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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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에 관한 글을 열심히 읽어 놓고는,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초점도 없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괜히 사진 편집을 먼저 만지작거리고 레이아웃을 요리조리 구성해 본다. 글을 쓰는 것은 원래 힘든 일이라고, 그것은 위대한 작가나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나 똑같은 것이라는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속의 어느 글귀를 떠올리며 안도한다. 일단은 뭐라도 끼적이고 작가가 강조했던 퇴고를 할 나중의 자신에게 일정분의 책임을 떠넘겨본다. 책에서 예로 들었던 '사랑한다는 말없이 사랑한다고 표현해 보기'를 떠올리며 '이 책이 참 좋았다는 말없이 좋다고 표현해 보기'를 실천해 보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이렇게 책을 읽고 실천해보는 것부터가 이미 이 책이 남다르다는것의 방증이라는 점을 미리 깔아놓고 시작해본다. 



새로 받아든 책을 처음으로 펼치는 순간은 대체적으로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특히나 판형의 크기, 책의 표지가 지닌 색감, 서체의 모양 혹은 내지의 질감 그리고 비릿한 잉크 향이 섞인 새 책 특유의 냄새 같은 감각적인 경험들도 내게는 빼놓을 수 없는 독서의 즐거움이다. 도돌도돌한 표지의 질감을 손가락 끝으로 느끼며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를 펼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지가 얇고 부드럽다는 엉뚱하고 맥락 없는 생각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보드라운 질감이 새삼 생경했던지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페이지를 쓸어내렸다. 프롤로그를 지나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유쾌한 인사로 시작하는 첫 번째 편지를 읽고 나니… 뭐랄까, 보드라우면서도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달까…? 유려하면서도 튼튼하고 유쾌하면서도 진중하다.


글방의 글을 읽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전연 달랐다. 그것은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번 쓱 문지르면 번질 듯했다. 휘갈겨 쓴, 섣부른, 꿈틀거리는 문장들. 무언가 되려고 시도하지만 처절하게 실패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나와 꼭 닮아서 자꾸만 나를 건드렸다. 글방에서의 시간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연습, 책을 쓰는 과정이라기보다 한 주간 맹렬히 삶과 싸운 누군가가 보고 들은 것들을 목격하는 일에 가까웠다. (중략) 그사이 이야기가 무르익고 우리가 자라고 있음을 몰랐다. 서로의 작가가 되고 독자가 되었음을 몰랐다. p.5 프롤로그, 답장을 주세요 중에서





양다솔 작가는 '쓰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책을 얼마 읽지 않은 시점에서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글방에 다니며 10년 넘게 글을 써온 경험과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아 온 자신만의 사유를 정갈하게 적어 독자에게 편지를 부친다.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타인에게 글을 쓰라 독려하며, 그들의 글을 읽는 것도 좋다는 작가의 고백은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이라 정의된 모두에게 선명한 응원이 되어준다. 물론 글방 지기답게 다정한 독촉도 잊지 않는다. 일주일마다 보내오는 작가의 편지에는 쓰기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글감과 함께 그에 대한 고찰의 흔적이 가득하다. 사유의 흐름들이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흐르듯이 읽히는 까닭은 분명 시간과 정성을 들여 깎아 내고 정제해 낸 노력이 행간을 단단히 지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랑하고 유쾌하게 흐르는 문장들이지만 결코 가볍거나 쉽게 읽히지 않는다. 작가는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거나, 그럴듯한 방법론을 설파하지도 않는다. 엉덩이를 붙잡고, 아무것이나 써보기를 권유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빈 문서' 앞을 훌쩍 떠나 쓰는 것 따위일랑 홀랑 잊어버리고 바람을 쐬며 무작정 걸어보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퇴고의 중요성을 강요하면서도 완벽한 글 따위는 없고, 그저 전보다 나아진 정도의 글뿐이 존재하는 것임을 기쁘게 축하한다. 쓰기의 방법론보다도 작가가 던져주는 글감에 대한 통찰과 사유와 경험들의 문장이 쓰고자 하여 읽는 이들에게 반짝이는 영감이 되어준다.







쓴다는 것의 인간적인 동기, 배제하지 않는 느슨하고 너른 포용성, 활자와 언어가 제공하는 무궁한 아름다움 등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글이 내포하고 있는 것, 쓴다는 행위가 다채로운 의미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 결국은 사람으로, 인생으로, 삶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일상의 어느 한순간, 삶의 어느 시절, 어느 인물에 대한 소회 등은 진득한 관찰에서 나온다. 관찰은 필히 세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하고, 자세한 관찰은 일말의 애정이라도 필요로 하는 법이다. 글감을 던져주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그렇다. 글을 쓰려 노력하는 시간, 그러니까 가산할 수 있는 시간 외에도 일상과 삶의 곳곳은 한 편의 글이 되기를 기다리는 글감들이 가득하다. 그런 글감들은 다시 내면으로 스며들어와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쓴다는 것으로 정의되고야 마는 것이다. 


저는 사람들의 삶에는 모두 각자의 걱정, 번뇌, 그리고 고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요, 솔직히 좀 재수 없습니다. 다만 고독은 각자의 삶에서 다른 모양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고독은 작고 귀여운 돌멩이 같고, 어떤 사람의 고독은 문진처럼 조금 묵직하고, 어떤 사람의 고독은 그 사람을 깔고 앉을 만큼 거대하겠죠. p.31 






보드라운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페이지에 머물곤 했다. 한 문단을 통째로 반복해서 읽거나 때로는 문장 단위에서 돌림 노래처럼 그 문장을 여러 번 혼자 속삭이기도 했다. 거칠 것이 없이 곳곳에 인덱스를 남겼다. 책을 덮고 책배를 보니 파란 인덱스가 바다에서 물결치기 시작하는 수많은 파도처럼 일렁인다. 모든 곳에 붙이니 인덱스가 결국은 무용해졌다. 작가는 여러 편지에서 곁들여 함께 읽을 책을 소개해주며 자신이 곁에 두고 읽는 책들을 추천해주곤 했다. 나로써는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을 곁에 두고, 쓰기의 권태를 느낄 때마다 무용한 인덱스 사이를 펼쳐들어 읽을 것이다. 에세이가 무릇 저지르는 지나치게 감상적인 정서가 없어서 좋다. 글에서 묻어나는 적정한 온도의 쾌활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 같기도 하고 시원한 피톤치드 향 같기도 하다. 글의 향이 쉽게 휘발되지 않는다. 쓰기에 대한 작가의 무한한 애정과 권유가 부담스럽지 않은 까닭은 그 기저에 쌓인 쓰기에 대한 작가만의 철학이 견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쓰기로 마음먹은 모두에게 작가는 성실한 독자가 되어줄 것이다.







저는 글쓰기가 어떤 결과나 성과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와도 같지 않은,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몹시도 같은, 내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말해보려는 시도. 그것에 적확한 언어를 쥐여주려는 시도. 내 삶을 주인으로서 바라보는 시도요. 밤을 새우며 입이 마르도록 쓰인 그 종이위의 문장이 당장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지요. 그런데 어쩐지 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져 있습니다. p.306-307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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