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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평점 :

예상은 빗나갔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보고 저항 없이 맨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홍콩을 무대로 한, 농도 짙은 누아르 장르의 어떤 무엇이었다. 청킹맨션의 서사가 부여하는 이미지와 '보스'가 주는 어감이 딱 그러했다. 청킹맨션은 홍콩의 대표적인 슬럼 지역으로, 영화 〈중경삼림〉의 주요한 배경으로도 유명해서 홍콩 여행의 주요 코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저렴한 숙소 덕분에 흉흉한 별점과 뜬소문에도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찾는 가성비 숙소로도 유명한 이 맨션에서의 '보스'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초장부터 반전이라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인문학 혹은 사회학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한 번, 분류에서 한 번, 출판사 소개에서 한 번씩, 총 세 번에 비틀린 추측 속에서 호기심이 부풀기 시작했다.
먼저 이 책을 쓴 저자인 오가와 사야카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교수로 23살부터 탄자니아를 드나들며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의 관습을 연구했다고 한다. 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비공식 교역 구조와 중고품·위조품의 유통 및 소비를 연구하던 저자가 직접 홍콩 청킹맨션에 체류하며 홍콩 청킹맨션에서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탐구한 내용이 바로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인 것이다.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계에서 '보스'로 통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카라마'였다. 책은 보스인 카라마를 중심으로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탐구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청킹맨션의 보스인 카라마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혼혈로 동글동글한 외양으로 묘사되는 중년 남성인 카르마는 중고차 브로커다. 약속 시간 한두 시간쯤은 우습게 어기고도 태연자약한 태도를 겸비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법한 SNS 활동에 열중하며 남의 영업장에서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냉장고를 뒤져 직원식을 데워 먹는다. 이리저리 담배를 꾸러 다니면서도 잘 곳이 없는 이에게는 또 무람없이 잘 곳을 마련해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이렇듯 일관성 없고 예측 불가능한 카라마의 행동을 읽다 보면 기존에 스스로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가늠해 보며 자칭 타칭 '보스'라 불리는 그에 대한 정의를 잠시 유보할 수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행간을 발견하게 된다.
📌 즉 카라마 같은 브로커들은, 홍콩 지리 및 업자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고객과 아프리카계 고개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아 신뢰할 만한 고객을 가려낼 수가 없는 업자 사이에서 '신용'을 보증하고 '수수료'나 '마진'을 챙기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p.116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카라마는 홍콩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기 원하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카라마는 구매자가 요구하는 중고차나 부품들을 취급하는 업자를 찾아 가격을 협상하고 통관에 필요한 복잡다단한 절차를 수행한다. 얼핏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카르마는 구매자의 요구에 맞춰 홍콩 시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하거나, 목적 외의 잡화 같은 필요 물품 구매에도 도움을 주며 밤에는 홍콩의 밤 문화의 여흥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카라마의 이 모든 에스코트에 부과되는 추가 요금은 없다. 이런 중개 과정 곳곳에서 다른 중개 업자들이 우연히 등장하여 카라마와 동행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관계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호수성'으로, 보통 '호혜'나 '상호성'으로 번역되나 책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긍정과 부정의 의미 모두를 포함한 호수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와 누구에게든 호혜를 베푸는 그들의 행동의 괴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인 호수성은 그들의 자체적으로 설립한 '동아프리카 연합 홍콩 조합'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홍콩을 거점으로 교역하는 이들이 주축인 이 범 아프리카계 연합은 어느 동포의 시신 운구 경비를 모금하기 위해 처음 결성되어서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연합에 기여한 정도와 상관없이 기꺼이 모금을 진행하고 홍콩에서부터 자국으로까지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인류애적이기도 하고 인상적이기도 하다.
📌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규칙을 명확화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합 운영과 조합 내 상호 부조 면에서, 엄밀한 기준과 약속에 의해 '서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기를 규칙으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p.93
청킹맨션에서 그들의 비즈니스는 아이러니한 점들이 많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명색에 '비즈니스'인데 어딘가 헐렁하고 술렁한 구석들이 만연하고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또한 능구렁적인(?) 면모가 다분하다. 이를 관찰하던 저자도 종종 짜증을 내며 카라마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이를 받아치는 카라마의 이유도 있고, 여유도 넘치는, 나름의 철학까지 곁들인 대답에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카라마를 필두로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사업과 삶을 교차하며 더듬어 나가다 보면 혼란스럽게만 보였던 것들이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느슨하게 연대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끝내 그려볼 수 있다. 그들만의 커뮤니에서 통용되는 관례들, 교역 플랫폼으로서의 SNS 활동과 협동형 커먼즈로서의 TRUST, '겸사겸사'의 인식 등 인류학자인 저자가 분석하고 도출해낸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비공식 경제 구조 및 체계는 신선하고도 흥미롭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중략)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 생활 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p.259
특히나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상호성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아주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니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형성한 커뮤니티와 아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로써 그들이 구축한 커뮤니티 속에서 돌아가는 비공식 사회·경제 구조가 현대 사회·경제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고 행하는 호혜, 어떠한 대가성 호의가 아닌, 느슨하고도 광범위하며 무의식적인 연대의 범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의 지금 순간의 결과로 따지는 당위성 등이 현대의 상호성과 비교할 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또 한 번의 아이러니한 점이다.

추천의 말로 시작하는 책의 첫 문장은 '무지막지하게 재밌다'는 것이었다. '아니, 인문학이 재미있을 수가 있나? 아니, 재미있을 수는 있는데, 그게 첫 문장으로 뱉어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여러 번의 비틀림과 어긋남으로 초래한 호기심은 끝내 재미가 되어 돌아와 나의 차례에서, 마치 돌림 노래처럼, 나도 결국에는 재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밌다. 청킹맨션이 주는 불온한 이미지, 그 미지의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느슨한 질서, 카라마라는 인물의 독특한 개성, 그들이 구축한 대안적 커뮤니티 등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랄까. 거시적으로 그들의 교역·경제·사회적인 구조를 톺아보는 것도 차원의 지평을 넓히는 순간이라 좋았지만 무엇보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이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누구도 믿지 않지만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적당한 거리에서의, 적당한 온도의 호의가 주는 울림을 곱씹게 된다.
📌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애당초 이들은 타자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 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