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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한여름의 한기가 소름처럼 오소소 돋아 수증기 어린 창문에 맺힌 물방울 같은, 혹은 한여름의 한기에도 저항할 수 없는 무엇 때문에 그저 흘리고만 있는 식은땀 같은 모습은 어느 모로 보아도 기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수증기나 식은땀이나 이것은 외부와 내부, 그것이 환경적인 요소이든, 정서적인 요소이든, 현격한 온도 차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간극에서 오는 이상하고 야릇한 재미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아뇨, 아무것도》는 작가의 미발표작 15편을 모은 짧은 소설집이다. 판형도 작아서 한두 장 정도로 끝나는 소설은 더욱 짧게 느껴지고 길어도 열 장 정도를 조금 넘는 수준의 짧은 소설들이다. 여름의 끈적한 습기 속에서 집중력을 잃고 허우적대는 요즘의 나에게 《아뇨, 아무것도》는 적절한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소설 속 후일의 많은 부분을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주었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해야 하나. 작고 짧은 소설집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들의 장르가 다채롭다. 우화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SF도 있고, 호러도 있다. 그저 웃기기도 하고, 아쉽고 짠하기도 하고, 뭉근하게 섬뜩해지기도 하고, 찝찌름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어찌 보면 질서 없이 파편적으로 흩어진 이야기들은 되려 일상 속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초대하는 것만 같다. 오피스텔 지하의 수영장, 24시간 편의점, 분위기가 독특한 어느 바, 어느 나라의 동물원에서 일어나는… 혹은 친구, 직장 동료, 소개팅 상대, 유명 스포츠 선수 또는 생경하고도 미지한 존재로부터 일어나는…. 일상의 주파수들이 다른 종류의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물과 숨》이었다. 오피스텔 지하에 위치한 임시 폐쇄 중이었던 수영장에 몰래 침입한 재희. 그날 이후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수영장에 대한 끌림이 점차 강렬해진다. 늦은 밤 혼자 수영을 터득하기 시작하고 완벽한 수영을 위한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광기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재희와 '물'이 조화하는 방식이 서서히 뒤틀린다. 손으로 물을 가르는 일체감에서 점차 물에게 잠식 되어가는 공포. 아주 깊은 물의 한곳을 오래 응시하다 보면, 가늠할 수 없는 그 깊이에 아찔함을 느끼며 경험하는 경미한 현기증 같은 공포가 인다. 여기에 소소하게 가미된 나폴리탄 괴담적 요소가 별첨 같은 공포와 재미를 더해준다.
이제 왔어요?
저를 아세요?
그럼요. 당신의 부피를 기억해요.
물에 몸을 담근 적이 거의 없는데.
왜요, 아기 때는 매일 조그만 욕조에서 첨벙거리며 놀았잖아요. 언제나 당신의 부피만큼 흘러넘친 물이 흐르고 흘러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끊임없이 만나거든요. 우리는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것참, 든든한 말씀이군요. p.40-41 <물과 숨>

이어서 이 책의 제목인 《아뇨, 아무것도》도 부랴부랴 떠오른다. 우연한 상황에서 평소에 데면데면한 직장 동료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고백을 한다. 아주 근미래, 그것도 아주 짧은 초 단위 정도가 보인다는 고백. 그리고 동료는 그에게 자신이 본 그의 근미래에 관한 짧은 예언을 건네고, 그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주변을 주의 깊게 살핀다. 어느덧 그가 방심하는 사이, 기묘한 방식으로 상황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은 "아뇨, 아무것도."라는 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사였다. 그저 외면하는 것 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불가해한 상황에 대한 무기력한 공포는 마침표로도 끝내 그 상황을 마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선미 씨는 내 사소한 미래로 어떤 콩트를 썼을까? 보고 싶다. 어떻게든 여길 무사히 빠져나가 기필코 읽어보고 싶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 p. 81 <아뇨, 아무것도>
본격적으로 공포스럽지는 않았지만 《48시 편의점》도 그 기묘한 전개에 흥미진진해하며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일상적으로 들리던 24시간 편의점에서 24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점장을 자각하면서 두 인물은 나름의 가설과 추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용감하게도 직접 점장에게 그 까닭을 묻고 아리송한 대답을 얻는다. 일상의 배경으로만 등장하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에서 탁하고 켜지는 기묘한 호기심이 미로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들과 함께 나도 가설을 세워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우리 주위엔 그런 불투명한 틈새들이 있다. 별거 아니긴 한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그렇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는, 그 기분이란 게 일상을 둘러싼 제방에 구멍을 내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무시가 아닐까 미심쩍은, 그래봤자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 예를 들면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24시 편의점이 그렇다. p.207 <48시 편의점>

그리고 '엄격한 질서에 의해 조성된 혼돈에 오점을'(p.114)을 남기기 위해 가나다순에서 배제된 작품인 《마트료시카》를 읽으면서는 기시감을 느낀다. 작품 속에 피조물과 작가의 존재가 마치 마트료시카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분방하게 태어난 글들 사이에 인위적인 감상 순서를 정하고 싶지 않아'서(p.114) 가나다순으로 목차를 정했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는다. 유일하게 배제된 이 작품을 추미스라는 장르의 애독자로써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냈지만, 내가 찾아낸 것이라고는 〈작가의 말〉이 오점인 《마트료시카》를 제외한 14편의 작품들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배치되었다는 것뿐이다. 마치 마트료시카의 마지막 인형처럼. 정중앙에 있는 〈작가의 말〉도 작품 중 하나인가? 이것을 가운데 두고 각 작품이 대칭을 이루나? 비교하며 읽어보았지만 영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로웠으니 그것으로 만족이랄까.
"언젠가는 우리 모두를 품고 있는 첫 번째 인형에 닿겠죠.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p.249 <마트료시카>
공포/호러/스릴러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들을 애정하는 편파적인 마음이 크지만 이 책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가 많다. 《여기는 게이바가 아닙니다》, 《친구의 연인의 친구들》,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같은 작품들은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그리면서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다분하다. 각각 문화·예술의 장을 만들고자 했던 칵테일 바가 게이바가 되어버린 이유, 죽은 친구의 불륜을 파헤치며 얻은 진실, 돌연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 떠난 이의 아이러니한 결말, 다소 낭만적인 인연과 운명에 관한 의아한 역학 등을 읽어낸다. 전체적인 작품에 전반적으로 작가 특유의 위트가 스며들어 있다. 몇몇 작품은 그 특징이 두드러져서 읽으면서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청탁없이 마감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썼다는 작가의 말에서 밝힌 언급이 반갑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이야기들이야말로 독자도 아무런 사심없이 읽고 싶은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즐겁게만 읽었다. 본격적인 여름의 초입이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덥지만 어쩌다 가끔, 그 기세가 한풀 꺽인 선선한 바람처럼 반가웠다. 이상하고 야릇한 재미를 추구하다가 일상에서 불현듯 만나는 기묘함을 기대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의 질문에 무엇이라 답할 수 있을까? 나도 어쩔 수 없이 눙치듯 "아뇨,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게 될까?
프로페셔널리즘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면 아마추어리즘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대가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끝까지 추구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도 하고 싶다.
아마추어의 어원인 라틴어 아마토렘의 뜻은 lover,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p.113-114 <작가의 말>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