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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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한기가 소름처럼 오소소 돋아 수증기 어린 창문에 맺힌 물방울 같은, 혹은 한여름의 한기에도 저항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그저 흘리고만 있는 식은땀 같은 모습은 어느 모로 보아도 기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수증기나 식은땀이나 이것은 외부와 내부, 그것이 환경적인 요소이든, 정서적인 요소이든, 현격한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간극에서 오는 이상하고 야릇한 재미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아뇨, 아무것도》는 작가의 미발표작 15편을 모은 짧은 소설집이다. 판형도 작아서 한두 장 정도로 끝나는 소설은 더욱 짧게 느껴지고 길어도 열 장 정도를 조금 넘는 수준의 짧은 소설들이다. 여름의 끈적한 습기 속에서 집중력을 잃고 허우적대는 요즘의 나에게 《아뇨, 아무것도》는 적절한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소설 속 후일의 많은 부분을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주었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해야 하나. 작고 짧은 소설집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들의 장르가 다채롭다. 우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SF도 있고, 호러도 있다. 그저 웃기기도 하고, 아쉽고 짠하기도 하고, 뭉근하게 섬뜩해지기도 하고, 찝찌름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질서 없이 파편적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은 되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만 같다. 오피스텔 지하의 수영장, 24시간 편의점, 분위기가 독특한 어느 바, 어느 나라의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혹은 친구, 직장 동료, 소개팅 상대, 유명 스포츠 선수 또는 생경하고도 미지한 존재로부터 일어나는…. 일상의 주파수들이 다른 종류의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물과 숨》이었다. 오피스텔 지하에 위치한 임시 폐쇄 중이었던 수영장에 몰래 침입한 재희. 그날 이후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수영장에 대한 끌림이 점차 강렬해진다. 늦은 밤 혼자 수영을 터득하기 시작하고 완벽한 수영을 위한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광기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희와 '물'이 조화하는 방식이 서서히 뒤틀린다. 손으로 물을 가르는 일체감에서 점차 물에게 잠식 되어가는 공포. 아주 깊은 물의 한곳을 오래 응시하다 보면,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이에 아찔함을 느끼며 경험하는 경미한 현기증 같은 공포가 인다. 여기에 소소하게 가미된 나폴리탄 괴담적 요소가 별첨 같은 공포와 재미를 더해준다.


 이제 왔어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당신의 부피를 기억해요.

 물에 몸을 담근 적이 거의 없는데.

 왜요, 아기 때는 매일 조그만 욕조에서 첨벙거리며 놀았잖아요. 언제나 당신의 부피만큼 흘러넘친 물이 흐르고 흘러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끊임없이 만나거든요. 우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것참, 든든한 말씀이군요. p.40-41 <물과 숨>




이어서 이 책의 제목인 《아뇨, 아무것도》도 부랴부랴 떠오른다. 우연한 상황에서 평소에 데면데면한 직장 동료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고백을 한다. 아주 근미래, 그것도 아주 짧은 초 단위 정도가 보인다는 고백. 그리고 동료는 그에게 자신이 본 그의 근미래에 관한 짧은 예언을 건네고, 그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주변을 주의 깊게 살핀다. 어느덧 그가 방심하는 사이, 기묘한 방식으로 상황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은 "아뇨, 아무것도."라는 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사였다. 그저 외면하는 것 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불가해한 상황에 대한 무기력한 공포는 마침표로도 끝내 그 상황을 마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선미 씨는 내 사소한 미래로 어떤 콩트를 썼을까? 보고 싶다. 어떻게든 여길 무사히 빠져나가 기필코 읽어보고 싶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 p. 81 <아뇨, 아무것도>


본격적으로 공포스럽지는 않았지만 《48시 편의점》도 그 기묘한 전개에 흥미진진해하며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일상적으로 들리던 24시간 편의점에서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장을 자각하면서 두 인물은 나름의 가설과 추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용감하게도 직접 점장에게 그 까닭을 묻고 아리송한 대답을 얻는다. 일상의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에서 탁하고 켜지는 기묘한 호기심이 미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나도 가설을 세워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리 주위엔 그런 불투명한 틈새들이 있다. 별거 아니긴 한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그렇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는, 그 기분이란 게 일상을 둘러싼 제방에 구멍을 내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무시가 아닐까 미심쩍은, 그래봤자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예를 들면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24시 편의점이 그렇다. p.207 <48시 편의점>





그리고 '엄격한 질서에 의해 조성된 혼돈에 오점을'(p.114)을 남기기 위해 가나다순에서 배제된 작품인 《마트료시카》를 읽으면서는 기시감을 느낀다. 작품 속에 피조물과 작가의 존재가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분방하게 태어난 글들 사이에 인위적인 감상 순서를 정하고 싶지 않아'서(p.114) 가나다순으로 목차를 정했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는다. 유일하게 배제된 이 작품을 추미스라는 장르의 애독자로써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냈지만, 내가 찾아낸 것이라고는 〈작가의 말〉이 오점인 《마트료시카》를 제외한 14편의 작품들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배치되었다는 것뿐이다. 마치 마트료시카의 마지막 인형처럼. 정중앙에 있는 〈작가의 말〉도 작품 중 하나인가? 이것을 가운데 두고 각 작품이 대칭을 이루나? 비교하며 읽어보았지만 영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로웠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랄까.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품고 있는 첫 번째 인형에 닿겠죠.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p.249 <마트료시카>


공포/호러/스릴러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을 애정하는 편파적인 마음이 크지만 이 책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가 많다. 《여기는 게이바가 아닙니다》, 《친구의 연인의 친구들》,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같은 작품들은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그리면서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다분하다. 각각 문화·예술의 장을 만들고자 했던 칵테일 바가 게이바가 되어버린 이유, 죽은 친구의 불륜을 파헤치며 얻은 진실, 돌연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 떠난 이의 아이러니한 결말, 다소 낭만적인 인연과 운명에 관한 의아한 역학 등을 읽어낸다. 전체적인 작품에 전반적으로 작가 특유의 위트가 스며들어 있다. 몇몇 작품은 그 특징이 두드러져서 읽으면서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청탁없이 마감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썼다는 작가의 말에서 밝힌 언급이 반갑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이야기들이야말로 독자도 아무런 사심없이 읽고 싶은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즐겁게만 읽었다. 본격적인 여름의 초입이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덥지만 어쩌다 가끔, 그 기세가 한풀 꺽인 선선한 바람처럼 반가웠다. 이상하고 야릇한 재미를 추구하다가 일상에서 불현듯 만나는 기묘함을 기대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나도 어쩔 수 없이 눙치듯 "아뇨,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될까?


 프로페셔널리즘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면 아마추어리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대가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끝까지 추구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도 하고 싶다.

 아마추어의 어원인 라틴어 아마토렘의 뜻은 lover,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p.113-114 <작가의 말>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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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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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에 관한 글을 열심히 읽어 놓고는,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초점도 없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괜히 사진 편집을 먼저 만지작거리고 레이아웃을 요리조리 구성해 본다. 글을 쓰는 것은 원래 힘든 일이라고, 그것은 위대한 작가나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나 똑같은 것이라는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속의 어느 글귀를 떠올리며 안도한다. 일단은 뭐라도 끼적이고 작가가 강조했던 퇴고를 할 나중의 자신에게 일정분의 책임을 떠넘겨본다. 책에서 예로 들었던 '사랑한다는 말없이 사랑한다고 표현해 보기'를 떠올리며 '이 책이 참 좋았다는 말없이 좋다고 표현해 보기'를 실천해 보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실천해보는 것부터가 이미 이 책이 남다르다는것의 방증이라는 점을 미리 깔아놓고 시작해본다. 



새로 받아든 책을 처음으로 펼치는 순간은 대체적으로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특히나 판형의 크기, 책의 표지가 지닌 색감, 서체의 모양 혹은 내지의 질감 그리고 비릿한 잉크 향이 섞인 새 책 특유의 냄새 같은 감각적인 경험들도 내게는 빼놓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이다. 도돌도돌한 표지의 질감을 손가락 끝으로 느끼며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를 펼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지가 얇고 부드럽다는 엉뚱하고 맥락 없는 생각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보드라운 질감이 새삼 생경했던지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페이지를 쓸어내렸다. 프롤로그를 지나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유쾌한 인사로 시작하는 첫 번째 편지를 읽고 나니… 뭐랄까,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달까…? 유려하면서도 튼튼하고 유쾌하면서도 진중하다.


글방의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전연 달랐다. 그것은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번 쓱 문지르면 번질 듯했다. 휘갈겨 쓴, 섣부른, 꿈틀거리는 문장들. 무언가 되려고 시도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나와 꼭 닮아서 자꾸만 나를 건드렸다. 글방에서의 시간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연습, 책을 쓰는 과정이라기보다 한 주간 맹렬히 삶과 싸운 누군가가 보고 들은 것들을 목격하는 일에 가까웠다. (중략) 그사이 이야기가 무르익고 우리가 자라고 있음을 몰랐다. 서로의 작가가 되고 독자가 되었음을 몰랐다. p.5 프롤로그, 답장을 주세요 중에서





양다솔 작가는 '쓰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책을 얼마 읽지 않은 시점에서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글방에 다니며 10년 넘게 글을 써온 경험과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아 온 자신만의 사유를 정갈하게 적어 독자에게 편지를 부친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타인에게 글을 쓰라 독려하며, 그들의 글을 읽는 것도 좋다는 작가의 고백은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이라 정의된 모두에게 선명한 응원이 되어준다. 물론 글방 지기답게 다정한 독촉도 잊지 않는다. 일주일마다 보내오는 작가의 편지에는 쓰기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글감과 함께 그에 대한 고찰의 흔적이 가득하다. 사유의 흐름들이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흐르듯이 읽히는 까닭은 분명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깎아 내고 정제해 낸 노력이 행간을 단단히 지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랑하고 유쾌하게 흐르는 문장들이지만 결코 가볍거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작가는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거나, 그럴듯한 방법론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엉덩이를 붙잡고, 아무것이나 써보기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빈 문서' 앞을 훌쩍 떠나 쓰는 것 따위일랑 홀랑 잊어버리고 바람을 쐬며 무작정 걸어보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퇴고의 중요성을 강요하면서도 완벽한 글 따위는 없고, 그저 전보다 나아진 정도의 글뿐이 존재하는 것임을 기쁘게 축하한다. 쓰기의 방법론보다도 작가가 던져주는 글감에 대한 통찰과 사유와 경험들의 문장이 쓰고자 하여 읽는 이들에게 반짝이는 영감이 되어준다.







쓴다는 것의 인간적인 동기, 배제하지 않는 느슨하고 너른 포용성, 활자와 언어가 제공하는 무궁한 아름다움 등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글이 내포하고 있는 것, 쓴다는 행위가 다채로운 의미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 결국은 사람으로, 인생으로, 삶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일상의 어느 한순간, 삶의 어느 시절, 어느 인물에 대한 소회 등은 진득한 관찰에서 나온다. 관찰은 필히 세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하고, 자세한 관찰은 일말의 애정이라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글감을 던져주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그렇다. 글을 쓰려 노력하는 시간, 그러니까 가산할 수 있는 시간 외에도 일상과 삶의 곳곳은 한 편의 글이 되기를 기다리는 글감들이 가득하다. 그런 글감들은 다시 내면으로 스며들어와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쓴다는 것으로 정의되고야 마는 것이다. 


저는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각자의 걱정, 번뇌, 그리고 고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요, 솔직히 좀 재수 없습니다. 다만 고독은 각자의 삶에서 다른 모양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고독은 작고 귀여운 돌멩이 같고, 어떤 사람의 고독은 문진처럼 조금 묵직하고, 어떤 사람의 고독은 그 사람을 깔고 앉을 만큼 거대하겠죠. p.31 






보드라운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페이지에 머물곤 했다. 한 문단을 통째로 반복해서 읽거나 때로는 문장 단위에서 돌림 노래처럼 그 문장을 여러 번 혼자 속삭이기도 했다. 거칠 것이 없이 곳곳에 인덱스를 남겼다. 책을 덮고 책배를 보니 파란 인덱스가 바다에서 물결치기 시작하는 수많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모든 곳에 붙이니 인덱스가 결국은 무용해졌다. 작가는 여러 편지에서 곁들여 함께 읽을 책을 소개해주며 자신이 곁에 두고 읽는 책들을 추천해주곤 했다. 나로써는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을 곁에 두고, 쓰기의 권태를 느낄 때마다 무용한 인덱스 사이를 펼쳐들어 읽을 것이다. 에세이가 무릇 저지르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정서가 없어서 좋다. 글에서 묻어나는 적정한 온도의 쾌활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 같기도 하고 시원한 피톤치드 향 같기도 하다. 글의 향이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쓰기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과 권유가 부담스럽지 않은 까닭은 그 기저에 쌓인 쓰기에 대한 작가만의 철학이 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쓰기로 마음먹은 모두에게 작가는 성실한 독자가 되어줄 것이다.







저는 글쓰기가 어떤 결과나 성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와도 같지 않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몹시도 같은, 내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말해보려는 시도. 그것에 적확한 언어를 쥐여주려는 시도. 내 삶을 주인으로서 바라보는 시도요. 밤을 새우며 입이 마르도록 쓰인 그 종이위의 문장이 당장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지요. 그런데 어쩐지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p.306-307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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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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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며 역대 한겨레문학상 당선 작가들이 본인의 수상작을 모티프로 하여 새로 쓴 스무 편의 신작 소설 앤솔러지다. 당선작의 프롤로그나 에피소드를 다루거나 등장했던 인물 혹은 사건, 소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 30주년 기념이라는 출간 취지에 맞게 '30'이라는 키워드가 작품 곳곳에 숨어있어서 독자는 마치 퍼즐을 찾는 것 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챙길 수 있다. 당선작을 모티프로 하는 전개 때문에 '기존 작품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전 배경 없이 독립적으로 읽어도 맥락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작품을 먼저 읽어 본 독자라면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초면인 독자는 새로운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다는 양면적인 즐거움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앤솔러지에 관한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주제로 묶여 있다곤 하지만 작가마다 달라지는 문체나 글의 분위기와 같은 특성에 매번 몰입하고 집중해야 하는 얄팍한 피로감과 그로 인해 종종 샛길로 새 버리고 마는 산만함이 그렇다. 그리고 어쩐지 온전하게 하나의 책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요상한 분절감이 드는, 스스로가 만든 그런 진입 장벽이 있었다. 아예 안 읽지는 않지만 스스로 잘 찾아읽지도 않는 편이랄까.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슨 무슨 문학 수상 작품집'은 읽어 본 적이 잘 없다. 《서른 번의 힌트》도, 한겨레문학상이 '30주년'이라는 제법 긴 역사를 가진 것에 놀랐고 인지도가 높은 다수의 작가들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에 놀랐을 뿐, 앤솔러지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 클리셰처럼 뻔한 반전을 주고 싶지 않지만! 별 도리 없이 나는 또 '뭐야? 재밌잖아…'를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라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는 이 책에서 몇몇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것을 제외하면 지면에 실린 작품과 연관 있는 당선작을 사전에 읽어본 적이 없다. 각 작품의 길이는 아쉬울 정도로 짧지만 스무 편이 실린 까닭에 4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을 자랑한다. 제법 두꺼운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 여지없이 아쉬운 마음이 들고 말았다. 과연 새로운 세계로의 마중물이라는, 다소 진부하고도 전형적인 표현이 이렇게 또 적절할 수가 있나 싶었다. 종종 책을 읽다가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들고 작가와 작품의 목록을 톺아보며 읽을 책을 추리고 나니 SNS를 유랑하며 추천 도서 리스트를 검색하는 소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일단은 인상 깊은 작품만을 꼽아도 열 손가락이….


최근 수상을 한 작가부터 역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인지 현 사회의 문제가 녹아든 시의성 있는 작품들이 책을 다 읽고도 기억에 남는다. 하승민의 〈유전자〉에서는 피부가 파란, 블루 멜라닌이라는 희귀 질환을 가진 알파의 시선을 통해서 사회에서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차별의 행태들을 조명한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집회 현장에서조차 알파에게 무람없이 던져진 차별의 언행은 '차별 속의 차별, 차별의 계급'을 다뤘던 어느 기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김희재의 〈잠도 가는 길〉과 강성봉의 〈진홍: 박수 외전〉은 동성을 사랑했던 인물들의 비애를 다루는데, 〈잠도 가는 길〉은 그 인물 외에 주변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 비애를 다루는 것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지만 끝내는 연대로 극복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진홍: 박수 외전〉은 박수무당이 등장하며 오컬트를 소재로 펼쳐지는 독특한 전개는 도입부터 오컬트 덕후를 사로잡았다.


서수진의 〈정말 괜찮으세요?〉는 한국어 학당이라는 여초 직장에서 반대로 차별받는 남성의 모습을, 한은형의 〈빵과 우유〉에서는 모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여성을 통해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어떠한 문제를 두고 다른 각도와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부분들은 머릿속에 더 각인되어 기억에 남는다. 그런 관점에서 조두진의 〈표범〉에서 나오는 애완용 표범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 버린' 표범이 자신은 집에 사는 흑돼지가 되고 싶었다는 고백은 인간이라는 관점이 또 얼마나 일방적이고 오만한 것인지, 머쓱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종을 가리지 않는구나….



가장 울림이 남았던 작품을 꼽자면 최진영의 〈무명〉이었다. 가정 폭력을 당하던 여성 화자가 어떤 사건이 기재된 신문지 뭉치를 품에 안고 등장한다. 신원 불명의,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작고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중년의 남성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들어 살해했다는 기사. 기사 속의 가해자인 무명의 그녀에게 화자는 동질감을 느꼈을까. 끈질긴 가정 폭력 속에서 그녀를 구원하는 것은 세 명의 여성과의 우연하고도 짧은 만남이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녀의 희망적인 결말이, 대체로 염세적으로 끝나고마는 현실 세계의 결말을 부디 압도하길 바라게 된다. 이렇게 읽고 나면 당연히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외에도 다른 작품보다 바로 전작이 더 궁금한 경우가 있었는데, 강태식의 〈모든 고릴라에게〉와 장강명의 〈서강대교를 걷다〉, 그리고 박서련의 〈옥이〉가 그랬다. 특히 내가 읽었던 박서련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문체와는 확연히 달랐던 〈옥이〉를 읽고 〈체공녀 강주룡〉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꼽자면 심윤경의 〈너를 응원해〉를 꼽고 싶다. 똑똑하고 재능 많은 딸의 아이돌 연습생 문제를 고민하던 가족이 비상 계엄 당일 밤, 국회 앞으로 향하면서 그 동안 했던 고민이 사사로워지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사태를 겪으며 미래의 희망으로 변모하는 인식의 과정이 인상적이다. 일련의 사태들이 이제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뉴스들이 쏟아지는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절망과 분노의 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너무 감상적인가 싶다가도, 작품 속 가족의 모습, 무리들 속에 묵묵히 앞 사람을 따라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다시 소생시키는, 충분히 감동적인 역사적인 순간이 어떻게 개인의, 시민의 삶에서 발현되는지 들여다보는 시선이었다. 



30년. 무려 한 세대를 지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의 기간을 '세대'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30년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과는 사뭇 다르게 이제 겨우 어른으로부터 일을 물려받아 제 몫을 다하기 시작하는, 단단히 준비하고 출발선에 서서 준비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30년의 과거를 반추하며 읽고, 다음 30년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어떤 기개가 느껴진달까. 앤솔러지의 제목인 《서른 번의 힌트》는 앞으로의 30년, 다음 세대로의 어떤 지향점이 결국 과거 세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음을 표상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당장 제 30회 한겨레문학상에 김홍 작가의 《말뚝들》이 당선되었다고 하는데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이번 앤솔러지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면 가장 많이 한 생각을 또 해본다.




수많은 갈피에서 추려낸

〈유전자〉, 하승민 | 알파는 언제나 자신이 소수자이며 박해받는 계층이라 여겼지만 그런 집단에게 부여되는 혜택을 얻지 못했다. 알파는 국가보훈 대상자의 자녀가 아니었고 농어촌 출신도 아니었으며 특별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p.18


〈진홍: 박수 외전〉, 강성봉 | 떠나간 사람들에게 죄스러워서, 남겨진 제 운명이 가혹해서 희원은 밤새 통곡했다. 사람 목숨으로 이어진 다리를 밟고 저 아래 흐르는 흙탕물을 내려다보니, 죽음을 기억한다는 건 지나간 생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와 고통스럽게 대면하는 일이었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저 피부 가죽 한 치 아래 있는 영혼을 파르르 떠는 일이었다. p.70


〈옥이〉, 박서련 | 그때 내가 헛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나도 벌써 알았습네다. 꿈이라는 건, 소망이라는 건 꼭 이루어지지 않더래도 하나의 취미로써 누려지는 것이 아니갔어요. 열서너 살 무렵의 나는 그렇듯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곱씹는 그 자체가 즐거웠을 따름입네다. 그런데 서른이 되고서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데다. 형님은 어린애의 하찮은 자유연애 타령에 찬물을 아니 끼얹고 잠자코 들어주었고나. 내 신세 어차피 이래 되리란 건 그때 이미 어른이었던 형님이 더 잘 알았을 텐데, 형님은 꿈 깨라 산통 깨지 않고 나를 봐주었고나. p.125


〈무명〉, 최진영 | X에게 학대당할 때도 각오하지 않았던 죽음이었다. 그런데 각오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것의 그림자만큼 불행감은 컸다. 나를 죽일 수도 있는 행복에 X의 지분은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X에게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X의 죽음은 내게 아무 의미 없다. 없는 사람의 죽음은 나를 흔들 수 없다. p.224


〈표범〉, 조두진 | 어찌 된 거야?

내가 다가서며 물었다. 나를 알아보았음에도 녀석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다만 한없이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집에 사는 흑돼지이고 싶었다.

흑돼지이고 싶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눈 덮인 킬리만자로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녀야지!

킬리만자로에 무슨 놈의 자유가 있어? 종일 먹이를 찾아헤매고, 천적을 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

킬리만자로산의 짙은 아침 안개 속으로 녀석이 멀어졌다. p.297


〈너를 응원해〉, 심윤경 | 아이들이 앞서고 부부는 뒤따랐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익숙하게 따라 불렀다. 학교에서 응원가로 늘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아내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며, 그는 그 노래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세상에는 반복되는 슬픔들이 있지만 너를 생각하며 나도 강해진다는 내용이었다. p.335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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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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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빗나갔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보고 저항 없이 맨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홍콩을 무대로 한, 농도 짙은 누아르 장르의 어떤 무엇이었다. 청킹맨션의 서사가 부여하는 이미지와 '보스'가 주는 어감이 딱 그러했다. 청킹맨션은 홍콩의 대표적인 슬럼 지역으로, 영화 〈중경삼림〉의 주요한 배경으로도 유명해서 홍콩 여행의 주요 코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저렴한 숙소 덕분에 흉흉한 별점과 뜬소문에도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찾는 가성비 숙소로도 유명한 이 맨션에서의 '보스'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초장부터 반전이라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인문학 혹은 사회학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한 번, 분류에서 한 번, 출판사 소개에서 한 번씩, 총 세 번에 비틀린 추측 속에서 호기심이 부풀기 시작했다.




먼저 이 책을 쓴 저자인 오가와 사야카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교수로 23살부터 탄자니아를 드나들며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의 관습을 연구했다고 한다. 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비공식 교역 구조와 중고품·위조품의 유통 및 소비를 연구하던 저자가 직접 홍콩 청킹맨션에 체류하며 홍콩 청킹맨션에서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탐구한 내용이 바로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인 것이다.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계에서 '보스'로 통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카라마'였다. 책은 보스인 카라마를 중심으로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탐구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청킹맨션의 보스인 카라마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혼혈로 동글동글한 외양으로 묘사되는 중년 남성인 카르마는 중고차 브로커다. 약속 시간 한두 시간쯤은 우습게 어기고도 태연자약한 태도를 겸비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법한 SNS 활동에 열중하며 남의 영업장에서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냉장고를 뒤져 직원식을 데워 먹는다. 이리저리 담배를 꾸러 다니면서도 잘 곳이 없는 이에게는 또 무람없이 잘 곳을 마련해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이렇듯 일관성 없고 예측 불가능한 카라마의 행동을 읽다 보면 기존에 스스로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가늠해 보며 자칭 타칭 '보스'라 불리는 그에 대한 정의를 잠시 유보할 수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행간을 발견하게 된다.


📌 즉 카라마 같은 브로커들은, 홍콩 지리 및 업자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고객과 아프리카계 고개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아 신뢰할 만한 고객을 가려낼 수가 없는 업자 사이에서 '신용'을 보증하고 '수수료'나 '마진'을 챙기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p.116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카라마는 홍콩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기 원하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카라마는 구매자가 요구하는 중고차나 부품들을 취급하는 업자를 찾아 가격을 협상하고 통관에 필요한 복잡다단한 절차를 수행한다. 얼핏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카르마는 구매자의 요구에 맞춰 홍콩 시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하거나, 목적 외의 잡화 같은 필요 물품 구매에도 도움을 주며 밤에는 홍콩의 밤 문화의 여흥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카라마의 이 모든 에스코트에 부과되는 추가 요금은 없다. 이런 중개 과정 곳곳에서 다른 중개 업자들이 우연히 등장하여 카라마와 동행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관계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호수성'으로, 보통 '호혜'나 '상호성'으로 번역되나 책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긍정과 부정의 의미 모두를 포함한 호수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와 누구에게든 호혜를 베푸는 그들의 행동의 괴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인 호수성은 그들의 자체적으로 설립한 '동아프리카 연합 홍콩 조합'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홍콩을 거점으로 교역하는 이들이 주축인 이 범 아프리카계 연합은 어느 동포의 시신 운구 경비를 모금하기 위해 처음 결성되어서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연합에 기여한 정도와 상관없이 기꺼이 모금을 진행하고 홍콩에서부터 자국으로까지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인류애적이기도 하고 인상적이기도 하다.


📌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규칙을 명확화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합 운영과 조합 내 상호 부조 면에서, 엄밀한 기준과 약속에 의해 '서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기를 규칙으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p.93


청킹맨션에서 그들의 비즈니스는 아이러니한 점들이 많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명색에 '비즈니스'인데 어딘가 헐렁하고 술렁한 구석들이 만연하고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또한 능구렁적인(?) 면모가 다분하다. 이를 관찰하던 저자도 종종 짜증을 내며 카라마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이를 받아치는 카라마의 이유도 있고, 여유도 넘치는, 나름의 철학까지 곁들인 대답에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카라마를 필두로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사업과 삶을 교차하며 더듬어 나가다 보면 혼란스럽게만 보였던 것들이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느슨하게 연대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끝내 그려볼 수 있다. 그들만의 커뮤니에서 통용되는 관례들, 교역 플랫폼으로서의 SNS 활동과 협동형 커먼즈로서의 TRUST, '겸사겸사'의 인식 등 인류학자인 저자가 분석하고 도출해낸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비공식 경제 구조 및 체계는 신선하고도 흥미롭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중략)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 생활 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p.259


특히나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상호성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아주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니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형성한 커뮤니티와 아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로써 그들이 구축한 커뮤니티 속에서 돌아가는 비공식 사회·경제 구조가 현대 사회·경제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고 행하는 호혜, 어떠한 대가성 호의가 아닌, 느슨하고도 광범위하며 무의식적인 연대의 범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의 지금 순간의 결과로 따지는 당위성 등이 현대의 상호성과 비교할 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또 한 번의 아이러니한 점이다.





추천의 말로 시작하는 책의 첫 문장은 '무지막지하게 재밌다'는 것이었다. '아니, 인문학이 재미있을 수가 있나? 아니, 재미있을 수는 있는데, 그게 첫 문장으로 뱉어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여러 번의 비틀림과 어긋남으로 초래한 호기심은 끝내 재미가 되어 돌아와 나의 차례에서, 마치 돌림 노래처럼, 나도 결국에는 재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밌다. 청킹맨션이 주는 불온한 이미지, 그 미지의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느슨한 질서, 카라마라는 인물의 독특한 개성, 그들이 구축한 대안적 커뮤니티 등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랄까. 거시적으로 그들의 교역·경제·사회적인 구조를 톺아보는 것도 차원의 지평을 넓히는 순간이라 좋았지만 무엇보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이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누구도 믿지 않지만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적당한 거리에서의, 적당한 온도의 호의가 주는 울림을 곱씹게 된다.


📌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애당초 이들은 타자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 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p.166




출판사 갈라파고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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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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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지 오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은 단연코 소설 《동물농장》과 《1984》일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도, 유명한 이 두 작품은 학창 시절에 항상 추천도서나 권장도서 목록에 꼭 올라있었고,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어느 교양 수업의 주교재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연달아 읽고 있는 조지 오웰 시리즈에서, 에세이 선집인 《나는 왜 쓰는가》와 르포르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그랬지만 소설인 《숨 쉬러 나가다》를 읽으면서도 조지 오웰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치와 예술의 합치'를 꾀하고자 했던 노력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숨 쉬러 나가다》는 《동물농장》과 《1984》가 나오기 전에 출간된 만큼 그의 정치적 문학관이 발현되기 시작한 출발 지점에서의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중년의 남성인 조지 볼링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보험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이 사내는 아침에 일어나 목욕을 하며 나이가 들어 퉁퉁 해져있는 자신의 몸을 보고 열심히 변명을 해보지만 끝내 우울해하며 좌절한다. 뒷덜미에 어쭙잖게 남은 목욕 거품을 불쾌해하며 간만에 휴무를 맞아 새로운 틀니를 찾으러 나선 길에서 그는 어느 포스터의 조그 왕에 관한 어떤 소식을 듣다가 어린 시절 교구 성당에서 듣던 찬송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고 그 순간을 틈타 속절없이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짙은 과거의 향수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훑어가기 시작한다.



책의 꽤 많은 부분은 조지 볼링의 과거 시절을 회상하며 묘사하는데 할애한다. 곡물 가루가 살포시 내려앉은 아버지의 모습, 매일 반죽을 빚던 든든한 함선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각자의 읽을거리를 들고 모여 앉아 즐기던 티타임에서의 단상들 또는 어릴 적 패거리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벌였던 소동극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어린 조지 볼링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낚시였는데 이 '낚시'라는 행위는 현재의 볼링을 추동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빈필드하우스라는 로어빈필드의 어느 저택 근처에서 발견한 숨은 못에서 거대한 잉어를 발견하게 되고, 기필코 그 잉어를 낚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그 다짐은 끝내 이뤄지지 않은 유년 시절의 한낱 소망으로 남아버렸다.



로어빈필드에 다시 가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이 난 것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이다. 숨 쉬러 나간다는 것! 커다란 바다거북이 열심히 사지를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 코를 쑥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 다음, 해초와 문어들이 있는 물 밑으로 다시 내려오듯 말이다. 우리는 모두 쓰레기통 밑바닥에서 질식할 듯 지내고 있는데, 나는 바깥으로 나갈 길을 찾은 것이었다. 로어빈필드로 돌아가는 것 말이다! p.265



현실의 권태와 과거의 향수는 그를 계속해서 추동했고 마침내 과거 그 시절 빈필드하우스의 그 숨은 못,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비상금 17파운드와 일주일 간의 거짓 휴가를 비밀에 부치며 어린 시절 그 마을로 혼자만의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볼링의 노스탤지어를 무용하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가 알던 이들의 이름은 묘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고, 산업화가 진행된 마을에 그의 추억이 설자리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를 추동했던 그 신비한 연못이 있던 저택은 어느새 요양원으로 용도를 변경한지 오래였고, 거대한 연못 또한 주택단지로 개발되었으며 소망이 가득했던 그 신비한 못은 말 그대로 쓰레기 구덩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꿈에다 수류탄을 투척한 것이었고, 실수가 없도록 공군이 따라와 500파운드짜리 TNT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p.353





피상적으로는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중년의 위기'를 겪는 웃픈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전후의 시대적 상황과 당대의 인간 군상을 자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희망이라고 표상되는 삶의 어떤 것들이 분절되고 생의 행로가 변곡점을 만나 휘어가면서 겪는 개인적인 변화, 이를테면 전쟁을 통해서 애국심이 고취되거나 참전으로 인한 계급 상승의 기대 같은 것이 전후에는 극심한 실업난에 빠지며 모든 것이 신기루였음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변모하는 냉소적인 태도 등이 그러하다. 또한 노동 계층인 자신과 중산층이었던 아내 힐다와의 '돈'이라는 가치를 두고 갈등하는 계급 관념의 차이도 드러난다. 상황과 인물에 대한 볼링의 자조적인 인식은 오웰의 냉소적인 위트와 만나 볼링이라는 인물과 잘 버무려진다.



조지 볼링은 어느 날 파시즘을 타도하자는 연설을 듣고, 애국심에 고취되어 전쟁을 옹호하던 청년들과의 문답에서 전쟁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일갈해 준 뒤, 울적한 마음으로 포티어스라는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포티어스는 전직 교장 출신으로 박학다식한 인텔리였다. 볼링은 포티어스에게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대한 불안과 팽배해지는 파시즘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지만 포티어스는 전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한다. 볼링은 결국 자신의 지식에만 매몰된 포티어스에게 크게 실망하게 된다. 또 기대에 부풀어 찾아간 로어빈폴드에서 폭격기의 오발탄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을 목격하고는 학을 떼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오웰을 목이 볼링을 빗대어 비판하고자 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참한 전쟁의 현실과 전쟁 이후의 경제난과 실업, 온갖 선전이 판을 치는 혼란스러운 시대상에 대한 오웰의 우려는 현실에서 곧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비극적인 예언이 되고 만다.



영국이 파시스트 천지가 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사와 청중 가운데 네 명의 공산주의자의 운명이야 물론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상대의 얼굴을 뭉개버리든 제 얼굴이 뭉개지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고만고만한 사람이야 아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정말이지 두렵다. p.237






조지 볼링의 삶의 궤적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그것으로 비롯한 시대적 부산물인 여러 갈래의 비극을 따라간다. 작가인 조지 오웰의 냉철한 정치적 인식이 비판적으로 녹아 있는 《숨 쉬러 나가다》는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과거 자신만의 비밀 연못 속 거대 잉어라는 희망이, 산업화에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과거 시대의 영광이 이제 더는 현재를 구원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성실한 노동자들이 거대 자본에 의해서 스러지는 희망 없는 현실, 전쟁의 현실적인 참혹함과 모순, 전후의 대책 없는 실업난, 점점 팽배해지는 파시즘의 위협, 인텔리들의 피상적인 현실 인식,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와 불안 등은 거대 담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들의 삶 곳곳에 지독하게도 들러붙어있다. 에세이와 르포를 거치면서 터득한 조지 오웰의 섬세하고 꼼꼼하며 냉철한 시선이 소설 《숨 쉬러 나가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특유의 비판적인 관점이 자조적인 위트로 구현되는 필력 또한 유려해서 흡입력도 대단한, 여러모로 문학의 저변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던 조지 오웰의 시간이었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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