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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2025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 수상작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으라면 평소의 관심사에서는 다소 먼 분야의 책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죽은 다음》의 신간 소개 글을 읽고는 다소 망설여지는 마음이 든 것이 솔직한 속내다. 더구나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라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핍진한 현장 속에서 쓰여졌기에 더욱 마주하기가 망설여졌다. 필연적으로 몇 해 전에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상기시킬 것이고 나는 아직도 그 경험을 복기하며 마주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망설임 속에서, 유난히 선택의 여지가 많았던 5월의 신간들 속에서,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주해보기를, 읽어보기를 선택했다.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이 있나?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막연하고 두렵고 불안하다.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으로 미루어 생각하고 싶은 것, 나에게 죽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막연한 공포. 그런데 죽음의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가 성실하고도 담담하게 죽음과 애도를 기록한 작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고찰은 죽음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을 통째로 흔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일련의 취재에 앞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관음'의 시선을 배제하고자 300시간의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장례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직접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이런 과정 속, 장례 노동 현장에서 만나는 장례 지도사, 의전 관리사, 수의 제작자, 선소리꾼, 화장 기사 등 각 분야의 전문 노동자를 만나며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장례 의식을 비롯해 죽음과 애도에 관해 묻는다.
'없다'와 '있었다' 사이의 시차와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슬픔이라고 했지만, 나는 묻고 싶었다. 그 슬픔은 어떤 모습인가요? 틈새를 메워야 할 슬픔의 모양을 알 수 없어 내게 죽음이란 슬퍼하기도 어려운, 보이지 않는 도돌이표 같았다. p.14

각 장은 장례 의식의 순서대로 흘러간다. 염습을 하는 과정을 지나 입관을 하고 빈소가 마련되며 문상객을 맞는다. 발인의 과정을 거쳐 승화원까지, 그리고 이어지는 애도의 시간들. 각 과정에서 일하고 있는 장례 노동자들을 차례차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각 과정에서 만나는 장례 노동자들의 업에 대한 생각과 고인을 대하는 태도를 목도하며 읽으면서는 사뭇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런 반면에 직업인으로써 애환과 업계의 비위, 장례 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인식 수준, 업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차별 등에 대해서도 다루며, 장례업과 장례 노동자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여러 시선을 제시하는 점도 르포로써 참 꼼꼼한 기록이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장례 의식 전체에서 여성이라는 지위가 가지는 차별적인 요소들을 곳곳에서 톺아보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장례식에서의 상주는 반드시 장자여야 한다. 이는 장례식이 가주의 승계라는 정식적인 절차의 과정으로 작동하면서 고착화된 뿌리 깊은 차별의 관습이다. 장례의 여러 과정에서 여성인 사별자는 배제된다. 이러한 반면에 연도라는 섬에서 여성이 장례의 주체가 되어 상여도 메고, 소리꾼도 되어, 배를 타며 장례를 주도하는 예시는 과연 장례라는 의식에서, 소중한 이를 애도하는 자리에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과 차별은 너무나 소모적인 논쟁이자 근거 없는 차별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반증이 되어준다. 장례 의식 안에서 여성차별은 장례 의식 밖에서 노동자로 존재하는 여성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멍에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20년 경력의 여성 장례 지도사인 이안나 씨와 화장기사 이해루 씨의 기록은 장례업에 종사하는 '여성'으로써의 부침이 아니라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진 노동자로서의 기록으로 읽힌다.
장례지도사였던 시절 이해루는 실타래처럼 얽힌 감정으로 인해 정작 가족끼리 주고받지 못하는 위로를 대신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유족의 자리에 서자, 이별과 애도는 타인이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로 그는 한편에 비켜선 사람이 되고자 했다. p.158

책을 따라가는 과정 내내 개인적인 장례식의 경험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죽음, 그다음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선택과 결제로 분절되어 있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정신없이 휘몰아친다고 해야 하나, 지나고 나서 떠올려봐도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고인을 덮기 위한 천, 안치실까지 이동하는 노동력과 안치실 이용료의 결제부터 시작이었다. 빈소가 차려지고 예상 조문객의 식사량, 술, 음료, 제사 음식, 일회용 그릇과 수저, 꽃…. 장지까지 이동하는 운구차 기사의 수고비는 따로 챙겨야 했다. 다양한 유골함이 가격대별로 정돈된 팸플릿이 눈앞에 내밀어지며, 조심스럽게 선택을 권유받는 순간에는 잠시 아찔해졌다. '아, 장례식이 이런 것이었나?' 아직도 장례식을 잘 치른 것인지, 잘 애도한 것인지 모르겠다.
…소비자가 된 사별자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울음과 회한 가득한 장례식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별자가 해야 하는 일이 상품 선택과 문상객 맞이뿐이라는 것도 쉽게 수긍되진 않는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노동)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p.233
입관을 하는 과정에서 담당 장례 지도사님이 마지막으로 고인께 못다 한 말을 전하라는 권유를 했다. 모두 쭈뼛거리며 망설이자 장례 지도사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꼭 하셨으면 좋겠다고, 안 하시는 분들이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낯가리셔도 한 마디라도 하셨으면 좋겠다고. 그제야 모두 돌아가면서 못다 한 말을 소리 내어 말했다. 입관을 끝내고 나와 주차장에서 오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신없이 흘러가던 장례의 과정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장례식이라는 선택과 결제의 과정에서 애도의 자리는 이리도 빈약했음을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마주할 용기를 애써 꺼내야 할 만큼 나의 애도는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것이다.
…장례식은 우아할 수 없고 마음껏 슬퍼만 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그렇지만 슬퍼하는 것만이 떠나는 이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당신이 골치 아프게 판단하고 계산하는 그 일이, 그를 떠나보내는 자로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이 그에게 보내는 최선의 애정이라고. p.90

철저히 자본화되고 분업화되는 장례식에서 진정한 애도의 자리는 요원해졌다. 저자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여러 대안 장례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종 뉴스로 이슈화되는 생전 장례식의 사례와 공동체 장례식의 본질적인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협동조합 형태의 장례식, 복지 형태로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장례식,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존엄의 형태로서의 공영 장례식,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여러 형태의 장례식…. 본질은 진정한 애도에 있다. 형식과 체면, 혹은 무용한 법 앞에서 좌절되는 애도의 여러 사례 제시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장례 업계의 특성과 장례 노동자, 사별자, 무연고라는 낙인의 맹점, 자본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애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죽음과 애도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사유와 성실한 기록과 더불어 세심한 시선에서 때로는 사고의 확장을, 때로는 의도치 않은 위로를 얻기도 했다.
확실히 처음 언급했던 마음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책을 덮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파도처럼 갑자기 기억과 감정이 덮쳐와 어딘가를 울렁이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반면에 막연한 공포로 치환되던 죽음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조금 마주할 정도의 용기만큼 실재적인 개념으로 다가왔다. 몇 해가 지나도 이와 비슷한 결의 주제와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은 진정한 애도가 존재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음을 책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는다. 애도의 방식으로써 여러 대안의 장례 형태가 제시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 확실해진 것은 어떤 죽음이라도 애도라는 시간과 정서가 유예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가 책장에서 눈에 띈다. 이제 나도 작가의 방대한 사유와 고찰에 빚을 지고 나만의 사유를 시작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