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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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을 벽장에 갇혀 지낸 소년이 있다. 1983년 사이렌이 울리던 날, 안나라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산속에 외딴 가옥, 벽장 속에 갇힌 소년의 이름은 조기준. 안나는 기준에게 바깥은 전쟁 중이고, 기준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녔기 때문에 사살 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자신은 다행스럽게도 기준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기준을 돌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안나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 소년, 기준은 그렇게 자신을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 존재'라 여기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팬데믹 시기에 세 번이나 자가 격리를 겪은 우식은 격리와 고립에 염증을 느끼며 세상 밖 타인들의 삶을 온갖 SNS로 염탐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다 우연히 '휴먼북 라이브러리'에서 조기준의 삶을 다룬 《휴먼북 조기준》을 구독하여 열람하게 되면서 벽장 속 조기준의 삶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우식은 기이한 삶을 살았던 조기준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삶을 녹여내어 만들어 낸 방 탈출 카페 '벙커 1983'까지 이르게 된다. 조기준이 갇혀있던 안전 가옥을 재현해 낸 '벙커 1983'에 발을 디딘 순간, 우식은 뜻하지 않게 또다시 고립되어버리고 마는데….





 하나의 휴먼북,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절정에서 마무리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길고 지루한 후일담으로 이루어지는 거였다. p.121

 그저 안타깝게만 느껴지던 조기준의 삶은, '김근배'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그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가 복잡하게 얽힌 《휴먼북 조기준》을 읽어갈수록 진짜 조기준의 삶이 어떠했는지 선명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아리송해질 따름이다. 결국 조기준의 삶은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비극에서 발로한 죄책감은 존재를 잠식하기 시작하고, 견뎌내어 살아가기 위해 허구와 거짓으로 그의 삶을 왜곡한다. 그리고 마침내 왜곡된 그 삶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고야 만다. 근배는 비로소 기준의 삶을 이해하며, 《휴먼북 조기준》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는 긴 감상평을 남긴다.



사람에겐 누구나 나가고 싶은 자기만의 벽장이 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p.90



 소설에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가 격리, 납치, 세뇌, 죄책감…. 우식은 세 번의 자가 격리로부터 세상과 단절되고, 우식과 함께 과거의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던 태공은 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속죄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 시킨다. 기이한 고립을 '당했던' 기준도 물리적인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휴먼북 조기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불행한 성장 과정의 비극은 행복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할 힘을 박탈당해 어떤 좋은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조기준이 그랬고, 내가 그랬다. 그 시절 전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그만을 관통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사이렌 소리는 상처를 남겼다. p.203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식은 '벙커 1983'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종의 소명을 깨달으며 삶의 고립에서 탈출하고, 사과 트럭에서 기이한 '사과'를 하던 태공은 사과 농장에서 제 나름의 속죄를 계속하며 고립을 이겨낸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저주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타개한다. 그렇다면 기준은? 알 수 없다. 자신의 '고립'을 재현한 '벙커 1983'에서 타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추체험하게 만들며 타인을 통해 여전히 탈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타인에게 고립이라는 안락한 저주를 하나의 기회처럼 제공하는 것일까?





 "사람에겐 몇 개의 방이 있는 걸까요. 그 방이 모두 어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제게도 많은 방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고 아주 더러운 방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방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단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p.137

 가장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배가 남겼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취소선이 가득했던 '접어 둘 페이지'와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니 결말은 한없이 활짝 열려버렸다. 분명한 지향은 탈출과 연대라는 축복 같은 희망으로 읽었는데 아직도 어둠과 단절이 저주처럼 현실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기분이다. 읽기에 난해한 것은 없었지만 도통 감상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고립과 단절이 선사하는 무기력하면서도 중독적인 안락의 속성, 기어코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저력이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인간의 입체적인 속성과 만나 수렴 혹은 충돌하며 나름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





 〈작가의 말〉에서 개인적인 고립의 경험을 고백하며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응원의 말은 금세 위로가 된다. 이 책을 가장 잘 읽는 방식으로 밖에 나가 바람을 느끼며 걷고,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선선한 바람이 좋다고 중얼거리는 산책을 권유한다. 실천적 방식으로의 감상. 오늘은 나도 짬을 내어 부러 공원에 산책을 다녀올까 싶어진다.


 "어둠 속에 오래 있었어요. (…) 그러고는 깨달았죠. 저는 누가 밖에서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해보지도 않고. 저는 진짜 나가고 싶은지 저에게 다시 물었고, 간절함을 확인한 후 손잡이를 잡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며 돌렸어요. 문이 열리더군요. 아주 간단히. 저는 그 방을 탈출했습니다. (…)" p.207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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