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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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는 한겨레문학상 30주년을 기념하며 역대 한겨레문학상 당선 작가들이 본인의 수상작을 모티프로 하여 새로 쓴 스무 편의 신작 소설 앤솔러지다. 당선작의 프롤로그나 에피소드를 다루거나 등장했던 인물 혹은 사건, 소재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 30주년 기념이라는 출간 취지에 맞게 '30'이라는 키워드가 작품 곳곳에 숨어있어서 독자는 마치 퍼즐을 찾는 것 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챙길 수 있다. 당선작을 모티프로 하는 전개 때문에 '기존 작품을 읽지 않아도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사전 배경 없이 독립적으로 읽어도 맥락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작품을 먼저 읽어 본 독자라면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초면인 독자는 새로운 세계관을 마주할 수 있다는 양면적인 즐거움이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앤솔러지에 관한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주제로 묶여 있다곤 하지만 작가마다 달라지는 문체나 글의 분위기와 같은 특성에 매번 몰입하고 집중해야 하는 얄팍한 피로감과 그로 인해 종종 샛길로 새 버리고 마는 산만함이 그렇다. 그리고 어쩐지 온전하게 하나의 책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요상한 분절감이 드는, 스스로가 만든 그런 진입 장벽이 있었다. 아예 안 읽지는 않지만 스스로 잘 찾아읽지도 않는 편이랄까.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슨 무슨 문학 수상 작품집'은 읽어 본 적이 잘 없다. 《서른 번의 힌트》도, 한겨레문학상이 '30주년'이라는 제법 긴 역사를 가진 것에 놀랐고 인지도가 높은 다수의 작가들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에 놀랐을 뿐, 앤솔러지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 클리셰처럼 뻔한 반전을 주고 싶지 않지만! 별 도리 없이 나는 또 '뭐야? 재밌잖아…'를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과연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라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나는 이 책에서 몇몇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것을 제외하면 지면에 실린 작품과 연관 있는 당선작을 사전에 읽어본 적이 없다. 각 작품의 길이는 아쉬울 정도로 짧지만 스무 편이 실린 까닭에 4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을 자랑한다. 제법 두꺼운 책을 다 읽어갈 즈음에 여지없이 아쉬운 마음이 들고 말았다. 과연 새로운 세계로의 마중물이라는, 다소 진부하고도 전형적인 표현이 이렇게 또 적절할 수가 있나 싶었다. 종종 책을 읽다가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들고 작가와 작품의 목록을 톺아보며 읽을 책을 추리고 나니 SNS를 유랑하며 추천 도서 리스트를 검색하는 소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일단은 인상 깊은 작품만을 꼽아도 열 손가락이….


최근 수상을 한 작가부터 역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인지 현 사회의 문제가 녹아든 시의성 있는 작품들이 책을 다 읽고도 기억에 남는다. 하승민의 〈유전자〉에서는 피부가 파란, 블루 멜라닌이라는 희귀 질환을 가진 알파의 시선을 통해서 사회에서 자각 없이 이루어지는 차별의 행태들을 조명한다. 특히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집회 현장에서조차 알파에게 무람없이 던져진 차별의 언행은 '차별 속의 차별, 차별의 계급'을 다뤘던 어느 기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김희재의 〈잠도 가는 길〉과 강성봉의 〈진홍: 박수 외전〉은 동성을 사랑했던 인물들의 비애를 다루는데, 〈잠도 가는 길〉은 그 인물 외에 주변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 비애를 다루는 것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지만 끝내는 연대로 극복하는 모습이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진홍: 박수 외전〉은 박수무당이 등장하며 오컬트를 소재로 펼쳐지는 독특한 전개는 도입부터 오컬트 덕후를 사로잡았다.


서수진의 〈정말 괜찮으세요?〉는 한국어 학당이라는 여초 직장에서 반대로 차별받는 남성의 모습을, 한은형의 〈빵과 우유〉에서는 모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여성을 통해서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어떠한 문제를 두고 다른 각도와 다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는 부분들은 머릿속에 더 각인되어 기억에 남는다. 그런 관점에서 조두진의 〈표범〉에서 나오는 애완용 표범에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 버린' 표범이 자신은 집에 사는 흑돼지가 되고 싶었다는 고백은 인간이라는 관점이 또 얼마나 일방적이고 오만한 것인지, 머쓱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종을 가리지 않는구나….



가장 울림이 남았던 작품을 꼽자면 최진영의 〈무명〉이었다. 가정 폭력을 당하던 여성 화자가 어떤 사건이 기재된 신문지 뭉치를 품에 안고 등장한다. 신원 불명의, 미성년자로 추정되는, 작고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중년의 남성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들어 살해했다는 기사. 기사 속의 가해자인 무명의 그녀에게 화자는 동질감을 느꼈을까. 끈질긴 가정 폭력 속에서 그녀를 구원하는 것은 세 명의 여성과의 우연하고도 짧은 만남이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난 그녀의 희망적인 결말이, 대체로 염세적으로 끝나고마는 현실 세계의 결말을 부디 압도하길 바라게 된다. 이렇게 읽고 나면 당연히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외에도 다른 작품보다 바로 전작이 더 궁금한 경우가 있었는데, 강태식의 〈모든 고릴라에게〉와 장강명의 〈서강대교를 걷다〉, 그리고 박서련의 〈옥이〉가 그랬다. 특히 내가 읽었던 박서련 작가의 다른 작품들의 문체와는 확연히 달랐던 〈옥이〉를 읽고 〈체공녀 강주룡〉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꼽자면 심윤경의 〈너를 응원해〉를 꼽고 싶다. 똑똑하고 재능 많은 딸의 아이돌 연습생 문제를 고민하던 가족이 비상 계엄 당일 밤, 국회 앞으로 향하면서 그 동안 했던 고민이 사사로워지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사태를 겪으며 미래의 희망으로 변모하는 인식의 과정이 인상적이다. 일련의 사태들이 이제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뉴스들이 쏟아지는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절망과 분노의 시간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너무 감상적인가 싶다가도, 작품 속 가족의 모습, 무리들 속에 묵묵히 앞 사람을 따라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다시 소생시키는, 충분히 감동적인 역사적인 순간이 어떻게 개인의, 시민의 삶에서 발현되는지 들여다보는 시선이었다. 



30년. 무려 한 세대를 지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자면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의 기간을 '세대'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30년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과는 사뭇 다르게 이제 겨우 어른으로부터 일을 물려받아 제 몫을 다하기 시작하는, 단단히 준비하고 출발선에 서서 준비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30년의 과거를 반추하며 읽고, 다음 30년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어떤 기개가 느껴진달까. 앤솔러지의 제목인 《서른 번의 힌트》는 앞으로의 30년, 다음 세대로의 어떤 지향점이 결국 과거 세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음을 표상한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당장 제 30회 한겨레문학상에 김홍 작가의 《말뚝들》이 당선되었다고 하는데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이번 앤솔러지 《서른 번의 힌트》를 읽으면 가장 많이 한 생각을 또 해본다.




수많은 갈피에서 추려낸

〈유전자〉, 하승민 | 알파는 언제나 자신이 소수자이며 박해받는 계층이라 여겼지만 그런 집단에게 부여되는 혜택을 얻지 못했다. 알파는 국가보훈 대상자의 자녀가 아니었고 농어촌 출신도 아니었으며 특별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다. p.18


〈진홍: 박수 외전〉, 강성봉 | 떠나간 사람들에게 죄스러워서, 남겨진 제 운명이 가혹해서 희원은 밤새 통곡했다. 사람 목숨으로 이어진 다리를 밟고 저 아래 흐르는 흙탕물을 내려다보니, 죽음을 기억한다는 건 지나간 생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와 고통스럽게 대면하는 일이었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저 피부 가죽 한 치 아래 있는 영혼을 파르르 떠는 일이었다. p.70


〈옥이〉, 박서련 | 그때 내가 헛꿈을 꾸고 있다는 것은 나도 벌써 알았습네다. 꿈이라는 건, 소망이라는 건 꼭 이루어지지 않더래도 하나의 취미로써 누려지는 것이 아니갔어요. 열서너 살 무렵의 나는 그렇듯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곱씹는 그 자체가 즐거웠을 따름입네다. 그런데 서른이 되고서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데다. 형님은 어린애의 하찮은 자유연애 타령에 찬물을 아니 끼얹고 잠자코 들어주었고나. 내 신세 어차피 이래 되리란 건 그때 이미 어른이었던 형님이 더 잘 알았을 텐데, 형님은 꿈 깨라 산통 깨지 않고 나를 봐주었고나. p.125


〈무명〉, 최진영 | X에게 학대당할 때도 각오하지 않았던 죽음이었다. 그런데 각오했다.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것의 그림자만큼 불행감은 컸다. 나를 죽일 수도 있는 행복에 X의 지분은 없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X에게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X의 죽음은 내게 아무 의미 없다. 없는 사람의 죽음은 나를 흔들 수 없다. p.224


〈표범〉, 조두진 | 어찌 된 거야?

내가 다가서며 물었다. 나를 알아보았음에도 녀석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다만 한없이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집에 사는 흑돼지이고 싶었다.

흑돼지이고 싶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눈 덮인 킬리만자로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녀야지!

킬리만자로에 무슨 놈의 자유가 있어? 종일 먹이를 찾아헤매고, 천적을 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

킬리만자로산의 짙은 아침 안개 속으로 녀석이 멀어졌다. p.297


〈너를 응원해〉, 심윤경 | 아이들이 앞서고 부부는 뒤따랐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익숙하게 따라 불렀다. 학교에서 응원가로 늘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아내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며, 그는 그 노래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세상에는 반복되는 슬픔들이 있지만 너를 생각하며 나도 강해진다는 내용이었다. p.335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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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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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빗나갔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을 보고 저항 없이 맨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홍콩을 무대로 한, 농도 짙은 누아르 장르의 어떤 무엇이었다. 청킹맨션의 서사가 부여하는 이미지와 '보스'가 주는 어감이 딱 그러했다. 청킹맨션은 홍콩의 대표적인 슬럼 지역으로, 영화 〈중경삼림〉의 주요한 배경으로도 유명해서 홍콩 여행의 주요 코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저렴한 숙소 덕분에 흉흉한 별점과 뜬소문에도 많은 배낭여행객들이 찾는 가성비 숙소로도 유명한 이 맨션에서의 '보스'는 누구이며, 그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초장부터 반전이라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인문학 혹은 사회학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한 번, 분류에서 한 번, 출판사 소개에서 한 번씩, 총 세 번에 비틀린 추측 속에서 호기심이 부풀기 시작했다.




먼저 이 책을 쓴 저자인 오가와 사야카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저자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교수로 23살부터 탄자니아를 드나들며 스와힐리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들의 관습을 연구했다고 한다. 주로 동아프리카 국가들의 비공식 교역 구조와 중고품·위조품의 유통 및 소비를 연구하던 저자가 직접 홍콩 청킹맨션에 체류하며 홍콩 청킹맨션에서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 활동을 탐구한 내용이 바로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인 것이다. 탄자니아인들의 비즈니스계에서 '보스'로 통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카라마'였다. 책은 보스인 카라마를 중심으로 그들의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탐구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청킹맨션의 보스인 카라마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의 혼혈로 동글동글한 외양으로 묘사되는 중년 남성인 카르마는 중고차 브로커다. 약속 시간 한두 시간쯤은 우습게 어기고도 태연자약한 태도를 겸비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법한 SNS 활동에 열중하며 남의 영업장에서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냉장고를 뒤져 직원식을 데워 먹는다. 이리저리 담배를 꾸러 다니면서도 잘 곳이 없는 이에게는 또 무람없이 잘 곳을 마련해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이렇듯 일관성 없고 예측 불가능한 카라마의 행동을 읽다 보면 기존에 스스로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가늠해 보며 자칭 타칭 '보스'라 불리는 그에 대한 정의를 잠시 유보할 수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행간을 발견하게 된다.


📌 즉 카라마 같은 브로커들은, 홍콩 지리 및 업자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고객과 아프리카계 고개의 방식과 수법에 익숙하지 않아 신뢰할 만한 고객을 가려낼 수가 없는 업자 사이에서 '신용'을 보증하고 '수수료'나 '마진'을 챙기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p.116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카라마는 홍콩으로 중고차를 매입하기 원하는 구매자가 나타나면 카라마는 구매자가 요구하는 중고차나 부품들을 취급하는 업자를 찾아 가격을 협상하고 통관에 필요한 복잡다단한 절차를 수행한다. 얼핏 한 문장으로 설명이 가능해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카르마는 구매자의 요구에 맞춰 홍콩 시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하거나, 목적 외의 잡화 같은 필요 물품 구매에도 도움을 주며 밤에는 홍콩의 밤 문화의 여흥을 안내해 주기도 한다. 카라마의 이 모든 에스코트에 부과되는 추가 요금은 없다. 이런 중개 과정 곳곳에서 다른 중개 업자들이 우연히 등장하여 카라마와 동행하거나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도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관계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바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호수성'으로, 보통 '호혜'나 '상호성'으로 번역되나 책에서는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긍정과 부정의 의미 모두를 포함한 호수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누구도 믿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와 누구에게든 호혜를 베푸는 그들의 행동의 괴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인 호수성은 그들의 자체적으로 설립한 '동아프리카 연합 홍콩 조합'이라는 커뮤니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홍콩을 거점으로 교역하는 이들이 주축인 이 범 아프리카계 연합은 어느 동포의 시신 운구 경비를 모금하기 위해 처음 결성되어서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연합에 기여한 정도와 상관없이 기꺼이 모금을 진행하고 홍콩에서부터 자국으로까지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인류애적이기도 하고 인상적이기도 하다.


📌 말하자면 이들은 '서로 돕는 인간을 구별·평가하는 기준을 명확화하기'와 '상호 부조의 기준·규칙을 명확화하기', 어느 쪽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합 운영과 조합 내 상호 부조 면에서, 엄밀한 기준과 약속에 의해 '서로 무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것'을 되도록 회피하기를 규칙으로 삼고 있다고 보인다. p.93


청킹맨션에서 그들의 비즈니스는 아이러니한 점들이 많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래도 명색에 '비즈니스'인데 어딘가 헐렁하고 술렁한 구석들이 만연하고 이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또한 능구렁적인(?) 면모가 다분하다. 이를 관찰하던 저자도 종종 짜증을 내며 카라마에게 질문을 던지곤 하는데 이를 받아치는 카라마의 이유도 있고, 여유도 넘치는, 나름의 철학까지 곁들인 대답에 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카라마를 필두로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사업과 삶을 교차하며 더듬어 나가다 보면 혼란스럽게만 보였던 것들이 나름의 구조를 갖추고 느슨하게 연대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끝내 그려볼 수 있다. 그들만의 커뮤니에서 통용되는 관례들, 교역 플랫폼으로서의 SNS 활동과 협동형 커먼즈로서의 TRUST, '겸사겸사'의 인식 등 인류학자인 저자가 분석하고 도출해낸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의 비공식 경제 구조 및 체계는 신선하고도 흥미롭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중략)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라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화한다. 현대 일본에서 '나만 애쓰고 있다,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과 이것이 낳는 두려움-예를 들면 혐오 발언-이, 친구나 부부 사이 등과 같은 인간관계를 맺기 성가시다는 감각부터 연금, 기초 생활 보장 등의 사회 제도에 대한 불신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p.259


특히나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상호성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아주 크게 공감할 수 있었는데 다시 돌아가 생각해 보니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형성한 커뮤니티와 아주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로써 그들이 구축한 커뮤니티 속에서 돌아가는 비공식 사회·경제 구조가 현대 사회·경제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들이 인식하고 행하는 호혜, 어떠한 대가성 호의가 아닌, 느슨하고도 광범위하며 무의식적인 연대의 범위,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실의 지금 순간의 결과로 따지는 당위성 등이 현대의 상호성과 비교할 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또 한 번의 아이러니한 점이다.





추천의 말로 시작하는 책의 첫 문장은 '무지막지하게 재밌다'는 것이었다. '아니, 인문학이 재미있을 수가 있나? 아니, 재미있을 수는 있는데, 그게 첫 문장으로 뱉어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재미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여러 번의 비틀림과 어긋남으로 초래한 호기심은 끝내 재미가 되어 돌아와 나의 차례에서, 마치 돌림 노래처럼, 나도 결국에는 재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밌다. 청킹맨션이 주는 불온한 이미지, 그 미지의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느슨한 질서, 카라마라는 인물의 독특한 개성, 그들이 구축한 대안적 커뮤니티 등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랄까. 거시적으로 그들의 교역·경제·사회적인 구조를 톺아보는 것도 차원의 지평을 넓히는 순간이라 좋았지만 무엇보다 청킹맨션 탄자니아인들이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 누구도 믿지 않지만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적당한 거리에서의, 적당한 온도의 호의가 주는 울림을 곱씹게 된다.


📌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애당초 이들은 타자의 과거나 현재 상황을 속속들이 알려 하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문맥에 따라 한정적인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p.166




출판사 갈라파고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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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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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지 오웰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은 단연코 소설 《동물농장》《1984》일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도, 유명한 이 두 작품은 학창 시절에 항상 추천도서나 권장도서 목록에 꼭 올라있었고,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어느 교양 수업의 주교재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 연달아 읽고 있는 조지 오웰 시리즈에서, 에세이 선집인 《나는 왜 쓰는가》와 르포르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그랬지만 소설인 《숨 쉬러 나가다》를 읽으면서도 조지 오웰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치와 예술의 합치'를 꾀하고자 했던 노력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숨 쉬러 나가다》《동물농장》《1984》가 나오기 전에 출간된 만큼 그의 정치적 문학관이 발현되기 시작한 출발 지점에서의 첫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은 중년의 남성인 조지 볼링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며, 보험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이 사내는 아침에 일어나 목욕을 하며 나이가 들어 퉁퉁 해져있는 자신의 몸을 보고 열심히 변명을 해보지만 끝내 우울해하며 좌절한다. 뒷덜미에 어쭙잖게 남은 목욕 거품을 불쾌해하며 간만에 휴무를 맞아 새로운 틀니를 찾으러 나선 길에서 그는 어느 포스터의 조그 왕에 관한 어떤 소식을 듣다가 어린 시절 교구 성당에서 듣던 찬송가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되고 그 순간을 틈타 속절없이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짙은 과거의 향수는 그의 유년 시절부터 훑어가기 시작한다.



책의 꽤 많은 부분은 조지 볼링의 과거 시절을 회상하며 묘사하는데 할애한다. 곡물 가루가 살포시 내려앉은 아버지의 모습, 매일 반죽을 빚던 든든한 함선 같은 어머니의 모습과 각자의 읽을거리를 들고 모여 앉아 즐기던 티타임에서의 단상들 또는 어릴 적 패거리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벌였던 소동극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어린 조지 볼링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낚시였는데 이 '낚시'라는 행위는 현재의 볼링을 추동하기 시작한다. 어릴 적 빈필드하우스라는 로어빈필드의 어느 저택 근처에서 발견한 숨은 못에서 거대한 잉어를 발견하게 되고, 기필코 그 잉어를 낚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지만 그 다짐은 끝내 이뤄지지 않은 유년 시절의 한낱 소망으로 남아버렸다.



로어빈필드에 다시 가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이 난 것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이다. 숨 쉬러 나간다는 것! 커다란 바다거북이 열심히 사지를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 코를 쑥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 다음, 해초와 문어들이 있는 물 밑으로 다시 내려오듯 말이다. 우리는 모두 쓰레기통 밑바닥에서 질식할 듯 지내고 있는데, 나는 바깥으로 나갈 길을 찾은 것이었다. 로어빈필드로 돌아가는 것 말이다! p.265



현실의 권태와 과거의 향수는 그를 계속해서 추동했고 마침내 과거 그 시절 빈필드하우스의 그 숨은 못, 거대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비상금 17파운드와 일주일 간의 거짓 휴가를 비밀에 부치며 어린 시절 그 마을로 혼자만의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수십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볼링의 노스탤지어를 무용하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가 알던 이들의 이름은 묘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고, 산업화가 진행된 마을에 그의 추억이 설자리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를 추동했던 그 신비한 연못이 있던 저택은 어느새 요양원으로 용도를 변경한지 오래였고, 거대한 연못 또한 주택단지로 개발되었으며 소망이 가득했던 그 신비한 못은 말 그대로 쓰레기 구덩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꿈에다 수류탄을 투척한 것이었고, 실수가 없도록 공군이 따라와 500파운드짜리 TNT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p.353





피상적으로는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중년의 위기'를 겪는 웃픈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전후의 시대적 상황과 당대의 인간 군상을 자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희망이라고 표상되는 삶의 어떤 것들이 분절되고 생의 행로가 변곡점을 만나 휘어가면서 겪는 개인적인 변화, 이를테면 전쟁을 통해서 애국심이 고취되거나 참전으로 인한 계급 상승의 기대 같은 것이 전후에는 극심한 실업난에 빠지며 모든 것이 신기루였음을 깨닫는 과정 속에서 변모하는 냉소적인 태도 등이 그러하다. 또한 노동 계층인 자신과 중산층이었던 아내 힐다와의 '돈'이라는 가치를 두고 갈등하는 계급 관념의 차이도 드러난다. 상황과 인물에 대한 볼링의 자조적인 인식은 오웰의 냉소적인 위트와 만나 볼링이라는 인물과 잘 버무려진다.



조지 볼링은 어느 날 파시즘을 타도하자는 연설을 듣고, 애국심에 고취되어 전쟁을 옹호하던 청년들과의 문답에서 전쟁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일갈해 준 뒤, 울적한 마음으로 포티어스라는 친구의 집을 찾아간다. 포티어스는 전직 교장 출신으로 박학다식한 인텔리였다. 볼링은 포티어스에게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대한 불안과 팽배해지는 파시즘에 대한 우려를 표출하지만 포티어스는 전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딴소리를 한다. 볼링은 결국 자신의 지식에만 매몰된 포티어스에게 크게 실망하게 된다. 또 기대에 부풀어 찾아간 로어빈폴드에서 폭격기의 오발탄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한 현장을 목격하고는 학을 떼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 장면은 오웰을 목이 볼링을 빗대어 비판하고자 했던 당대 사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비참한 전쟁의 현실과 전쟁 이후의 경제난과 실업, 온갖 선전이 판을 치는 혼란스러운 시대상에 대한 오웰의 우려는 현실에서 곧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비극적인 예언이 되고 만다.



영국이 파시스트 천지가 되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사와 청중 가운데 네 명의 공산주의자의 운명이야 물론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그들은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상대의 얼굴을 뭉개버리든 제 얼굴이 뭉개지든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고만고만한 사람이야 아마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정말이지 두렵다. p.237






조지 볼링의 삶의 궤적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그것으로 비롯한 시대적 부산물인 여러 갈래의 비극을 따라간다. 작가인 조지 오웰의 냉철한 정치적 인식이 비판적으로 녹아 있는 《숨 쉬러 나가다》는 조지 볼링이라는 인물이 과거 자신만의 비밀 연못 속 거대 잉어라는 희망이, 산업화에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과거 시대의 영광이 이제 더는 현재를 구원할 수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성실한 노동자들이 거대 자본에 의해서 스러지는 희망 없는 현실, 전쟁의 현실적인 참혹함과 모순, 전후의 대책 없는 실업난, 점점 팽배해지는 파시즘의 위협, 인텔리들의 피상적인 현실 인식, 2차 세계 대전 발발에 대한 우려와 불안 등은 거대 담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들의 삶 곳곳에 지독하게도 들러붙어있다. 에세이와 르포를 거치면서 터득한 조지 오웰의 섬세하고 꼼꼼하며 냉철한 시선이 소설 《숨 쉬러 나가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는 것이다. 특유의 비판적인 관점이 자조적인 위트로 구현되는 필력 또한 유려해서 흡입력도 대단한, 여러모로 문학의 저변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던 조지 오웰의 시간이었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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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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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은 후에 그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앞선 에세이에서 오웰의 전반적인 생의 이력과 그가 주창하는 정치적 사상과 사회적인 비평들은 이 책을 몰입하면서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바탕 지식이 되어주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이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 생활에서 환멸을 느끼고 고국으로 돌아온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 경찰 간부로서의 생활은 그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고 '피억압자와 억압자'라는 부조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문제적 의식을 짙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레프트 북클럽이라는 진보 단체의 청탁으로 이 르포를 집필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지 오웰의 이 르포는 당대에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핍진한 기록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지대하고도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




이 르포의 1부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영국 북부 탄광 지역의 광부들의 전반적인 삶을 오웰 자신이 직접 체험하며 탐구한 내용이다. 시작은 그가 묵었던 하숙집의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된다. 다리를 곧게 뻗을만한 정도의 공간도 확보되지 못한 침실 공간, 먼지가 덥수룩하게 쌓인 가구들, 하숙집에서 제공되는 빈약하고 불결한 식사 수준… 등의 묘사를 어찌나 세세하게 포착하는지 읽는 내내 불쾌한 감각이 살갗을 더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웰이 여러 하숙집을 비교하며 기록한 메모들을 비교하며 읽어도 그가 머문 브루커 씨의 하숙집이 그렇게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광부를 비롯한 노동 계급의 하층민들의 주거 수준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침 식사 때 식탁 밑에 가득 찬 요강 단지가 있는 것을 본 날,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있다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음식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의미하게 정체되어 썩어간다는 느낌, 사람들이 지하에 갇혀 바퀴벌레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끊임없이 비열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p.26


오웰은 광부가 되어 갱도의 막장으로 입장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곤혹스러움이 그를 덮친다. 암흑과 소음, 탁한 공기, 탄진 속에서 온전히 서서 걷기도 힘든 상태로 막장까지 기어가듯 걸어간다. 입구에서부터 막장까지의 길이는 멀게는 수 킬로미터까지 떨어져 있는데, 이 막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부조리부터가 시작이었다. 막장에서 무릎을 꿇고 석탄을 채굴하기 시작하는 노동은 마땅한 쉬는 시간 없이 7시간의 고강도 노동으로 이어진다. 엄청난 강도의 육체노동에 비해 그들이 받는 임금 수준은 형편없을뿐더러 그마저도 램프 같은 필수품의 값이 부당하게 청구되는 등 다분히 착취적인 면모들이 드러난다. 특히 일반적인 통계와 현장의 실제적인 상황을 놓고 비교하는 부분들은 수치와 현실의 사이의 괴리를 짚어내는, 분석적이고 꼼꼼한 시선의 해석이 아닐 수가 없다.





막장 체험에서 더 나아가 광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대한 탐색도 이어나간다. 등을 맞댄 공동 주택이나 버스를 개조한 캐러밴 등의 주거 형태는 슬럼화되어서 정부의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다. 인구 과밀 문제 및 슬럼가 철거를 위한 주택 재개발 계획은 몹시 느리기도 했지만 비인간적인 방식, 예컨대 근무지와 주거지 간의 거리 및 교통편을 고려하지 않거나 고지대에 지어져서 기후 조건을 무시하는 등의 무자비한 방식을 채택한다. 당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처리'하는 것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주택의 입주 조건과 제약들은 까다롭기 마련이었고, 오웰은 이런 수칙들은 주거민, 즉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생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은, 대량 실업 상황에서의 실업 수당에 관한 여러 허울들이다. 당국에서 제공하는 수당과 현실에서 수급자들이 그 수당을 가지고 생활하는 수준의 차이, 실업 수당으로부터의 사각지대에서 생기는 모순 등을 수치적으로 비교한다. 또한 '실업'을 인지하는 차이를 지적하면서 '개인적인 재앙' 또는 '개인의 게으름'으로 단순 납작하게 정의하는 것을 경계한다. 광부로 대변되는 노동 계급의 거의 모든 실태, 열악한 노동 환경과 형편없는 임금, 슬럼화된 주거지와 명분뿐인 실업 수당, 더불어 광부라는 노동 계급에 대한 편견과 인간적인 몰이해를 깊이 파고든다. 연민과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감상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 날카롭고 꼼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 상황과 실태를 담담하게 서술하며, 통계와 수치를 사용하여 구체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의 접근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그들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영향력이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피동적인' 역할로 축소시켜버린다. p.66




2부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상향으로 하는 오웰의 정치적인 견해와 더불어 파시즘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써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오웰의 주장을 다룬다. 일단은 조지 오웰의 자전적인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특히 버마에서 제국 경찰 간부로 재직하던 시절 속 괴로웠던 심정을 고백하며 5년 만에 퇴직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피압제자'의 위치에서 일종의 속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부랑자 생활을 시작한다. 오웰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기도 하고, 빈민 구제소에 들락거리며 노동 계급의 하층민의 삶에 융해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그는 노동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특성과 진정성을 이해하게 되며 이와 비교하여 부르주아 계급, 중산층의 허울과 위선을 서술한다.


내가 돈을 기준으로 계급을 정의하고 있음을 간파하셨을 텐데, 그렇게 해야 이해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계급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돈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으로 이루어진 계층 구조이지만, 거기에 그림자 같은 계급 제도가 스며들어 있는 형국이다. p.162


특히 오웰은 자신을 '상류 중산층의 하류 계급'이라는 신분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삶의 여흥을 즐기는 방식, 일상을 영유하는 과정 그리고 'h' 발음의 유무로써 신분을 구분하나,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계급에 가까운 재정 상황을 유지하는 처지를 이른다. 이 모순적인 계급에 속한 오웰은 다시, 노동 계급에 대한 모멸적인 인식이 태생부터 유래한 과정과 자신 또한 그러한 인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를 고백한다. 버마 시절로부터의 양심의 가책은 자발적 부랑자 생활을 시작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삶에 직접 뛰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노동 계급에 대한 차별적이고 모멸적인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웰은 자신과 같은 다수의 중산층 하류 계급의 특성을 해석하고 그 계급적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노동 계급이 중산층과 부르주아 계급을 오만하고 게으른 무지렁이로 폄하하며 반목하는 인식을 두 계급이 화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인으로 분석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웰은 자신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다수의 대중에게 전파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인텔리들이 주장해왔던 사회주의 운동의 위선적이고 피상적인 면모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본질을 '정의와 자유'로 정의한다. 여러 가지 방법론 중 하나의 예시로, 부르주아 중산층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인 계급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들의 '동지' 등의 상투어를 강요하지 않는 방식 등 보다 포괄적이고 대중적이며 세련된 사회주의 운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적인 요소로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자-피약탈자'라는 부조리한 경제 체제 구조로 인식해 보자는 하나의 대안은 인상적이다.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그러나 이런 이상은 거의 완전히 잊혀버려 '바탕'이란 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버렸다. 똥 더미 속에 감춰진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p.286



조지 오웰은 이 책을 집필하고 탈고하자마자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 당시 팽배했던 파시즘의 영향권에 대항하기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제안은 그 우려와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노동 계급, 피억압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체험적 노력들과 섬세하면서도 냉철한 시선들은 당신의 사회적 배경과 오웰의 계급적 신분까지 고려하면 사뭇 경이롭기까지 하다. 노동하는 삶의 르포와 파시즘에 대한 저항, 사회주의라는 사상까지 읽어나가면서 떨칠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노동 사정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 산업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 고공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현시점에서 다시 읽는 조지 오웰의 책들은 이런 지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그의 글들이 아직까지 유효한 까닭이 서글프면서도 그의 냉철하고도 날카로운 현실 비판 의식은 다시 널리 읽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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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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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초판 29편의 에세이에 국내 초역 2편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이다. 도합 31편의 에세이와 조지 오웰의 연보, 조지 오웰과 책의 이해를 돕는 옮긴이의 말까지 합하면 500페이지가 거뜬히 넘어간다. 옮긴이가 선정한 31편의 에세이는 실제 발간된 순서대로 실려있고, 각 에세이의 첫 부분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속 작가 조지 오웰의 개인적 상황을 덧붙인 주석이 달려있어 각 편의 시대적인 맥락의 이해를 돕는다. 조지 오웰의 개인사 관련 에세이나 사회·정치 비평, 작가론 등 다종다양한 방면의 글들이 쏟아지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뒤에 짤막한 작가의 연보를 통해 그의 생애 흐름을 먼저 이해한 뒤에 읽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무수한 에세이와 서평과 칼럼을 남겼던 그는 소설 《1984》《동물농장》으로 위대한 작가 반열에 들어섰던 명성만큼이나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도 그 역량만큼이나 과연 대단하다. 당대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여러 정치사상에 대한 정치 비평이나 칼럼, 시대적 흐름에 놓인 사회적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 등의 글들은 다소 어렵기는 해도 정치와 예술의 융합을 꾀하고자 했던 그의 정치관과 예술관 중의 한 축을 농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에세이들이다. 특히 당대 세계 대전이라는 폭력적이고도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모순적이면서도 분열되는 다양한 계급층의 태도와 여러 어지러운 사상들 간의 충돌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태도는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만큼 완벽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이었다.



이러저러하게 냉철한 정치 비평도 인상적이지만 기억에 남는 에세이들은 그가 어릴 적 겪은 기숙학교에서의 일들이라던가, 대영제국 시절 버마에서 제국 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겪은 일들이라던가, 장미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한 단상이라던가 같은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런 글들 속에서 작가 조지 오웰을 넘어선 인간 에릭 아서 블레어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두 소설만으로 조지 오웰을 설명하기에는 역시나 부족한 측면이 있기에 여러 에세이를 모아놓은 이 묶음이야말로 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꽤 총명했던 그는 명문 학교였던 이튼 스쿨을 장학생이었다. 이튼 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다녔던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유년 시절을 반추하며 쓴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자전적 에세이는 그 제목부터 풍자적이다. 학생의 부모 소득 수준이나 자산 규모 혹은 작위라는 계급에 따라서 행해지는 교사들의 차별, 체벌을 빙자한 폭력, 열악한 기숙 환경 속에서 어린 조지 오웰이 파악했던 부조리한 생태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반액 장학생이자 평범했던 가정 출신이었던 오웰에게 학교가 기대하는 것은 명문 학교 입학이라는 도구적 결과였을 뿐이었다. 폭력적인 교사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일말의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양가감정에 관한 서술은 세태를 인식하는 작가의 세밀한 감각을 엿볼 수 있고, 부조리한 생태 속에서 일방적으로 찍힌 낙인을 몸소 체화하면서 깨닫는 차별의 고백은 그 담담한 서술이 상황을 더욱 부조리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당하는 건 가난하지만 '재주'는 있는 아이였다. 그런 우리의 머리는 그가 돈을 묻어둔 금광이었으니, 그는 자기 몫을 되찾기 위해 우리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나는 삼보와 나의 금전적 관계의 성격을 파악하기 오래전부터, 내가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과는 처지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p.423 〈정말, 정말 좋았지〉


장학생으로 이튼 스쿨에 입학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던 오웰은 이튼을 졸업하고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걷지 않는다. 이튼을 졸업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하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관할의 버마에서 경찰 간부 생활을 5년 동안 수행하게 된다. 이 시절을 기록한 〈교수형〉〈코끼리를 쏘다〉라는 두 편의 에세이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버마에서 제국 경찰 간부로 지내면서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게 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은 양심의 가책으로 다가왔고 결국 경찰직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된다.



〈교수형〉이라는 에세이는 사형이 집행되던 날, 사형수를 사형장까지 인도하는 그 짧은 시간의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긴장된 분위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집행자들의 어색한 태도, 생명의 무엇을 깨닫는 찰나의 순간들이 한데 섞여 기묘하게 불쾌한 감상이 남는다. 사형수의 웅덩이를 피하는 몸짓, 즉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생의 본능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다름없음에서 관성적으로 활자를 따르던 나도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과장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은 불쾌하기 짝이 없고,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p.25 <교수형>


역시 버마에서 경찰 간부로 지내던 어느 날에 기록인 〈코끼리를 쏘다〉. 오웰은 통제력을 상실한 코끼리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긴급한 신고를 받고 총을 챙겨 코끼리를 찾아 나선다. 흥분한 코끼리는 끝내 사상자를 만들고 오웰은 그를 뒤따르고 있던 마을 주민들로부터 코끼리를 사살하기를 종용 받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그저 겁을 줄 요량으로 총을 챙긴 초반의 마음과는 다르게 오웰은 결국 코끼리를 사살하고야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번민하던 오웰의 내적 갈등은 그가 제국 경찰이라는 지위에서 오는 응당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체면치레와 기원 없는 의무감의 발로였다. 죽어가는 코끼리에 대한 묘사와 식량을 얻기 위해 득달같이 코끼리에게 달려가는 마을 주민들을 목도하면서 느끼는 기괴한 죄책감을 읽는 사람도 함께 느끼게 된다. 억압이 역전되는 상황과 인간의 죽음을 자신의 사살 행위의 정당성으로 치환해버리는 무자비한 인간성을 발휘해버린다.



이 책의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정치론과 문학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에세이로써 글을 쓰는 동기를 4가지로 설명한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돌, 4. 정치적 목적이 그러하다. 특히 네 번째 정치적 목적은 그의 글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의 여러 궤적들, 특히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비롯하여 이를테면 제국 경찰 간부 시절에서의 경험, 빈민가의 밑바닥 생활을 바탕으로 쓴 르포와 에세이, 전쟁에 참전하며 생사를 가르던 경험이 그를 정치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p.320 〈나는 왜 쓰는가〉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표제작의 상징성은 차치하고, 제목인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한다.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쓰는 것으로,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방대한 양의 비평과 칼럼, 르포와 에세이, 그리고 시와 소설로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섬세한 시선과 관찰력으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기록하고, 사회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평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과 정치라는 두 가지 속성을 융합하려는 노력이 끝내 빛을 발하며 현대까지 칭송받는다. 읽다 보면 그는 '왜 쓰는가?'라는 고상한 톤보다 '왜 써야만 하는가?'라는 보다 당위적이고 투쟁적인 톤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편 해본다. 그의 말과 글과 사유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활자들 속에서 유유히 유영하기도,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윤슬처럼 반짝이는 그의 사유들을 좇는 찬란한 순간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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