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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 - 건설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 삶, 투쟁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외 기획, 이은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얼마 전,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아마도 연차와 여러 휴무들을 살뜰하게 묶은 행복한 연휴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로자의 날'은 나에게 '유급 휴일' 정도의 가벼운 의미였다.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하고, 잠을 푹 자기도 하고, 미뤄두었던 책들을 읽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휴일이었다. 그런 연휴에 시의적절한 마음으로 집어 든 한겨레의 이번 달 신간은 바로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삽니다》였다. 이 책은 양희동 열사 2주기를 기리기 위해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과 경남도민일보가 기획한 건설업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 그리고 투쟁에 관한 구술 기록이다.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구술 기록이라서 그런지, 핍진한 현실의 서사이기 때문인지, 마치 얼굴을 면하고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노가다'는 일본어인 '도가타'에서 변형되어 '행동과 성칠이 거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건설업 노동자를 비하하는 멸칭이다. 비난과 혐오, 차별, 희화화의 과정에서 굉장히 뿌리 깊게 사회 속에 박힌 차별적인 언어다. 이런 '노가다'라는 멸칭에 결박되어 있던 '건설 노동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 한 켠이 숙연해지기도 했다. 여러 건설 노동자들의 인생은 각각의 희로애락이 있었지만 모두 인생이라는 터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그 거친 삶의 터전에서 생을 일구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러 직업에서 좌절을 겪다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먹고 살려야 할 가족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건설업에 뛰어든 것이다. 여타 직군의 노동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생의 목적인 것이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거죠. 진짜 힘들어서 혼자 노래방 가서 1시간 동안 노래 틀어놓고 울다 나온 적도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런다고 내 마음 알아줄 사람도 없고, 어차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내 삶이니까요. 한 5년에 한 번은 그랬던 거 같아요. p.57
특히 여성 건설 노동자이면서 세 아이의 어머니인 이도연 씨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건설업에서 철근 노동자로 20여 년을 근무해왔다. 처우가 좋지 않은 건설업에서 여성이라는 한계를 매 순간 뛰어넘은 그녀의 위와 같은 고백을 읽으며 먹먹해진다.
건설 업계 노동자의 처우가 다른 업계의 노동자들보다 열악하다는 현실은 막연하게나마 알고는 있었는데, 현장의 노동자들을 통해서 직접 듣는 현실은 더욱 핍진하다. 먼저 임금 체불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체불 비율 보다 현저히 높고, 마치 업계의 관례라도 되는 양 모든 건설 노동자들이 꽤 자주 임금 체불을 겪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공정마다 하청으로, 팀 단위로 계약을 수주하는 업계의 특성상 팀장이 그 밀린 몫을 빚으로 충당해서 팀원들에게 지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청에 신고를 해도 과정과 기간이 복잡하고, 원청과 하청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그 기약 없는 시간 동안 애먼 노동자들만 생계에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충격적이었다.
임금 체불이나 산재는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잖아요. 그걸 해결하려고 노조가 투쟁한 것인데도 외려 불법 단체니, 공갈 협박이니 하며 죄를 뒤집어씌우고 구속시킵니다. 정작 돈 안 준 건설사는 조사도 안 합니다. 건설 현장 체불 금액이 1조 1400억 원으로 나오던데 말입니다. p.262
이런 임금 체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의 복지 수준도 형편이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데, 읽다 보면 그들의 요구는 편리 수준의 복지가 아닌 생존에 필수적인 보편타당한 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위험천만한 공사 현장에서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의 부재라든가, 노동 현장 밖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화장실의 설치 문제나 혹서기의 파라솔 같은 그늘막 설치 및 얼음물 구비 요구는 반대로 얼마나 건설 노동 현장이 열악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법정 휴게 시간이나 초과 근로 수당같이 법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권리도 역시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렇게 노동자를 배제한 노동 환경은 결국 최종 소비자에게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 우리는 부실시공으로 무너지는 건물이나 인분이 발견된 신축 아파트 등의 기사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무도한 업계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은 서로 연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투쟁하기 시작한다. 각 공정 단위마다, 각 지역마다 노조를 만들고 노조 지부들끼리 연합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노동 환경 처우 개선이나 체불 임금 지불을 위한 공동 행동이나 투쟁을 하기도 하고, 매년 사측과 임금 협상을 위한 노력을 하며 건설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복지 향상을 위해 힘써왔다. 책에서 건설 노동자들은 그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본인과 동료들이 직접 겪은 불법적인 근로 조건, 비인간적인 대우 그리고 스러져간 생명들을 목도하며 개인적인 투쟁의 한계를 느꼈고 비로소 연대라는 희망의 답이 노조였다고 말한다. 노조와 연대하는 투쟁은 그들에게 마땅한 권리와 함께 저녁과 휴일이 있는 삶, 가족이 있는 삶을 되찾아주었고 이런 과정과 함께 직접적으로 개선되어가는 현장 상황은 노동의 효능감과 함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23년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건설 노동자+조폭)'이라는 멸칭으로 매도하며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면서 무너졌다. 정당한 파업과 공동 행동, 임금 협상은 '공동 공갈, 업무 방해'라는 혐의로 덧씌워져 노조 인원 2000여 명을 소환하여 조사하고 40여 명을 구속시키기에 이른다. 정부의 각 행정처를 비롯해 경찰과 검찰은 무자비하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원 다수의 증언에 의하면 굉장히 비상식적인 수사 방식이었다고 한다. 노동법에 무지하고 1계급 특진에 혈안이 된 경찰은 실제로 혐의가 없는 사건을 답이 정해진 듯 강압적으로 수사하거나 특정한 답을 유도할 요량으로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윤석열의 건폭 몰이에 23년 5월 1일 노동절에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희동 열사가 분신을 시도했고, 결국 안타깝게 세상을 지셨다. 이후에도 건설 노조의 투쟁은 계속되었으나 정부와 검찰, 경찰 그리고 언론은 건설 노조를 더욱 '건폭'으로 몰아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조를 탈퇴하는 조원들이 많아지며 자연스럽게 노조의 힘이 약해졌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탄압을 뒷배로 건설사 원청들은 노조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부하면서 건설 노동계는 과거로 퇴보했고 그 여파는 25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금 범국민적으로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언론에서 보도하니까, 무슨 말을 외쳐도 다 알아요. 피켓에 짤막하게 적어놔도 뭐 때문에 그랬는지 다 떠올라요. 그런데 건설 현장에서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면 도대체 어떤 대우를 받길래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무도 몰라요. 건설 노동자가 공안탄압을 받아 구속됐다고 하면 "그럴 만한 죄를 지었겠지" 합니다. 왜 우리가 구속됐는지, 수사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관게자들 외에는 모릅니다. 심지어 같은 조합원도 몰라요. p.282
이러한 탄압에서 자신들이 겪은 고초를 서술해나가는 건설 노동자들의 일화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마땅하고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아들과 같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다가 마주친 김중근 씨의 소회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동안 그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모든 것들이 무위로 돌아간 것에 대한 무기력과 건폭 몰이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면서도 그들의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의 노동 환경 개선에 대한 희망을 여전히 놓지 않는 것에 작은 응원을 보내게 된다.

책에서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과 투쟁을 읽다 보면 농도 짙은 생의 애환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차별과 혐오의 표현인 '노가다'를 '막일꾼'으로 고쳐 쓰라는 국어사전의 권고도 또 다른 차별처럼 느껴진다. 건설 노동은 '막일'이 아니라 엄연한 기술을 가지고 수년의 숙련 기간을 거친 하나의 직업군인 것이다.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받는 모멸적인 인식 수준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땀 흘린 만큼 번다는 정직함과 성실함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부당한 하도급 구조나 열악한 건설 노동 환경, 관련 노동법 등의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건설 노동자에게 찍은 모멸적인 낙인의 시선의 변화가 급선무로 필요하다.
'행동과 성칠이 거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 '노가다'로 그들이 불렸던 까닭은,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우의 건설업에서 '노동자'로써 당연한 권리, '인간'으로써 생명을 보장받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투쟁마저 비하할 의도로 견고하고도 거대한 프레임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왜 집회를 열고, 소리 높여 투쟁하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봐주길 바라는 책 속, 건설 노동자들의 당부와 요청이 부디 많은 이에게, 결국은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들에게 멀리 가 닿아 들렸으면 좋겠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