀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짧은 서사 속에서도 읽는 나를 은진과 세희 곁으로 밀접하게 연결시킨다. 무언가 결핍되었거나 부재한 시절 속에서 서로의 빈틈을 파고드는 관계 속에서, 어쩌면 구원은 그런 식으로 발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은진처럼 자신만의 구원을 생각해 본다.
<지영> 이서희 | 영화감독 지망생인 규호는 지영을 우연히 만나면서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서울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규호와 지영은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나누게 되고 규호는 농담 아닌 농담처럼 건넨 말에 지영의 종교적인 신념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나는 지영의 눈을 마주 봤다. 나는 지영이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구원받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한다고. 그 순간 지영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더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사실 때문에 지영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p.71
안타깝게도 규호의 신념과 지영의 신념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그러면서 규호는 포교를 목적으로 자신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었던 선생님에게 받았던 위로를 떠올린다. 믿음과 구원과 신념. 뒤틀리고 왜곡된 신념 안에서도 누군가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소망하며 위로를 받는다. 구원의 방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고 그저 저마다의 구원을, 그 방식과 형태를 찾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삶의 한 방식으로써의 구원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원을 탈출한 고양이> 김현민 |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해연은 산책길의 길고양이를 보며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이라며 겁먹는 어머니를 보며 좌절한다. 여름이라는 덥고 눅눅한 계절이 겹쳐지면서 해연의 돌봄 노동이 더욱 고되게 그려진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더불어 점점 피폐해지는 해연은 과거 가족에게 드리운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아늑하면서도 불안한 품속. 주저앉은 우리를 의아하게 보는 가족의 시선이 느껴지지만 나는 조금만 더 이 순간을 견뎌보기로 한다. 엄마의 몸보다 훌쩍 큰 어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품에 안긴 아이들로 남기로 한다. p.104
읽고 난 후에 '동물원을 탈출한 표범 또는 고양이'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어머니는 왜 그토록 표범 또는 고양이를 두려워하고, 해연은 왜 그토록 어머니의 공포를 부정했을까. 그것은 다른 결의 죄책감의 현현이었고 이를 다루는 두 사람의 태도가 동물원에서 비로소 합의를 보았을 때, 해연은 그 '불안한 품속'에서 견뎌보기로 한 것이다. 다시 돌아 마지막 장면에서 불어난 고양이를 보며 주저앉은 어머니에게 이제 해연은 다그치지 않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을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한다. p.107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모녀 사이의 미묘한 간극에서 비롯된 애증의 감정이 축축하고 두텁게 쌓여있다가 비로소 치유되는 순간은, 사실 그렇게 극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공포 앞에 서로를 껴안을 따름이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치유와 구원이라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실현될 수 있다는 방증과 함께 묘한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다. 이런 구원은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위로보다 그저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결심한 해연의 고백이 더 확실하고 선명한 희망의 모습이다.
<아이리시커피> 이지연 | 잘 다니던 대학 병원을 그만두고 카페를 창업한 전직 간호사이자 현직 카페 사장인 희수에게는 믿음직스러운 아르바이트생인 소미가 있다. 한가한 시간, 메뉴에 없는 달콤 쌉싸름한 아이리시 커피를 소미와 함께 나누어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평화로운 한때에,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순식간에 덮쳐온다.
부지불식간에 덮친 불행은 희수를 죄책감에 몰아넣는다. 소미의 부재에 희수는 어떤 감정과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평소 소미에 대한 희수의 태도와 닮아있다. 적당한 거리로부터 얻는 부담감의 해소. 이러한 희수의 태도에 나는 많은 공감이 일었다. 관계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감내해야 하는 종류의 실망과 상처를 기꺼이 포기하는 선택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가끔 일이 끝나고 빈집으로 돌아가기가 선뜻 내키지 않는 날이면 소미에게 같이 맥주라도 한잔하자고 해볼까 싶었지만 금세 마음을 바꿨다. 어쩌면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한 공간에서 지내는 게 부담 없는 건지도 몰랐다. p.117
같은 공간에서 생존해버린 희수에게 희수의 어머니는 '축복'이라 말하며 교회에 떡을 돌린다고 말한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만 실은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대한 경멸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어머니는 축복을 하고 죽은 자의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 희수는 병원 근무 시절 유민이라는 어린 환자와의 관계를 떠올린다. 그 시절 온기 같은 어떤 마음에 대하여….
"언제 저랑 같이 갈까요, 소미 보러." p.136
희수는 소미의 어머니를 찾아가 라면을 나누어 먹으며 소미를 보러 같이 가자고 말한다. 어쭙잖게 서있던 희수의 마음이 마침내 바로 앉는다. 관계의 거리를 좁히고 마음을 쓰기로 한 결정에 뭉클해진다. 희수의 어머니는 그녀의 생존이 축복이라 말했지만 희수 또한 끔찍한 사건을 목격한 PTSD를 겪는 피해자였고, 소미의 어머니는 희수에게 괜찮냐는 안부를 먼저 묻는다. 이들에게 소미를 위한 애도는 또 하나의 치유 과정이자 연대의 힘인 것이다. 나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면이 다분한 사람이지만 이런 결말은 언제나 좋다.

<호날두의 눈물> 양현모 | 우리는 개저씨를 욕하지만 개저씨의 입장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여기, 개저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휴대폰 매장의 매니저인 화자는 근처 편의점에 근무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주장하지만 치근덕거리지 말라는 편의점 사장의 일갈에 화를 내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과거 연인이었던 현주와 헤어지던 날, 호날두가 노쇼를 했던 그날을 떠올리면서 그날의 날강두를 '씨발 새끼'로 명명하기에 이른다. 스크린 도어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간과하고는….
스크린 도어에 숫자 7이 크게 쓰여 있는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이 비쳤다. 이게 다 호날두 때문이었다. 씨발 새끼. p.164
자신의 삶이 이렇게 하찮지는 않았노라고 한탄한다. 메시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호날두의 경기를 부러 찾아보며 양가적인 태도를 취한다. 전성기가 지난 호날두에게 사람들은 조롱과 비꼼을 퍼부어대지만 어쩐지 이 개저씨는 진물이 터진 상처보다 어딘가가 더 아프다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으로 시시하게 끝난 경기를 보며 집으로 돌아온다.
-울더라도 현역에서 뛰는 게 어딥니까.
댓글을 달았다. 내가 단 댓글은 순식간에 밀려 올라가 없어졌다. p.171
누구나 호시절이 있고 과거의 망령을 붙들고 변명을 하기도 한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잘못된 선택과 우연이 겹쳐서 남들과 다른 곡절의 세월을 겪기도 한다. 사회가 규정한 삶의 평탄한 수순에서 밀려난 개저씨의 변명 아닌 변명이 일면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 우리 모두 그런 시절을 한 꼭지처럼 달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다양한 삶을 응원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제 호날두 탓은 그만하고 스스로를 스스로가 구원하기를, 바라본다.
<경유지> 전은서 | 어느 날 헤어진 남자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더하여 그의 시신을 인도하러 해외로 가야 한다면 그 기분은 더욱 어떠할까. 이런 복잡다단한 마음을 가지고 예은은 전 남자친구인 상민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그의 누나인 민경과 함께 비행길에 오른다.
그 짧은 여정에서 예은은 상민과의 과거를 추억한다. 그와의 첫 만남과 동거, 애매하게 헤어진 그들의 마지막과 예은이 떠난 뒤의 상민에 대하여 생각한다. 차가운 상민의 시신을 보며 느끼는 낯선 이질감과 상민의 장례식장에서 듣는 그의 이야기들은 예은으로 하여금 그가 알던 상민이 과연 상민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러다 보니 두 명이 곤란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앓는 편이 낫다는 데 나 역시 동의하게 되었다. 혼자 내버려두면 저절로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 p.189
그리고 마침내 상민의 잠긴 휴대폰에서 예은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무용함을 깨닫는 동시에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 특히 그들의 관계도 결혼이라는 완결을 이루지 못했지만 하나의 '경유지'로서 그 순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에서는 생각을 곱씹게 된다. 우리는 다만 여러 방면으로 상대를 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타인의 다면적인 면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조각들이 모여 타인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책에는 다양한 구원이 등장한다. 때로는 관계의 형태로, 신념의 형태로, 또는 시절의 형태로… 구원이라 명명하고 있지만 이것은 희망이라고 부를 수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종종 괴랄하게 그려지기도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끝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하며, 너무나 명백하게 빛나기도 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구원을 향해 성실하게 고군분투할 뿐이다. 읽고 있는 나 또한 그들 각자의 구원을 조용하게 응원할 뿐이다. 그렇게 현실에서의 우리도 각자의 구원과 서로의 구원을 성실하고 조용하게 응원하는 것이다.
대략 30에서 40페이지 정도의 짧은 단편들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다음을 위해 기억하려 몇몇 작가의 이름을 따로 적어놓는다. 혹시나 다른 작품이 있을까 인터넷 서점 상세 페이지에서 찾아 본 여섯 작가의 이력은 《셋셋 2025》을 제외하고는 깨끗하다. 이렇게 아쉬울 수가…. 짧지만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가 소개에 뒤이어 적혀 나갈 작가들의 이력이 궁금해진다. 덕분에 올해 설 연휴 독서 계획은 '텍스트 힙'에 더욱 부합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만족스러운 자기 평가를 해보며….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