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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앞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은 후에 그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다. 앞선 에세이에서 오웰의 전반적인 생의 이력과 그가 주창하는 정치적 사상과 사회적인 비평들은 이 책을 몰입하면서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바탕 지식이 되어주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이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 생활에서 환멸을 느끼고 고국으로 돌아온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 경찰 간부로서의 생활은 그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고 '피억압자와 억압자'라는 부조리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문제적 의식을 짙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레프트 북클럽이라는 진보 단체의 청탁으로 이 르포를 집필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지 오웰의 이 르포는 당대에도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 핍진한 기록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지대하고도 위대한 고전이 되었다.

이 르포의 1부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영국 북부 탄광 지역의 광부들의 전반적인 삶을 오웰 자신이 직접 체험하며 탐구한 내용이다. 시작은 그가 묵었던 하숙집의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대한 묘사부터 시작된다. 다리를 곧게 뻗을만한 정도의 공간도 확보되지 못한 침실 공간, 먼지가 덥수룩하게 쌓인 가구들, 하숙집에서 제공되는 빈약하고 불결한 식사 수준… 등의 묘사를 어찌나 세세하게 포착하는지 읽는 내내 불쾌한 감각이 살갗을 더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웰이 여러 하숙집을 비교하며 기록한 메모들을 비교하며 읽어도 그가 머문 브루커 씨의 하숙집이 그렇게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광부를 비롯한 노동 계급의 하층민들의 주거 수준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침 식사 때 식탁 밑에 가득 찬 요강 단지가 있는 것을 본 날,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있다 보면 더 우울해질 것 같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음식이 형편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의미하게 정체되어 썩어간다는 느낌, 사람들이 지하에 갇혀 바퀴벌레처럼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기어다니며 끊임없이 비열한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p.26
오웰은 광부가 되어 갱도의 막장으로 입장한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온갖 곤혹스러움이 그를 덮친다. 암흑과 소음, 탁한 공기, 탄진 속에서 온전히 서서 걷기도 힘든 상태로 막장까지 기어가듯 걸어간다. 입구에서부터 막장까지의 길이는 멀게는 수 킬로미터까지 떨어져 있는데, 이 막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노동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부조리부터가 시작이었다. 막장에서 무릎을 꿇고 석탄을 채굴하기 시작하는 노동은 마땅한 쉬는 시간 없이 7시간의 고강도 노동으로 이어진다. 엄청난 강도의 육체노동에 비해 그들이 받는 임금 수준은 형편없을뿐더러 그마저도 램프 같은 필수품의 값이 부당하게 청구되는 등 다분히 착취적인 면모들이 드러난다. 특히 일반적인 통계와 현장의 실제적인 상황을 놓고 비교하는 부분들은 수치와 현실의 사이의 괴리를 짚어내는, 분석적이고 꼼꼼한 시선의 해석이 아닐 수가 없다.

막장 체험에서 더 나아가 광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대한 탐색도 이어나간다. 등을 맞댄 공동 주택이나 버스를 개조한 캐러밴 등의 주거 형태는 슬럼화되어서 정부의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다. 인구 과밀 문제 및 슬럼가 철거를 위한 주택 재개발 계획은 몹시 느리기도 했지만 비인간적인 방식, 예컨대 근무지와 주거지 간의 거리 및 교통편을 고려하지 않거나 고지대에 지어져서 기후 조건을 무시하는 등의 무자비한 방식을 채택한다. 당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처리'하는 것에 가까운 행태를 보인다.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주택의 입주 조건과 제약들은 까다롭기 마련이었고, 오웰은 이런 수칙들은 주거민, 즉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생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은, 대량 실업 상황에서의 실업 수당에 관한 여러 허울들이다. 당국에서 제공하는 수당과 현실에서 수급자들이 그 수당을 가지고 생활하는 수준의 차이, 실업 수당으로부터의 사각지대에서 생기는 모순 등을 수치적으로 비교한다. 또한 '실업'을 인지하는 차이를 지적하면서 '개인적인 재앙' 또는 '개인의 게으름'으로 단순 납작하게 정의하는 것을 경계한다. 광부로 대변되는 노동 계급의 거의 모든 실태, 열악한 노동 환경과 형편없는 임금, 슬럼화된 주거지와 명분뿐인 실업 수당, 더불어 광부라는 노동 계급에 대한 편견과 인간적인 몰이해를 깊이 파고든다. 연민과 같은 감정에 호소하는 감상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 날카롭고 꼼꼼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 상황과 실태를 담담하게 서술하며, 통계와 수치를 사용하여 구체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의 접근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그들의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영향력이 끊임없이 노동자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피동적인' 역할로 축소시켜버린다. p.66
2부에서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이상향으로 하는 오웰의 정치적인 견해와 더불어 파시즘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써의 민주적 사회주의에 대한 오웰의 주장을 다룬다. 일단은 조지 오웰의 자전적인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특히 버마에서 제국 경찰 간부로 재직하던 시절 속 괴로웠던 심정을 고백하며 5년 만에 퇴직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피압제자'의 위치에서 일종의 속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부랑자 생활을 시작한다. 오웰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기도 하고, 빈민 구제소에 들락거리며 노동 계급의 하층민의 삶에 융해된다. 이런 생활 속에서 그는 노동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특성과 진정성을 이해하게 되며 이와 비교하여 부르주아 계급, 중산층의 허울과 위선을 서술한다.
내가 돈을 기준으로 계급을 정의하고 있음을 간파하셨을 텐데, 그렇게 해야 이해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영국의 계급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돈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으로 이루어진 계층 구조이지만, 거기에 그림자 같은 계급 제도가 스며들어 있는 형국이다. p.162
특히 오웰은 자신을 '상류 중산층의 하류 계급'이라는 신분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삶의 여흥을 즐기는 방식, 일상을 영유하는 과정 그리고 'h' 발음의 유무로써 신분을 구분하나, 경제적으로는 부르주아 계급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노동 계급에 가까운 재정 상황을 유지하는 처지를 이른다. 이 모순적인 계급에 속한 오웰은 다시, 노동 계급에 대한 모멸적인 인식이 태생부터 유래한 과정과 자신 또한 그러한 인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를 고백한다. 버마 시절로부터의 양심의 가책은 자발적 부랑자 생활을 시작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삶에 직접 뛰어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노동 계급에 대한 차별적이고 모멸적인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웰은 자신과 같은 다수의 중산층 하류 계급의 특성을 해석하고 그 계급적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노동 계급이 중산층과 부르주아 계급을 오만하고 게으른 무지렁이로 폄하하며 반목하는 인식을 두 계급이 화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인으로 분석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오웰은 자신이 주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다수의 대중에게 전파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인텔리들이 주장해왔던 사회주의 운동의 위선적이고 피상적인 면모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본질을 '정의와 자유'로 정의한다. 여러 가지 방법론 중 하나의 예시로, 부르주아 중산층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인 계급을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그들의 '동지' 등의 상투어를 강요하지 않는 방식 등 보다 포괄적이고 대중적이며 세련된 사회주의 운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나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적인 요소로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약탈자-피약탈자'라는 부조리한 경제 체제 구조로 인식해 보자는 하나의 대안은 인상적이다.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그러나 이런 이상은 거의 완전히 잊혀버려 '바탕'이란 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이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버렸다. 똥 더미 속에 감춰진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p.286

조지 오웰은 이 책을 집필하고 탈고하자마자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다고 한다. 그 당시 팽배했던 파시즘의 영향권에 대항하기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제안은 그 우려와 한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가 노동 계급, 피억압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체험적 노력들과 섬세하면서도 냉철한 시선들은 당신의 사회적 배경과 오웰의 계급적 신분까지 고려하면 사뭇 경이롭기까지 하다. 노동하는 삶의 르포와 파시즘에 대한 저항, 사회주의라는 사상까지 읽어나가면서 떨칠 수 없는 기시감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노동 사정도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까닭이다. 산업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 고공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현시점에서 다시 읽는 조지 오웰의 책들은 이런 지점에서 더욱 유의미하다. 그의 글들이 아직까지 유효한 까닭이 서글프면서도 그의 냉철하고도 날카로운 현실 비판 의식은 다시 널리 읽혀야 할 것이다.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