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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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원은 신묘한 전설처럼 시작된다. 아주 멀고도 먼 옛날, 백호의 눈병을 치료해 준 인간이 있었다. 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백호는 자신의 속눈썹을 뽑아 그 인간의 눈썹에 심어주며 영생과 함께 신묘한 능력을 부여한다. 신묘한 능력이란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형의 것을 알아보는 능력이었고, 백호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을 구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에 인간은 기꺼이 응하면서도 인간에게 이런 능력과 영생은 독이 아니냐며 항변하자, 백호는 심연에서 헤매는 아이를 구하게 되면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일종의 선택지를 남겨준다. 이렇게 백호에게 간택당한 이는 어드메에 터를 잡고 '호랑이의 눈썹', 즉 '호미'라는 이름으로 백호가 부여한 사명 아닌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심연에서 한 아이를 찾아내고 아이가 성인이 된 후 자신은 홀연히 사라진다. 이유요는 그 터에서 사부인 호미를 기다리며, 그가 수행하던 사명 아닌 사명을 이어받아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표지의 예스러운 일러스트와 《호랑골동품점》이라는 제목과 고전 설화 같은 도입은 마치 어릴 적에 읽은 전래동화 같다. 판타지 요소가 가득 한데도 어쩐지 익숙한 기시감 속에서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1장에서부터 6장까지, 각 장에서 다루는 기묘한 골동품과 이에 얽힌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그 전개가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판타지라는 설정 안에서 현대 사회의 생태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점이 핍진성을 잃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점이 특히 좋았는데 판타지라는 설계된 세계관에서도 눙치는 요령 없이 성실하게 얼개를 쌓아가는, 유려한 필력 속에서 확보하는 전개의 정당성이 좋았다.



그러한 특징이 가장 짙게 드러난 편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 〈1.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이었다. 취업이라는 거대하고도 고통스러운 사회적 허들 앞에 좌절한 이 시대의 청년, 김규리가 등장한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유일한 낙은 담배였다. 짧게 주어지는 휴식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흡연실에서 급하게 담배를 피우며 와중에 신속하고도 신랄하게 팀장을 욕하는 것이 김규리를 비롯한 콜센터 그녀들의 유일한 한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흡연실에서 라이터가 켜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한편, 퇴근길에 김규리는 '우연한 끌림'에 의해서 '호랑골동품점'에 발을 들이게 되고 그곳에서 또 이상한 충동에 휩싸여 성냥갑을 훔치게 된다. 이 성냥갑을 훔친 뒤부터 김규리에게 일련의 기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본래 퇴사자가 많고 인원 변동이 잦은 콜센터에서 업무를 과중시키는 건 노동조합 와해에 가장 많이 쓰이는 전략이었다. 일단 옆자리 동료와 정붙일 틈을 주어선 안 된다는 걸 회사는 잘 알았다. 타인의 체온이 온기로 느껴지지 않게 경쟁과 분열이란 이름의 냉기를 적절하게 붙여 넣는 것. 부당함과 착취를 골조로 세워진 회사일수록 효과적으로 냉기를 생성해냈다. p.40, 〈1.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


그러나 모름지기 초현실의 공포는 현실의 공포를 능가할 수 없는 법이다. 기이하게 타오르는 성냥 불꽃 속에서 모두가 목격한 '체조하는 이미선'의 모습은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저항을 표상하면서도, 이미선을 기억하고 그녀를 대하던 동료들의 태도는 반대로 뒤틀린 노동 환경의 시스템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서로 와해시키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에 김규리가 훔친 골동품,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갑'은 과거와의 매개체가 되어 19세기 영국 성냥 공장의 소녀공들을 소환한다. 아, 세기가 지나도 이렇게나 똑닮은 노동 환경이라니…. 노동 운동하면 '투쟁'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는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콜센터의 업무 강도, 실적 압박, 열악한 노동 환경은 결코 생소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아니다. 만연해 있는 노동 문제와 사회의 태만한 인식 태도에 작은 경종을 울리듯 체조하는 이미선을 따라 체조하는 김규리의 모습이 모든 에피소드를 지나서 책을 덮어도 잔상처럼 기억에 남는다. 관련해서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을 검색해 보니 실제 역사적인 사건의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매치 걸스 스트라이크'가 이미선과 김규리와의 연대로 계속되는 것은 희망적일까? 괴담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가 자체로 괴담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래도 복도 끝에 서서 체조를 하며 '하나 둘 셋'을 읊조려본다.

1장을 개인적으로는 다소 진중하게 읽었지만 전혀 다른 결의 에피소드들이 공존한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그런 결을 따라서 특히 3장인 〈3.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가 인상적이었다. 호랑골동품점의 현주인인 이유요의 출장 수거 에피소드. 이유요는 낡고 오래된 공중전화기의 회수 요청을 받고 어느 산골의 게스트하우스로 출장을 떠난다.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던 정지운이 그를 맞이하면서 정지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뭉스러운 계획을 짜고 있던 정지운에게 이유요의 방문은 달갑지 않았으나 무람없이 하룻밤을 청하는 이유요와 저녁 식사 과정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바로 그 낡고 오래된 공중전화기에서!


"공중전화라는 건 개인이 소유한 휴대전화와 다르게 낯선 누군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막연히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아이들에겐 그게 마법의 상자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p.126, 〈3.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


정지운은 이유요와의 불편하고 맛없는 저녁 식사를 하며 일본의 유명한 사토루 괴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과정에서 정지운은 어린 시절 자신의 외로웠던 과거를 떠올린다. 매 순간이 외로웠던 소년의 삶에 등장한 박서현이라는 존재를 떠올린다. 정지운의 삶에 와락 하고 등장한 박서현은 정지운에게 연극부를 제안하고 둘은 성인이 되어서도 극단을 차려 함께 배우와 감독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으레 그러하듯, 비극은 이런 찬란한 시절을 비웃으며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극단을 같이 꾸려가던 다은과 박서현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그렇게 죄책감과 비애감에 잠겨있던 정지운은 그날, 한밤중에 일어나 사토루 괴담을 떠올리며 공중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려본다.





묻지 못했던 말, 듣고 싶었던 이야기, 전하고 싶었던 마음들이 일상처럼 오간다. 누군가를 영영 떠나보내게 된 사람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그 기회를 실현시켜준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힘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내뱉지 않아도 박서현과 정지운은 각자가 꼭 들어야 했고, 건네야 했던 마음을 나눈다. 외로운 인생에서 구심점이 되어준 운명적인 존재는 정지운의 삶을 다시 생동하게 만든 것이다. 어른을 위한 환상 동화처럼 흘러가는 이야기가, 혹자는 다소 감상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으나 불특정 다수의 경험이 개인적인 경험으로 체화될 때 느끼는 감상의 밀도는 그 결이 제법 다르다. 진부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새삼 다시 생경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레토르트 카레와 막걸리, 늦게 핀 5월의 벚꽃은 정지운으로 대변되는 모든 존재에게 보내는 일종의 희망이자 위로가 아닐 수 없다. 그 누구든 너무 외로워하지 말기를 바라며….




이 책, 《호랑골동품점》에는 아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취업에 좌절한 청년과 홀로 투쟁하던 노동자, 가정 폭력의 정당화를 체화한 노년의 남성과 그 피해자, 동물의 생명을 도구적으로 소비하는 자,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된 아이들까지. 호랑점을 지키는 이유요를 비롯한 이들 사이사이에는 외로움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어둡고 축축한 곳에는 마치 자력처럼 호랑점의 골동품들이 자리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듯이 권선징악과 사필귀정으로 흘러간다. 두말없이 이런 전개는 어쩔 수 없이 참 좋다. 외로운 사람을 보듬고, 뒤틀린 일들은 마땅히 그 자리를 찾아가는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의 진리. 세상은 다층적으로 복잡해지고 가치 판단의 일 또한 그렇게 되어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않아야 하는 것들을 수호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힐링 호러 소설'이라는 압축적인 책 소개 멘트를 보고 끄덕여지는 이유다.





책을 다 읽고 범유진 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았다. 몇몇 눈에 익은 제목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청소년을 위한 다수의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읽고 나니 뭔가 끄덕여진다. 문장과 문장들이 유려하게 흘러가서 잘 읽히고 온당한 전개성에서 비롯하는, 이야기의 탄탄한 서사가 즐거웠다. 마치 넷플릭스 시리즈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보는 듯한 기분. 전대 호미의 서사와 이유요의 현재, 그리고 미래 세대로 이어지는 《호랑골동품점》의 또 다른 에피소드가 기다려진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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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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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식목일'은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작은 묘목을 심거나 나무와 관련하여 포스터나 표어를 그리는 숙제를 하던 기억이 난다. 왜 일부러 나무 심는 날을 지정한 것일까? 포스터 가득 무성한 나무를 그려 넣으면서 궁금했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답해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방금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 유래가 무려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완수한 날에 제를 지냈던 날이라고 한다. 제를 지내기 위한 곡식을 왕이 농민을 논밭을 두어 경작하게 했는데, 이날은 왕이 몸소 나와 경작하던 날이기에 기념했다고. 정의는 '나무를 심으며 국민의 나무 사랑 정신을 북돋우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네이버 한국민족대백과) '오, 그렇구나' 하면서도 '자원화'라는 단어에서 주는 어감이 이제는 어쩐지 낡은 위화감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닌 식목일이 있는 4월에는 묘목을 심는 대신, 식물에 관한 에세이를 읽는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이 노거수에 실태에 관한 르포 형식의 에세이였다면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식물분류학자가 숲을 기록한 일지 형식의 에세이로 그 결이 제법 다르지만 저자들이 나무와 식물, 자연과 숲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거시적인 관점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저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에서 난초와 관련 곰팡이를 연구하며 숲속 식물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미국에 처음 살게 된 한국인, 해외 연구소에 있는 어린 과학자, 미래를 고민하는 여성 과학자, 과학과 예술 사이에 있는 사람,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으로서(p.9) 기록한 세상과 자연, 사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고 한다.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라는 소제목에서 보듯이 저자의 이야기는 계절을 하나하나 지나가며 변화하는 숲속 식물과 타지에서 외지인으로 지내는 자신의 여러 경험과 느낌을, 여러 갈래의 소회로 이야기한다. 더불어 책 곳곳에 저자가 그린 식물 세밀화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의 첫 줄인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의 면모를 곳곳의 세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평생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고, 그 연구를 하기 위해 기꺼이 낯선 곳을 향하는 열정 속에서도 저자는 솔직하게 낯선 곳에서의 고립과 외로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기어코 머나먼 이국에서의 향수병 보다 미지의 숲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식물에 대한 탐구 열정이 저자를 미국 메릴랜드의 숲으로 이끌었다. 저자는 연구를 위해서 숲에 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도 숲에 가며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식물을 다 덮어버리고야 마는 펑펑 내린 소복한 눈을 바라보면서,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늪지대의 길을 잃은 물고기 한 쌍을 바라보면서 인간관계의 고충을 털어버리기도 하고, 자연 생태에 대해 경탄하기도 하며,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자연을 보고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은 새삼 인간의 신비한 공감각적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은 숲과 자연에 관한 개인적 경험이 읽는 내내 같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초의 씨앗은 스스로 싹을 틔울 영양분이 부족해 특정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곰팡이는 난초의 씨앗에 외부의 영양분을 전달한다. 그리고 많이 연구되지 않았지만, 그 곰팡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박테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테리아는 곰팡이를 도와주고, 곰팡이는 난초를 도와주는 것이다. p.92


이런한 감상을 겸한 식물의 생장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들도 흥미로웠다. 저자가 연구하는 난초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곰팡이는 또다시 박테리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떤 씨앗들은 생장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는데, 발아 시기가 길게는 몇 년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떤 꽃의 향기는 꽃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꽃에 있는 미생물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러한 서술에서는 마치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머나먼 숲까지 저자를 떠나게 한 저자의 열정이 어떻게 기원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 애정을 쏟는 일은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저자가 식물을 보고 삶을 이해해 보듯이 나도 조금은 이해해 본다.




계절을 따라 걷는 책의 구성처럼 저자를 따라 메릴랜드의 숲속을 따라걸으며 계절마다 변화하고 적응하는 식물들의 생장을 살펴보는 일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가을에 씨앗을 심는 것을 생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저자가 이내 그 이유를 알고는 깨닫는 장면은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여름에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구어 가을 동안 토양 속에서 성실히 영양분을 쌓아 혹한의 계절을 견딘 후, 봄에 싹을 틔우는 식물의 생장 과정은, 인간의 생애를 빗대어도 설명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이러한 식물의 생장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것을 보며 책에서 언급한 생명의 영속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숲속에는 맞거나 틀린 것, 좋고 나쁜 것, 기쁘고 슬픈 것이 없을 거라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생물의 생존방식을 경쟁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경쟁이나 공생도 자연을 설명하기엔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한다. p.97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겠지만 저자의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자연 상태에 관한 정의는 식물이라는 작은 단위의 객체로 보아도, 숲이라는 보다 거대한 단위로 보아도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정의가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숲의 구성은 객체들이 모여 그저 단순히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동하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된 나무를 인위적으로 죽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거들링과 프릴링을 언급하는데 그런 방법을 써도 나무는 생명력이 강해서 한 번에 고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생명력을 보면 묵묵하고 고요해 보이는 숲속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숲속의 유기체들이 얼마나 견고한 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생동하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먹은 열매가 녹음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모습을 떠올린다. 또한 그 맛에서 여름의 햇빛, 더위, 비, 곤충의 수고를 생각한다. 열매는 먹는 숲속 동물들처럼 우리가 태초 자연에서 어떤 순환고리였는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인지 깨닫는다. p.109


곰팡이, 박테리아, 곤충, 소동물, 꽃, 나무… 숲을 인식하는 범위가 한껏 넓어졌다. 인식의 범위가 늘어나니 감각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다양해졌다. 종종 등산을 하다가 만나는 울창한 숲에서 느끼는 정체 모를, 설명할 길이 요원한 압도감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거대한 규모가 주는 실체적인 압도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숲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장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에 그런 것을 아니었을까 이 책을 빌려 미루어 짐작해 볼 따름이다. 숲의 서사를 목도하며, 저자의 지식에 기대어, 인간적 고민과 위로, 공감을 나누며 숲속을 도닥도닥 걷는 기분이었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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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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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나 정치 인물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작금의 정치 사태가 끼친 영향이 지대한 까닭이었다. 엄청난 국가적 고난 끝에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안도감은 고작 하루 정도였다. 그 뒤에는 온갖 정치 관련 이슈들이 따라붙었고, 본격 조기 대선 체제로 들어서면서 차기 대통령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분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대통령으로써의 자질과 능력은 그 어느 시절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며, 또 갈망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생각해 보면 《김대중의 국정 노트》는 정치인에게나 유권자에게나 하나의 명징한 기준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한 권이 아니었나 싶다.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기에는, 그 당시의 나는 아주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분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기억들뿐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북한에 처음으로 간 대통령, 성대모사를 자주 당했던(?) 대통령…. 훗날 정치인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로부터 그분의 업적과 성품이 회자되는 것들을 귀동냥 정도로 들은 것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는 내가 얄팍하게 인식하고만 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들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갔으며 대통령은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자 해석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담긴 대통령의 국정 노트 기록을 해석하고 대통령의 관점으로 톺아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다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방법이었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구성에 1장은 주로 김대중 대통령이 실행한 여러 정책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IT 강국의 기반을 마련한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의 토대가 된 문화 콘텐츠의 산업으로써의 기반 구축을 비롯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여성부 설립과 성 평등 정책, 복지 국가 이룩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 등을 두루 돌아보면서 정치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한 나조차도, 나의 삶과 일상은 정치와 문외 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DJ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은 1981년 1월 중앙정보부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김대중평화센터가 입수해 보관해 온 영상을 보면, 김대중은 남산 중앙정보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조사를 받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수사관 최○○ 씨에게 정보화와 인터넷에 관해 설명한다. (중략) 그런데 영상 속 사형수 김대중은 '세계가 정보화 시대로 갈 것이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뒤처져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p.28


위 문단에서 설명한 모습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러한 감명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관련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적극적으로 실행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IT 강국의 반열로 올려놓게 된 초석이 되었다. 언급된 영상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는데 '사형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책의 내용을 수사관에게 설명하면서 마치 자신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와 소망에 달뜬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선구안적인 혜안보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야기할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에 대한 정책 또한 같이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은 '계층 정보 격차 해소 노력'이란 항목을 별도로 정리해서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가 중요하니 학교·군·교도소 등의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계층과 주민들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p.22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개념조차도 생소했던 시절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미리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해결 방법을 주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안은 당대에도 굉장히 앞서나갔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의 수혜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학교에 '컴퓨터실'이 새로 생기고, 정규 교육 과정에 '컴퓨터' 과목이 신설되었다. 정규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화 교육을 배울 수 있었던 덕분에 따로 사교육을 할 필요가 없었고 방과 후 활동으로 각종 작업 프로그램의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정보 교육의 격차를 해소한 것이 전반적인 디지털 정보화 수준의 향상으로 일보 진보한 것이다.


또 하나의 강렬한 업적으로는 문화·예술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추진한 '문화 산업'에 관한 정책들을 예로 든다. 미래 산업으로 문화를 주장하는 여론이 해당 분야에서 있기는 했지만 정치권에서 찾기 힘들 때(p.48)라는 유진룡 전 장관의 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안은 또한 번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격렬한 우려를 거스르며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국민 여론을 존중해서 따라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국민을 설득도 해야 한다.'(p.49)라는 인터뷰 발언에서 정책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강단이 느껴진다. 일본 문화 개방에 앞서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과 고견을 구했다는 점 외에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었다. 중국 문화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잃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문화로 승화시킨 점을 치켜세우며 우리의 문화가 잠식당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예상은 예언이 되었고, 'K-문화'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진적인 혜안은 다른 여러 정책에도 빛을 발한다. 성 평등 정책에서도 발현되는데, 집 앞에 문패를 자신의 것과 함께 부인의 것을 동시에 달며 '가정은 부부가 함께 이뤄 나가는 거 아닙니까? 부부는 동등하다는 걸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p.100)라는 이희호 여사 자서전에 나오는 일화는 위 자서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녀가 유별한 시대에서 가히 '혁명적'인 모습이었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 출발한 여성특위는 2001년도에 입법권과 집행권을 가진 여성부로 발전한다. 관련 국정 노트에는 <여성의 시대>라는 항목 아래에 김대중 대통령의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인식과 그 타개 방안 등이 일목요연하고도 간결하게 적혀있는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굉장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IMF 시절을 지나면서 절망적인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우리 사회의 기초 안전망에 대한 필요가 요구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었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제도의 실행보다도 더욱 놀라웠던 점은 '복지'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이었는데 김 대통령의 말처럼 "복지는 자선이 아니라 인권"(p.113)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복지보다는 성장에 치중한 국가 기조에서 오래전부터 복지 정책을 구상해왔다는 점 또한 혁명적이고 선구적인 혜안이었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으로 개인은 재훈련을 통해 사회 복귀를 꾀하고 국가는 경제적인 인력 확보로 사회 발전을 꾀했다. 광범위한 빈곤층의 실질적인 도움은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복지라는 개념의 인식 수준을 바꾸고, 복지를 주요 논의 정책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1954년 1월 7일 《새벌》이라는 시사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자. "민생의 안정과 복지의 증진이 공산주의 자체를 절멸하는 데 있어서도 발본적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도 중산 이하의 근로 대중이 여하한 경우에도 인간 이하의 참경 속에 전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기와 향상의 발판이 돼 줄 수 있는 실업 보험, 양로 보험, 학업 보험, 흉작에 대한 보장 등 사회 복지 제도가 조속히 실현됨으로써 민생의 기본적 안정을 확립해야 한다." p.116



2장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인 철학과 신념을 중심으로 국정 노트를 살펴본다. 특히나 이번 장에서는 불통과 독단의 윤석열 전 정권과 비교하는 부분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에 그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도 많은, 총 여덟 번의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회담 전에 작성한 국정 노트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당리가 아닌 국정을 같이 협의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정도로 대응할 것과 할 말은 한다는 메모에서는 합치의 정치를 지향하면서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도 올곧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야당 대표를 만나기 전에 작성한 무려 6장의 국정 노트였는데,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의 예상 주장과 그에 따른 대응 전략과 제안 등이 빼꼭하고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다는 점이다. 합치에 대한 대통령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회차의 회담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담을 제안하고 야당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국정을 협의했다는 점은 정말로, 정말로 지금 시대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읽고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화합을 위한 노력의 예시는 전 대통령들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먼저 제의하면서, 과거와의 화해를 선청했다. 박정희는 유신 독재에 맞선 김대중 대통령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제했으며 탄압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 정권을 죄악으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근대화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경제 발전 정책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으로의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소망하며 자신의 현재에서 상대를 용서하고 화해를 청했다. 정치적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곡절의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말하는 평화는 그 울림이 크게 울린다.


마지막으로, DJ가 정적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한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이유가 있다. 군사 독재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가 평화적으로 뿌리내리려면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 게 필수적이라고 DJ는 봤다. 김대중은 '평화적 정권 교체'를 민주주의 핵심으로 여겼다. 그리고 평화적 정권 교체가 가능해지려면 군사 독재와 그에 부역한 이들에게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p.179


그러나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 평화'를 추구하는 기조는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인물의 사면을 두고 그 평가와 논란이 존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몰려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후 진술에서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p.169)라는 발언을 남겼는데,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한 발언이었다. 이러한 숭고한 의미의 이해를 돕는 부분은 저자가 해석한 '용서의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p.177)였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신념의 실천과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국가를 통합하려 노력했던 에이브러햄 링컨과 넬슨 만델라를 존경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 그 까닭이었다. 작금의 비상계엄 상태와 내란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숭고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의 정치가 무도한 친위 쿠데타로 퇴색된 것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국회를 지켜내고, 계엄 해제를 적법하고도 신속하게 해제하고, 느리지만 결국에는 탄핵이 인용된 것은,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선대의 이런 노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3장에 이르러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좀 더 개인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실제 국정 노트의 쓰인 글자의 모양새로도 짐작이 가능하듯이 모든 사안에 대해 매우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치밀하게 정리하는 성격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며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기 위한 협의에서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만남을 의례적인 행사로 치부하지 않고 각 부처의 보고를 모두 받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덧붙여 국정 노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자신이 몸소 겪은 국정 경험을 자신의 해석으로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며 특히 국외 정치의 상황을 상세히 전달하려 했다고 한다. 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까지 각국을 항목화해서 상세화한 노트는 정말 인상적이다.


끝까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은 그의 건강을 잠시 유예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타이틀과 사고로 인한 다리의 불편함은 적대 세력과 언론의 조롱 같은, 정치적 의도가 깔린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탈이 날까 봐 좋아하던 날음식을 자제하고, 감기의 걸릴 자유도 없다고 말하며, 임기 말에서 의사의 신장 투석 권유도 마다했던 대통령으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이 그대로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굉장히 튼튼한 신체와 맑고 또렷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주치의 전언이 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운동 종류에 제한이 있자 주치의로부터 수영을 권유받았지만 수영보다는 수영장에 딸린 사우나에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는 일화에서는 일면 인간적인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반면에 자연재해가 예상되는 날에는 그 좋아하는 일도 마다하고 관저로 곧장 가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책임감의 자세를 보면 부패한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재난 사고들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는 한없이 가볍고 몰염치하기 그지없다.


정치권에서도 협치와 화합을 중요시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서도 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가장 많은 기자 회견을 한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국정 현안과 중요 정책을 설명하는 장으로써 여겼다. 기자 회견 장에서도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또 역시, 다시 끔 윤석열 전 정부의 언론을 통해 국민을 대하던 불성실했던 태도를 상기시킨다. 도어 스태핑을 중단하고, 신년 연설을 무람없이 생략했다. 국민과의 소통은커녕 일명 '입틀막 경호'로,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들에 또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 처음 든 생각은 건조한 감상이 남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루는 분야가 궁금하기도 했고, 시의성도 있을 것 같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실행했던 정책들이 나의 어린 삶 속에도 교육의 형태로 실현되고 있었고, 일본 문화 개방으로 그 당시에 일본의 여러 음악과 개성이 다양했던 여러 드라마들도 접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위상이 한껏 높아진 K-문화의 흐름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복지 혜택 같은 사회의 기초 안전망의 정립의 발단 과정들도 톺아볼 수 있었다. 정치에 문외한일 수는 있어도 나의 일상과 삶이 결코 정치와 무관할 수 없고 앞으로는 그래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을 반성처럼 해본다.


비상계엄의 사태와 내란을 겪으면서 다양한 분야와 매체에서 각종 분석과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 자질에 대한 문제는 당선과 취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니 이제 와서야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의 청산만큼 중요한 것은 미래의 선택이다. 책의 띠지에는 국가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지만, 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유권자인 국민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모든 정책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이견이 극심하게 나뉘는 행보도 있었다. 나 또한 동의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나 신념, 정치적인 철학과 한 인간으로서의 성정은 우리에게 정직한 기준점을 보여주는 점은 다분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국정 운영을 최우선에 두고 정책의 방향은 항상 국민을 향했으며 소외된 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국정에 최우선이 된다면 정치적 이념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언론의 날센 비판과 비우호적인 태도에도 기자들 앞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통령직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했으며 끝까지 그 책임감을 오롯이 짊어졌던, 그런 모습들은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염증을 느끼는 현 사태에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무리하다고 느끼는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우리 국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다시 필요한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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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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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라는 소제목을 보며 순간 갸웃한다. 이런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듯, 서문의 첫 문장은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p.5)는 작가의 말로 시작한다. 무도한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상충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디저트'라는 어구는 어불성설로 느껴진다. 이러한 까닭은 아무래도 내 안에 '디저트'라는 개념은 현대적인 의미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디저트'의 다양하게 단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디저트'가 주는 이미지는 '휴식 여유, 사치' 정도로 요약하며 필수가 아닌 선택, 옵션의 개념인지라 먹고살기 팍팍한 탄압의 시대에서 과연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문에 작가는 또 이렇게 답을 해준다.



그런데 어쩌랴.

그때도 사람들을 매혹한 디저트가 존재한 게 사실이니.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5 들어가며



물론 현대의 디저트라는 개념이 적확하게 당시 시대에 적용된 것은 아니고, 현대의 디저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대의 사회적·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디저트가 갖던 의미와 사회상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곳곳의 일러스트와 삽화, 여러 자료 사진 등이 아득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초반의 의문은 던져버리고는 어느새 흥미로운 탐구의 자세로 책을 읽게 된다.


사실 먹는다는 행위는 맛을 즐기거나 배고픔을 더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재료를 골라 조리해서 먹거나 식당을 찾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먼저 개인의 경험이나 기호와 관련되어 있다. 나아가 사회적·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적인 기반에 지배되기도 한다. 그러니 음식을 먹는 것에는 사회적 취향이나 제도에 기반을 둔 개인의 기호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디저트를 선택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p.6


책에서 다루고 있는 8가지의 디저트는 현대에서도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종류의 디저트들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이 중에 누구나 하나쯤은 열렬히 애정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 화려한 라인업은 근대부터 시작된 아주 유서 깊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일본에서부터 유래한 경우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그 형태나 맛과 더불어 시대적 사회상이 덧칠해지며 고유한 서사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마시는 기분의 커피


기호 식품을 넘어서 현대인의 필수 식품이 되어버린 커피. 이 챕터를 읽으면서는 위화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현대의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그 공간인 카페를 향유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그 당시 경성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카페 순례'를 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경성에서 맛 좋은 커피를 찾아 제과점과 호텔, 백화점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맛을 비교하던 당시 커피 애호가들의 모습과도 매우 닮아있다. 또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끽다점', '다방'에서 향유하는 모습도 현재 '카페'를 향유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후자에 들어가면 담배 연기 가득한 가운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흐른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가게만이 본격적인 끽다점이라고 한다. 정말 다방은 그냥 '커피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p.55


특히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부분에서는 작은 탄성이 나왔다. 이 기준은 현재의 카페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듯하다. 어떤 카페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커피 자체의 맛보다는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문화 예술인들의 친교의 장으로써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공간의 인테리어나 가구의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들이 형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씁쓰름한 맛은 식민지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관통하는 공통된 위로였다.



커피는 삶의 여정에 지친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우아한 음악과 포근한 자리를 제공했던 다방과 함께한 듯하다.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24


이상의 수필은 식민지 시대 다방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다방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청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p.56





만주노 호야호야!


현재 '만주'하면 떠오르는 것은 십중팔구 지하철 역사에서 파는 '그 만주'일 것이다. 한입 베어 불면 부드럽고 달달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데, 어쩐지 잔뜩 먹겠다는 결심에 비해 금방 물려버리는, 맛보다는 향에 취하고는 했던 디저트였다. 당시의 만주는 반죽을 빚어 안에 팥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소를 채운 따끈한 음식으로 굉장히 값싼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이러한 만주는 '갈돕회'라는 경성에서 고학을 하던 학생들의 모임에서 고학생들이 밤에 학비를 벌기 위해 만주 장사를 하는 것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나무 궤짝을 어깨에 메고 '만주노 호야호야!(만주가 따끈따끈!)'를 외치며 어두운 밤거리에서 만주를 팔던 고학생의 노고가 담겼던 것이다. 성인 입으로 두 입 정도면 금방 사라지는 크기의 만주는 그 사이즈로 보아도 간식 정도의 요량일 텐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배곯는 이들의 가냘픈 한 끼 식사를 대체하는, 파는 사람에게도 사는 사람에게도 눈물겨운 '디저트'가 아닐 수 없었다.





늦은 밤 '만주노 호야호야!'를 외쳤던 이미지는 나로 하여금 비슷한 청각적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용하고 어두운 겨울밤에 '찹쌀 떠-억!'을 외치던 어느 아저씨의 억센 외침 소리였는데 그 야밤에 간식을 허락할 리가 없던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문을 열고 나가서는 눈처럼 새하얀 찹쌀떡을 사던 생경한 기억이 떠올랐다. 뜨끈한 이불 속에서 눈처럼 하얗고 차가운 찹쌀떡을 베어 물던,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고학생의 만주와 아저씨의 찹쌀떡. 어떠한 서사는 분절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저 시대와 이 시대의 디저트에 대한 몰이해는 이렇게 한결 얄팍해졌다.





불난 호떡집의 그림자


이러한 값싸고도 친숙한 디저트의 계보는 '호떡'으로 이어진다. 호떡은 지금의 위세만큼이나 당시 경성에서의 위세도 대단했는데 각 학교 앞마다 유명한 단골 호떡집이 있을 정도였고, 기숙학교에서 외출을 나가는 학생이 있을라치면 나머지 학생들이 호떡을 잔뜩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서 학생들의 호떡 사랑에 관한 글을 보면 '호떡인', '호떡집 토벌'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그 당시 호떡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을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세를 보다 보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는 말이 여기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랑캐 호'를 쓰는 호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기원한 디저트로, 청일 전쟁 이후 시간이 더 지나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화덕으로 호떡을 굽는 호떡 가게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수가 당시 가장 보편적이고 많았던 설렁탕 가게의 수보다 훨씬 웃도는 정도였다니 조선인들의 호떡 사랑 또한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또 기름판에 지지는 지금의 호떡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화덕 항아리에 반죽을 붙여 구워내는 전통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보던 그것과 공갈빵이 좀 비슷하려나 싶기도 하다. 반죽 안에 달달한 설탕을 묻힌 이 중국산 호떡은 값싼 가격과 압도적인 크기(작은 방석만 한 크기)로 기어코 만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러나 이러한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호떡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좋지 못하여 부끄러워하였는데, 불결하고 누추한 호떡집의 위생 상태를 문제 삼았으나 그 기저에는 일본의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한다. 호떡의 '호'도 사실은 중국의 서역 지방을 나타내는 뜻이었으나 조선의 정착하면서 그 의미가 비하와 멸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뜻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디저트의 언어와 인식에서도 식민 침탈의 저열한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의 기호란 것이 온전히 개인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호떡뿐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에 호떡이 자리를 잡았던 것은 중국음식, 나아가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정착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거기에는 중국을 부정적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p.176




초콜릿의 유구한 낭만의 역사


초콜릿과 사랑에 관한 담론은 경성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초콜릿은 어디에서나 사랑의 매개체라는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는데 경성 초콜릿의 낭만성도 그 당시 한국 문학에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러 한국 문학 작품에서 인용되는 '초콜릿의 로맨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로 오는 과정에서 마케팅이 더해지며 초콜릿은 그야말로 사랑의 디저트가 되었다. 그 낭만성이 달콤 쌉싸름한 맛에서 기원한 것인가,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희소성에서 비롯한 갈구에서 기원한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읽다 보면 달달한 초콜릿이 떠오르며 침이 고인다.





초콜릿의 세계사,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경위와 고형 형태의 초콜릿보다 음료(코코아)로 더 즐겼던 모습 등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건강'과 관련된 초콜릿의 이야기였다. 혈액의 양을 증가시키는 도움을 주는 식품에 관한 기사에 초콜릿이 그 예시로 들어가는 것은 의아스럽기도 했다. ' 단것'의 대명사로 그 상징성을 정의할 수도 있는 초콜릿은 건강과는 과연 대척점에 있을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영양 정보를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는 점인데, 1929년 11월 <동아일보>에 실린 삼영 밀크초콜릿 광고는 초콜릿의 영양을 달걀의 3배, 밥의 4.5배, 소고기의 7.5배라고 소개하고 있다. 1929년 12월 같은 신문에 실린 밀크초콜릿 광고에도 과자가 아니라 '제1등 자양품'이라고 소개(p.254) 하는 것을 보면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설탕은?


그런데 당시 설탕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19세기에 정제당이 생산되고 20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 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문명개화론'과 더불어 설탕의 소비가 권장될 정도였다. 특히 이전까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거무스름한 흑당이 '야만, 낙후, 불결' 등으로 치부되는 반면, 하얀 정제당은 '문명, 산업, 위생' 등을 상징했다. 따라서 설탕이 들어간 초콜릿 역시 이전부터 이어온 건강식품이라는 자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p.254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의 문물을 흡수하고 아시아의 서양을 지향하며 다른 아시아 지역을 찬탈하려는 야욕이 기저에 깔려있다. 자국으로 유입된 '하얀 설탕'을 '문명'으로 규정하며 '검은 설탕'인 '흑당'을 '야만'으로 몰아가는 납작한 인식은 초콜릿에도 묻어있지만 앞서 본, 흑당을 사용했던, 중국에서 기원한 호떡에는 '야만'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사회적·문화적 취향, 제도적인 기반의 지배(p.6)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사의 예시들이 때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선택에도 분별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덟 가지 디저트의 근대 역사를 톺아보는 일은 디저트를 직접 먹는 것만큼이나 맛이 있었다. 근대사에 더하여 각 디저트에 얽힌 사소한 나의 개인사들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선물 받은 고급 멜론을 기깔나게 잘라보겠다며 설쳐대며 깔깔대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일본 여행 중에 어느 신사 앞에서 팔던 청량하기 그지없었던 라무네의 푸른빛이 떠오르기도 했고, 세찬 겨울 어느 날에는 드럼통 서랍에서 따끈하다 못해 김이 펄펄 나는 군고구마를 사서 먹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빙수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어느 한 여름날에는 밀려드는 빙수 주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디저트는 달콤한 맛 자체만이 아니라 이런 찰나의 기억들을 종종 상기시켜 일상을 조금은 반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일까?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디저트에 매혹되었는지 모르겠다.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다른 디저트들의 이야기도 몹시 흥미롭다. 이상이 죽기 전에 먹고 싶어 했던 센비키아의 멜론, 멜론의 품종 개량으로 참외가 사라진 일본에서 이제는 한국의 참외를 역수입하는 현상이나 쇠구슬이 들어간 라무네와 같은 탄산음료가 전염병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까지 권장했던 것, 김동인의 <감자>의 감자가 사실은 군고구마였던 사실, '빙수당 당수'를 자청했던 방정환 선생의 빙수 사랑까지….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떠오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호떡을 손에 쥐고, 초콜릿을 고르며, "야, 너 그거 알아? 이 디저트 말이야…"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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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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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비라는 점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기조이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물가만큼이나 올라버린 책값도 부쩍 부담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요즘이다. 그런 처지에서 역시나 '도서관'이라는 훌륭하고도 반가운 대안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22년도부터 정부의 출판 지원 사업 규모는 꾸준히 감소하는 태세였고 독서문화 증진 지원 사업은 23년도에 59억의 예산 편성이 되었으나 24년도에 아예 폐지되었다고 한다. '텍스트 힙'의 영향으로 독서하는 젊은 층의 수요가 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독서하는 인구 수는 저조하다. 이러한 독서의 부재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개인적인으로는 '도서관'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독서'에 관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컸다.



이런 고마운 도서관에 관한 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로 내려간다. 그 당시에는 도서 대출증을 만들려면 실물 증명사진 1부가 필요했고, 담당 직원분이 사진을 붙이고 코팅을 하며 대출증을 손수 제작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금빛 색 바탕에 얼굴이 박힌 도서 대출증은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를 증명하는 나만의 어떤 무엇'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굉장히 설레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더 흘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으러 가기보다 공부하러 가기 위한 열람실의 출입이 더 잦았다. 시험 기간마다 도서관 열람실의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특히나 주말을 낀 시험 기간에는 개관 시간에 맞춰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종종 건물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다. 그리고 보통 칸막이 열람 좌석 구간은 항상 만석이라 자리 눈치 싸움이 제법 치열했다. 그런데 이러한 '칸막이 열람실'이 일제 식민 잔재였다?



일제강점기에 틀이 놓은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을 해방 후 8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 p.64


이 땅에서 도서관 '사서'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다. 대한 제국이 국권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 도서관의 도입도 일제강점기 전후 이뤄졌다. 식민 시기에 도서관 제도가 보급되다 보니, 일본이 번안한 도서관 개념과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쓰기 시작했다. p.394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도서관의 출현은 일제 강점 시기에 이루어졌기에 '도서관'이나 '사서'라는 용어를 비롯해 도서관의 운영 방식이나 도서 분류법도 일본의 것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용어의 일제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저자는 용어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사유와 정의를 고민해 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언어의 표면적인 정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도서관'이라는 언어와 대상을 두고 그것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고위 도서 관리직에는 조선인을 임명하지 않았고, 봉급에도 상한선을 두어 관리하는 등 철저한 식민화의 잔존을 도서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제는 통치 행위에 일환으로 조선의 도서관 건립을 통제하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 자국의 도서관 건립 수와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서관을 만들어 역사적, 문화적 역량을 꽤 하고자 하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현재의 도서관들, 국립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종로 도서관이나 남산 도서관, 용산 도서관 등의 역사적인 기원과 맥락을 톺아보는 책의 전체적인 과정에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닌 역사성이나 상징성의 해석이 얼마나 복잡한지,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지 여실히 깨닫는다. 근대 도서관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익선이나 이범승의 경성 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분명 조선의 근대적 도서관 설립 계보에 미친 영향이 크겠지만 그들의 친일 행적이나 광복 후 향후 행보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도서관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인 주체성을 과연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개인의 친일적인 행보, 그것을 시대적인 한계성으로 두고, 그의 업적은 별개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적절한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 부분이다.






책 전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무대'를 주제로한 2부의 내용이었다. 이 역시 현 시각 우리 정치 문제를 반추해볼 수 있는 시의성있는 파트여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곡절의 시간을 건너온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도 도서관을 무대로 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톺아본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도서관이 권력의 치적으로 도구화 되거나 권력에 아양 떠는 목적으로 '헌정'되는 수난을 겪는다. 정독 도서관의 이름이 박정희의 이름 자에서 따온 것이나 이승만의 호, 우남을 딴 우남 기념 도서관 등이 그 몹쓸 예이다.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나무 현판 뒤에서 아직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승만에게 헌정한 도서관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4·19 혁명 과정에서 그를 몰아내는 선봉에 섰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p.160



4·19 혁명부터 부산마산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피의 시대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보였던 전국의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에서 사법 경찰의 눈을 피해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를 비롯해 도서관이 갖는 개방성과 접근성은 도서관을 '가장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p.224) 민주주의의 무대를 제공했다.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농성이나 건국 대학교의 애학투련 농성 사건등에서도 도서관은 그곳에 있었다. 시대의 폭력에 맞서며 그 최전선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역사를 도서관과 연결한 서술은 지성의 요람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그 의미가 더욱 짙어진다.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과 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서관에 관한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넘치도록 과분하게 알아간다. 도서관의 사회적이고도 문화적인 실용성은 물론, 역사적인 상징성에 관해서도 다시끔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일제 강점기 시대나 독재 정권 시절의 도서관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록해야하는지에 관한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과거의 역사를 모르쇠한 채 국립 중앙 도서관의 개관일을 임의로 지정한 예도 그렇다. 반면 친일 부역자나 독재 정권을 상징하는 기념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현재의 몇몇 도서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이외에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무용한 국회 도서관의 실용성 문제와 마땅히 기념해야할 것이 부재하고 개발과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그 상징성이 훼손되는 문제 또한 상주하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비롯해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지속되는 도서관에 관한 문제점을 바라보다보면 도서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참담하고 문제 해결 방안은 안이한 행태를 취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역사적인 토대 위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경험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 의미와 상징을 더욱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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