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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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비라는 점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기조이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물가만큼이나 올라버린 책값도 부쩍 부담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요즘이다. 그런 처지에서 역시나 '도서관'이라는 훌륭하고도 반가운 대안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22년도부터 정부의 출판 지원 사업 규모는 꾸준히 감소하는 태세였고 독서문화 증진 지원 사업은 23년도에 59억의 예산 편성이 되었으나 24년도에 아예 폐지되었다고 한다. '텍스트 힙'의 영향으로 독서하는 젊은 층의 수요가 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독서하는 인구 수는 저조하다. 이러한 독서의 부재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개인적인으로는 '도서관'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독서'에 관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컸다.



이런 고마운 도서관에 관한 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로 내려간다. 그 당시에는 도서 대출증을 만들려면 실물 증명사진 1부가 필요했고, 담당 직원분이 사진을 붙이고 코팅을 하며 대출증을 손수 제작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금빛 색 바탕에 얼굴이 박힌 도서 대출증은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를 증명하는 나만의 어떤 무엇'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굉장히 설레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더 흘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으러 가기보다 공부하러 가기 위한 열람실의 출입이 더 잦았다. 시험 기간마다 도서관 열람실의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특히나 주말을 낀 시험 기간에는 개관 시간에 맞춰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종종 건물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다. 그리고 보통 칸막이 열람 좌석 구간은 항상 만석이라 자리 눈치 싸움이 제법 치열했다. 그런데 이러한 '칸막이 열람실'이 일제 식민 잔재였다?



일제강점기에 틀이 놓은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을 해방 후 8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 p.64


이 땅에서 도서관 '사서'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다. 대한 제국이 국권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 도서관의 도입도 일제강점기 전후 이뤄졌다. 식민 시기에 도서관 제도가 보급되다 보니, 일본이 번안한 도서관 개념과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쓰기 시작했다. p.394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도서관의 출현은 일제 강점 시기에 이루어졌기에 '도서관'이나 '사서'라는 용어를 비롯해 도서관의 운영 방식이나 도서 분류법도 일본의 것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용어의 일제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저자는 용어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사유와 정의를 고민해 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언어의 표면적인 정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도서관'이라는 언어와 대상을 두고 그것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고위 도서 관리직에는 조선인을 임명하지 않았고, 봉급에도 상한선을 두어 관리하는 등 철저한 식민화의 잔존을 도서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제는 통치 행위에 일환으로 조선의 도서관 건립을 통제하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 자국의 도서관 건립 수와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서관을 만들어 역사적, 문화적 역량을 꽤 하고자 하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현재의 도서관들, 국립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종로 도서관이나 남산 도서관, 용산 도서관 등의 역사적인 기원과 맥락을 톺아보는 책의 전체적인 과정에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닌 역사성이나 상징성의 해석이 얼마나 복잡한지,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지 여실히 깨닫는다. 근대 도서관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익선이나 이범승의 경성 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분명 조선의 근대적 도서관 설립 계보에 미친 영향이 크겠지만 그들의 친일 행적이나 광복 후 향후 행보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도서관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인 주체성을 과연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개인의 친일적인 행보, 그것을 시대적인 한계성으로 두고, 그의 업적은 별개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적절한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 부분이다.






책 전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무대'를 주제로한 2부의 내용이었다. 이 역시 현 시각 우리 정치 문제를 반추해볼 수 있는 시의성있는 파트여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곡절의 시간을 건너온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도 도서관을 무대로 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톺아본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도서관이 권력의 치적으로 도구화 되거나 권력에 아양 떠는 목적으로 '헌정'되는 수난을 겪는다. 정독 도서관의 이름이 박정희의 이름 자에서 따온 것이나 이승만의 호, 우남을 딴 우남 기념 도서관 등이 그 몹쓸 예이다.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나무 현판 뒤에서 아직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승만에게 헌정한 도서관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4·19 혁명 과정에서 그를 몰아내는 선봉에 섰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p.160



4·19 혁명부터 부산마산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피의 시대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보였던 전국의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에서 사법 경찰의 눈을 피해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를 비롯해 도서관이 갖는 개방성과 접근성은 도서관을 '가장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p.224) 민주주의의 무대를 제공했다.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농성이나 건국 대학교의 애학투련 농성 사건등에서도 도서관은 그곳에 있었다. 시대의 폭력에 맞서며 그 최전선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역사를 도서관과 연결한 서술은 지성의 요람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그 의미가 더욱 짙어진다.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과 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서관에 관한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넘치도록 과분하게 알아간다. 도서관의 사회적이고도 문화적인 실용성은 물론, 역사적인 상징성에 관해서도 다시끔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일제 강점기 시대나 독재 정권 시절의 도서관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록해야하는지에 관한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과거의 역사를 모르쇠한 채 국립 중앙 도서관의 개관일을 임의로 지정한 예도 그렇다. 반면 친일 부역자나 독재 정권을 상징하는 기념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현재의 몇몇 도서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이외에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무용한 국회 도서관의 실용성 문제와 마땅히 기념해야할 것이 부재하고 개발과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그 상징성이 훼손되는 문제 또한 상주하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비롯해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지속되는 도서관에 관한 문제점을 바라보다보면 도서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참담하고 문제 해결 방안은 안이한 행태를 취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역사적인 토대 위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경험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 의미와 상징을 더욱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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