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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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으로부터 1년. 위법했던 비상계엄은 신속하게 해제되었고, 지난했던 탄핵 과정을 거쳐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새로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숨 가쁘게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가 전복을 꾀했던 내란 세력의 재판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며 끊임없이 들려오던 갖가지 파열음에 종종 체념을 동반한 냉소가 흐르곤 했다. 서서히 피로해질 즈음에 잠시 숨을 고르고 책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멀지 않은 과거, 망그러지며 붕괴되기 시작한 전 정권을 비판적으로 훑어가기 시작한다. 윤석열 정권의 근간을 이루었던 정치 검찰의 폐해, 극우 카르텔과 부정선거론을 주창하는 극우 포퓰리즘, 권력의 사유화가 초래한 온갖 비리의 온상 등은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윤 전 대통령은 상황을 타개할 방편으로 '계엄령' 선포라는 최악의 악수를 두며 사상 초유의 체제 전복을 꾀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민주주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며 위태로워졌고 그동안 축적되어온 내재적 문제점들이 주요 논점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좋고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소구력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만 되면 보통 사람의 삶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 우리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p.4

 우경화의 세계적인 경향성을 배경으로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과 마가세력의 특성을 윤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분석한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을 짚어내면서도 한국 정치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역사에서 발로한 한국만의 개별적인 문제점을 도출해 내며 실패한 정권의 주요한 원인들을 짚어낸다. 집권자의 왜곡된 민주주의 의식, 제도적 제재가 필요한 '퍼스트레이디'라는 모호한 지위, 제왕적 대통령이 지닌 권력의 견제와 축소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뿌리 깊은 폐해. 그리고 이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 온 '혐오'의 정서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혐오'의 정서가 '정치 팬덤'과 맞물려 확장하면서 정당이 지닌 권위까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팬덤 정치는 사랑의 표출이 아니라

미움의 배설이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208





 저자는 아주 단호하게 이러한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팬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정치 역사의 변곡점마다 정치 팬덤이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을 톺아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팬덤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지고 진화를 거듭하여 현시점에 이른 정치 팬덤은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 '패권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팬덤은 반대 세력을 향해 막강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내부를 향했을 때는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공간이 줄어들게 됐다. 타협이나 다른 생각은 배신, 내부 총질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어젠다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선명한 대치는 삶의 이슈보다는 성패에 집착하는 게임 프레임에 매몰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p.224

 정치 팬덤은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는 곧잘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의 정서로 변질되어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이는 상대와 논의하고 타협을 도출해 내는 건강한 정치의 장을 축소시키고,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부정적 당파성을 강화하여 '저 녀석을 배제하긴 위한' 왜곡된 팬덤 행태를 고착시킨다. 또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없는 맹목적인 지지는 건전한 논의 자체를 불가하게 만들며 상대 진영의 비판적 의견을 '공격'으로 전환하여 인식하고, 이는 다시 '혐오'를 부추기게 되는,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팬덤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으로 정의하면서 팬덤이 지닌 양날의 칼을 주의해야 하며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라는 이득을 취하여 정책적인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을 제언한다. 또한 진보 정권의 무능하고 게을렀던 지난 과오들을 지적하면서 진보의 태생적 본질을 다시 끔 회복하여 신념 정치를 탈피하고 정책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책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팬덤 정치를 타도하고, 협치를 기반으로 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효능감을 선사하는 정치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의 공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정치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려는 세력, 즉 진보라면 이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는 역할은 진보 정당의 태생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무능했거나 게을렀다. p.196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윤 전 정권의 몰락부터 그 과정,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온, 가장 격동적인 정치 굴곡의 서사를 날카로운 비판을 곁들여 일목요연하게 분석한다. 미국의 정치 상황과의 비교,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과 주요 서사들의 해석 등은 현시대의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근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팬덤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며 좋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혐오'가 판을 치는 정치계에서 그런 정서가 어떻게 기원하고 쓸데없는 살을 붙여왔는지 알게 된 것이 현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수 세력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친일-독재에 가둬 두고, 자신과 그들의 차이를 선악으로 구분하며 적대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열을 다투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책임 정치가 아니라 지적·도덕적 우월감으로 윽박지르는 신념 정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선거 승리를 한 시대를 끌어가는 안정적 다수 연합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p.238

 '혐오', '정치적 양극화', '부정적 당파성', '팬덤 정치'…. 여러 정치 콘텐츠를 접하면서 꽤 익숙해진 단어들이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협치'를 부르짖고는 하지만 나는 과연 지금 적절한 협치의 대상, 건전한 토론을 나눌 상대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궁극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정치의 방향성이나 정치를 대하는 '협치'라는 성숙한 태도 등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지만 마치 칼을 들고 덤비는 강도에게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누군가를 향한 혐오나 누군가를 배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정치가 진정한 정도正道라는 것을 지향으로…. 더 이상 '괴물'의 탄생은 없어야 한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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