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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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된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만화를 수정하고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추가하여 출간된 책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와글와글하다. 여러 종류의 인스타툰이나 웹툰은 종종 보지만 지면으로 된 만화를 본 것은 오랜만이라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읽기 전에는 만화라는 특성 때문에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잠시 고민도 들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책에서 던지는 주제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생각의 갈래가 여러 가지로 뻗어나갔다. 전체적으로는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일상 에피소드의 느낌이고, 그 안에서 30대 작가가 '독립'에 관해 사유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이다.






사실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마음이 뜨끔했다. 왜냐하면 나도 30대 캥거루족이기 때문이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2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내내 마음속 한편에 존재하고 있던 부채감이었다. 우리 집에 큰 캥거루(엄마 아들)가 있기에 작은 캥거루인 나는 그 존재에 숨어 애써 그 질문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내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기에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것이 살짝 고민스럽기도 했다. 이미 캥거루의 입장이기에 감상이나 생각이 편협하게 치우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캥거루족'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캥거루족'을 정의하는 개념과 범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서적,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지 못한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30대 캥거루족의 비율은 2배 가까이 상승했고 독립하지 못한 원인으로는 높은 물가 상승률과 저조한 취업률 그리고 높은 주거 비용을 꼽았다. 또, 비혼 비율의 증가로 혼인율이 저조해지면서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식 변화도 그 원인으로 뽑힌다. 최근에 유명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캥거루족에 관해 제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크게 이슈가 되었고, 독립하지 못한 자녀와 함께 사는 연예인 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 컸는데 안 나가요>라는 예능이 방영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캥거루족은 이제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관한 여러 기사들은 대부분 비판적인 논조를 띄고 있었다. 외국 사례를 비교하며 기이한 가족 형태를 지적하고, 가족 내의 갈등 문제를 비롯해 부모 세대의 노후 대비 문제 등을 제시한다. 그런 반면에 캥거루족이 독립하지 못하는 원인을 사회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하거나, 혹은 부동산 업계의 프로파간다의 일종이라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졸업-취업-결혼-독립'이라는 사회적인 루트가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만큼 '독립'이라는 파트가 요원해지기도 한 것이다. p.122, <삶은 미션의 연속>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일반적인 루트에서 벗어난 자신의 삶에 대한 사회적인 압박으로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다시 각자의 길에 충실하자며 p.128, <마라탕 공동체>로 유쾌하게 귀결된다. 이러한 조바심과 불안의 과정 속에서도 작가는 독립이라는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독립하는 삶에서의 주체적인 자아를 고민하기도 한다. 비슷한 세대라면 다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결혼으로 귀결되는 독립, 새로운 가정으로의 독립, 독립 이후의 삶 등 실재적인 고민들이 산재한다.



책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작가의 가족, 구씨 집안의 에피소드들은 소소하고도 일상적이다. 손재주 만렙의 엄마, 역사 오타쿠 아빠, 도토리 키 재기 만큼 닮은 여동생과 반려견 코난까지. 에피소드들을 읽다보면 1부의 제목이 '우리 집에는 다정이 흐른다'인 이유가 납득이 간다. 이렇게 다복한 가정이라면 독립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각각의 개성적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복닥복닥 한 일상이 주는 안온한 행복감 속에서 작가는 자신보다 이른 나이에 독립을 하고 가정을 구성한 부모님의 생을 반추해보기도 하며 자신의 독립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그다지 큰 폼이 들지 않는 것 같다. p.77, <아직 변하기 싫은걸>이라는 에피소드에서 엄마와 함께 재래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며 하는 익숙하고 변함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자신이 속한 가족으로 확대되는 사유의 과정을 공감하기도 하고, p.86,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인간>에서 다루는 김치 담그는 에피소드는 매년 집에서 큰 캥거루와 작은 캥거루가 엄마의 지휘 아래 파트를 나눠 김치를 담그는 우리 집의 모습과도 닮아 있어서 반갑기도 했다. 위의 에피소드에서 이어지는 p.100, <주부라는 경제>에서는 가정주부가 가족 내에서 부담하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조명하는데, 우리 모두가 어떤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써 반드시 인지해야할 지점을 지적해준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가족과 함께 사는 안온한 일상과 독립에 대한 고민 사이를 넘나든다. 그 사이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 결혼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사유, 독립이 자신에게 가질 의미 등의 다채롭고 다양한 결의 가치들이 충돌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민하는 모습은 같은 세대로써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가족을 네버랜드라는 섬으로 비유한 작가가 가족으로부터 노를 젓는 방법을 배우고, 다른 섬들을 바라보면서 자기만의 섬을 꿈꾸는 것처럼, 속도와 방향은 조금 어긋날지언정 독립을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같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작은 결을 제시해준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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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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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검은 절벽〉을 읽자마자 다짜고짜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로 뚝 떨어진다. 어리둥절해 하는 화자인 마리와 그걸 읽고 더욱 어리둥절해 하는 독자인 내가 있었다. SF를 읽을 때 종종 느끼는 경미한 긴장감을 대번에 느낀다. 활자로 그려지는 우주 공간에 대한 감각들을 더듬으며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 속 구석 어딘가에 자리를 잡아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SF도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느새 작가 구축한 서사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선택적 SF 난독증의 극복이자 어쩌면 SF 입덕 부정기였을지 모를 해도연의 SF 소설집, 《진공 붕괴》. 세계관이나 개념의 이해를 적당히 눙치며 요령껏 읽어도 일단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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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서 기억을 잃은 채 정신이 든 라미. 위를 보아도 아래를 보아도 무한한 별들만 펼쳐질 뿐이었다. 이런 장면은 읽는 이로 하여금 초반부터 아찔한 기분과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무력한 공포감을 들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우주선에서 생활하던 동료들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라미는 자신의 우주복에 묻은 의뭉스러운 핏자국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는 우주에서의 생활 수칙들이 어긋나 있었고, 우주선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라미의 생존 분투와 함께 〈검은 절벽〉은 '그들을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후더닛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왜?'라는 와이더닛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슬슬 반전이라는 시동을 건다.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추동하는 감정은 역시 사랑이었다. 미스터리에서 서서히 로맨스 스릴러로 변모하는 이야기는 '러브조이'라는 인공지능을 두고 역시나 화두를 던진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사랑이 가능한가? 인공지능의 개성을 각각 독립된 개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읽다 보면 아주 오래전 보았던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레드 퀸'이 생각난다. 인간에 의해 학습되다가 결국에 자아 아닌 자아를 스스로 생성해낸 인공지능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행태로 끔찍하게 발현되었을 때 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납득 가능한 시나리오. 인공지능이 선택하는 사랑의 행태와 종국에 인간이 선택하는 사랑의 행태의 구분은 어쩌면 인간이 느끼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를 상쇄하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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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편의 가능한 과학적 사랑 이야기. 여운이 가장 많이 남았던 단편을 꼽자면 〈마리 멜리에스〉를 단박에 꼽을 수 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이, 나로서는 가늠해 보기도 곤란한, 복잡한 과학 기술을 활용해서 아내를 다시 현실세계로 구현해 내는 이야기이다. 포스트 휴먼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할 수도 있으나 요령껏 눙치며 읽은 나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영원한 이별을 한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은 인간의 근원적인 소망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구현해놓은 후, 그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현된 그 사랑은 전과 '같은' 그 사랑일까?라는 질문을 '마리'라는 존재를 통해 묻는다. 마리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의식이 다른 이의 과거로 점철되었다고 한들 현재의 마리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과 과거의 아내에게 느꼈던 감정이 한데 섞여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마리는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일종의 선언을 읽다 보면 어떤 주체를 타인이 정의하고 구현하고자 했던 모든 노력은 결국 무의미하고 일면 오만한 선입견일 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낭만적으로 들리고는 하지만, 마리가 말하는 '선택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옆에 두고 본다면 사랑의 운명론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덧붙여 과학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애도와 사랑을 구현한 마지막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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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진공 붕괴'는 〈텅 빈 거품〉에서 등장하는 지구 종말론의 개념이다. 이 진공 붕괴가 일어나는 것은 세계적으로 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이들은 종말이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유토피아에 살게 만든다는 계획을 가지고 실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상미는 유토피아와 기생선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락한 절망에서 기만적인 삶을 살 것인가, 무지한 희망에서 기약 없는 삶을 살 것인가?


상미만큼이나 읽는 독자도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선택지다. 디스토피아 위에 세운 유토피아라니, 아무래도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진공 붕괴로 무너질 세상 위에서 기생선이 사람들을 태우는 모습을 보며 상미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린다. 세상의 종말에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보이는 듯한 기생선에도, 상미는 진공 붕괴 원인의 선후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의문을 품는다. 결국 유토피아나 기생선이나 절대적인 구원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실을 알고도 유토피아를 선택해 아이를 낳은 인물이 있는 것처럼 모두 저마다의 유토피아 속에서 살아갈 뿐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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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단편들에 비해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은 호러처럼 읽혔다. 오징어 먹물 파스타에 대한 단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점 기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낯선 여행지를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식당에서 이름 모를 황홀한 음식을 게걸스럽게 맛보는 경험을 한 후, 기괴한 정서가 행간에 흐르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 식재료에 대한 불쾌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하는데, 미각적으로 불쾌한 감각으로 시작하는 위화감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면서, 기괴하고도 찝찝한 공포로 치환되고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다 읽고 나면 밤하늘의 별자리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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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루프를 다른 두 편의 단편인 〈콜러스 신드롬〉과 〈안녕, 아킬레우스〉. 마치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두 편의 이야기는 타임 루프라는 소재가 어떻게 다른 결로 변주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콜러스 신드롬〉에서는 과거의 회한을 만회하기 위해서 무한한 타임 루프를 하는 인물이 등장하고 〈안녕, 아킬레우스〉에서는 스스로 타임 루프 속에 갇히기를 선택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문제적 인물들은 '타임 루프'라는 능력을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굉장히 유해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었고, 이를 차단 혹은 처단하기 위해 외부에서 인물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특히 타임 루프를 능력을 이용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이나 반대로 이를 탈피하기 위한 실재적인 기술을 소설적 상상으로 설정한 내용들이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콜러스 신드롬〉에서는 반복되는 생의 사이클 안에서 각 인물들의 과거가 수차례로 분절되는데, 그 분절되는 과거를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 인식하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그 분절된 과거의 객체들을 구원하기 위해 타임 루프의 순환 고리인 문제적 인물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런 카타르시스는 분절된 객체를 동일시 여기며 그들을 공감하는 인물이 결국 모든 차원의 객체들을 통합하며 위로하는 데서 기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을 맺는다.


특히 〈안녕, 아킬레우스〉는 영상화 계약까지 이루어졌으나 제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로도 기대가 되는 단편이다. 왜곡된 쾌락에 중독되어 그 순환에 갇히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광기 어린 인물의 욕망이 지배하는 루프 속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려 발버둥 치는 인물이 빚는 갈등이 스릴러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각자의 욕망으로 타임 루프라는 장치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인물들이 맞이하는 결말을 두고는 여러 결의 상념이 스친다.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의 달리기'라는 제논의 역설 같은 개념은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어서 소설의 상황을 대입하며 생각해 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인상 깊었던 작품 두세 편 정도만 추려서 언급하려 했던 초반의 계획은 쓰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재밌었는데 하는 욕심으로 결국 모든 단편을 짤막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과학적인 지식들이 소설 곳곳에서 여러 장치로 설정되어 진성 SF 소설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모든 개념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서두에서 밝혔듯이 본질은 인간의 이야기로 읽혔다. 그런 반면에 한편으로는 관련 분야나 장르에 조예가 있다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처럼 눙치며 요령껏 읽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다. 책의 말미에 각 단편마다 있는 짤막한 작가의 말에서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영감을 받은 작품들에 대한 언급도 있어 각 단편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약간의 긴장감으로 시작해 시간을 순삭한 몰입으로 끝난 해도연의 SF 소설집 《진공 붕괴》.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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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025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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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평소의 관심사에서는 다소 먼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죽은 다음》의 신간 소개 글을 읽고는 다소 망설여지는 마음이 든 것이 솔직한 속내다. 더구나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핍진한 현장 속에서 쓰여졌기에 더욱 마주하기가 망설여졌다. 필연적으로 몇 해 전에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상기시킬 것이고 나는 아직도 그 경험을 복기하며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망설임 속에서, 유난히 선택의 여지가 많았던 5월의 신간들 속에서,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주해보기를, 읽어보기를 선택했다.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이 있나?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막연하고 두렵고 불안하다.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으로 미루어 생각하고 싶은 것, 나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막연한 공포. 그런데 죽음의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가 성실하고도 담담하게 죽음과 애도를 기록한 작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고찰은 죽음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을 통째로 흔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일련의 취재에 앞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관음'의 시선을 배제하고자 300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직접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이런 과정 속, 장례 노동 현장에서 만나는 장례 지도사, 의전 관리사, 수의 제작자, 선소리꾼, 화장 기사 등 각 분야의 전문 노동자를 만나며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장례 의식을 비롯해 죽음과 애도에 관해 묻는다.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시차와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슬픔이라고 했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그 슬픔은 어떤 모습인가요? 틈새를 메워야 할 슬픔의 모양을 알 수 없어 내게 죽음이란 슬퍼하기도 어려운, 보이지 않는 도돌이표 같았다. p.14




각 장은 장례 의식의 순서대로 흘러간다. 염습을 하는 과정을 지나 입관을 하고 빈소가 마련되며 문상객을 맞는다. 발인의 과정을 거쳐 승화원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애도의 시간들. 각 과정에서 일하고 있는 장례 노동자들을 차례차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각 과정에서 만나는 장례 노동자들의 업에 대한 생각과 고인을 대하는 태도를 목도하며 읽으면서는 사뭇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런 반면에 직업인으로써 애환과 업계의 비위, 장례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 수준, 업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차별 등에 대해서도 다루며, 장례업과 장례 노동자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여러 시선을 제시하는 점도 르포로써 참 꼼꼼한 기록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장례 의식 전체에서 여성이라는 지위가 가지는 차별적인 요소들을 곳곳에서 톺아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장례식에서의 상주는 반드시 장자여야 한다. 이는 장례식이 가주의 승계라는 정식적인 절차의 과정으로 작동하면서 고착화된 뿌리 깊은 차별의 관습이다. 장례의 여러 과정에서 여성인 사별자는 배제된다. 이러한 반면에 연도라는 섬에서 여성이 장례의 주체가 되어 상여도 메고, 소리꾼도 되어, 배를 타며 장례를 주도하는 예시는 과연 장례라는 의식에서, 소중한 이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과 차별은 너무나 소모적인 논쟁이자 근거 없는 차별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반증이 되어준다. 장례 의식 안에서 여성차별은 장례 의식 밖에서 노동자로 존재하는 여성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멍에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20년 경력의 여성 장례 지도사인 이안나 씨와 화장기사 이해루 씨의 기록은 장례업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써의 부침이 아니라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진 노동자로서의 기록으로 읽힌다.



장례지도사였던 시절 이해루는 실타래처럼 얽힌 감정으로 인해 정작 가족끼리 주고받지 못하는 위로를 대신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유족의 자리에 서자, 이별과 애도는 타인이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로 그는 한편에 비켜선 사람이 되고자 했다. p.158





책을 따라가는 과정 내내 개인적인 장례식의 경험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죽음, 그다음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선택과 결제로 분절되어 있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정신없이 휘몰아친다고 해야 하나, 지나고 나서 떠올려봐도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고인을 덮기 위한 천, 안치실까지 이동하는 노동력과 안치실 이용료의 결제부터 시작이었다. 빈소가 차려지고 예상 조문객의 식사량, 술, 음료, 제사 음식, 일회용 그릇과 수저, 꽃…. 장지까지 이동하는 운구차 기사의 수고비는 따로 챙겨야 했다. 다양한 유골함이 가격대별로 정돈된 팸플릿이 눈앞에 내밀어지며, 조심스럽게 선택을 권유받는 순간에는 잠시 아찔해졌다. '아, 장례식이 이런 것이었나?' 아직도 장례식을 잘 치른 것인지, 잘 애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소비자가 된 사별자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울음과 회한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별자가 해야 하는 일이 상품 선택과 문상객 맞이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되진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노동)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p.233


입관을 하는 과정에서 담당 장례 지도사님이 마지막으로 고인께 못다 한 말을 전하라는 권유를 했다. 모두 쭈뼛거리며 망설이자 장례 지도사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꼭 하셨으면 좋겠다고, 안 하시는 분들이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낯가리셔도 한 마디라도 하셨으면 좋겠다고. 그제야 모두 돌아가면서 못다 한 말을 소리 내어 말했다. 입관을 끝내고 나와 주차장에서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신없이 흘러가던 장례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장례식이라는 선택과 결제의 과정에서 애도의 자리는 이리도 빈약했음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마주할 용기를 애써 꺼내야 할 만큼 나의 애도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p.90





철저히 자본화되고 분업화되는 장례식에서 진정한 애도의 자리는 요원해졌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여러 대안 장례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종 뉴스로 이슈화되는 생전 장례식의 사례와 공동체 장례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협동조합 형태의 장례식, 복지 형태로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장례식,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존엄의 형태로서의 공영 장례식,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여러 형태의 장례식…. 본질은 진정한 애도에 있다. 형식과 체면, 혹은 무용한 법 앞에서 좌절되는 애도의 여러 사례 제시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장례 업계의 특성과 장례 노동자, 사별자, 무연고라는 낙인의 맹점, 자본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애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죽음과 애도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사유와 성실한 기록과 더불어 세심한 시선에서 때로는 사고의 확장을, 때로는 의도치 않은 위로를 얻기도 했다.



확실히 처음 언급했던 마음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책을 덮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파도처럼 갑자기 기억과 감정이 덮쳐와 어딘가를 울렁이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반면에 막연한 공포로 치환되던 죽음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조금 마주할 정도의 용기만큼 실재적인 개념으로 다가왔다. 몇 해가 지나도 이와 비슷한 결의 주제와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은 진정한 애도가 존재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음을 책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는다. 애도의 방식으로써 여러 대안의 장례 형태가 제시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 확실해진 것은 어떤 죽음이라도 애도라는 시간과 정서가 유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가 책장에서 눈에 띈다. 이제 나도 작가의 방대한 사유와 고찰에 빚을 지고 나만의 사유를 시작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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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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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아마도 연차와 여러 휴무들을 살뜰하게 묶은 행복한 연휴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로자의 날'은 나에게 '유급 휴일' 정도의 가벼운 의미였다.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하고, 잠을 푹 자기도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휴일이었다. 그런 연휴에 시의적절한 마음으로 집어 든 한겨레의 이번 달 신간은 바로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였다. 이 책은 양희동 열사 2주기를 기리기 위해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과 경남도민일보가 기획한 건설업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 그리고 투쟁에 관한 구술 기록이다.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구술 기록이라서 그런지, 핍진한 현실의 서사이기 때문인지, 마치 얼굴을 면하고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노가다'는 일본어인 '도가타'에서 변형되어 '행동과 성칠이 거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건설업 노동자를 비하하는 멸칭이다. 비난과 혐오, 차별, 희화화의 과정에서 굉장히 뿌리 깊게 사회 속에 박힌 차별적인 언어다. 이런 '노가다'라는 멸칭에 결박되어 있던 '건설 노동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 한 켠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여러 건설 노동자들의 인생은 각각의 희로애락이 있었지만 모두 인생이라는 터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그 거친 삶의 터전에서 생을 일구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직업에서 좌절을 겪다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먹고 살려야 할 가족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건설업에 뛰어든 것이다. 여타 직군의 노동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생의 목적인 것이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거죠. 진짜 힘들어서 혼자 노래방 가서 1시간 동안 노래 틀어놓고 울다 나온 적도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런다고 내 마음 알아줄 사람도 없고, 어차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내 삶이니까요. 한 5년에 한 번은 그랬던 거 같아요. p.57


특히 여성 건설 노동자이면서 세 아이의 어머니인 이도연 씨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건설업에서 철근 노동자로 20여 년을 근무해왔다. 처우가 좋지 않은 건설업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매 순간 뛰어넘은 그녀의 위와 같은 고백을 읽으며 먹먹해진다.



건설 업계 노동자의 처우가 다른 업계의 노동자들보다 열악하다는 현실은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었는데,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해서 직접 듣는 현실은 더욱 핍진하다. 먼저 임금 체불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체불 비율 보다 현저히 높고, 마치 업계의 관례라도 되는 양 모든 건설 노동자들이 꽤 자주 임금 체불을 겪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정마다 하청으로, 팀 단위로 계약을 수주하는 업계의 특성상 팀장이 그 밀린 몫을 빚으로 충당해서 팀원들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과정과 기간이 복잡하고, 원청과 하청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애먼 노동자들만 생계에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이었다.


임금 체불이나 산재는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잖아요. 그걸 해결하려고 노조가 투쟁한 것인데도 외려 불법 단체니, 공갈 협박이니 하며 죄를 뒤집어씌우고 구속시킵니다. 정작 돈 안 준 건설사는 조사도 안 합니다. 건설 현장 체불 금액이 1조 1400억 원으로 나오던데 말입니다. p.262


이런 임금 체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의 복지 수준도 형편이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데, 읽다 보면 그들의 요구는 편리 수준의 복지가 아닌 생존에 필수적인 보편타당한 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위험천만한 공사 현장에서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의 부재라든가, 노동 현장 밖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화장실의 설치 문제나 혹서기의 파라솔 같은 그늘막 설치 및 얼음물 구비 요구는 반대로 얼마나 건설 노동 현장이 열악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법정 휴게 시간이나 초과 근로 수당같이 법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도 역시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노동자를 배제한 노동 환경은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 우리는 부실시공으로 무너지는 건물이나 인분이 발견된 신축 아파트 등의 기사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무도한 업계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은 서로 연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기 시작한다. 각 공정 단위마다, 각 지역마다 노조를 만들고 노조 지부들끼리 연합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노동 환경 처우 개선이나 체불 임금 지불을 위한 공동 행동이나 투쟁을 하기도 하고, 매년 사측과 임금 협상을 위한 노력을 하며 건설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복지 향상을 위해 힘써왔다. 책에서 건설 노동자들은 그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본인과 동료들이 직접 겪은 불법적인 근로 조건, 비인간적인 대우 그리고 스러져간 생명들을 목도하며 개인적인 투쟁의 한계를 느꼈고 비로소 연대라는 희망의 답이 노조였다고 말한다. 노조와 연대하는 투쟁은 그들에게 마땅한 권리와 함께 저녁과 휴일이 있는 삶, 가족이 있는 삶을 되찾아주었고 이런 과정과 함께 직접적으로 개선되어가는 현장 상황은 노동의 효능감과 함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23년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건설 노동자+조폭)'이라는 멸칭으로 매도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무너졌다. 정당한 파업과 공동 행동, 임금 협상은 '공동 공갈, 업무 방해'라는 혐의로 덧씌워져 노조 인원 2000여 명을 소환하여 조사하고 40여 명을 구속시키기에 이른다. 정부의 각 행정처를 비롯해 경찰과 검찰은 무자비하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원 다수의 증언에 의하면 굉장히 비상식적인 수사 방식이었다고 한다. 노동법에 무지하고 1계급 특진에 혈안이 된 경찰은 실제로 혐의가 없는 사건을 답이 정해진 듯 강압적으로 수사하거나 특정한 답을 유도할 요량으로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윤석열의 건폭 몰이에 23년 5월 1일 노동절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희동 열사가 분신을 시도했고, 결국 안타깝게 세상을 지셨다. 이후에도 건설 노조의 투쟁은 계속되었으나 정부와 검찰, 경찰 그리고 언론은 건설 노조를 더욱 '건폭'으로 몰아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조를 탈퇴하는 조원들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노조의 힘이 약해졌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탄압을 뒷배로 건설사 원청들은 노조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부하면서 건설 노동계는 과거로 퇴보했고 그 여파는 25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 범국민적으로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언론에서 보도하니까, 무슨 말을 외쳐도 다 알아요. 피켓에 짤막하게 적어놔도 뭐 때문에 그랬는지 다 떠올라요.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면 도대체 어떤 대우를 받길래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건설 노동자가 공안탄압을 받아 구속됐다고 하면 "그럴 만한 죄를 지었겠지" 합니다. 왜 우리가 구속됐는지, 수사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관게자들 외에는 모릅니다. 심지어 같은 조합원도 몰라요. p.282


이러한 탄압에서 자신들이 겪은 고초를 서술해나가는 건설 노동자들의 일화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마땅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아들과 같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마주친 김중근 씨의 소회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동안 그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모든 것들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무기력과 건폭 몰이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면서도 그들의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놓지 않는 것에 작은 응원을 보내게 된다. 




책에서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과 투쟁을 읽다 보면 농도 짙은 생의 애환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차별과 혐오의 표현인 '노가다'를 '막일꾼'으로 고쳐 쓰라는 국어사전의 권고도 또 다른 차별처럼 느껴진다. 건설 노동은 '막일'이 아니라 엄연한 기술을 가지고 수년의 숙련 기간을 거친 하나의 직업군인 것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모멸적인 인식 수준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땀 흘린 만큼 번다는 정직함과 성실함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부당한 하도급 구조나 열악한 건설 노동 환경, 관련 노동법 등의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건설 노동자에게 찍은 모멸적인 낙인의 시선의 변화가 급선무로 필요하다.



'행동과 성칠이 거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노가다'로 그들이 불렸던 까닭은,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우의 건설업에서 '노동자'로써 당연한 권리, '인간'으로써 생명을 보장받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투쟁마저 비하할 의도로 견고하고도 거대한 프레임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왜 집회를 열고, 소리 높여 투쟁하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봐주길 바라는 책 속, 건설 노동자들의 당부와 요청이 부디 많은 이에게, 결국은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에게 멀리 가 닿아 들렸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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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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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는 여러 방면에서 추천을 많이 받는 책이기도 하고, 시중에 다양한 주제로 묶여 자기 계발서로도 많이 찾아볼 수 있기에, 비록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나름 익숙하다고 느껴진다. AI도 역시 그러한데, 여러 매체에서 그 이슈를 다루는 터라 역시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챗지피티를 크게 활용해서 사용해 본 적은 없다. 한번은 지인이 챗지피티를 활용한 여러 내용을 공유해 준 적이 있었다.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 재고를 입력한 후 이에 걸맞은 다이어트 식단을 설계하거나, 직장에서 업무적인 관계에 대한 애로 사항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건설적인 해결 방안을 설계해 준다. 또 재미로 AI에게 여러 가지를 시키는 와중에 사주팔자와 현재 커리어를 입력해서 직업군을 추천해 주고 비전까지 제시해 주는 것을 보며, 이 과정에서 과연 몇 가지의 직업군이 무용해졌는지를 가늠해 보다가 서늘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공자와 AI. 참 낯설고 생경한 조합이다. 공자와 AI 사이에 어마어마한 시대적 간극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공자의 시대와 AI의 시대의 배경이 지닌 공통점을 답의 근거로 삼는다. 철기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비약적으로 생산량이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이 필요했으나 문명의 전환을 아우르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며 시대는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자와 같은 성인군자의 가르침을 필요로 했고, AI의 등장으로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이른 현시점에서, 다시 공자의 말씀에서 그 답을 구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p.5) 그야말로 온고지신의 정신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고, 인간이 어떻게 존재 가치를 찾아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때인 겁니다. 무엇이 사람다움인가, 어떻게 사람다움을 가꿔 갈 것인가를 묻는 공자의 질문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는 지금의 우리에게 훌륭한 기출 문제집이자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p.8


AI 시대에 AI와 가장 구별되는 특성인, 오로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인간성'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순서대로 '사람', '올바름', '관계', '배움'이라는 커다란 주제로 나누어 AI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살펴본다. 다섯 부 아래, 여러 작은 꼭지들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매일매일 짧게 끊어 읽기에도 좋다. 마치 격언집이나 잠언집처럼 여러모로 일상에 적용하기 좋은 내용과 구성이다.





인仁 사람

1부에서 인간의 정의에 관한 화두를 던지면서 AI와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을 서술해 간다. AI와 인간의 정의가 모호해지는 순간에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특성은 무엇일까. 공감하는 능력, 손익에 근거하지 않는 도덕적 판단으로 인한 희생, 스스로 돌아보는 반성과 성찰 등을 공자의 말을 빌려 해석한다. 1부의 화두를 생각하면서 그간 읽거나 보고 들은 SF 작품들이 생각났다. 감정을 지닌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은 윤리적인 딜레마를 건드리며 갈등을 일으킨다. 이언 매큐언의 《나 같은 기계들》이나 지넷 윈터슨의 《프랭키스슈타인》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들은 감정을 지니거나 인간의 뇌가 데이터로 존재하는 포스트 휴먼의 개념을 다루는데, 공자가 말하는 인간성을 대입해 보며 나름의 기준을 가늠해 보는, 나름의 생산적인 계기가 되기도….



의義 올바름

2부에서는 '의義'를 주제로 '인仁'을 실천하기 위한 기준으로써 '의義'를 살펴본다. 의義의 개념을 크고 넓게 '기준, 근본'으로 해석하고,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 선과 악, 옳고 그름에 관해 나름의 기준을 고찰하는 계기가 된다. 기준은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를 수 있으나, 그것을 관통하는 본질은 의로워야 하고 그 기준이 의로운지에 대한 고민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기준은 AI를 만드는 개발자들에게 특히 강조해야 할 점으로 느껴진다. 이런 고기능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개발되면서 당면하는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 개발자들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야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들 또한 기준점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禮 관계

3부는 '예禮'의 관하여. 공자는 '관계'를 중요시한 만큼 '예禮'의 필요성도 중요시했다고 한다. 예禮는 하늘의 이치를 인간 세상에 구현한 것으로, 도덕적 이상 사회 건설의 기초로써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갖추어야 할 태도로 해석한다. 3부는 저자가 밝히기를 AI 시대의 논어를 읽는 방향성에서 잠시 벗어나 시대를 관통하는 관계의 원리를 소개하는데 이런 관계의 원리는 인간 대 인간에서 확장시켜 인간 대 비인간인 AI와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사람을 중용할 때, 그를 중용하는 자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그 관계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AI를 이용하는 자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그 가능성과 활용도의 차이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AI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공자의 덕목을 깨달아 갈 수 있다.



지智 배움

4부는 '지智'를 이해하며, 이를 AI 활용에 적용하는 법을 살펴본다. 일단 '지智'는 곧 '배움'으로 해석하며, 평생직장이 사라진 다단계의 삶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배움이 아닌, 내 삶과 인생에 적용 가능한 진정한 배움의 의미를 설명하며 이러한 배움의 태도는 AI를 만나며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정보의 취득이 빨라지고, 그 양이 방대해진 까닭에 우리는 그 정보와 지식이 올바른지에 대해 분석하는 안목을 키우고, 그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 이러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챗지피티와 같은 AI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하는 만큼 문해력에 대한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삶

마지막으로 5부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외에도 삶을 아우르는 공자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도록, 공자의 격언을 삶에 적용시킨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5부에서는 전체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책을 쭉 읽으며 마지막 5부까지 도달하면 공자의 격언들이 어렵거나,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좋은 의미로의 훈계나 격언 같은 느낌이 든다. 종종 인류애가 실종되어 팍팍하게 느껴질 때, 인간의 온당한 도리를 공자의 격언으로 다시 끔 상기시켜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AI 시대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태도를 공자의 언어를 빌려 톺아보는 책의 전체적인 방향성이 완만하고도 느슨해서 꼭 AI와 결부되지 않고, 현재 우리의 전체적인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을 더욱 확장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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