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어렸을 적에 '식목일'은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작은 묘목을 심거나 나무와 관련하여 포스터나 표어를 그리는 숙제를 하던 기억이 난다. 왜 일부러 나무 심는 날을 지정한 것일까? 포스터 가득 무성한 나무를 그려 넣으면서 궁금했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답해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방금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 유래가 무려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당나라를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성업을 완수한 날에 제를 지냈던 날이라고 한다. 제를 지내기 위한 곡식을 왕이 농민을 논밭을 두어 경작하게 했는데, 이날은 왕이 몸소 나와 경작하던 날이기에 기념했다고. 정의는 '나무를 심으며 국민의 나무 사랑 정신을 북돋우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해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네이버 한국민족대백과) '오, 그렇구나' 하면서도 '자원화'라는 단어에서 주는 어감이 이제는 어쩐지 낡은 위화감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공휴일이 아닌 식목일이 있는 4월에는 묘목을 심는 대신, 식물에 관한 에세이를 읽는다. 비교적 최근에 읽은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이 노거수에 실태에 관한 르포 형식의 에세이였다면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는 식물분류학자가 숲을 기록한 일지 형식의 에세이로 그 결이 제법 다르지만 저자들이 나무와 식물, 자연과 숲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거시적인 관점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저자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환경연구센터에서 난초와 관련 곰팡이를 연구하며 숲속 식물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미국에 처음 살게 된 한국인, 해외 연구소에 있는 어린 과학자, 미래를 고민하는 여성 과학자, 과학과 예술 사이에 있는 사람, 자연을 마주하는 인간으로서(p.9) 기록한 세상과 자연, 사람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공감과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고 한다.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라는 소제목에서 보듯이 저자의 이야기는 계절을 하나하나 지나가며 변화하는 숲속 식물과 타지에서 외지인으로 지내는 자신의 여러 경험과 느낌을, 여러 갈래의 소회로 이야기한다. 더불어 책 곳곳에 저자가 그린 식물 세밀화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의 첫 줄인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의 면모를 곳곳의 세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평생 좋아하는 것을 연구하고, 그 연구를 하기 위해 기꺼이 낯선 곳을 향하는 열정 속에서도 저자는 솔직하게 낯선 곳에서의 고립과 외로움을 고백한다. 하지만 기어코 머나먼 이국에서의 향수병 보다 미지의 숲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식물에 대한 탐구 열정이 저자를 미국 메릴랜드의 숲으로 이끌었다. 저자는 연구를 위해서 숲에 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도 숲에 가며 식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식물을 다 덮어버리고야 마는 펑펑 내린 소복한 눈을 바라보면서,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늪지대의 길을 잃은 물고기 한 쌍을 바라보면서 인간관계의 고충을 털어버리기도 하고, 자연 생태에 대해 경탄하기도 하며,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자연을 보고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은 새삼 인간의 신비한 공감각적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내가 겪은 숲과 자연에 관한 개인적 경험이 읽는 내내 같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초의 씨앗은 스스로 싹을 틔울 영양분이 부족해 특정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곰팡이는 난초의 씨앗에 외부의 영양분을 전달한다. 그리고 많이 연구되지 않았지만, 그 곰팡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특정한 박테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테리아는 곰팡이를 도와주고, 곰팡이는 난초를 도와주는 것이다. p.92
이런한 감상을 겸한 식물의 생장에 관한 과학적인 사실들도 흥미로웠다. 저자가 연구하는 난초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곰팡이는 또다시 박테리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떤 씨앗들은 생장하는 속도의 차이가 있는데, 발아 시기가 길게는 몇 년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떤 꽃의 향기는 꽃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꽃에 있는 미생물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러한 서술에서는 마치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시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머나먼 숲까지 저자를 떠나게 한 저자의 열정이 어떻게 기원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만든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 애정을 쏟는 일은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저자가 식물을 보고 삶을 이해해 보듯이 나도 조금은 이해해 본다.

계절을 따라 걷는 책의 구성처럼 저자를 따라 메릴랜드의 숲속을 따라걸으며 계절마다 변화하고 적응하는 식물들의 생장을 살펴보는 일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가을에 씨앗을 심는 것을 생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저자가 이내 그 이유를 알고는 깨닫는 장면은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여름에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구어 가을 동안 토양 속에서 성실히 영양분을 쌓아 혹한의 계절을 견딘 후, 봄에 싹을 틔우는 식물의 생장 과정은, 인간의 생애를 빗대어도 설명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이러한 식물의 생장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것을 보며 책에서 언급한 생명의 영속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숲속에는 맞거나 틀린 것, 좋고 나쁜 것, 기쁘고 슬픈 것이 없을 거라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생물의 생존방식을 경쟁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경쟁이나 공생도 자연을 설명하기엔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자연의 모든 건 조화롭게 연결되어 순환한다. p.97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겠지만 저자의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자연 상태에 관한 정의는 식물이라는 작은 단위의 객체로 보아도, 숲이라는 보다 거대한 단위로 보아도 '조화, 연결, 순환'이라는 정의가 적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숲의 구성은 객체들이 모여 그저 단순히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에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순환하며 생동하는 것이다. 책에서 언급된 나무를 인위적으로 죽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거들링과 프릴링을 언급하는데 그런 방법을 써도 나무는 생명력이 강해서 한 번에 고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생명력을 보면 묵묵하고 고요해 보이는 숲속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숲속의 유기체들이 얼마나 견고한 순환의 고리를 가지고 역동적으로 생동하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먹은 열매가 녹음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모습을 떠올린다. 또한 그 맛에서 여름의 햇빛, 더위, 비, 곤충의 수고를 생각한다. 열매는 먹는 숲속 동물들처럼 우리가 태초 자연에서 어떤 순환고리였는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인지 깨닫는다. p.109
곰팡이, 박테리아, 곤충, 소동물, 꽃, 나무… 숲을 인식하는 범위가 한껏 넓어졌다. 인식의 범위가 늘어나니 감각할 수 있는 영역은 더욱 다양해졌다. 종종 등산을 하다가 만나는 울창한 숲에서 느끼는 정체 모를, 설명할 길이 요원한 압도감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거대한 규모가 주는 실체적인 압도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숲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장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에 그런 것을 아니었을까 이 책을 빌려 미루어 짐작해 볼 따름이다. 숲의 서사를 목도하며, 저자의 지식에 기대어, 인간적 고민과 위로, 공감을 나누며 숲속을 도닥도닥 걷는 기분이었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