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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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을 벽장에 갇혀 지낸 소년이 있다. 1983년 사이렌이 울리던 날, 안나라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산속에 외딴 가옥, 벽장 속에 갇힌 소년의 이름은 조기준. 안나는 기준에게 바깥은 전쟁 중이고, 기준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지녔기 때문에 사살 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격리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나 자신은 다행스럽게도 기준의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기준을 돌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안나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된 소년, 기준은 그렇게 자신을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 존재'라 여기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팬데믹 시기에 세 번이나 자가 격리를 겪은 우식은 격리와 고립에 염증을 느끼며 세상 밖 타인들의 삶을 온갖 SNS로 염탐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다 우연히 '휴먼북 라이브러리'에서 조기준의 삶을 다룬 《휴먼북 조기준》을 구독하여 열람하게 되면서 벽장 속 조기준의 삶과 공명하기 시작한다. 우식은 기이한 삶을 살았던 조기준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마침내 그가 자신의 삶을 녹여내어 만들어 낸 방 탈출 카페 '벙커 1983'까지 이르게 된다. 조기준이 갇혀있던 안전 가옥을 재현해 낸 '벙커 1983'에 발을 디딘 순간, 우식은 뜻하지 않게 또다시 고립되어버리고 마는데….





 하나의 휴먼북,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절정에서 마무리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의 인생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길고 지루한 후일담으로 이루어지는 거였다. p.121

 그저 안타깝게만 느껴지던 조기준의 삶은, '김근배'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그 이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가 복잡하게 얽힌 《휴먼북 조기준》을 읽어갈수록 진짜 조기준의 삶이 어떠했는지 선명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아리송해질 따름이다. 결국 조기준의 삶은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비극에서 발로한 죄책감은 존재를 잠식하기 시작하고, 견뎌내어 살아가기 위해 허구와 거짓으로 그의 삶을 왜곡한다. 그리고 마침내 왜곡된 그 삶에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리고야 만다. 근배는 비로소 기준의 삶을 이해하며, 《휴먼북 조기준》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는 긴 감상평을 남긴다.



사람에겐 누구나 나가고 싶은 자기만의 벽장이 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p.90



 소설에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립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가 격리, 납치, 세뇌, 죄책감…. 우식은 세 번의 자가 격리로부터 세상과 단절되고, 우식과 함께 과거의 기록을 지워주는 디지털 세탁소, '더 빨래'를 운영하던 태공은 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속죄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 시킨다. 기이한 고립을 '당했던' 기준도 물리적인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휴먼북 조기준》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다.

 불행한 성장 과정의 비극은 행복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할 힘을 박탈당해 어떤 좋은 것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조기준이 그랬고, 내가 그랬다. 그 시절 전쟁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그만을 관통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그 사이렌 소리는 상처를 남겼다. p.203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식은 '벙커 1983'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종의 소명을 깨달으며 삶의 고립에서 탈출하고, 사과 트럭에서 기이한 '사과'를 하던 태공은 사과 농장에서 제 나름의 속죄를 계속하며 고립을 이겨낸다.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저주를 저마다의 방법으로 타개한다. 그렇다면 기준은? 알 수 없다. 자신의 '고립'을 재현한 '벙커 1983'에서 타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추체험하게 만들며 타인을 통해 여전히 탈출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타인에게 고립이라는 안락한 저주를 하나의 기회처럼 제공하는 것일까?





 "사람에겐 몇 개의 방이 있는 걸까요. 그 방이 모두 어둠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 제게도 많은 방이 있습니다. 아주 어둡고 아주 더러운 방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 방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고 탈출하고 싶지 않기도 하단 말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p.137

 가장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배가 남겼던 '방 탈출 필승 공략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취소선이 가득했던 '접어 둘 페이지'와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니 결말은 한없이 활짝 열려버렸다. 분명한 지향은 탈출과 연대라는 축복 같은 희망으로 읽었는데 아직도 어둠과 단절이 저주처럼 현실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기분이다. 읽기에 난해한 것은 없었지만 도통 감상을 명료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고립과 단절이 선사하는 무기력하면서도 중독적인 안락의 속성, 기어코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저력이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인간의 입체적인 속성과 만나 수렴 혹은 충돌하며 나름의 궤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





 〈작가의 말〉에서 개인적인 고립의 경험을 고백하며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작가가 전하는 응원의 말은 금세 위로가 된다. 이 책을 가장 잘 읽는 방식으로 밖에 나가 바람을 느끼며 걷고, 갓 구운 빵 냄새를 맡으며 선선한 바람이 좋다고 중얼거리는 산책을 권유한다. 실천적 방식으로의 감상. 오늘은 나도 짬을 내어 부러 공원에 산책을 다녀올까 싶어진다.


 "어둠 속에 오래 있었어요. (…) 그러고는 깨달았죠. 저는 누가 밖에서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해보지도 않고. 저는 진짜 나가고 싶은지 저에게 다시 물었고, 간절함을 확인한 후 손잡이를 잡고 가운데 버튼을 누르며 돌렸어요. 문이 열리더군요. 아주 간단히. 저는 그 방을 탈출했습니다. (…)" p.207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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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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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양지영과 양주연을 합쳐서 '양양'이 되기도 한다. p.58

 "주연아,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어느 날 문득 술에 취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주연은 처음으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다. 당시 대학교 졸업을 앞둔 주연과 비슷한 시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모. 철저하게 가족의 서사에서 배제되었던 존재. 비로소 고모의 존재를 인식한 주연은 자신의 고모인 양지영이라는 여성을 호명한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를, 고모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대학교 동창들을, 동아리 친구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고모 '양지영'의 기록과 흔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이 되었고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와 후일담은 다시 이 책, 《양양》이 되었다.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 주연은 본가로 내려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해 줄 흔적을 찾아 온 집안을 뒤지다가 마침내 창고에서 고모의 사진 앨범을 찾아낸다. 어떠한 표정에서도 눈빛만은 단단했던 고모,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진학했던 고모,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지역 대학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모…. 지워진 채 존재했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주인공을 그리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저자는 매 순간이 답이 없는 질문의 연속이었음을 고백한다. 과연 고모, 양지영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아버지를 비롯해 고모의 친구와 동창들에게서 소환되는 고모의 모습들은 다면적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그녀를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지영이로, 또는 글과 그림을 좋아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반면에 공과대학 시절 동기들은 과 생활에 의욕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지영이로 기억했다. 그러나 문학 서클 동아리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당시로써는 당돌하게 입회 목적을 밝히던 자기표현이 인상적이었던 인물로 기억된다. 여러 기관에 협조를 구하고, 수소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 당대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로 당시 고모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기도 한다. 조카 양주연은 고모 양지영이라는 결을 세심하게 고르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억이 달랐다. 해마다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는 음력 일자까지 철저히 기억하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데, 고모의 죽음은 기일조차 모르는, 애도될 수 없는 죽음으로 머물러 있었다. p.137

 그리고 고모의 죽음을 목도한다. 당시 고모는 남자친구 집에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고모와 고모의 남자친구를 증언하는 고모의 친구들은, 지영이는 강압적이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 했고, 실제로 여러 번 이별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런 억압적인 관계 속에서 고모의 죽음이 혹시 타인에 의해 종용된 자살, 혹은 타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떠오르고 주연은 고모의 그 남자를 찾아 나서다가 이내 그만두기로 결정한다.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남자'를 과감하게 소거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결정이었다.

 그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고모가 없는 상황에서, 그 남자의 목소리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고모의 마지막을 그가 아니라 고모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p.152





 '양지영'은 지독히도 가부장적인 관습 아래서 장남인 동생(주연의 아버지)에게 존재를 양보해야 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선택한 공과대학에서는 여학생으로써의 부침을 짐작할 수 있었고, 억압적인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는 환멸을 느껴야 했던 고모의 모습들…. 숨죽여 딸(고모)의 사진들을 추렸을 할머니와 여성으로써 비슷한 삶을 살았을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된 주연까지. 주연의 렌즈는 '양지영'이라는 프리즘은 비추고, 이것은 다시 굴절되고 분산되며 시대를 초월하여 또 다른 여성들을 호명하고 있다. 고모의 존재라는 여정을 따라가고 있지만 이야기는 어느새 확장되고, 가부장이라는 서사 속에서 속절없이 지워져 버린 여성의 존재들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모라는 존재가 나에게 미치는 여러 파동처럼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 가지 분명해진 건, 이 이야기는 고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아빠와 나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p.78



영화 <양양> 스틸컷 중에서



 누나에 관해, 고모에 관해 인터뷰를 나누던 부녀의 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고모에 관해 인터뷰할 때, 불쑥 튀어나오던 자신과 아버지에 대한 질문들과 다소 실망스러웠던 답변들. 그리고 비로소 발견해낸 서로의 의외의 면모들로 관계를 재구성한다. 또한 마침내 가부장이라는 멍에에 짓눌려 애도되지 못한 채 지워진 고모의 존재를 복원하며 가족의 서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길지 않은 책인데도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들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겪어봤던 유·무형의 차별, 부녀 관계에서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 제사를 기준으로 남·여로 분리되었던 풍경…. 막연한 호기심, 먹먹한 마음, 공감, 서러움, 착잡함 등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 끝에 연대와 희망이 있었고 진짜 가족이 있었다.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양양> p.156




영화 <양양> · My Missing Aunt · 2025


다큐멘터리 영화 <양양>의 포스터들



 영화 <양양>의 각양각색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라 전부 첨부. 고모 양지영의 모습, 고모의 존재를 기록하는 모습, 고모의 존재로부터 호명된 익명의 다른 여성들, 사진 앨범 속에만 존재하던 고모의 모습들. 영화는 현재 상영 중인데, 상업 영화관에서는 거의 상영관을 찾아볼 수 없고 주로 서울에 위치한 독립·예술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상영 중인 영화관이 하나도 없다…. IPTV나 OTT에 올라오면 꼭 찾아서 봐야겠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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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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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비상계엄 사태가 야기한, 혼란한 국내 정세 가운데 치러진 이른 대선으로 탄생한 새로운 정부는 숨 돌릴 새도 없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떠안았다. 도통 종잡을 수 없고, 때로는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미국 대통령의 언행에 세계 여러 나라의 국운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더불어 국외 정세와 맞물려 국내적으로 '혐중'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1차 한미 정상 회담을 치르고, 한숨을 돌린 가운데 경주 APEC을 앞두고 《미중 관계 레볼루션》을 읽게 되었다. 이보다 더 시의적절할 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를 굳이 떠올려 본다면 미국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데도 느닷없이 MA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는 것은, 분노한 미국 유권자의 절반을 정치적으로 이용 혹은 악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p.26 _김용한

 가장 먼저 미국이, 트럼프가 대체 왜 이렇게 기이하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해석을 돕는다. 트럼프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이 어떻게 미국인들을 추동 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신자유주의가 지구화되면서 중하층과 노동 계급의 실질 소득률이 정체되고, 민주당 중심의 정부에서 이들과 관련된 정책을 외면하며 그들의 분노가 쌓인 것과 문화적으로 유색 인종의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백인 인종이 위기감(다수소수화)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의 MAGA는 국민적 분노와 불안을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은 것이다.

 트럼프의 문제의식은, 트럼프의 언어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지난 30년 동안 동맹국들이 우리를 등쳐먹었다'는 인식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적국, 중국과 같은 경쟁 국가도 그렇지만 동맹국들이 미국을 너무 '빨아먹었다milking'는 표현을 썼습니다. p.50_차태서

 이러한 분노와 불안을 기반으로 탄생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세계적 패권이 선사하는 명성 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실리적인 노선을 취하게 되면서 그 화살이 동맹국들에게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대외적으로 패권국으로써 미국의 영향력 또한 점차 감소함에 따라,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옹호하기 위해 독단적인 노선을 강행한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양차 대전과 냉전 시대 등의 역사적 추이로 미루어 볼 때, 스러져가는 패권국이 타국에게 조약을 빙자한 약탈을 자행했던 것처럼 미국 또한 약탈적 패권국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미국은 더욱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동맹국들에게 다각적인 압박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단극 체제가 스러져가고 중국을 중심으로 다극 체제가 대두되면서 중국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확고한 영향력은 무엇인가. 중국은 국책 사업으로 반도체, AI, 로봇 산업 분야에 정부가 막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오면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딥시크 쇼크'를 들 수 있고, 이외에도 중국 내에서 상용되는 첨단 기술들을 예로 들면서 비록 그 원천 기술력이 미국에 비해 열위에 있더라도 꾸준한 투자와 개발을 이어가면서 첨단 기술 상용화의 사회적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기술 개발 제재로 고립되었던 중국, 그렇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자구적으로 자체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력이 이제는 미국이 견제해야만 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의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의 예상보다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 중인 것을 지적하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도 빠르게 틈새시장, 기능 대비 가성비 등의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한 '탈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나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생산 방식에서 탈피하여 무역의 다변화를 꾀할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AI 개발을 국운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뒤처진 R&D 개발 역량을 끌어올려, 최종적으로는 한국만의 자주적인 기술력을 보유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독자적인 정치적·경제적·외교적 자율성을 획득해야 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학자를 통해 나온 것이든 미디어를 통한 것이든 국제 정치 영역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가지 말들이 그냥 투명한 언어인가, 아니면 정치적 또는 이념적인 맥락 속에서 생산된 것인가를 면밀히 살피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p.99_차태서

 뉴스를 볼 때마다 도대체 왜 미국인들은 저런 대통령을 뽑았을까? 트럼프는 왜 저럴까? 혐중이 왜 득세하기 시작했지? 기존 외교 기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도 되는 걸까? …. 명쾌하고 중립적인 해설은 없고 온통 불안과 긴장만을 고조시키는 뉴스와 기사들뿐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이데올로기적이어서 기사나 뉴스를 찾아볼수록 피로감만 더해갔다. 그런 답답하고 무지했던 상황 인식 속에서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한줄기 시원한 해갈이 되어준다. 더불어 현 정부가 채택한 실용 외교·실리주의 노선의 필요성과 정부가 주도하는 AI 정책 담론들이 주요하게 다뤄지는 까닭도 책에서 언급한 '미중 관계' 속, 한국의 존립의 방향성이라는 맥락에서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배경적 이해를 돕는다.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정치·외교·경제·기술 분야의 네 명의 전문가들이 대담의 형식을 취한다. 국가의 첨단 기술력이 세계의 패권을 결정하는 '기정학技政學'적인 관점으로 현시점의 미국과 중국의 정세, 관계성을 톺아보며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한국을 진단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소 복잡하고 딱딱하지만 서술은 대담의 형식으로 되어있어 이해하며 읽기에 한결 수월하다. 미중 관계의 전반적인 서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폭넓게 이해해 보고자 하는 일반 대중에게는 더없이 적절한 해설이 되어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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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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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읽게 될 책이 《뤼미에르 피플》일 줄은 몰랐다. 어떤 잡지에서 《재수사》에 관한 서평을 읽은 것이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최초의 기억이었고 그 뒤로도 '추천'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름의 작가였다. 어쨌든 첫 책은 《재수사》가 될 줄 알았다. 어떤 작가의 유니버스에 진입하긴 위한 첫 책은 탐험 여부를 결정하는 기로가 될 테니까 신중해야 하는 법. 결론은 매우 사사롭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게으른 독서 행태가 야속해지며 《재수사》뿐이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몹시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신촌 뤼미에르 빌딩 8층 오피스텔, 801호부터 810호로 느슨하게 연결된 세계에서 마주치는 열 편의 이야기. 그들에게 제공된 공간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공간을 빌린 존재들의 이야기는 마치 차원을 넘나들며 꿈을 꾸는 것 같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종의 존재들과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 한데 섞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용하게 만든다. 박쥐 인간, 반인반서(半人半鼠), 무당을 비롯해서 때론 이종보다 더 한 인간들까지. 설정과 전개는 좀처럼 예상할 수 없이 흘러간다. 대체로 씁쓸하지만 그 속에서도 간혹 희망을 읽어내며 기원을 알 수 없는 연민을 남긴다.

 "그러진 않을 겁니다. 뤼미에르 피플에 나오는 단편의 구조는 어떤 두 세계를 계속 대립시키는 것이거든요.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 부자가 사는 세상과 가난한 자가 사는 세상, 몸이 갇힌 사람과 마음이 갇힌 사람, 언어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그리고 뤼미에르 피플에서 그 대립이 의미하는 바는 정작 아무것도 없죠. 다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에요." p.139 <804호 마법매미>






 801호부터 810호까지, 사건이고 인물이고,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터라 몇 가지를 콕 집어 인상 깊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801호의 박쥐 인간과 802호의 워커 홀릭, 803호의 청각 장애인 재홍과 왜소증 여성, 805호의 두 명의 정민, 806호의 삶어녀 사건에 얽힌 인물들과 사건들은 여전히 현재의 시간에서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은둔 청년, 성과 중심의 경쟁 사회, 사회적 약자 차별, 빈부 격차, 사이버 불링….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나 시대적인 위화감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도시를 떠도는 흉흉한 도시 괴담처럼 읽히는 이야기들은 쓸데없이 뼈와 살을 더해 이 세대에서 저 세대로 전승되고 있는 것만 같다.





 햇살 아래에서 생기를 뿜어내는 인간의 생(生)의 의지에 숨 막혀 하는 박쥐 인간. 타인의 비애를 양분 삼아 생을 연명해 나가는 박쥐 인간. 박쥐 인간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어 '미래'라는 가늠자가 생기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던 박쥐 인간. 뤼미에르 빌딩의 801호부터 810호까지, 모든 호실을 부지런히 노크하며 들여다보고 난 후에도 어쩐지 다시 박쥐 인간이 생각난다. 다분히 우울증의 증세를 떠올리게 만드는 박쥐 인간의 습성들, 스스로를 세계와 고립시키는 박쥐 인간으로 대변되는 존재는 결코 낯설지 않다. 히키코모리라 불리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삶의 어느 시절에 저항 없이 좌초되어 어두운 밤 속으로 침잠하는 인생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슬픔을 없애는 건 기쁨이 아냐. 슬픔은 분해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마음의 양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잘 썩지 않는 동물의 똥을 쇠똥구리가 분해해 양분으로 만드는 것처럼 박쥐 인간들은 인간의 슬픔을 분해하지. 박쥐 인간이 없으면 이 별은 사라지지 않는 슬픔으로 가득 차게 될 거야." p.41 <801호 박쥐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금두꺼비는 슬픔을 양분이라 말하며 슬픔의 쓸모로 박쥐 인간을 위로한다.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혼란스럽고 기묘한 세계 속에서 황금두꺼비 같은 존재는 여지없이 반짝거린다. 이웃의 그녀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재홍처럼, 밤섬과 조응하는 당주처럼. 읽는 도중에는 그 기괴함 때문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작가가 사랑하는 한 줌의 캐릭터가 《뤼미에르 피플》에 있다는 말이 다 읽고 나니 그제야 납득이 간다. 프랑스어로 '빛'을 뜻하는 '뤼미에르(Lumière)'라는 뜻도 비슷한 맥락에서 어렴풋이 짐작해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재홍에게 왜 그렇게 그녀의 삶에 간여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책임감 때문이야.

 "책임감?"

 그녀가 내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껴. p. 104 <803호 명견 패스>




 《뤼미에르 피플》은 작가가 실제로 존재하는 르메이에르 3차 빌딩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며 겪은 신촌 일대를 배경으로 창작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기자 출신이었던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현실 사회 문제를 소설이라는 허구 세계로 가져와 다양하게 변주시켜 요령 있게 '뤼미에르 8층 오피스텔'이라는 세계관을 탄생시킨다. 각 호실을 열어젖힐 때마다 아득한 차원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면서도 영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동시에 느끼는 까닭이 그러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곳, 세계관에 동화되고 만다. 빌딩 구석에서 구정물을 마시고 있는 고양이 리타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빌딩 창문을 타고 하릴없이 추락하는 박쥐 인간을 본 것 같기도 하고, 뒷골목 곳곳 그림자마다 지하 왕국에서 올라온 쥐들을 본 것 같기도 한 이 기분.







 "왜요? 종교인들이 너무 가식적이어서요?"

 "아니요. 그것보다는……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절대 선(善)이나 구원자 같은 게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그보다는 체계는 없더라도 사람 사이의 인정이나 연민 같은 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p.359 <810호 되살아나는 섬>

 그리고 있는 세계와 인물이 추하거나 선하거나, 좌우지간 그것을 그리고자 한다면 필히 깊게 관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들인 눈길에서 자연스럽게 정情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그저 훑어 읽기만 했던 나조차도 등장인물들의 면면에 연민과 인정이 들기도 했으니…. 훈훈한 훈풍 같았던 810호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새홀리기 당주와 차기 당주가 나누던 대화를 인용하며 '뤼미에르 피플'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멋대로 힌트를 얻고 간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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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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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감상은 평소보다 괜히 더 머쓱한 기분이 되어 쓰는 것이 망설여진다. 그동안에 썼던 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느끼는 혼자만의 수치심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쓰기'에 관한 책은 일부러 읽지 않는 고약한 회피 성향이 있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부침을 느끼면서도 그렇다. 《쓰는 몸으로 살기》를 읽으면서도 종종 지난 나의 글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려야 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지금 이 첫 문단을 겨우 쓰고 있다. 그러나 두서에 잡스러운 한담을 지양하라는 조언을 어기고 있다는 점을 깨달으며 뒤늦은 각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 위해 막막함 속을 헤엄치면서 끝내 문장 하나를 써냅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새롭게 해석한 문장을 바느질하듯이 한 땀씩 이어갑니다. 무적의 글쓰기는 자신을 '쓰는 몸'으로 탈바꿈하여 삶을 이어가 보려는 사람의 글쓰기입니다. p.6

 이 책의 부제는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로 단순히 글을 쓴다는 것을 넘어서 그 글을 매개로 타자와 나의 세계를 공명하는 '쓰기'를 목적으로 한다. 프롤로그에서 밝히듯이 '무적無敵', 즉 '적이 없는' 글쓰기와 '무적無籍', '고정된 것이 없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끝내 함께 하기로 권하는 글, 글을 쓴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동하는 글을 권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쓰는 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쓰는 몸이란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그런 몸을 추구해야 하는지, 그런 맥락에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나는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가'를 검토해 보세요. 무작정 쓰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선택이다. 감춰진 게 더 없을까?' 하고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가시적인 말을 불신할 때 새로운 말이 튀어 오릅니다. p.25

 '타자와 공명하기 위한 쓰는 몸'이란 표현이 다소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자는 《쓰는 몸으로 살기》를 통해, 그 여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실제 글을 쓸 때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여러 예시 등을 통해 소개하며 말과 글, 언어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글을 쓸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글감과 주제를 다루는 방법 등 실제 글쓰기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내용들을 제시한다. 특히 문장을 구성하거나 단어를 선택하고, 은유나 비유를 수사법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 해석하는 방법론에 관한 내용들은 보다 구체적이었고, 실제적인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부분들이다.




 특히 3부를 거쳐 4부에 다다르며 점차 심화되는 '글쓰기'에 관한 주제는 '글을 쓰는 행위'와 그 행위를 둘러싼 총체적인 경험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일상으로 둘러싼 세계를 기민하게 감각해야 한다고 한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상을 의도적으로 분절시켜 그 사이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보다 더 작은 단위로 잘게 쪼개보며 집요함을 발휘하여 들여다 보기를 요구한다. 결국 '쓰는 몸'이라는 것은 '쓰기'와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동기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쓰기와 삶은 삼투 현상처럼 서로의 영역을 무람없이 침범하며 끝내는 서로의 영역에 얼룩처럼 자국을 남기며 스며들고야 마는 것이다. 교집합의 얼룩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활자를 하나씩 건져내는 것,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 될 수도….





 사실 나에게 글을 잘 쓰는 방법 같은 것은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방법을 읽고도 잘 체득하지 못하는 저조한 흡수력을 탓해야겠다. 아무렴 중요한 것은 본질.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쓰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쓰는 행위 기저에는 어떤 기준을 가진 명분을 세워하는가…. 쓰는 몸이 어떻게 타자와 세계를 공명할 수 있는지, 그 모든 총체적인 경험과 감각들이 감응하고 서로 조응하며 '쓰기'라는 행위를 거쳐 하나의 글로 직조될 수 있는지. 내게는 다소 무용한 방법론 보다 《쓰는 몸으로 살기》가 가르쳐 준 이런 통찰들이 쓰기라는 영역의 저변을 넓혀주었다. 이 역시도 체득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글을 쓴다는 것의 총체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계기였다.

 저는 인간적인 사람이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비인간적인 사람들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글 쓰는 사람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관조하는(바라보기만 하는) 삶이 아니,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사건을 만드세요. 인과관계나 논리가 아닌, 예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는 겁니다. 그게 인간의 능력이니까요. 아무 목적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세요. 그런 사람이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다가온 계기를 다른 사람과 함께 받아들이는 사람이. p.245

 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으니 쓰는 것이 조금 수월해지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요행은 버리기로 한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반복하며 관용하고 조화하기를 노력해 보는 것으로. 쓰는 것에 관한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해 쓰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사는 것에 관한 글을 읽고 사는 것에 관해 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깊고 묵직하게 응시해 보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그것이 삶이든, 글감이든. 언젠가 먼 미래에 누군가와 공명하기를 바라며….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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