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라는 소제목을 보며 순간 갸웃한다. 이런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듯, 서문의 첫 문장은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p.5)는 작가의 말로 시작한다. 무도한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상충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디저트'라는 어구는 어불성설로 느껴진다. 이러한 까닭은 아무래도 내 안에 '디저트'라는 개념은 현대적인 의미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디저트'의 다양하게 단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디저트'가 주는 이미지는 '휴식 여유, 사치' 정도로 요약하며 필수가 아닌 선택, 옵션의 개념인지라 먹고살기 팍팍한 탄압의 시대에서 과연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문에 작가는 또 이렇게 답을 해준다.
그런데 어쩌랴.
그때도 사람들을 매혹한 디저트가 존재한 게 사실이니.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5 들어가며
물론 현대의 디저트라는 개념이 적확하게 당시 시대에 적용된 것은 아니고, 현대의 디저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대의 사회적·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디저트가 갖던 의미와 사회상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곳곳의 일러스트와 삽화, 여러 자료 사진 등이 아득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초반의 의문은 던져버리고는 어느새 흥미로운 탐구의 자세로 책을 읽게 된다.
사실 먹는다는 행위는 맛을 즐기거나 배고픔을 더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재료를 골라 조리해서 먹거나 식당을 찾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먼저 개인의 경험이나 기호와 관련되어 있다. 나아가 사회적·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적인 기반에 지배되기도 한다. 그러니 음식을 먹는 것에는 사회적 취향이나 제도에 기반을 둔 개인의 기호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디저트를 선택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p.6
책에서 다루고 있는 8가지의 디저트는 현대에서도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종류의 디저트들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이 중에 누구나 하나쯤은 열렬히 애정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 화려한 라인업은 근대부터 시작된 아주 유서 깊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일본에서부터 유래한 경우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그 형태나 맛과 더불어 시대적 사회상이 덧칠해지며 고유한 서사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마시는 기분의 커피
기호 식품을 넘어서 현대인의 필수 식품이 되어버린 커피. 이 챕터를 읽으면서는 위화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현대의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그 공간인 카페를 향유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그 당시 경성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카페 순례'를 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경성에서 맛 좋은 커피를 찾아 제과점과 호텔, 백화점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맛을 비교하던 당시 커피 애호가들의 모습과도 매우 닮아있다. 또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끽다점', '다방'에서 향유하는 모습도 현재 '카페'를 향유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후자에 들어가면 담배 연기 가득한 가운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흐른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가게만이 본격적인 끽다점이라고 한다. 정말 다방은 그냥 '커피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p.55
특히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부분에서는 작은 탄성이 나왔다. 이 기준은 현재의 카페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듯하다. 어떤 카페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커피 자체의 맛보다는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문화 예술인들의 친교의 장으로써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공간의 인테리어나 가구의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들이 형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씁쓰름한 맛은 식민지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관통하는 공통된 위로였다.
커피는 삶의 여정에 지친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우아한 음악과 포근한 자리를 제공했던 다방과 함께한 듯하다.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24
이상의 수필은 식민지 시대 다방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다방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청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p.56
만주노 호야호야!
현재 '만주'하면 떠오르는 것은 십중팔구 지하철 역사에서 파는 '그 만주'일 것이다. 한입 베어 불면 부드럽고 달달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데, 어쩐지 잔뜩 먹겠다는 결심에 비해 금방 물려버리는, 맛보다는 향에 취하고는 했던 디저트였다. 당시의 만주는 반죽을 빚어 안에 팥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소를 채운 따끈한 음식으로 굉장히 값싼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이러한 만주는 '갈돕회'라는 경성에서 고학을 하던 학생들의 모임에서 고학생들이 밤에 학비를 벌기 위해 만주 장사를 하는 것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나무 궤짝을 어깨에 메고 '만주노 호야호야!(만주가 따끈따끈!)'를 외치며 어두운 밤거리에서 만주를 팔던 고학생의 노고가 담겼던 것이다. 성인 입으로 두 입 정도면 금방 사라지는 크기의 만주는 그 사이즈로 보아도 간식 정도의 요량일 텐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배곯는 이들의 가냘픈 한 끼 식사를 대체하는, 파는 사람에게도 사는 사람에게도 눈물겨운 '디저트'가 아닐 수 없었다.

늦은 밤 '만주노 호야호야!'를 외쳤던 이미지는 나로 하여금 비슷한 청각적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용하고 어두운 겨울밤에 '찹쌀 떠-억!'을 외치던 어느 아저씨의 억센 외침 소리였는데 그 야밤에 간식을 허락할 리가 없던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문을 열고 나가서는 눈처럼 새하얀 찹쌀떡을 사던 생경한 기억이 떠올랐다. 뜨끈한 이불 속에서 눈처럼 하얗고 차가운 찹쌀떡을 베어 물던,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고학생의 만주와 아저씨의 찹쌀떡. 어떠한 서사는 분절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저 시대와 이 시대의 디저트에 대한 몰이해는 이렇게 한결 얄팍해졌다.
불난 호떡집의 그림자
이러한 값싸고도 친숙한 디저트의 계보는 '호떡'으로 이어진다. 호떡은 지금의 위세만큼이나 당시 경성에서의 위세도 대단했는데 각 학교 앞마다 유명한 단골 호떡집이 있을 정도였고, 기숙학교에서 외출을 나가는 학생이 있을라치면 나머지 학생들이 호떡을 잔뜩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서 학생들의 호떡 사랑에 관한 글을 보면 '호떡인', '호떡집 토벌'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그 당시 호떡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을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세를 보다 보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는 말이 여기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랑캐 호'를 쓰는 호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기원한 디저트로, 청일 전쟁 이후 시간이 더 지나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화덕으로 호떡을 굽는 호떡 가게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수가 당시 가장 보편적이고 많았던 설렁탕 가게의 수보다 훨씬 웃도는 정도였다니 조선인들의 호떡 사랑 또한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또 기름판에 지지는 지금의 호떡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화덕 항아리에 반죽을 붙여 구워내는 전통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보던 그것과 공갈빵이 좀 비슷하려나 싶기도 하다. 반죽 안에 달달한 설탕을 묻힌 이 중국산 호떡은 값싼 가격과 압도적인 크기(작은 방석만 한 크기)로 기어코 만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러나 이러한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호떡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좋지 못하여 부끄러워하였는데, 불결하고 누추한 호떡집의 위생 상태를 문제 삼았으나 그 기저에는 일본의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한다. 호떡의 '호'도 사실은 중국의 서역 지방을 나타내는 뜻이었으나 조선의 정착하면서 그 의미가 비하와 멸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뜻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디저트의 언어와 인식에서도 식민 침탈의 저열한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의 기호란 것이 온전히 개인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호떡뿐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에 호떡이 자리를 잡았던 것은 중국음식, 나아가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정착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거기에는 중국을 부정적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p.176
초콜릿의 유구한 낭만의 역사
초콜릿과 사랑에 관한 담론은 경성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초콜릿은 어디에서나 사랑의 매개체라는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는데 경성 초콜릿의 낭만성도 그 당시 한국 문학에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러 한국 문학 작품에서 인용되는 '초콜릿의 로맨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로 오는 과정에서 마케팅이 더해지며 초콜릿은 그야말로 사랑의 디저트가 되었다. 그 낭만성이 달콤 쌉싸름한 맛에서 기원한 것인가,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희소성에서 비롯한 갈구에서 기원한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읽다 보면 달달한 초콜릿이 떠오르며 침이 고인다.

초콜릿의 세계사,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경위와 고형 형태의 초콜릿보다 음료(코코아)로 더 즐겼던 모습 등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건강'과 관련된 초콜릿의 이야기였다. 혈액의 양을 증가시키는 도움을 주는 식품에 관한 기사에 초콜릿이 그 예시로 들어가는 것은 의아스럽기도 했다. ' 단것'의 대명사로 그 상징성을 정의할 수도 있는 초콜릿은 건강과는 과연 대척점에 있을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영양 정보를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는 점인데, 1929년 11월 <동아일보>에 실린 삼영 밀크초콜릿 광고는 초콜릿의 영양을 달걀의 3배, 밥의 4.5배, 소고기의 7.5배라고 소개하고 있다. 1929년 12월 같은 신문에 실린 밀크초콜릿 광고에도 과자가 아니라 '제1등 자양품'이라고 소개(p.254) 하는 것을 보면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설탕은?
그런데 당시 설탕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19세기에 정제당이 생산되고 20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 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문명개화론'과 더불어 설탕의 소비가 권장될 정도였다. 특히 이전까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거무스름한 흑당이 '야만, 낙후, 불결' 등으로 치부되는 반면, 하얀 정제당은 '문명, 산업, 위생' 등을 상징했다. 따라서 설탕이 들어간 초콜릿 역시 이전부터 이어온 건강식품이라는 자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p.254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의 문물을 흡수하고 아시아의 서양을 지향하며 다른 아시아 지역을 찬탈하려는 야욕이 기저에 깔려있다. 자국으로 유입된 '하얀 설탕'을 '문명'으로 규정하며 '검은 설탕'인 '흑당'을 '야만'으로 몰아가는 납작한 인식은 초콜릿에도 묻어있지만 앞서 본, 흑당을 사용했던, 중국에서 기원한 호떡에는 '야만'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사회적·문화적 취향, 제도적인 기반의 지배(p.6)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사의 예시들이 때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선택에도 분별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덟 가지 디저트의 근대 역사를 톺아보는 일은 디저트를 직접 먹는 것만큼이나 맛이 있었다. 근대사에 더하여 각 디저트에 얽힌 사소한 나의 개인사들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선물 받은 고급 멜론을 기깔나게 잘라보겠다며 설쳐대며 깔깔대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일본 여행 중에 어느 신사 앞에서 팔던 청량하기 그지없었던 라무네의 푸른빛이 떠오르기도 했고, 세찬 겨울 어느 날에는 드럼통 서랍에서 따끈하다 못해 김이 펄펄 나는 군고구마를 사서 먹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빙수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어느 한 여름날에는 밀려드는 빙수 주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디저트는 달콤한 맛 자체만이 아니라 이런 찰나의 기억들을 종종 상기시켜 일상을 조금은 반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일까?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디저트에 매혹되었는지 모르겠다.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다른 디저트들의 이야기도 몹시 흥미롭다. 이상이 죽기 전에 먹고 싶어 했던 센비키아의 멜론, 멜론의 품종 개량으로 참외가 사라진 일본에서 이제는 한국의 참외를 역수입하는 현상이나 쇠구슬이 들어간 라무네와 같은 탄산음료가 전염병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까지 권장했던 것, 김동인의 <감자>의 감자가 사실은 군고구마였던 사실, '빙수당 당수'를 자청했던 방정환 선생의 빙수 사랑까지….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떠오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호떡을 손에 쥐고, 초콜릿을 고르며, "야, 너 그거 알아? 이 디저트 말이야…"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