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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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나 정치 인물에 관한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작금의 정치 사태가 끼친 영향이 지대한 까닭이었다. 엄청난 국가적 고난 끝에 드디어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안도감은 고작 하루 정도였다. 그 뒤에는 온갖 정치 관련 이슈들이 따라붙었고, 본격 조기 대선 체제로 들어서면서 차기 대통령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분별없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에게 유권자들이 요구하는 대통령으로써의 자질과 능력은 그 어느 시절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며, 또 갈망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생각해 보면 《김대중의 국정 노트》는 정치인에게나 유권자에게나 하나의 명징한 기준점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한 권이 아니었나 싶다.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기에는, 그 당시의 나는 아주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분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기억들뿐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북한에 처음으로 간 대통령, 성대모사를 자주 당했던(?) 대통령…. 훗날 정치인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로부터 그분의 업적과 성품이 회자되는 것들을 귀동냥 정도로 들은 것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는 내가 얄팍하게 인식하고만 있던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들이 당시 시대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흘러갔으며 대통령은 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자 해석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담긴 대통령의 국정 노트 기록을 해석하고 대통령의 관점으로 톺아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보다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수준의 방법이었다.



 

총 3장으로 이루어진 구성에 1장은 주로 김대중 대통령이 실행한 여러 정책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IT 강국의 기반을 마련한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의 토대가 된 문화 콘텐츠의 산업으로써의 기반 구축을 비롯해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여성부 설립과 성 평등 정책, 복지 국가 이룩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 등을 두루 돌아보면서 정치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한 나조차도, 나의 삶과 일상은 정치와 문외 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DJ의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장면은 1981년 1월 중앙정보부에서 촬영한 영상이다. 김대중평화센터가 입수해 보관해 온 영상을 보면, 김대중은 남산 중앙정보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조사를 받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수사관 최○○ 씨에게 정보화와 인터넷에 관해 설명한다. (중략) 그런데 영상 속 사형수 김대중은 '세계가 정보화 시대로 갈 것이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뒤처져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p.28


위 문단에서 설명한 모습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이다. 이러한 감명은 후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관련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적극적으로 실행되었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를 IT 강국의 반열로 올려놓게 된 초석이 되었다. 언급된 영상을 실제로 본 적이 있었는데 '사형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책의 내용을 수사관에게 설명하면서 마치 자신의 미래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와 소망에 달뜬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선구안적인 혜안보다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야기할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에 대한 정책 또한 같이 마련했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은 '계층 정보 격차 해소 노력'이란 항목을 별도로 정리해서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가 중요하니 학교·군·교도소 등의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고,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계층과 주민들을 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p.22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개념조차도 생소했던 시절에 이러한 문제의식을 미리 인식하고 정책적으로 해결 방법을 주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안은 당대에도 굉장히 앞서나갔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의 수혜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도 찾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학교에 '컴퓨터실'이 새로 생기고, 정규 교육 과정에 '컴퓨터' 과목이 신설되었다. 정규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화 교육을 배울 수 있었던 덕분에 따로 사교육을 할 필요가 없었고 방과 후 활동으로 각종 작업 프로그램의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정보 교육의 격차를 해소한 것이 전반적인 디지털 정보화 수준의 향상으로 일보 진보한 것이다.


또 하나의 강렬한 업적으로는 문화·예술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추진한 '문화 산업'에 관한 정책들을 예로 든다. 미래 산업으로 문화를 주장하는 여론이 해당 분야에서 있기는 했지만 정치권에서 찾기 힘들 때(p.48)라는 유진룡 전 장관의 말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선구안은 또한 번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격렬한 우려를 거스르며 '김대중-오부치 공동 선언'으로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국민 여론을 존중해서 따라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국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국민을 설득도 해야 한다.'(p.49)라는 인터뷰 발언에서 정책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강단이 느껴진다. 일본 문화 개방에 앞서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과 고견을 구했다는 점 외에도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었다. 중국 문화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잃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문화로 승화시킨 점을 치켜세우며 우리의 문화가 잠식당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게 될 것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예상은 예언이 되었고, 'K-문화'의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선진적인 혜안은 다른 여러 정책에도 빛을 발한다. 성 평등 정책에서도 발현되는데, 집 앞에 문패를 자신의 것과 함께 부인의 것을 동시에 달며 '가정은 부부가 함께 이뤄 나가는 거 아닙니까? 부부는 동등하다는 걸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p.100)라는 이희호 여사 자서전에 나오는 일화는 위 자서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남녀가 유별한 시대에서 가히 '혁명적'인 모습이었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로 출발한 여성특위는 2001년도에 입법권과 집행권을 가진 여성부로 발전한다. 관련 국정 노트에는 <여성의 시대>라는 항목 아래에 김대중 대통령의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인식과 그 타개 방안 등이 일목요연하고도 간결하게 적혀있는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굉장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IMF 시절을 지나면서 절망적인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고, 우리 사회의 기초 안전망에 대한 필요가 요구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었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제도의 실행보다도 더욱 놀라웠던 점은 '복지'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이었는데 김 대통령의 말처럼 "복지는 자선이 아니라 인권"(p.113)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복지보다는 성장에 치중한 국가 기조에서 오래전부터 복지 정책을 구상해왔다는 점 또한 혁명적이고 선구적인 혜안이었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으로 개인은 재훈련을 통해 사회 복귀를 꾀하고 국가는 경제적인 인력 확보로 사회 발전을 꾀했다. 광범위한 빈곤층의 실질적인 도움은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복지라는 개념의 인식 수준을 바꾸고, 복지를 주요 논의 정책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성과이다.


1954년 1월 7일 《새벌》이라는 시사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자. "민생의 안정과 복지의 증진이 공산주의 자체를 절멸하는 데 있어서도 발본적 요소가 된다. …무엇보다도 중산 이하의 근로 대중이 여하한 경우에도 인간 이하의 참경 속에 전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기와 향상의 발판이 돼 줄 수 있는 실업 보험, 양로 보험, 학업 보험, 흉작에 대한 보장 등 사회 복지 제도가 조속히 실현됨으로써 민생의 기본적 안정을 확립해야 한다." p.116



2장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인 철학과 신념을 중심으로 국정 노트를 살펴본다. 특히나 이번 장에서는 불통과 독단의 윤석열 전 정권과 비교하는 부분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중에 그 어떤 역대 대통령보다도 많은, 총 여덟 번의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회담 전에 작성한 국정 노트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대표를 당리가 아닌 국정을 같이 협의하는 '파트너'로 인식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연하게, 정도로 대응할 것과 할 말은 한다는 메모에서는 합치의 정치를 지향하면서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도 올곧은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야당 대표를 만나기 전에 작성한 무려 6장의 국정 노트였는데,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의 예상 주장과 그에 따른 대응 전략과 제안 등이 빼꼭하고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다는 점이다. 합치에 대한 대통령의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 회차의 회담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담을 제안하고 야당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국정을 협의했다는 점은 정말로, 정말로 지금 시대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꼭 읽고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화합을 위한 노력의 예시는 전 대통령들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에서도 엿볼 수 있다.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먼저 제의하면서, 과거와의 화해를 선청했다. 박정희는 유신 독재에 맞선 김대중 대통령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배제했으며 탄압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독재 정권을 죄악으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근대화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경제 발전 정책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앞으로의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소망하며 자신의 현재에서 상대를 용서하고 화해를 청했다. 정치적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곡절의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 말하는 평화는 그 울림이 크게 울린다.


마지막으로, DJ가 정적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화해한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이유가 있다. 군사 독재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가 평화적으로 뿌리내리려면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 게 필수적이라고 DJ는 봤다. 김대중은 '평화적 정권 교체'를 민주주의 핵심으로 여겼다. 그리고 평화적 정권 교체가 가능해지려면 군사 독재와 그에 부역한 이들에게 정치 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p.179


그러나 이러한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와 용서, 평화'를 추구하는 기조는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인물의 사면을 두고 그 평가와 논란이 존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신군부 시절에 민주화 운동의 배후로 몰려 군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후 진술에서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p.169)라는 발언을 남겼는데,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한 발언이었다. 이러한 숭고한 의미의 이해를 돕는 부분은 저자가 해석한 '용서의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세 가지 이유'(p.177)였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신념의 실천과 정치 보복을 하지 않고, 국가를 통합하려 노력했던 에이브러햄 링컨과 넬슨 만델라를 존경하고 그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 그 까닭이었다. 작금의 비상계엄 상태와 내란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숭고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용서의 정치가 무도한 친위 쿠데타로 퇴색된 것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국회를 지켜내고, 계엄 해제를 적법하고도 신속하게 해제하고, 느리지만 결국에는 탄핵이 인용된 것은,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선대의 이런 노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3장에 이르러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좀 더 개인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실제 국정 노트의 쓰인 글자의 모양새로도 짐작이 가능하듯이 모든 사안에 대해 매우 꼼꼼하고 계획적이며 치밀하게 정리하는 성격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며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기 위한 협의에서 드러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만남을 의례적인 행사로 치부하지 않고 각 부처의 보고를 모두 받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덧붙여 국정 노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자신이 몸소 겪은 국정 경험을 자신의 해석으로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며 특히 국외 정치의 상황을 상세히 전달하려 했다고 한다. 북한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까지 각국을 항목화해서 상세화한 노트는 정말 인상적이다.


끝까지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은 그의 건강을 잠시 유예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라는 타이틀과 사고로 인한 다리의 불편함은 적대 세력과 언론의 조롱 같은, 정치적 의도가 깔린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탈이 날까 봐 좋아하던 날음식을 자제하고, 감기의 걸릴 자유도 없다고 말하며, 임기 말에서 의사의 신장 투석 권유도 마다했던 대통령으로써의 무거운 책임감이 그대로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굉장히 튼튼한 신체와 맑고 또렷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주치의 전언이 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운동 종류에 제한이 있자 주치의로부터 수영을 권유받았지만 수영보다는 수영장에 딸린 사우나에서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는 일화에서는 일면 인간적인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반면에 자연재해가 예상되는 날에는 그 좋아하는 일도 마다하고 관저로 곧장 가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책임감의 자세를 보면 부패한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재난 사고들에서 정부가 보여준 무책임한 태도는 한없이 가볍고 몰염치하기 그지없다.


정치권에서도 협치와 화합을 중요시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에서도 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가장 많은 기자 회견을 한 대통령으로, 국민에게 국정 현안과 중요 정책을 설명하는 장으로써 여겼다. 기자 회견 장에서도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또 역시, 다시 끔 윤석열 전 정부의 언론을 통해 국민을 대하던 불성실했던 태도를 상기시킨다. 도어 스태핑을 중단하고, 신년 연설을 무람없이 생략했다. 국민과의 소통은커녕 일명 '입틀막 경호'로, 숱한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들에 또다시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책을 읽기 전에 처음 든 생각은 건조한 감상이 남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루는 분야가 궁금하기도 했고, 시의성도 있을 것 같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실행했던 정책들이 나의 어린 삶 속에도 교육의 형태로 실현되고 있었고, 일본 문화 개방으로 그 당시에 일본의 여러 음악과 개성이 다양했던 여러 드라마들도 접할 수 있었으며 현재는 위상이 한껏 높아진 K-문화의 흐름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복지 혜택 같은 사회의 기초 안전망의 정립의 발단 과정들도 톺아볼 수 있었다. 정치에 문외한일 수는 있어도 나의 일상과 삶이 결코 정치와 무관할 수 없고 앞으로는 그래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을 반성처럼 해본다.


비상계엄의 사태와 내란을 겪으면서 다양한 분야와 매체에서 각종 분석과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대통령 자질에 대한 문제는 당선과 취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니 이제 와서야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의 청산만큼 중요한 것은 미래의 선택이다. 책의 띠지에는 국가 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일독을 권하지만, 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유권자인 국민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의 모든 정책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이견이 극심하게 나뉘는 행보도 있었다. 나 또한 동의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었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나 신념, 정치적인 철학과 한 인간으로서의 성정은 우리에게 정직한 기준점을 보여주는 점은 다분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국정 운영을 최우선에 두고 정책의 방향은 항상 국민을 향했으며 소외된 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국정에 최우선이 된다면 정치적 이념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언론의 날센 비판과 비우호적인 태도에도 기자들 앞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통령직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했으며 끝까지 그 책임감을 오롯이 짊어졌던, 그런 모습들은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이 염증을 느끼는 현 사태에 위로를 건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무리하다고 느끼는 정책을 시행할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도, 우리 국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다시 필요한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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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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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라는 소제목을 보며 순간 갸웃한다. 이런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듯, 서문의 첫 문장은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조합이 어색할지도 모르겠다(p.5)는 작가의 말로 시작한다. 무도한 '식민지 시대'와 '디저트'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상충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디저트'라는 어구는 어불성설로 느껴진다. 이러한 까닭은 아무래도 내 안에 '디저트'라는 개념은 현대적인 의미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디저트'의 다양하게 단맛은 차치하고서라도 '디저트'가 주는 이미지는 '휴식 여유, 사치' 정도로 요약하며 필수가 아닌 선택, 옵션의 개념인지라 먹고살기 팍팍한 탄압의 시대에서 과연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문에 작가는 또 이렇게 답을 해준다.



그런데 어쩌랴.

그때도 사람들을 매혹한 디저트가 존재한 게 사실이니.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5 들어가며



물론 현대의 디저트라는 개념이 적확하게 당시 시대에 적용된 것은 아니고, 현대의 디저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대의 사회적·문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디저트가 갖던 의미와 사회상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곳곳의 일러스트와 삽화, 여러 자료 사진 등이 아득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도와서 초반의 의문은 던져버리고는 어느새 흥미로운 탐구의 자세로 책을 읽게 된다.


사실 먹는다는 행위는 맛을 즐기거나 배고픔을 더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재료를 골라 조리해서 먹거나 식당을 찾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먼저 개인의 경험이나 기호와 관련되어 있다. 나아가 사회적·문화적 취향과 연결되며 제도적인 기반에 지배되기도 한다. 그러니 음식을 먹는 것에는 사회적 취향이나 제도에 기반을 둔 개인의 기호가 작용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디저트를 선택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p.6


책에서 다루고 있는 8가지의 디저트는 현대에서도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종류의 디저트들이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빙수. 이 중에 누구나 하나쯤은 열렬히 애정해 마지않을 것이다. 이 화려한 라인업은 근대부터 시작된 아주 유서 깊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일본에서부터 유래한 경우가 많았으나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그 형태나 맛과 더불어 시대적 사회상이 덧칠해지며 고유한 서사를 지니게 되기도 한다.




마시는 기분의 커피


기호 식품을 넘어서 현대인의 필수 식품이 되어버린 커피. 이 챕터를 읽으면서는 위화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현대의 우리가 커피를 마시고, 그 공간인 카페를 향유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그 당시 경성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카페 순례'를 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경성에서 맛 좋은 커피를 찾아 제과점과 호텔, 백화점을 찾아다니며 서로의 맛을 비교하던 당시 커피 애호가들의 모습과도 매우 닮아있다. 또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끽다점', '다방'에서 향유하는 모습도 현재 '카페'를 향유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유진오도 1938년 6월 잡지 <조광>에 발표한 "현대적 다방이란?"이라는 글에서 다방을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나는 '커피를 파는 끽다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것이다. 후자에 들어가면 담배 연기 가득한 가운데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이 흐른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가게만이 본격적인 끽다점이라고 한다. 정말 다방은 그냥 '커피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p.55


특히 '커피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끽다점'이라는 부분에서는 작은 탄성이 나왔다. 이 기준은 현재의 카페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듯하다. 어떤 카페의 호불호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서 커피 자체의 맛보다는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더 크게 작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는 문화 예술인들의 친교의 장으로써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공간의 인테리어나 가구의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들이 형성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의 씁쓰름한 맛은 식민지 시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현재의 젊은이들에게도 관통하는 공통된 위로였다.



커피는 삶의 여정에 지친 식민지 젊은이들에게 우아한 음악과 포근한 자리를 제공했던 다방과 함께한 듯하다.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p.24


이상의 수필은 식민지 시대 다방이 어떤 의미를 지닌 공간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상은 먼저 식민지 조선에서 다방은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꿈의 공간임을 환기했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청하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p.56





만주노 호야호야!


현재 '만주'하면 떠오르는 것은 십중팔구 지하철 역사에서 파는 '그 만주'일 것이다. 한입 베어 불면 부드럽고 달달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오는데, 어쩐지 잔뜩 먹겠다는 결심에 비해 금방 물려버리는, 맛보다는 향에 취하고는 했던 디저트였다. 당시의 만주는 반죽을 빚어 안에 팥을 비롯해서 다른 여러 가지 소를 채운 따끈한 음식으로 굉장히 값싼 가격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이러한 만주는 '갈돕회'라는 경성에서 고학을 하던 학생들의 모임에서 고학생들이 밤에 학비를 벌기 위해 만주 장사를 하는 것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나무 궤짝을 어깨에 메고 '만주노 호야호야!(만주가 따끈따끈!)'를 외치며 어두운 밤거리에서 만주를 팔던 고학생의 노고가 담겼던 것이다. 성인 입으로 두 입 정도면 금방 사라지는 크기의 만주는 그 사이즈로 보아도 간식 정도의 요량일 텐데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배곯는 이들의 가냘픈 한 끼 식사를 대체하는, 파는 사람에게도 사는 사람에게도 눈물겨운 '디저트'가 아닐 수 없었다.





늦은 밤 '만주노 호야호야!'를 외쳤던 이미지는 나로 하여금 비슷한 청각적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용하고 어두운 겨울밤에 '찹쌀 떠-억!'을 외치던 어느 아저씨의 억센 외침 소리였는데 그 야밤에 간식을 허락할 리가 없던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문을 열고 나가서는 눈처럼 새하얀 찹쌀떡을 사던 생경한 기억이 떠올랐다. 뜨끈한 이불 속에서 눈처럼 하얗고 차가운 찹쌀떡을 베어 물던,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고학생의 만주와 아저씨의 찹쌀떡. 어떠한 서사는 분절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저 시대와 이 시대의 디저트에 대한 몰이해는 이렇게 한결 얄팍해졌다.





불난 호떡집의 그림자


이러한 값싸고도 친숙한 디저트의 계보는 '호떡'으로 이어진다. 호떡은 지금의 위세만큼이나 당시 경성에서의 위세도 대단했는데 각 학교 앞마다 유명한 단골 호떡집이 있을 정도였고, 기숙학교에서 외출을 나가는 학생이 있을라치면 나머지 학생들이 호떡을 잔뜩 주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서 학생들의 호떡 사랑에 관한 글을 보면 '호떡인', '호떡집 토벌'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그 당시 호떡에 대한 학생들의 애정을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세를 보다 보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는 말이 여기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랑캐 호'를 쓰는 호떡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기원한 디저트로, 청일 전쟁 이후 시간이 더 지나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화덕으로 호떡을 굽는 호떡 가게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수가 당시 가장 보편적이고 많았던 설렁탕 가게의 수보다 훨씬 웃도는 정도였다니 조선인들의 호떡 사랑 또한 이렇게 유서 깊은 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또 기름판에 지지는 지금의 호떡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화덕 항아리에 반죽을 붙여 구워내는 전통적인 형식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보던 그것과 공갈빵이 좀 비슷하려나 싶기도 하다. 반죽 안에 달달한 설탕을 묻힌 이 중국산 호떡은 값싼 가격과 압도적인 크기(작은 방석만 한 크기)로 기어코 만주의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러나 이러한 열화와 같은 성화에도 불구하고 호떡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은 좋지 못하여 부끄러워하였는데, 불결하고 누추한 호떡집의 위생 상태를 문제 삼았으나 그 기저에는 일본의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한다. 호떡의 '호'도 사실은 중국의 서역 지방을 나타내는 뜻이었으나 조선의 정착하면서 그 의미가 비하와 멸시의 의미를 나타내는 뜻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이러한 디저트의 언어와 인식에서도 식민 침탈의 저열한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개인의 기호란 것이 온전히 개인적이지 못하다는 점은 호떡뿐만이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에 호떡이 자리를 잡았던 것은 중국음식, 나아가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정착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거기에는 중국을 부정적 타자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통해 아시아에 대한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p.176




초콜릿의 유구한 낭만의 역사


초콜릿과 사랑에 관한 담론은 경성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초콜릿은 어디에서나 사랑의 매개체라는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는데 경성 초콜릿의 낭만성도 그 당시 한국 문학에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러 한국 문학 작품에서 인용되는 '초콜릿의 로맨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로 오는 과정에서 마케팅이 더해지며 초콜릿은 그야말로 사랑의 디저트가 되었다. 그 낭만성이 달콤 쌉싸름한 맛에서 기원한 것인가, 쉽게 구할 수 없었던 희소성에서 비롯한 갈구에서 기원한 것인가? 알 수 없지만 읽다 보면 달달한 초콜릿이 떠오르며 침이 고인다.





초콜릿의 세계사,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경위와 고형 형태의 초콜릿보다 음료(코코아)로 더 즐겼던 모습 등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건강'과 관련된 초콜릿의 이야기였다. 혈액의 양을 증가시키는 도움을 주는 식품에 관한 기사에 초콜릿이 그 예시로 들어가는 것은 의아스럽기도 했다. ' 단것'의 대명사로 그 상징성을 정의할 수도 있는 초콜릿은 건강과는 과연 대척점에 있을 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영양 정보를 강조한 광고가 많았다는 점인데, 1929년 11월 <동아일보>에 실린 삼영 밀크초콜릿 광고는 초콜릿의 영양을 달걀의 3배, 밥의 4.5배, 소고기의 7.5배라고 소개하고 있다. 1929년 12월 같은 신문에 실린 밀크초콜릿 광고에도 과자가 아니라 '제1등 자양품'이라고 소개(p.254) 하는 것을 보면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설탕은?


그런데 당시 설탕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19세기에 정제당이 생산되고 20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유입, 확산되었을 때, 하얀 빛깔의 설탕은 문명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문명개화론'과 더불어 설탕의 소비가 권장될 정도였다. 특히 이전까지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거무스름한 흑당이 '야만, 낙후, 불결' 등으로 치부되는 반면, 하얀 정제당은 '문명, 산업, 위생' 등을 상징했다. 따라서 설탕이 들어간 초콜릿 역시 이전부터 이어온 건강식품이라는 자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p.254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의 문물을 흡수하고 아시아의 서양을 지향하며 다른 아시아 지역을 찬탈하려는 야욕이 기저에 깔려있다. 자국으로 유입된 '하얀 설탕'을 '문명'으로 규정하며 '검은 설탕'인 '흑당'을 '야만'으로 몰아가는 납작한 인식은 초콜릿에도 묻어있지만 앞서 본, 흑당을 사용했던, 중국에서 기원한 호떡에는 '야만'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사회적·문화적 취향, 제도적인 기반의 지배(p.6)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역사의 예시들이 때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선택에도 분별없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덟 가지 디저트의 근대 역사를 톺아보는 일은 디저트를 직접 먹는 것만큼이나 맛이 있었다. 근대사에 더하여 각 디저트에 얽힌 사소한 나의 개인사들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선물 받은 고급 멜론을 기깔나게 잘라보겠다며 설쳐대며 깔깔대던 일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일본 여행 중에 어느 신사 앞에서 팔던 청량하기 그지없었던 라무네의 푸른빛이 떠오르기도 했고, 세찬 겨울 어느 날에는 드럼통 서랍에서 따끈하다 못해 김이 펄펄 나는 군고구마를 사서 먹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빙수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어느 한 여름날에는 밀려드는 빙수 주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디저트는 달콤한 맛 자체만이 아니라 이런 찰나의 기억들을 종종 상기시켜 일상을 조금은 반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일까? 식민지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디저트에 매혹되었는지 모르겠다.


본문에 언급하지 않은 다른 디저트들의 이야기도 몹시 흥미롭다. 이상이 죽기 전에 먹고 싶어 했던 센비키아의 멜론, 멜론의 품종 개량으로 참외가 사라진 일본에서 이제는 한국의 참외를 역수입하는 현상이나 쇠구슬이 들어간 라무네와 같은 탄산음료가 전염병 예방을 위해 아이들에게까지 권장했던 것, 김동인의 <감자>의 감자가 사실은 군고구마였던 사실, '빙수당 당수'를 자청했던 방정환 선생의 빙수 사랑까지….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떠오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호떡을 손에 쥐고, 초콜릿을 고르며, "야, 너 그거 알아? 이 디저트 말이야…"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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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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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소비라는 점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기조이지만 꾸준히 올라가는 물가만큼이나 올라버린 책값도 부쩍 부담스러울 지경에 이르는 요즘이다. 그런 처지에서 역시나 '도서관'이라는 훌륭하고도 반가운 대안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22년도부터 정부의 출판 지원 사업 규모는 꾸준히 감소하는 태세였고 독서문화 증진 지원 사업은 23년도에 59억의 예산 편성이 되었으나 24년도에 아예 폐지되었다고 한다. '텍스트 힙'의 영향으로 독서하는 젊은 층의 수요가 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독서하는 인구 수는 저조하다. 이러한 독서의 부재는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개인적인으로는 '도서관'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독서'에 관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컸다.



이런 고마운 도서관에 관한 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로 내려간다. 그 당시에는 도서 대출증을 만들려면 실물 증명사진 1부가 필요했고, 담당 직원분이 사진을 붙이고 코팅을 하며 대출증을 손수 제작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금빛 색 바탕에 얼굴이 박힌 도서 대출증은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가져보는, '나를 증명하는 나만의 어떤 무엇'이라는 느낌을 주어서 굉장히 설레했던 기억도 난다. 시간이 더 흘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으러 가기보다 공부하러 가기 위한 열람실의 출입이 더 잦았다. 시험 기간마다 도서관 열람실의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 특히나 주말을 낀 시험 기간에는 개관 시간에 맞춰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여서 종종 건물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다. 그리고 보통 칸막이 열람 좌석 구간은 항상 만석이라 자리 눈치 싸움이 제법 치열했다. 그런데 이러한 '칸막이 열람실'이 일제 식민 잔재였다?



일제강점기에 틀이 놓은 우리 도서관 분야는 인적 청산뿐 아니라 일제 식민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걸까? 도서관 용어와 공간, 제도, 운영 면에서 우리는 식민 시대를 얼마나 극복한 걸까? 식민 잔재라는 '칸막이 열람실'을 해방 후 8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우리 도서관은, 친일 청산의 '무풍지대'인가. p.64


이 땅에서 도서관 '사서'라는 용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다. 대한 제국이 국권을 잃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 도서관의 도입도 일제강점기 전후 이뤄졌다. 식민 시기에 도서관 제도가 보급되다 보니, 일본이 번안한 도서관 개념과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쓰기 시작했다. p.394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도서관의 출현은 일제 강점 시기에 이루어졌기에 '도서관'이나 '사서'라는 용어를 비롯해 도서관의 운영 방식이나 도서 분류법도 일본의 것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용어의 일제 잔재 청산을 주장하며 저자는 용어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사유와 정의를 고민해 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언어의 표면적인 정의 이면에 담긴 의미가 '도서관'이라는 언어와 대상을 두고 그것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고위 도서 관리직에는 조선인을 임명하지 않았고, 봉급에도 상한선을 두어 관리하는 등 철저한 식민화의 잔존을 도서직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제는 통치 행위에 일환으로 조선의 도서관 건립을 통제하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 자국의 도서관 건립 수와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도서관을 만들어 역사적, 문화적 역량을 꽤 하고자 하는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현재의 도서관들, 국립 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종로 도서관이나 남산 도서관, 용산 도서관 등의 역사적인 기원과 맥락을 톺아보는 책의 전체적인 과정에서는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지닌 역사성이나 상징성의 해석이 얼마나 복잡한지,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는지 여실히 깨닫는다. 근대 도서관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익선이나 이범승의 경성 도서관 설립과 운영은 분명 조선의 근대적 도서관 설립 계보에 미친 영향이 크겠지만 그들의 친일 행적이나 광복 후 향후 행보에 관한 내용을 읽다 보면 그 도서관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인 주체성을 과연 주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개인의 친일적인 행보, 그것을 시대적인 한계성으로 두고, 그의 업적은 별개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고 적절한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 부분이다.






책 전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혁명과 민주화 투쟁의 무대'를 주제로한 2부의 내용이었다. 이 역시 현 시각 우리 정치 문제를 반추해볼 수 있는 시의성있는 파트여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곡절의 시간을 건너온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도 도서관을 무대로 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톺아본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도서관이 권력의 치적으로 도구화 되거나 권력에 아양 떠는 목적으로 '헌정'되는 수난을 겪는다. 정독 도서관의 이름이 박정희의 이름 자에서 따온 것이나 이승만의 호, 우남을 딴 우남 기념 도서관 등이 그 몹쓸 예이다.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나무 현판 뒤에서 아직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이승만에게 헌정한 도서관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4·19 혁명 과정에서 그를 몰아내는 선봉에 섰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p.160



4·19 혁명부터 부산마산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피의 시대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보였던 전국의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도서관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에서 사법 경찰의 눈을 피해 비교적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던 현실적인 이유를 비롯해 도서관이 갖는 개방성과 접근성은 도서관을 '가장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p.224) 민주주의의 무대를 제공했다. 미국 문화원 도서관 점거 농성이나 건국 대학교의 애학투련 농성 사건등에서도 도서관은 그곳에 있었다. 시대의 폭력에 맞서며 그 최전선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역사를 도서관과 연결한 서술은 지성의 요람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그 의미가 더욱 짙어진다.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과 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서관에 관한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넘치도록 과분하게 알아간다. 도서관의 사회적이고도 문화적인 실용성은 물론, 역사적인 상징성에 관해서도 다시끔 생각해보게 만든다. 예를 일제 강점기 시대나 독재 정권 시절의 도서관의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록해야하는지에 관한 부분이 가장 크게 다가왔는데, 과거의 역사를 모르쇠한 채 국립 중앙 도서관의 개관일을 임의로 지정한 예도 그렇다. 반면 친일 부역자나 독재 정권을 상징하는 기념물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현재의 몇몇 도서관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이외에도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무용한 국회 도서관의 실용성 문제와 마땅히 기념해야할 것이 부재하고 개발과 정책이라는 미명하에 그 상징성이 훼손되는 문제 또한 상주하고 있다.



과거 역사 속에서 비롯해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지속되는 도서관에 관한 문제점을 바라보다보면 도서관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참담하고 문제 해결 방안은 안이한 행태를 취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역사적인 토대 위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관점에서의 도서관을 바라보는 경험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 의미와 상징을 더욱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본 서평은 한겨레 서평단 하니포터 10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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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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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지고 '위태로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곳곳에 '아름다운' 노거수와 나무, 숲의 생태에 관한 실태를 여러 관점에서 탐구하고 기록한 내용이다. 다루는 주제가 평소의 읽는 관심사와는 사뭇 다른 분야라서 궁금한 마음으로 기대 반, 주제가 낯선 것에 대한 낯가림 반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나의 삶과는 그다지 큰 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 조금은 건조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의 시작은 그러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유난히 많았다. 곳곳에 존재하는 노거수에 대한 소개로 시작하는 책은, 노거수의 수령은 기본 수백 년 단위에다가 묘사하는 크기는 쉽사리 가늠이 되지 않는 숫자였다. 분명 아름답다고 했건만 언급하는 노거수의 이력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개발에 떠밀려 그 위용에도 불구하고 생의 터전을 잃기도 하고, 옮겨 심는 과정에서 비용 절감의 목적으로 사지를 절단 당하는 수모와 더불어 실화(失火)로 인해 어이없게 소실되기도 한다. 벼락을 맞고도 굳건하게 새로운 가지를 뻗어내기도 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외면한 노거수를 개인이 거두어 관리하기도 한다.


언급하는 문제점들을 읽다 보면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 관리하는 것치고는 황당할 정도로 허술한 면모들이 많았는데, 방법론 자체도 그렇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나무에 대한 인식 수준도 처참할 지경이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나무를 하나의 '재해'나 '구조물'로 규정할 때마다 무자비해진다. 종종 목격하는 뭉뚝하게 잘려버린 가로수는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에서, 자연재해 피해 시 손해 배상 청구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주민 민원 청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여타 이유를 불문하고 쉽게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가로수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 어렴풋이 들던 이유 모를 불편한 마음의 기원이 여기 있던 것이다.








나무와 나무가 이루는 숲에 관한 이런 처참한 인식 수준은 '도시 개발, 환경 정비'라는 명제와 만나며 그 불온한 시너지가 최고조에 이른다. 나무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식생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무지하게 심어진 봉산의 편백 인공림은 자생하지 못한다. 물탱크를 설치하고, 관계 기관 직원들이 수시로 관리를 해줘야 하는 '밭'으로써 간신히 존재할 뿐이다. 봉산의 식생에 맞춰 자생하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이토록 억지스러운 환경을 조성한 것은 다분히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허울 좋은, 아니 어쩌면 허영뿐인 명분 아래 이루어지는 수많은 개발에 희생되는 나무와 숲의 생태계에 관한 예시는 책에 차고도 넘친다. 특히나 고양 산황산 부지에 골프장을 건설하고 더하여 이를 확장하겠다는 건설사의 취지는 읽다가 코웃음이 날 만큼 뻔뻔했는데 이 사업은 관련 공무원과 건설사 간의 뇌물 수수 혐의와 해당 건설사의 부도로 일단락되는듯했으나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관련해서 최근 기사를 찾아보니 고양시 의회에서 해제 권고안이 통과됐으며 범대위 측에서는 해제 촉구 도보 행진을 진행하기도 했다. 녹지 생태를 파괴하는 일은 그것을 수호하는 일보다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수호하는 자들의 노고를 목도하며 깨닫는다.


"산황산이 훼손돼 보존 가치가 낮아서 그린벨트 역할을 못 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만들어서 '도시 내 녹지 기능 유지 및 훼손된 기존 자연 경관 복원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골프장 쪽이 밝힌 사업 목적이에요. 이 숲이 골프장을 만들어야 할 만큼 훼손됐다고 보이세요?" p.205


나무 한 그루가 주는 도구적인 효용성이 아니라 나무를 중심으로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롯해 여러 크고 작은 생물체들이 나무를 중심으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모습은 소우주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는, 불가사의하게 신비로운 모습이다. 철새의 둥지가 되고 곤충과 애벌레의 집이 되어주며 떨어진 낙엽과 열매는 토양의 비료가 되어 순환한다. 광합성과 증산 작용을 통해 대기 환경에 영향을 주며 나무의 뿌리는 토양을 단단히 붙잡아 주기도 한다. 나무가 생성하는 미기후는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해 주는 것을 물론이고 걷다 지친 누구에게나 너른 그늘 아래를 무람없이 허락한다.


나무에 대한 '못된 말과 행동'의 기저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신화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이용할 대상이고, 그것이 나무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이지요. 정말 나무는 인간에게 이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p.99


천연기념물과 보호수로 지정되는 노거수의 실태와 실제적인 문제점, 노거수를 비롯한 나무와 숲 생태 보호와 보존 방법에 관한 몰이해와 명칭에서 비롯된 나무에 관한 오해와 편견들을 차근차근 톺아본다. 자신의 터전에 알맞고도 유연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생존해 온 나무와 숲의 변천을 읽다 보면 경이롭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런 경이로움은 책을 읽다가 마주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발로하는 이기심과 무자비함에 무너지곤 했다. 치적을 쌓기 위해서, 돈에 눈이 멀어서, 몰이해와 무지 그리고 혹은 우리의 무관심 때문에 아름다운 거인들이 스러져간다.







행간에 스며든 저자의 나무와 숲, 생태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기자의 시선으로 취재한 현장의 실태를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무 자체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화적인 가치 또한 두루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폭넓은 이해와 깊은 애정은 …알면 사랑하게 된다.(p.188)라는 저자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직접 나무를 관찰하고 좀 더 들여다보자는 저자의 권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내일은, 길을 나서면서 스쳐 지나가던 가로수에 시선이 조금 더 머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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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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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서사에다가 몰입도가 강렬한 소설을 읽고 싶던 참이었다. 그러나 서사 자체에 압도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 있는 소설을 찾는 행운은 좀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캡처 된 책들만 차곡차곡 쌓이던 와중에 발견한 《나의 작은 무법자》의 신간 소개 글을 읽는다.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수상하는 골드대거상 수상을 비롯해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제작 확정, 유명 범죄심리학자의 추천사 등의 굵직한 소개 내용과 더불어 한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나의 죄, 나의 영웅, 나의 살인자'라는, 상충하는 단어들의 역학 관계를 간략한 줄거리와 곁들이니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행운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INTRO_


소설의 시작은 실종된 소녀를 수색하는 장면으로 다짜고짜 시작한다.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고, 시시 래들리의 죽음은 주변 인물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다. 범인은 빈센트 킹. 그는 시시 래들리의 언니인 스타 래들리의 연인이었다. 이 비극은 마치 유기체처럼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 줄 모르고 현재에 이르는 시점까지 여러 인물들의 삶을 관통하면서 꿈틀대며 살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비극의 원흉인 빈센트 킹이 수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여기 우리의 작은 무법자, 더치스라는 소녀가 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무법자'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정체성을 부여한 소녀는 바로 스타 래들리의 딸이었다. 약과 술에 취해 딸인 더치스와 아들인 로빈을 돌보기는커녕 하루하루를 그저 평범하게 보내기에도 벅찬 스타를 대신해서 더치스는 동생 로빈을 살뜰하게 보살핀다.


충분히 고달픈 더치스의 인생에 무엇을 더 더할 것이 있을까 싶지만 비극은 여전히 생동하고 있었다. 스타 래들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현장에는 피를 묻힌 빈센트 킹이 가만히 앉아 경찰에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시점부터 소설은 과연 빈센트 킹이 스타 래들리를 죽였는가? 하는 질문을 워크를 통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추적하는 자, 워크


질문을 추적하는 인물은 빈센트 킹의 오랜 친구이자, 케이프 헤이븐의 보안관인 워크라는 인물이다. 이 모든 비극을 목도한 인물인 워크는 킹에게도, 스타에게도 안타까움과 연민을 가지고 스타의 아이들인 더치스와 로빈을 조용히 돕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옥에 수감될 위기에 처한 킹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의 무죄 증거를 찾아 나선다.


킹을 대하는 워크의 태도는 과거 시시 래들리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찬란하게 빛나던 과거, 그들의 학창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킹과 연인이었던 스타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복잡하고도 농도 짙은 회한에 가깝다. 사건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친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빛바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유력 용의자의 배경을 파고들면서 그가 보던 일면이 무용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한다. 또, 자신이 평생을 알던 이웃들의 숨겨진 불쾌한 면면을 발견하면서 내적인 고민과 갈등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결정적인 단서는 요원하고, 오히려 진실로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레드 헤링(red herring)은 의혹의 씨앗에 불을 지필 뿐이다. 방법의 도덕성일랑 잠시 차치하고서라도 워크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관철시키려 분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건과 인물을 가장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인물인 워크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한 인간 군상의 모순을 목도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여백의 간극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살아남은 자, 더치스


우리의 작은 무법자 더치스의 인생은 지독하게 고달프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아직 어린 소녀에게 이렇게나 많은 비극을 선사하는 서사를 마뜩잖게 목도하는 독자였던 나는 결말을 읽고 나서도 씁쓸한 마음에, 어쩔 도리 없이 마음대로 더치스의 미래를 아주 밝게, 지난 삶의 그림자에 대한 보상으로도 차고 넘치게 밝게 밝게 그려 넣었다.


더치스의 삶은, 삶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 모두 상실된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리고 더하여 최소한의 것들도 모두 스러져가는 상황에서 소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무법자로 설정한다.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선택한 무법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로 그녀를 자꾸만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어지럽게 얽힌 인과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더치스의 삶은 평범한 일상의 궤도를 잠시 회복하기도 하지만 이내 앗아가버린다. 이런 상실의 상태를 기본으로 두는 더치스의 건조하고도 퍼석한 현실 인식을 마주할 때마다 서늘해진다.


더치스는 너무 지쳐서 그의 토실토실하고 친절한 얼굴과 감정이 넘치는 눈을 마주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부드러웠고, 젤리나 푸딩 같았다. 부드러운 웃음, 말랑말랑한 몸, 소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길. 부드러운 것은 더치스에게 쓸모가 없었다. p.83


이따금 더치스는 어떤 느낌일지, 좀 더 평범하다면, 좀 더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떨지 궁금했다. p.123


더치스는 코코아를 들어 숟가락으로 마시멜로를 퍼서 입에 넣었다. 그러자 너무 달아서 깜짝 놀라버린 자신이, 마치 삶의 좋은 것들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p.322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천연의 색을 보며 감탄하기 보다 지난했던 삶 속에서 고통의 흔적을 먼저 발견해 내고야 마는 이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지만 무기력한 분노가 일었다. 같은 장면에서 어떤 삶은 아름다움을, 어떤 삶은 고통을 읽을 수밖에 없는지…. 답을 구할 수 없음에 작은 한숨만을 토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가장 애련했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소녀는 다시 무법자 더치스의 정체성을 꺼내들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나선다. 그 종착점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의 구원을, 이것을 구원이라 불러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구원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목도하게 된다. 인생 전반을 흩뜨려놓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참과 거짓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상황들은 기필코 더치스의 거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나서야 종료된다.




OUTRO_


소녀의 얄팍한 생을 이토록 야멸차게 흔드는 서사에 비교하면 그녀가 맞이하는 결말은 결코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추미스 장르를 읽고 난 후, 그러니까 모든 진실이 밝혀지고 나면 응당 카타르시스가 흐르기 마련인데, 반면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먹먹함이었다. 생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성하고, 보다 긍정적인 무엇을 기대하지만 더치스의 구원은 삶에서 거의 모든 요소가 소거된 상태로의 구원을 이야기한다. 너무 야박한 구원이 아닐까 싶지만 생각을 곱씹을수록 핍진한 현실 인식인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추리의 서사는 마치 마르틴 베크 시리즈처럼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단서들을 꼬깃꼬깃 손에 쥐고 느리디 느린 속도로 전개된다. 범죄가 일어나고 추리를 시작하지만, 이 서사의 본질은 더치스의 성장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 뒤에 남겨진 피해자 가족들의 비극과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후유증을 가진 채 너덜너덜 해진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는 점이 여타 추미스와는 구별되는 특장점이다. 더불어 워크가 여러 인물들의 면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인간 군상의 입체적인 속성들도 서사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한 글이 표현하는 정서나 묘사되는 표현들도 굉장히 문학적이어서 다방면으로 풍성하게 읽힌다.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내밀하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자연스레 더치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미래가 어떠할지 섣부르게 단언하지 않고 그저 미래가 앞에 있다는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더치스 삶의 어느 지점에서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핼이나 워크, 셸리 그리고 돌리 같은 조력자들은 삶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생의 희망을 상기시킨다. 거나한 희망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사건의 종착점인 동시에 생의 시작점에 선 더치스를 보며 원제의 의미를 곱씹는다. WE BEGIN AT THE END.



길지 않은 기간에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처지에서 뭔가가 있는 처지로 옮겨갔고,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기는 해도 분명히 소녀 앞에 있었다. p.560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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