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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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하면 근간에 화제가 되었던 <콘클라베>라는 영화와 책이 떠오르시겠죠. 하지만 저는 '콘클라베'라는 용어를 떠올리면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 로버트 랭던 시리즈 중에 바티칸 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가 먼저 떠오릅니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가운데 로버트 랭던이 로마 곳곳을 숨 가쁘게 돌아다니며 암호와 사건의 진실을 긴박하게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지요. 바로 이 영화 초반에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과정이 나오거든요. 굉장히 낯설고 비밀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잔뜩 풍겨서 호기심을 자극했던 터라 기억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따로 찾아보기까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시스티나 성당으로 가는 추기경들의 모습 ⓒ 영화 <천사와 악마>




 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후, 5월 8일 콘클라베에서 새로운 교황인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가 선출되었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는 이러한 콘클라베의 과정을 따라갑니다. 국제 정세와 맞물린 전반적인 교황청의 흐름과 현재 상황, 그리고 레오 14세의 이력과 그의 비전 등을 톺아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치고 제목이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요, 이 말은 레오 14세가 2025년 5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즉위 미사 강론 중에 한 말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 흩뿌려진 증오와 폭력, 편견에 대항하여 선포한 말이라고 합니다.



Brothers and Sisters, this is the hour for love!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입니다!





 본격적으로 레오 14세를 탐구하기 전에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살펴봅니다. 세속의 잣대로는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데요, 그가 행한 업적들이 그렇습니다. 가톨릭의 권위주의적 태도를 배척하고, 바티칸 은행의 부패 척결을 위해 회계 장부를 공개하며, 관료주의적이었던 교황청의 조직을 개편하기도 했습니다. 또 난민, 이주민, 빈자들과 같이 낮은 자리, 소외된 이들을 위한 행보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프리카 등 소외된 비유럽권 지역의 추기경들을 대거 임명하기도 하였죠. 그래서 이번 콘클라베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국적의 젊은 추기경들'이라는 의의를 가지게 되었고요.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중 80퍼센트는 콘클라베 참석이 처음이었다. 135명의 추기경 가운데 133명이 로마에 도착해 참여하게 됐으며, 이는 교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콘클라베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들의 추기경을 발탁함으로써 추기경단을 재편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추기경이 서임되어온 밀라노, 파리, 로스앤젤레스 같은 도시들은 배제됐고, 남수단, 브루나이, 파푸아뉴기니, 통가처럼 이전에 추기경이 탄생하지 않았던 새 지역의 인물들이 발탁됐다. p.94




 12년이 지난 지금, 그가 이룬 가장 위대한 개혁은 교회에 대한 세상의 인식 변화, 그리고 권력 중심의 교회에서 사목적 돌봄 중심의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일 것이다. p.69

 프란치스코 교황이 행한 업적들을 보면 참 훌륭하다고 느껴지지 않나요? 그러나 어디서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득권이 있는 법. 가톨릭 내 기득권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LGBTQ+를 향한 포용적인 태도, 교황청 내 여성의 지위 향상,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에 강한 비판 등은 내부에서도 굉장히 논쟁적인 사안으로 가톨릭의 전통적인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내부적으로 분열을 야기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가 선출된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가톨릭은 다시 전통주의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려 할까요?





 콘클라베 과정을 뉴스로 접하면서 저도 궁금했습니다. 특히 레오 14세가 어떤 옷을 입고 등장할지가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빨간 비단 망토인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고 하얀 수행복과 낡은 검은 구두를 고수하며 자신의 신념인 겸손과 검소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었거든요.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도 부유했지만 모든 재산을 버리고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았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에서 비롯한 것이고요. 아니 그런데 이와 반대로 레오 14세는 붉은 모제타와 화려한 장신구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이제 가톨릭이 전통으로 회귀한다고 평가했습니다.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다분히 반대 노선을 탈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서 그려지는 레오 14세의 모습이 꼭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더니, 레오 14세는 어릴 적부터 단연 돋보이는 신앙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신앙의 길로 들어섭니다. 미국 태생이긴 하나 그의 주요한 사역은 주로 남미 페루 치클라요 빈민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교황에 선출될 때 해당 지역에서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니 존경받는 사제였음은 분명하죠. 이후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을 역임하며 바티칸의 핵심 요직인 주교부 장관까지 역임하게 됩니다. 비로소 바티칸 중앙으로 진출하게 되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도로 굉장히 빠른 승진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쓴소리를 건넨 적도 있다던 레오 14세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히려 곁에 두었을 만큼 신임했다는 거죠.





 사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적인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니까요. '시노드'는 교회 쇄신을 위해 민주적 소통을 중요시하던 제도로 성직자 중심에서 벗어나 평신도와 여성의 목소리까지 담고자 노력했던 제도의 일환이었거든요. 또 레오 14세는 남미 페루에서 20년간의 사목 경험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던 "목자에게선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라는 현장 사목의 중요성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하니까요. 붉은 모제타를 걸친 시노드 정신의 레오 14세는 어쩌면 가톨릭의 전통과 개혁이라는 경계에서 적절한 중재자 역할을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바티칸 기자라지만, 기자의 시선이라서 그럴까요. 종교와 관련된 책이지만 종교적으로 홀리holy하지 않아서 거부감이 없이 잘 읽힙니다. 일단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가톨릭과 교황청, 바티칸을 중심으로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른 해석이 중심이 됩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미국인 교황'과 '미국'의 관계였는데요. 세계의 경제적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과 세계적으로 막대한 종교적 권위를 지닌 교황을 물질적 권력과 정신적 권력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신선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인 교황이 교황이 되어버리면 정신적, 물질적 권력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레오 14세 교황의 정체성이 미국보다는 그가 사역했던 남미 페루와 가깝기 때문에 그런 구도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지요.





 프레보스트는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될 위기에 처했음을 알아차렸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앉아 있었다. p.164

 교황이라는 직위의 무게가 새삼 엄청나게 느껴집니다. 행정적 업무는 물론이고 종교적 활동을 비롯한 전 지구적인 문제까지 신경 써야 하고, 정치적인 알력 다툼도 상당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책에 기술된 콘클라베 과정 중 프레보스트 추기경(레오 14세)의 좌절하는 모습은 의미심장해 보여서 웃픕니다. 심지어 우연히 개표 담당이 되면서 투표용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연이어 불러야 했다는데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네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다 그분의 뜻이겠지요?

 새 교황이 깊고 긴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눈치채 타글레 추기경은 주머니에 몰래 숨겨온 사탕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것이 새 교황님을 위한 저의 첫 번째 자선 행위입니다." p.167-168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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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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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것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애석하게도 삶도 죽음도 종착에나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어설프게라도 삶이란 것은 짐작해 볼 수 있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결코 모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죽어버린 존재는 죽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없으니까요. 죽음 뒤에 남겨져 죽음이라는 실재를 목도하는 사람들만이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라가의 밤》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형우, 진 사장님, 재이, 구표, 신이. 이들은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죠. 정확하게는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나를 살아 있게 한 질문이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살고 싶어서가 아닌, 아직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p.28 



 형우는 10년 전에 어머니와 동생 은우의 동반 자살로 세상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가족의 자살 이후, 형우는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정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트럭커의 삶을 살아갑니다. '살아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네요. 형우는 10년 동안 답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었거든요. 비극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물으면서요.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라고 말이죠.



 인생은 물속처럼 상하좌우 구분이 안 돼 헤맬 때가 있지만, 도로는 정확해서 길을 따라가면 목적지가 나왔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 이것이 내가 지난 10년간 삶을 버텨온 방식이었다. p.63 




 전국을 떠돌던 형우는 영덕 바닷가에서 프리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그 이후로 형우는 가슴이 답답할 때면 매번 그 바닷가에 들러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리 다이버들을 지켜보고 있던 형우에게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는 프리 다이빙 강사 진 사장님이 따뜻한 도시락과 묘한 문구가 적힌 명함을 건넵니다. 그 후로 형우는 가족이나 친구를 자살로 잃고 남겨진, 그런데 이제 모두가 프리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차츰 온기를 회복하기 시작하죠. 짧지만 이렇게 결말이 끝난다고 해도 좋았을 겁니다. 그러나 역시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뒤에 아직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거든요.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거짓말, 동생의 진실, 자신의 망각이 빚어낸 과거로 형우는 되돌아갑니다. 형우는 아홉 수의 걸친 자신의 과거 '형우'들을 만나며 그 시절의 하루를 관찰자로써 지켜보고 대체적으로 행복하고 따뜻했던 추억을 마주하죠. 참으로 찬란했던 시절, 그리웠던 얼굴, 후회했던 선택…. 9살의 형우, 19살의 형우, 29살의 형우, 그리고 마침내 39살의 형우까지. 형우의 과거에서 망각의 편린들이 반짝거립니다. 비로소 모든 비극의 전말이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형우는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이 가슴 아픈 현실과 고통이 따르는 진실에서 형우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가장 따뜻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듯 닮은 나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팔을 벌려 이구를 안았다. 내 품 안에 이구도, 일구도, 구도 다 들어 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이 꼭 나이테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나들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p.251






 '자살 사별자'를 중심으로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루지만, 결코 어둡지는 않습니다. 또 과도하게 낙관적이지도 않고요. 그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죠. 진 사장님이 형우에게 이런 말을 하잖아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것이 더 쉬운 날이 있다'라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땐 함께 숨을 참는 것도 방법'이라고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힘껏 좌절하고 힘들어서 침잠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로프에 랜야드를 걸고 버디가 함께 하는 프리 다이빙처럼 서로가 곁에 있다고, 그러니 잠시 가라앉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요. 숨을 참고 내뱉는 방법마저도 고통을 상쇄하는 치유의 과정처럼 읽힌다면 너무 과한 감상일까요.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 속에서 숨 참는 게 더 쉬운 날도 있거든요. 좋아요, 깊이 들어가면." p.54 



 영덕 바다, 비강항, 빨간 프라이드 차, 플립플랍, 파핑캔디, 튀어 오르는 물방울 등 복선처럼 형우의 무의식 속에 잠겨있던 감각들이 기억의 빈 공간을 엮으며 진실이 복원되는 과정도 섬세하고 인상적입니다. 고통을 망각 뒤에 숨긴 형우가 비강항을 찾은 까닭이 그런 것이겠죠. 상흔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사실. 또, '바다'라는 공간을 다양한 층위에서 감각할 수 있었던 것도 새삼스러운 감상이었습니다. 바다의 심연이 뿜어내는 공포는 망각된 진실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프리 다이빙을 통한 잠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은 고요한 유영을 감각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더해 '프리 다이빙'이라는 인간적 행위는 마치 유예된 애도를 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버디'라는 존재와 '엔젤링'이라는 행위는 너무나 아름다운 연대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인생의 진리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 프랙털처럼 숨겨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등산을 할 때, 걸음을 옮기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인생에 따르는 곡절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말라가의 밤》에서도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이 죄책감, 원망, 그리움, 슬픔, 우울 등에 몸서리치며 바다라는 인생의 심연으로 뛰어들지만 프리 다이빙을 통해 그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으니까요. 고요하고 너른 바닷속에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유영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형우가 망각의 바다로 뛰어들어 진실의 심연을 발견하고 튀어 올라 숨을 터뜨리는 장면이 잊히지 않아요. "회복 호흡!"을 외치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회복 호흡!"

 나는 참았던 숨을 뱉고, 곧장 입을 크게 벌리며 산소를 들이마셨다. 잠시 숨을 머금고 있다가 뱉고, 다시 산소를 들이마셨다. 호흡이 진정된 다음 마스크를 벗고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으며 사인을 보냈다.

 "아임 오케이!"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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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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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제나 비밀 혹은 사건의 한 가운데를 거침없이 파고들어가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나의 주체를 두고 골몰히 탐구하며 온몸으로 탐색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박준용, 손고운, 조윤상이 있다. 두 명의 기자와 한 명의 다큐멘터리 감독이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의류 수거함 속에 버려지는 '헌 옷'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더 이상 입지 않게 된 옷을 의류 수거함에 밀어 넣으며 필요한 누군가에게 다시 제 몫의 쓰임을 다할 것이라는, '재활용'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망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어쭙잖게 예상했던 것보다 현실은 더욱 참혹했다.





 《헌 옷 추적기》는 준비 과정부터 상세하게 그려진다. 수 천만 원에 이르는 취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만 한차례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 재도전 끝에 비로소 취재가 시작되고 국내 헌 옷의 이동 경로를 최초로 추적하기 위해 해외 여러 보도 사례를 참고하여 갤럭시 스마트 태그 제품과 GPS 추적기를 이용하기로 결정한다. 직접 옷의 솔기를 뜯어내어 장치를 부착하는 과정에는 배우자와 취미로 하던 재봉틀까지 동원됐다. 세간의 이목을 끌기 위해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쓰레기 아저씨' 배우 김석훈, 배우 박진희,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낸 방송인 줄리안,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까지, 유명인들의 헌 옷을 기부받는 다각도의 노력을 꾀했다.


 추적기를 단 153점의 헌 옷들은 전국 각지의 의류 수거함에 분산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속속 그들의 행선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말레이시아와 인도, 필리핀, 타이, 인도네시아, 튀니지, 볼리비아, 페루, 세네갈, 우간다, 나이지리아, 가나, 파키스탄…. 주로 개발도상국인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지로 수출되었다. 이렇게 수출된 수십만 톤의 옷들은 과연 재활용이 되고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직접 현장에 뛰어든 취재진이 마주한 것은 버려진 옷으로 빚어진 쓰레기 산과 불법적으로 매립되고 소각되고 있는 옷 무더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필연적으로 사람이 있었다.

 불법 매립의 경우 매립시설에서 처리할 때에 견줘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대 3배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불법 소각 시에도 혼합 폐플라스틱 등이 타면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이 때문에 폐기 과정이 보다 잘 관리되는 국내에서 처리하는 게 개발도상국에서 처리하는 경우보다 탄소 배출이 더 적다. p.65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헌 옷의 수도라 불리는 인도의 파니파트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끔찍했다. 중고 의류로 판매되지 못한 어마한 양의 헌 옷들이 불법적으로 소각되면서 내뿜는 유해한 연기와 더불어 헌 옷에서 섬유를 추출하기 위한 표백 공정에서 사용되는 유해 화학 물질에 노동자들은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만다.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적절한 보호 조치 없는 노동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약을 먹으며 버틴다. 또 표백 과정에서 발생한 폐수 또한 인근 강에 무단으로 방류되면서 근처 주민들 또한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구더기가 들끓는 매립지를 놀이터 삼아 돌아다니는 어느 노동자의 어린 딸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입고 버린 옷은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먼 나라의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있었다. p.205, 옷을 사고 버리는 일과 누군가의 아픔, 박준용




 그래서 그는 '북극곰을 살리자'는 식의 기후 위기 캠페인을 비판적으로 반추한다. 동물권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이미 무관심 속에 죽어가고 있으므로, 기후 위기를 '북극곰 문제'로 치환하면 선진국들이 마땅히 직시해야 할 불편함, 위기감, 죄책감이 희석된다는 지적이다. p.75, 환상과 죄책감 사이에서, 손고운

 'ZARA'나 'H&M'이 주도하는 '패스트패션'까지는 익숙한데 '쉬인'이나 '테무' 같은 중국 온라인 패션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를 능가하는 '울트라 패스트패션'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즉 저가·저질 의류들이 무분별하게 양산되며 버려지는 옷 또한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방식으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일까? 무지성으로 옷을 사들이고 무분별하게 옷을 버리는 개인의 죄책감에 호소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기에는 이미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선진 국가들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EPR 제도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EPR 이란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폐기물의 회수 및 재활용 의무까지 부과하는 제도로, 즉 옷을 판 주체가 그 판매에 따른 사후 처리까지 책임지게 만드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시스템이 만들어지며 규제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어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만들게 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p.230

 꾸준하게 제도를 확장시키고 발전해 온 주요 선진국과는 다르게 국내에서는 아직 인식조차 미흡한 실정이고 관련 법안들은 상정되었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게다가 '선 규제 후 시스템'을 취하는 다른 나라의 강력한 국가적 스탠스와는 다르게 한국은 '선 시스템 후 규제'라는 정반대의 안일한 기조를 취하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문제는 도덕적 책무감에 머물지 않는다. 수출 경제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사정을 미루어 볼 때 점점 친환경과 EPR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제도적인 압박과 규제라는 현실적이고도 경제적인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불법과 편법에 경계에서 타국에 버려지는 헌 옷들 또한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니 하루빨리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단순한 보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으로 이야기를 잇고, 그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는 것. 그것이 이 기획의 진짜 끝이자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p.261, 옷 너머의 얼굴, 조윤상

 '의류 수거함'은 일종의 사용자가 행한 기만이자 배신이었고 동시에 이용자가 취한 무지이자 외면이었다. 심지어 의류 수거함의 초록색마저 마치 '그린 워싱'을 표방하며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처럼 이용자를 조롱하는 것만 같다. 이왕이면 친환경을, 이왕이면 재활용을 선택하던 소소한 실천들은 자주 무기력에 빠져버리고 만다. 별생각 없이 소비했던 행위들이 초래한 '환경 문제'라는 실체를 마주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항상 느슨하게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선택을 고민하자는 마음을 다시 고쳐본다. 새 옷 앞에서 조금 더 길게 망설이기를, 헌 옷 앞에서 한 번 더 깊게 생각해 보기를….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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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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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알고 있는 작가의 이름이 있을까 하여 목차를 펼치고 슥 훑어 내려간다. 역시나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미술'이라는 분야 자체도 낯설지만 '한국 미술'은 더욱 낯설다. 낯선 와중에 '근대'와 '현대'를 어울러 다룬다니, 미술이라는 분야가 풍기는 배타성이 더해져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졌다. 서양 미술은 전시회가 열린다 치면 이곳저곳에서 바이럴이 되며 화제가 되고는 하지만 한국 미술은 작품의 내용 그 자체보다 경매 가격이나 진위 논란 따위로 보다 적게 접한 것이 솔직한 체감이다. 더불어 서양 미술 보다 한껏 낯선 한국 근·현대 미술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배경지식이라고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 다이고 그나마도 닳고 닳아서 낡아버린 지 오래 인터라 저자에게 모든 것을 의탁하여 읽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크게 '도시, 존재, 계절, 내면, 삶'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나뉘어서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각 부마다 네 다섯 가지의 소주제로 나뉘는데, 각 소주제마다 한국의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 한 명씩을 매칭하여 비교하고 분석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근대와 현대의 미술 잇기》인 것인데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주제로 묶이는 작품과 작가의 구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소주제가 끝날 때마다 현대 작가의 인터뷰 부록이 수록되어 작가가 직접 들려주는 작품의 맥락이나 작품관, 작업 환경 등을 알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내용 외에도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책에 대한 초반의 편견과 인상과는 다르게 내용은 쉽게 읽히며 친숙하게 느껴진다. 저자가 개인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을 감각적으로 감상하기 때문이었는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주류의 감상, 이를테면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감상이 아니었다. 다소 감성적으로 흘러가는 저자의 감상을 따라가는 것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주요한 맥락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절 한가운데에 있었던 근대 작가에 대한 이해는 시대적인 맥락과 개인적 이력이 맞물려 작품의 내력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풍경화적 기법에 대한 찬사와 호평은 일정 부분 화가의 재능과 테크닉에 기댈 수 있다. 이와 달리 특정한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그림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람에 대한 존중이 담길 때 명작이 된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에서 느껴지는 깊은 서정성은 키스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p.81,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 떠나온 이들의 시선: 엘리자베스 키스와 김현철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이나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의 작품 사진이 실린 페이지에서는 그들의 서사와 함께 묶여 오래도록 머물기도 하였고 마치 현대의 일러스트 같았던 이형록의 <책가문방도8폭병풍>과 이에 영감을 받은 이돈아의 <시공연속체>를 보면서는 근대에서 변주하여 새롭게 탄생한 현대 작품의 또 다른 의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어느 칼럼에서 조선의 모습을 담은 '힙한 감성'으로 소개되었던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을 다시 만난 것도 반가웠고, 얄팍한 배경지식의 대다수 지분을 차지했던 이중섭 작가를 다시 읽는 시간은 여전히 애련했다. 종종 페이지를 멈추고 미처 수록되지 못하고 언급만 된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고 읽고 나서 더 알고 싶어졌던 작가의 생애나 이력이 담긴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작품 앞에 선 저자는 종종 '난해하다'라거나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시간을 들여 찬찬히 작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윽고 저자는 작품 안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고 작품과 동화되며 비로소 흠뻑 감상에 젖는다. 전문가도 이럴진대 일반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더없이 난해했던 감각과 편견에서 비롯된 거리감이 다소 누그러진다. 특히 현대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감상자의 감상과 작가의 의도에서 오는 괴리감에 관한 질문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에 대체적으로 굉장히 관대하고 긍정적이었다. 여러 갈래로 도출되는 감상 또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작품의 연장선상으로 품는 너른 이해는 다시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의 감상과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다중시점>의 어긋난 풍경들이 말을 건다. 살아가며 원하지 않는 장면을 마음대로 잘라내서 버릴 수는 없다고. 다만 이어서 붙여본다. 그 자체로 당신의 삶은 멋스럽다. p.70, 1부 나와 당신의 도시, 풍경 너머의 이야기: 이상범과 권세진

 작가와 작품을 마주하며 근대와 현대를 넘나든다. 정적이지도 고요하지도 않다. 감정과 감상이 요동친다. 근대적 맥락을 품은 작품이 현대적 시점과 맥을 같이 한다. 작가도 미처 몰랐던 맥락을 짚어내는 저자의 섬세한 시선에 무람없이 올라탄다. 결국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은 작품의 질감, 구도, 색채, 재료 등의 내적 요소와 작품의 작가, 시대적 맥락, 개인적 이력 등의 외적 요소, 그리고 감상자의 감수성이 더해지는 다채로운 층위를 품고 있는 것이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를 무대로 근대 작가와 현대 작가의 작품과 서사가 만나 역동적으로 생동하기 시작한다. 마치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오색으로 찬란한 비가 내려 비로소 저마다의 제 색을 뽐내듯이….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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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팬덤과 극단의 시대에 꼭 필요한 정치 교양
이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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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024년 12월 3일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으로부터 1년. 위법했던 비상계엄은 신속하게 해제되었고, 지난했던 탄핵 과정을 거쳐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새로운 정부는 출범과 함께 국내외적으로 산적한 국가적 과제를 숨 가쁘게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가 전복을 꾀했던 내란 세력의 재판은 여전히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오며 끊임없이 들려오던 갖가지 파열음에 종종 체념을 동반한 냉소가 흐르곤 했다. 서서히 피로해질 즈음에 잠시 숨을 고르고 책은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멀지 않은 과거, 망그러지며 붕괴되기 시작한 전 정권을 비판적으로 훑어가기 시작한다. 윤석열 정권의 근간을 이루었던 정치 검찰의 폐해, 극우 카르텔과 부정선거론을 주창하는 극우 포퓰리즘, 권력의 사유화가 초래한 온갖 비리의 온상 등은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야기했다. 이러한 총체적 난국 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윤 전 대통령은 상황을 타개할 방편으로 '계엄령' 선포라는 최악의 악수를 두며 사상 초유의 체제 전복을 꾀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해 민주주의 근간이 통째로 흔들리며 위태로워졌고 그동안 축적되어온 내재적 문제점들이 주요 논점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좋고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소구력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려면 민주주의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만 되면 보통 사람의 삶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 우리 삶을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삶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p.4

 우경화의 세계적인 경향성을 배경으로 특히 트럼프의 재집권과 마가세력의 특성을 윤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분석한다. 두 집단의 공통적인 특성을 짚어내면서도 한국 정치가 지닌 고유한 특성과 역사에서 발로한 한국만의 개별적인 문제점을 도출해 내며 실패한 정권의 주요한 원인들을 짚어낸다. 집권자의 왜곡된 민주주의 의식, 제도적 제재가 필요한 '퍼스트레이디'라는 모호한 지위, 제왕적 대통령이 지닌 권력의 견제와 축소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 검찰의 뿌리 깊은 폐해. 그리고 이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 온 '혐오'의 정서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혐오'의 정서가 '정치 팬덤'과 맞물려 확장하면서 정당이 지닌 권위까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팬덤 정치는 사랑의 표출이 아니라

미움의 배설이다.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208





 저자는 아주 단호하게 이러한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 팬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정치 역사의 변곡점마다 정치 팬덤이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을 톺아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팬덤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지고 진화를 거듭하여 현시점에 이른 정치 팬덤은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 '패권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팬덤은 반대 세력을 향해 막강한 저항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이 내부를 향했을 때는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팬덤이 정치를 죽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견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대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정치의 공간이 줄어들게 됐다. 타협이나 다른 생각은 배신, 내부 총질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경제적 어젠다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선명한 대치는 삶의 이슈보다는 성패에 집착하는 게임 프레임에 매몰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p.224

 정치 팬덤은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열성적인 지지는 곧잘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의 정서로 변질되어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이는 상대와 논의하고 타협을 도출해 내는 건강한 정치의 장을 축소시키고, 상대를 배제하기 위한 부정적 당파성을 강화하여 '저 녀석을 배제하긴 위한' 왜곡된 팬덤 행태를 고착시킨다. 또한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없는 맹목적인 지지는 건전한 논의 자체를 불가하게 만들며 상대 진영의 비판적 의견을 '공격'으로 전환하여 인식하고, 이는 다시 '혐오'를 부추기게 되는, 정치적 양극화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팬덤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팬덤으로 정의하면서 팬덤이 지닌 양날의 칼을 주의해야 하며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라는 이득을 취하여 정책적인 동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을 제언한다. 또한 진보 정권의 무능하고 게을렀던 지난 과오들을 지적하면서 진보의 태생적 본질을 다시 끔 회복하여 신념 정치를 탈피하고 정책적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책임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팬덤 정치를 타도하고, 협치를 기반으로 하여 보통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인 효능감을 선사하는 정치야말로 성숙한 민주주의의 공고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정치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보통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려는 세력, 즉 진보라면 이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투표장으로 나오도록 하는 정책적 유인을 제공하는 역할은 진보 정당의 태생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무능했거나 게을렀다. p.196


 《좋은 정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윤 전 정권의 몰락부터 그 과정,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쳐 온, 가장 격동적인 정치 굴곡의 서사를 날카로운 비판을 곁들여 일목요연하게 분석한다. 미국의 정치 상황과의 비교, 한국 정치사의 변곡점과 주요 서사들의 해석 등은 현시대의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은 설명으로 근래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팬덤 정치의 폐해를 경계하며 좋은 정치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혐오'가 판을 치는 정치계에서 그런 정서가 어떻게 기원하고 쓸데없는 살을 붙여왔는지 알게 된 것이 현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보수 세력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친일-독재에 가둬 두고, 자신과 그들의 차이를 선악으로 구분하며 적대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열을 다투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책임 정치가 아니라 지적·도덕적 우월감으로 윽박지르는 신념 정치에 빠져 있다. 그래서 선거 승리를 한 시대를 끌어가는 안정적 다수 연합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p.238

 '혐오', '정치적 양극화', '부정적 당파성', '팬덤 정치'…. 여러 정치 콘텐츠를 접하면서 꽤 익숙해진 단어들이었다.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협치'를 부르짖고는 하지만 나는 과연 지금 적절한 협치의 대상, 건전한 토론을 나눌 상대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물론 궁극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정치의 방향성이나 정치를 대하는 '협치'라는 성숙한 태도 등은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지만 마치 칼을 들고 덤비는 강도에게 손을 마주 잡고 앉아 우리 대화로 풀어보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누군가를 향한 혐오나 누군가를 배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너와 나를 위한, 우리 모두의 정치가 진정한 정도正道라는 것을 지향으로…. 더 이상 '괴물'의 탄생은 없어야 한다.




*하니포터 11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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