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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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양지영과 양주연을 합쳐서 '양양'이 되기도 한다. p.58

 "주연아,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어느 날 문득 술에 취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주연은 처음으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 대학교 졸업을 앞둔 주연과 비슷한 시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모. 철저하게 가족의 서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 비로소 고모의 존재를 인식한 주연은 자신의 고모인 양지영이라는 여성을 호명한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창들을, 동아리 친구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고모 '양지영'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이 되었고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와 후일담은 다시 이 책, 《양양》이 되었다.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 주연은 본가로 내려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 줄 흔적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지다가 마침내 창고에서 고모의 사진 앨범을 찾아낸다. 어떠한 표정에서도 눈빛만은 단단했던 고모,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진학했던 고모,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지역 대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모…. 지워진 채 존재했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을 그리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저자는 매 순간이 답이 없는 질문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과연 고모, 양지영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아버지를 비롯해 고모의 친구와 동창들에게서 소환되는 고모의 모습들은 다면적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녀를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지영이로, 또는 글과 그림을 좋아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반면에 공과대학 시절 동기들은 과 생활에 의욕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그러나 문학 서클 동아리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당시로써는 당돌하게 입회 목적을 밝히던 자기표현이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기억된다. 여러 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당대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로 당시 고모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기도 한다. 조카 양주연은 고모 양지영이라는 결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억이 달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는 음력 일자까지 철저히 기억하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데, 고모의 죽음은 기일조차 모르는, 애도될 수 없는 죽음으로 머물러 있었다. p.137

 그리고 고모의 죽음을 목도한다. 당시 고모는 남자친구 집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고모와 고모의 남자친구를 증언하는 고모의 친구들은, 지영이는 강압적이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 했고, 실제로 여러 번 이별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억압적인 관계 속에서 고모의 죽음이 혹시 타인에 의해 종용된 자살, 혹은 타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떠오르고 주연은 고모의 그 남자를 찾아 나서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남자'를 과감하게 소거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결정이었다.

 그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고모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고모의 마지막을 그가 아니라 고모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p.152





 '양지영'은 지독히도 가부장적인 관습 아래서 장남인 동생(주연의 아버지)에게 존재를 양보해야 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선택한 공과대학에서는 여학생으로써의 부침을 짐작할 수 있었고, 억압적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환멸을 느껴야 했던 고모의 모습들…. 숨죽여 딸(고모)의 사진들을 추렸을 할머니와 여성으로써 비슷한 삶을 살았을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된 주연까지. 주연의 렌즈는 '양지영'이라는 프리즘은 비추고, 이것은 다시 굴절되고 분산되며 시대를 초월하여 또 다른 여성들을 호명하고 있다. 고모의 존재라는 여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이야기는 어느새 확장되고, 가부장이라는 서사 속에서 속절없이 지워져 버린 여성의 존재들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모라는 존재가 나에게 미치는 여러 파동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이 이야기는 고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p.78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누나에 관해, 고모에 관해 인터뷰를 나누던 부녀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고모에 관해 인터뷰할 때, 불쑥 튀어나오던 자신과 아버지에 대한 질문들과 다소 실망스러웠던 답변들. 그리고 비로소 발견해낸 서로의 의외의 면모들로 관계를 재구성한다. 또한 마침내 가부장이라는 멍에에 짓눌려 애도되지 못한 채 지워진 고모의 존재를 복원하며 가족의 서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길지 않은 책인데도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들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겪어봤던 유·무형의 차별, 부녀 관계에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 제사를 기준으로 남·여로 분리되었던 풍경…. 막연한 호기심, 먹먹한 마음, 공감, 서러움, 착잡함 등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끝에 연대와 희망이 있었고 진짜 가족이 있었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양양> p.156




영화 <양양> · My Missing Aunt · 2025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의 포스터들



 영화 <양양>의 각양각색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라 전부 첨부. 고모 양지영의 모습, 고모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습, 고모의 존재로부터 호명된 익명의 다른 여성들, 사진 앨범 속에만 존재하던 고모의 모습들.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인데, 상업 영화관에서는 거의 상영관을 찾아볼 수 없고 주로 서울에 위치한 독립·예술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영 중인 영화관이 하나도 없다…. IPTV나 OTT에 올라오면 꼭 찾아서 봐야겠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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