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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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알고 있는 작가의 이름이 있을까 하여 목차를 펼치고 슥 훑어 내려간다. 역시나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미술'이라는 분야 자체도 낯설지만 '한국 미술'은 더욱 낯설다. 낯선 와중에 '근대'와 '현대'를 어울러 다룬다니, 미술이라는 분야가 풍기는 배타성이 더해져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졌다. 서양 미술은 전시회가 열린다 치면 이곳저곳에서 바이럴이 되며 화제가 되고는 하지만 한국 미술은 작품의 내용 그 자체보다 경매 가격이나 진위 논란 따위로 보다 적게 접한 것이 솔직한 체감이다. 더불어 서양 미술 보다 한껏 낯선 한국 근·현대 미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라고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다이고 그나마도 닳고 닳아서 낡아버린 지 오래 인터라 저자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여 읽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크게 '도시, 존재, 계절, 내면, 삶'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각 부마다 네 다섯 가지의 소주제로 나뉘는데, 각 소주제마다 한국의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 한 명씩을 매칭하여 비교하고 분석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근대와 현대의 미술 잇기》인 것인데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주제로 묶이는 작품과 작가의 구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소주제가 끝날 때마다 현대 작가의 인터뷰 부록이 수록되어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작품의 맥락이나 작품관, 작업 환경 등을 알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내용 외에도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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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초반의 편견과 인상과는 다르게 내용은 쉽게 읽히며 친숙하게 느껴진다. 저자가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을 감각적으로 감상하기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주류의 감상, 이를테면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감상이 아니었다. 다소 감성적으로 흘러가는 저자의 감상을 따라가는 것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주요한 맥락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절 한가운데에 있었던 근대 작가에 대한 이해는 시대적인 맥락과 개인적 이력이 맞물려 작품의 내력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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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화적 기법에 대한 찬사와 호평은 일정 부분 화가의 재능과 테크닉에 기댈 수 있다. 이와 달리 특정한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그림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람에 대한 존중이 담길 때 명작이 된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에서 느껴지는 깊은 서정성은 키스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p.81,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 떠나온 이들의 시선: 엘리자베스 키스와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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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이나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의 작품 사진이 실린 페이지에서는 그들의 서사와 함께 묶여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였고 마치 현대의 일러스트 같았던 이형록의 <책가문방도8폭병풍>과 이에 영감을 받은 이돈아의 <시공연속체>를 보면서는 근대에서 변주하여 새롭게 탄생한 현대 작품의 또 다른 의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어느 칼럼에서 조선의 모습을 담은 '힙한 감성'으로 소개되었던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을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고, 얄팍한 배경지식의 대다수 지분을 차지했던 이중섭 작가를 다시 읽는 시간은 여전히 애련했다. 종종 페이지를 멈추고 미처 수록되지 못하고 언급만 된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읽고 나서 더 알고 싶어졌던 작가의 생애나 이력이 담긴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작품 앞에 선 저자는 종종 '난해하다'라거나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시간을 들여 찬찬히 작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윽고 저자는 작품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고 작품과 동화되며 비로소 흠뻑 감상에 젖는다. 전문가도 이럴진대 일반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더없이 난해했던 감각과 편견에서 비롯된 거리감이 다소 누그러진다. 특히 현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감상자의 감상과 작가의 의도에서 오는 괴리감에 관한 질문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에 대체적으로 굉장히 관대하고 긍정적이었다. 여러 갈래로 도출되는 감상 또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작품의 연장선상으로 품는 너른 이해는 다시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의 감상과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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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시점>의 어긋난 풍경들이 말을 건다. 살아가며 원하지 않는 장면을 마음대로 잘라내서 버릴 수는 없다고. 다만 이어서 붙여본다. 그 자체로 당신의 삶은 멋스럽다. p.70, 1부 나와 당신의 도시, 풍경 너머의 이야기: 이상범과 권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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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작품을 마주하며 근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정적이지도 고요하지도 않다. 감정과 감상이 요동친다. 근대적 맥락을 품은 작품이 현대적 시점과 맥을 같이 한다. 작가도 미처 몰랐던 맥락을 짚어내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에 무람없이 올라탄다. 결국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은 작품의 질감, 구도, 색채, 재료 등의 내적 요소와 작품의 작가, 시대적 맥락, 개인적 이력 등의 외적 요소, 그리고 감상자의 감수성이 더해지는 다채로운 층위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무대로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의 작품과 서사가 만나 역동적으로 생동하기 시작한다. 마치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오색으로 찬란한 비가 내려 비로소 저마다의 제 색을 뽐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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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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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으로부터 1년. 위법했던 비상계엄은 신속하게 해제되었고, 지난했던 탄핵 과정을 거쳐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새로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숨 가쁘게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가 전복을 꾀했던 내란 세력의 재판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며 끊임없이 들려오던 갖가지 파열음에 종종 체념을 동반한 냉소가 흐르곤 했다. 서서히 피로해질 즈음에 잠시 숨을 고르고 책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멀지 않은 과거, 망그러지며 붕괴되기 시작한 전 정권을 비판적으로 훑어가기 시작한다. 윤석열 정권의 근간을 이루었던 정치 검찰의 폐해, 극우 카르텔과 부정선거론을 주창하는 극우 포퓰리즘, 권력의 사유화가 초래한 온갖 비리의 온상 등은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윤 전 대통령은 상황을 타개할 방편으로 '계엄령' 선포라는 최악의 악수를 두며 사상 초유의 체제 전복을 꾀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민주주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며 위태로워졌고 그동안 축적되어온 내재적 문제점들이 주요 논점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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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좋고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소구력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만 되면 보통 사람의 삶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 우리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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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경화의 세계적인 경향성을 배경으로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과 마가세력의 특성을 윤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분석한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을 짚어내면서도 한국 정치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역사에서 발로한 한국만의 개별적인 문제점을 도출해 내며 실패한 정권의 주요한 원인들을 짚어낸다. 집권자의 왜곡된 민주주의 의식, 제도적 제재가 필요한 '퍼스트레이디'라는 모호한 지위, 제왕적 대통령이 지닌 권력의 견제와 축소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뿌리 깊은 폐해. 그리고 이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 온 '혐오'의 정서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혐오'의 정서가 '정치 팬덤'과 맞물려 확장하면서 정당이 지닌 권위까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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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는 사랑의 표출이 아니라

미움의 배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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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208





 저자는 아주 단호하게 이러한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팬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정치 역사의 변곡점마다 정치 팬덤이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을 톺아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팬덤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지고 진화를 거듭하여 현시점에 이른 정치 팬덤은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 '패권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팬덤은 반대 세력을 향해 막강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내부를 향했을 때는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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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공간이 줄어들게 됐다. 타협이나 다른 생각은 배신, 내부 총질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어젠다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선명한 대치는 삶의 이슈보다는 성패에 집착하는 게임 프레임에 매몰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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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팬덤은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는 곧잘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의 정서로 변질되어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이는 상대와 논의하고 타협을 도출해 내는 건강한 정치의 장을 축소시키고,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부정적 당파성을 강화하여 '저 녀석을 배제하긴 위한' 왜곡된 팬덤 행태를 고착시킨다. 또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없는 맹목적인 지지는 건전한 논의 자체를 불가하게 만들며 상대 진영의 비판적 의견을 '공격'으로 전환하여 인식하고, 이는 다시 '혐오'를 부추기게 되는,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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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팬덤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으로 정의하면서 팬덤이 지닌 양날의 칼을 주의해야 하며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라는 이득을 취하여 정책적인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을 제언한다. 또한 진보 정권의 무능하고 게을렀던 지난 과오들을 지적하면서 진보의 태생적 본질을 다시 끔 회복하여 신념 정치를 탈피하고 정책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책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팬덤 정치를 타도하고, 협치를 기반으로 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효능감을 선사하는 정치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의 공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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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려는 세력, 즉 진보라면 이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는 역할은 진보 정당의 태생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무능했거나 게을렀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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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윤 전 정권의 몰락부터 그 과정,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온, 가장 격동적인 정치 굴곡의 서사를 날카로운 비판을 곁들여 일목요연하게 분석한다. 미국의 정치 상황과의 비교,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과 주요 서사들의 해석 등은 현시대의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근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팬덤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며 좋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혐오'가 판을 치는 정치계에서 그런 정서가 어떻게 기원하고 쓸데없는 살을 붙여왔는지 알게 된 것이 현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수 세력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친일-독재에 가둬 두고, 자신과 그들의 차이를 선악으로 구분하며 적대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열을 다투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책임 정치가 아니라 지적·도덕적 우월감으로 윽박지르는 신념 정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선거 승리를 한 시대를 끌어가는 안정적 다수 연합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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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 '정치적 양극화', '부정적 당파성', '팬덤 정치'…. 여러 정치 콘텐츠를 접하면서 꽤 익숙해진 단어들이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협치'를 부르짖고는 하지만 나는 과연 지금 적절한 협치의 대상, 건전한 토론을 나눌 상대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궁극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정치의 방향성이나 정치를 대하는 '협치'라는 성숙한 태도 등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지만 마치 칼을 들고 덤비는 강도에게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누군가를 향한 혐오나 누군가를 배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정치가 진정한 정도正道라는 것을 지향으로…. 더 이상 '괴물'의 탄생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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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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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을 벽장에 갇혀 지낸 소년이 있다. 1983년 사이렌이 울리던 날, 안나라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산속에 외딴 가옥, 벽장 속에 갇힌 소년의 이름은 조기준. 안나는 기준에게 바깥은 전쟁 중이고, 기준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녔기 때문에 사살 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자신은 다행스럽게도 기준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기준을 돌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안나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 소년, 기준은 그렇게 자신을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 존재'라 여기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팬데믹 시기에 세 번이나 자가 격리를 겪은 우식은 격리와 고립에 염증을 느끼며 세상 밖 타인들의 삶을 온갖 SNS로 염탐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다 우연히 '휴먼북 라이브러리'에서 조기준의 삶을 다룬 《휴먼북 조기준》을 구독하여 열람하게 되면서 벽장 속 조기준의 삶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우식은 기이한 삶을 살았던 조기준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삶을 녹여내어 만들어 낸 방 탈출 카페 '벙커 1983'까지 이르게 된다. 조기준이 갇혀있던 안전 가옥을 재현해 낸 '벙커 1983'에 발을 디딘 순간, 우식은 뜻하지 않게 또다시 고립되어버리고 마는데….





 하나의 휴먼북,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절정에서 마무리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길고 지루한 후일담으로 이루어지는 거였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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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안타깝게만 느껴지던 조기준의 삶은, '김근배'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그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가 복잡하게 얽힌 《휴먼북 조기준》을 읽어갈수록 진짜 조기준의 삶이 어떠했는지 선명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아리송해질 따름이다. 결국 조기준의 삶은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비극에서 발로한 죄책감은 존재를 잠식하기 시작하고, 견뎌내어 살아가기 위해 허구와 거짓으로 그의 삶을 왜곡한다. 그리고 마침내 왜곡된 그 삶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고야 만다. 근배는 비로소 기준의 삶을 이해하며, 《휴먼북 조기준》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는 긴 감상평을 남긴다.



사람에겐 누구나 나가고 싶은 자기만의 벽장이 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p.90



 소설에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가 격리, 납치, 세뇌, 죄책감…. 우식은 세 번의 자가 격리로부터 세상과 단절되고, 우식과 함께 과거의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던 태공은 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속죄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 시킨다. 기이한 고립을 '당했던' 기준도 물리적인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휴먼북 조기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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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한 성장 과정의 비극은 행복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할 힘을 박탈당해 어떤 좋은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조기준이 그랬고, 내가 그랬다. 그 시절 전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그만을 관통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사이렌 소리는 상처를 남겼다.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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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식은 '벙커 1983'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종의 소명을 깨달으며 삶의 고립에서 탈출하고, 사과 트럭에서 기이한 '사과'를 하던 태공은 사과 농장에서 제 나름의 속죄를 계속하며 고립을 이겨낸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저주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타개한다. 그렇다면 기준은? 알 수 없다. 자신의 '고립'을 재현한 '벙커 1983'에서 타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추체험하게 만들며 타인을 통해 여전히 탈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타인에게 고립이라는 안락한 저주를 하나의 기회처럼 제공하는 것일까?





 "사람에겐 몇 개의 방이 있는 걸까요. 그 방이 모두 어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제게도 많은 방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고 아주 더러운 방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방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단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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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배가 남겼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취소선이 가득했던 '접어 둘 페이지'와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니 결말은 한없이 활짝 열려버렸다. 분명한 지향은 탈출과 연대라는 축복 같은 희망으로 읽었는데 아직도 어둠과 단절이 저주처럼 현실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기분이다. 읽기에 난해한 것은 없었지만 도통 감상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고립과 단절이 선사하는 무기력하면서도 중독적인 안락의 속성, 기어코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저력이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인간의 입체적인 속성과 만나 수렴 혹은 충돌하며 나름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





 〈작가의 말〉에서 개인적인 고립의 경험을 고백하며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응원의 말은 금세 위로가 된다. 이 책을 가장 잘 읽는 방식으로 밖에 나가 바람을 느끼며 걷고,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선선한 바람이 좋다고 중얼거리는 산책을 권유한다. 실천적 방식으로의 감상. 오늘은 나도 짬을 내어 부러 공원에 산책을 다녀올까 싶어진다.


 "어둠 속에 오래 있었어요. (…) 그러고는 깨달았죠. 저는 누가 밖에서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해보지도 않고. 저는 진짜 나가고 싶은지 저에게 다시 물었고, 간절함을 확인한 후 손잡이를 잡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며 돌렸어요. 문이 열리더군요. 아주 간단히. 저는 그 방을 탈출했습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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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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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양지영과 양주연을 합쳐서 '양양'이 되기도 한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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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연아,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어느 날 문득 술에 취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주연은 처음으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 대학교 졸업을 앞둔 주연과 비슷한 시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모. 철저하게 가족의 서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 비로소 고모의 존재를 인식한 주연은 자신의 고모인 양지영이라는 여성을 호명한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창들을, 동아리 친구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고모 '양지영'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이 되었고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와 후일담은 다시 이 책, 《양양》이 되었다.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 주연은 본가로 내려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 줄 흔적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지다가 마침내 창고에서 고모의 사진 앨범을 찾아낸다. 어떠한 표정에서도 눈빛만은 단단했던 고모,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진학했던 고모,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지역 대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모…. 지워진 채 존재했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을 그리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저자는 매 순간이 답이 없는 질문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과연 고모, 양지영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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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비롯해 고모의 친구와 동창들에게서 소환되는 고모의 모습들은 다면적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녀를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지영이로, 또는 글과 그림을 좋아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반면에 공과대학 시절 동기들은 과 생활에 의욕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그러나 문학 서클 동아리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당시로써는 당돌하게 입회 목적을 밝히던 자기표현이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기억된다. 여러 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당대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로 당시 고모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기도 한다. 조카 양주연은 고모 양지영이라는 결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억이 달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는 음력 일자까지 철저히 기억하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데, 고모의 죽음은 기일조차 모르는, 애도될 수 없는 죽음으로 머물러 있었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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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고모의 죽음을 목도한다. 당시 고모는 남자친구 집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고모와 고모의 남자친구를 증언하는 고모의 친구들은, 지영이는 강압적이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 했고, 실제로 여러 번 이별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억압적인 관계 속에서 고모의 죽음이 혹시 타인에 의해 종용된 자살, 혹은 타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떠오르고 주연은 고모의 그 남자를 찾아 나서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남자'를 과감하게 소거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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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고모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고모의 마지막을 그가 아니라 고모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p.152





 '양지영'은 지독히도 가부장적인 관습 아래서 장남인 동생(주연의 아버지)에게 존재를 양보해야 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선택한 공과대학에서는 여학생으로써의 부침을 짐작할 수 있었고, 억압적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환멸을 느껴야 했던 고모의 모습들…. 숨죽여 딸(고모)의 사진들을 추렸을 할머니와 여성으로써 비슷한 삶을 살았을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된 주연까지. 주연의 렌즈는 '양지영'이라는 프리즘은 비추고, 이것은 다시 굴절되고 분산되며 시대를 초월하여 또 다른 여성들을 호명하고 있다. 고모의 존재라는 여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이야기는 어느새 확장되고, 가부장이라는 서사 속에서 속절없이 지워져 버린 여성의 존재들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모라는 존재가 나에게 미치는 여러 파동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이 이야기는 고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p.78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누나에 관해, 고모에 관해 인터뷰를 나누던 부녀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고모에 관해 인터뷰할 때, 불쑥 튀어나오던 자신과 아버지에 대한 질문들과 다소 실망스러웠던 답변들. 그리고 비로소 발견해낸 서로의 의외의 면모들로 관계를 재구성한다. 또한 마침내 가부장이라는 멍에에 짓눌려 애도되지 못한 채 지워진 고모의 존재를 복원하며 가족의 서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길지 않은 책인데도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들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겪어봤던 유·무형의 차별, 부녀 관계에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 제사를 기준으로 남·여로 분리되었던 풍경…. 막연한 호기심, 먹먹한 마음, 공감, 서러움, 착잡함 등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끝에 연대와 희망이 있었고 진짜 가족이 있었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양양> p.156




영화 <양양> · My Missing Aunt · 2025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의 포스터들



 영화 <양양>의 각양각색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라 전부 첨부. 고모 양지영의 모습, 고모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습, 고모의 존재로부터 호명된 익명의 다른 여성들, 사진 앨범 속에만 존재하던 고모의 모습들.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인데, 상업 영화관에서는 거의 상영관을 찾아볼 수 없고 주로 서울에 위치한 독립·예술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영 중인 영화관이 하나도 없다…. IPTV나 OTT에 올라오면 꼭 찾아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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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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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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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비상계엄 사태가 야기한, 혼란한 국내 정세 가운데 치러진 이른 대선으로 탄생한 새로운 정부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떠안았다. 도통 종잡을 수 없고, 때로는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미국 대통령의 언행에 세계 여러 나라의 국운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더불어 국외 정세와 맞물려 국내적으로 '혐중'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1차 한미 정상 회담을 치르고, 한숨을 돌린 가운데 경주 APEC을 앞두고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읽게 되었다.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굳이 떠올려 본다면 미국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도 느닷없이 MA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는 것은, 분노한 미국 유권자의 절반을 정치적으로 이용 혹은 악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p.26 _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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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미국이, 트럼프가 대체 왜 이렇게 기이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해석을 돕는다.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이 어떻게 미국인들을 추동 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신자유주의가 지구화되면서 중하층과 노동 계급의 실질 소득률이 정체되고, 민주당 중심의 정부에서 이들과 관련된 정책을 외면하며 그들의 분노가 쌓인 것과 문화적으로 유색 인종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백인 인종이 위기감(다수소수화)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의 MAGA는 국민적 분노와 불안을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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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의 문제의식은, 트럼프의 언어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지난 30년 동안 동맹국들이 우리를 등쳐먹었다'는 인식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적국, 중국과 같은 경쟁 국가도 그렇지만 동맹국들이 미국을 너무 '빨아먹었다milking'는 표현을 썼습니다. p.50_차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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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분노와 불안을 기반으로 탄생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세계적 패권이 선사하는 명성 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리적인 노선을 취하게 되면서 그 화살이 동맹국들에게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대외적으로 패권국으로써 미국의 영향력 또한 점차 감소함에 따라,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옹호하기 위해 독단적인 노선을 강행한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양차 대전과 냉전 시대 등의 역사적 추이로 미루어 볼 때, 스러져가는 패권국이 타국에게 조약을 빙자한 약탈을 자행했던 것처럼 미국 또한 약탈적 패권국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미국은 더욱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동맹국들에게 다각적인 압박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단극 체제가 스러져가고 중국을 중심으로 다극 체제가 대두되면서 중국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확고한 영향력은 무엇인가. 중국은 국책 사업으로 반도체, AI, 로봇 산업 분야에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오면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딥시크 쇼크'를 들 수 있고, 이외에도 중국 내에서 상용되는 첨단 기술들을 예로 들면서 비록 그 원천 기술력이 미국에 비해 열위에 있더라도 꾸준한 투자와 개발을 이어가면서 첨단 기술 상용화의 사회적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 개발 제재로 고립되었던 중국, 그렇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자구적으로 자체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력이 이제는 미국이 견제해야만 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예상보다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 중인 것을 지적하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도 빠르게 틈새시장, 기능 대비 가성비 등의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탈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나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생산 방식에서 탈피하여 무역의 다변화를 꾀할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AI 개발을 국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뒤처진 R&D 개발 역량을 끌어올려, 최종적으로는 한국만의 자주적인 기술력을 보유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독자적인 정치적·경제적·외교적 자율성을 획득해야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학자를 통해 나온 것이든 미디어를 통한 것이든 국제 정치 영역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가지 말들이 그냥 투명한 언어인가, 아니면 정치적 또는 이념적인 맥락 속에서 생산된 것인가를 면밀히 살피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p.99_차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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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볼 때마다 도대체 왜 미국인들은 저런 대통령을 뽑았을까? 트럼프는 왜 저럴까? 혐중이 왜 득세하기 시작했지? 기존 외교 기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도 되는 걸까? …. 명쾌하고 중립적인 해설은 없고 온통 불안과 긴장만을 고조시키는 뉴스와 기사들뿐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이데올로기적이어서 기사나 뉴스를 찾아볼수록 피로감만 더해갔다. 그런 답답하고 무지했던 상황 인식 속에서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한줄기 시원한 해갈이 되어준다. 더불어 현 정부가 채택한 실용 외교·실리주의 노선의 필요성과 정부가 주도하는 AI 정책 담론들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까닭도 책에서 언급한 '미중 관계' 속, 한국의 존립의 방향성이라는 맥락에서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배경적 이해를 돕는다.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정치·외교·경제·기술 분야의 네 명의 전문가들이 대담의 형식을 취한다. 국가의 첨단 기술력이 세계의 패권을 결정하는 '기정학技政學'적인 관점으로 현시점의 미국과 중국의 정세, 관계성을 톺아보며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한국을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소 복잡하고 딱딱하지만 서술은 대담의 형식으로 되어있어 이해하며 읽기에 한결 수월하다. 미중 관계의 전반적인 서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폭넓게 이해해 보고자 하는 일반 대중에게는 더없이 적절한 해설이 되어줄 듯싶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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