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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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는 초판 29편의 에세이에 국내 초역 2편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이다. 도합 31편의 에세이와 조지 오웰의 연보, 조지 오웰과 책의 이해를 돕는 옮긴이의 말까지 합하면 500페이지가 거뜬히 넘어간다. 옮긴이가 선정한 31편의 에세이는 실제 발간된 순서대로 실려있고, 각 에세이의 첫 부분에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속 작가 조지 오웰의 개인적 상황을 덧붙인 주석이 달려있어 각 편의 시대적인 맥락의 이해를 돕는다. 조지 오웰의 개인사 관련 에세이나 사회·정치 비평, 작가론 등 다종다양한 방면의 글들이 쏟아지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뒤에 짤막한 작가의 연보를 통해 그의 생애 흐름을 먼저 이해한 뒤에 읽는 것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무수한 에세이와 서평과 칼럼을 남겼던 그는 소설 《1984》《동물농장》으로 위대한 작가 반열에 들어섰던 명성만큼이나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도 그 역량만큼이나 과연 대단하다. 당대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여러 정치사상에 대한 정치 비평이나 칼럼, 시대적 흐름에 놓인 사회적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개진 등의 글들은 다소 어렵기는 해도 정치와 예술의 융합을 꾀하고자 했던 그의 정치관과 예술관 중의 한 축을 농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밀도 높은 에세이들이다. 특히 당대 세계 대전이라는 폭력적이고도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 모순적이면서도 분열되는 다양한 계급층의 태도와 여러 어지러운 사상들 간의 충돌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태도는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만큼 완벽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이었다.



이러저러하게 냉철한 정치 비평도 인상적이지만 기억에 남는 에세이들은 그가 어릴 적 겪은 기숙학교에서의 일들이라던가, 대영제국 시절 버마에서 제국 경찰로 복무하던 시절에 겪은 일들이라던가, 장미 나무를 심는 것에 대한 단상이라던가 같은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아무래도 그런 글들 속에서 작가 조지 오웰을 넘어선 인간 에릭 아서 블레어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두 소설만으로 조지 오웰을 설명하기에는 역시나 부족한 측면이 있기에 여러 에세이를 모아놓은 이 묶음이야말로 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꽤 총명했던 그는 명문 학교였던 이튼 스쿨을 장학생이었다. 이튼 스쿨에 입학하기 전에 다녔던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유년 시절을 반추하며 쓴 〈정말, 정말 좋았지〉라는 자전적 에세이는 그 제목부터 풍자적이다. 학생의 부모 소득 수준이나 자산 규모 혹은 작위라는 계급에 따라서 행해지는 교사들의 차별, 체벌을 빙자한 폭력, 열악한 기숙 환경 속에서 어린 조지 오웰이 파악했던 부조리한 생태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반액 장학생이자 평범했던 가정 출신이었던 오웰에게 학교가 기대하는 것은 명문 학교 입학이라는 도구적 결과였을 뿐이었다. 폭력적인 교사들에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일말의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양가감정에 관한 서술은 세태를 인식하는 작가의 세밀한 감각을 엿볼 수 있고, 부조리한 생태 속에서 일방적으로 찍힌 낙인을 몸소 체화하면서 깨닫는 차별의 고백은 그 담담한 서술이 상황을 더욱 부조리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당하는 건 가난하지만 '재주'는 있는 아이였다. 그런 우리의 머리는 그가 돈을 묻어둔 금광이었으니, 그는 자기 몫을 되찾기 위해 우리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나는 삼보와 나의 금전적 관계의 성격을 파악하기 오래전부터, 내가 대부분의 다른 아이들과는 처지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p.423 〈정말, 정말 좋았지〉


장학생으로 이튼 스쿨에 입학하면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던 오웰은 이튼을 졸업하고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미래가 보장된 길을 걷지 않는다. 이튼을 졸업하고 '인도 제국경찰'에 지원하며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관할의 버마에서 경찰 간부 생활을 5년 동안 수행하게 된다. 이 시절을 기록한 〈교수형〉〈코끼리를 쏘다〉라는 두 편의 에세이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버마에서 제국 경찰 간부로 지내면서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게 제국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은 양심의 가책으로 다가왔고 결국 경찰직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 계기가 된다.



〈교수형〉이라는 에세이는 사형이 집행되던 날, 사형수를 사형장까지 인도하는 그 짧은 시간의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다. 긴장된 분위기,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집행자들의 어색한 태도, 생명의 무엇을 깨닫는 찰나의 순간들이 한데 섞여 기묘하게 불쾌한 감상이 남는다. 사형수의 웅덩이를 피하는 몸짓, 즉 무의식적으로 행해진 생의 본능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다름없음에서 관성적으로 활자를 따르던 나도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모든 일이 끝나고 과장되게 웃는 그들의 모습은 불쾌하기 짝이 없고,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p.25 <교수형>


역시 버마에서 경찰 간부로 지내던 어느 날에 기록인 〈코끼리를 쏘다〉. 오웰은 통제력을 상실한 코끼리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긴급한 신고를 받고 총을 챙겨 코끼리를 찾아 나선다. 흥분한 코끼리는 끝내 사상자를 만들고 오웰은 그를 뒤따르고 있던 마을 주민들로부터 코끼리를 사살하기를 종용 받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낀다. 그저 겁을 줄 요량으로 총을 챙긴 초반의 마음과는 다르게 오웰은 결국 코끼리를 사살하고야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번민하던 오웰의 내적 갈등은 그가 제국 경찰이라는 지위에서 오는 응당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체면치레와 기원 없는 의무감의 발로였다. 죽어가는 코끼리에 대한 묘사와 식량을 얻기 위해 득달같이 코끼리에게 달려가는 마을 주민들을 목도하면서 느끼는 기괴한 죄책감을 읽는 사람도 함께 느끼게 된다. 억압이 역전되는 상황과 인간의 죽음을 자신의 사살 행위의 정당성으로 치환해버리는 무자비한 인간성을 발휘해버린다.



이 책의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웰의 정치론과 문학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에세이로써 글을 쓰는 동기를 4가지로 설명한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돌, 4. 정치적 목적이 그러하다. 특히 네 번째 정치적 목적은 그의 글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의 여러 궤적들, 특히나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비롯하여 이를테면 제국 경찰 간부 시절에서의 경험, 빈민가의 밑바닥 생활을 바탕으로 쓴 르포와 에세이, 전쟁에 참전하며 생사를 가르던 경험이 그를 정치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p.320 〈나는 왜 쓰는가〉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표제작의 상징성은 차치하고, 제목인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한다. 작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쓰는 것으로,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방대한 양의 비평과 칼럼, 르포와 에세이, 그리고 시와 소설로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섬세한 시선과 관찰력으로 다양한 계층의 삶을 기록하고, 사회상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평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학과 정치라는 두 가지 속성을 융합하려는 노력이 끝내 빛을 발하며 현대까지 칭송받는다. 읽다 보면 그는 '왜 쓰는가?'라는 고상한 톤보다 '왜 써야만 하는가?'라는 보다 당위적이고 투쟁적인 톤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편 해본다. 그의 말과 글과 사유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활자들 속에서 유유히 유영하기도,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윤슬처럼 반짝이는 그의 사유들을 좇는 찬란한 순간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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