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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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이틀도 아니지만서도 어제와 오늘, 뉴스는 미국 관세 문제로 시끄럽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는데 이에 트럼프는 즉시 불복하여 관세를 또 올렸다고 한다. 어디 관세뿐이겠는가? 그린란드 강탈에 대한 야욕, 베네수엘라 침공 및 마두로 대통령 납치, 미국 이민 세관 단속국 ICE 총격 사건 등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행은 계속해서 그 최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분노에 더해 이제는 피로감이 함께 몰려온다. 그러나 피로와 체념은 잠시 제쳐두고 '왜?'라는 물음표를 《야만 시대의 귀환》에 걸어두고 천천히 읽어 본다.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즉, 지금 트럼프 지지자나 그 측근을 위시한 상당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세계 패권이란 그 효능, 즉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에 비해 낭비성이 지나쳐 경제성이 떨어집니다. p.291, 제5장 |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미국의 고립주의 전통

 저자는 미국의 이런 기행적인 퇴보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는 놀랍게도,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세계 패권 역사의 흥망성쇠를 굵게 훑어보면 패권의 중심이었던, 여전히 몰락 중인 미국은 그 전철을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를 거치며 제조업 강성, 세계 대전을 거치며 종전 세계 질서 확립 주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한 달러 기축통화 체제, 냉전 시대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상 장악 등으로 미국은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체제)'를 이룩하였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아는 비교적 최근까지, 그러니까 트럼프 전의 미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 자본주의에 치중하여 제조업은 쇠퇴하고 실물 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했다. 제조업이 공동화되며 그 자리에 저임금 서비스직이 대체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중산층은 붕괴되었다. 이는 또다시 소비력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중시키며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부의 양극화, 경제적 소외를 느낀 백인 노동자의 분노와 불안이 트럼프 정권을 태동시켰으며 알다시피 상호 관세와 같은 극단적 보호무역을 실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같은 신흥 강대국이 첨단 기술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오고 있으니 미국은 스러져가는 패권국의 체통을 버리고 힘으로 통제하려는, 마치 과거 제국주의와 같은, 야만의 시대로 뛰어든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제 그 어떤 이념도 아닌 그저 이윤 차원에서 운영되는, 근거리의 국가·지역을 우선적 대상으로 하는, 과거의 간접 지배나 동맹보다 직접적인 합병을 더 선호합니다. 과거에 세계 경찰을 자임해왔던 나라는 이제 체면을 차릴 것도 없이 그저 세계를 주무르고 있는 여러 조폭 조직의 하나로 그 위상을 재정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p.148, 제3장 | 트럼프는 왜 이럴까, 보편 시대의 종말

 '국가의 자살'이라는 강렬한 표현이 등장하는 3장에서 '트럼프는 왜 이럴까'라는 제목 아래 '트럼프'라는 현상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트럼프라는 문제적 인물의 등장과 괴랄한 기행에 세계의 대중은 갑작스러운 당혹감을 느낄 테지만 사실 미국은 오바마와 바이든의 시기부터 꾸준히 비슷한 맥락의 정책적 스탠스를 유지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트럼프가 지닌 극단성과 서서히 몰락해 온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위기가 한데 뒤섞이며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옐친이나 고르바초프를 트럼프와 비교하여 이데올로기 상실,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보편적 가치의 훼손 등을 예시로 들며 '제국의 말로'를 짚어내는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4장에서 이스라엘을 다루며 짚는 미국의 가치 위선, 군사적 야만성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을 지경.




 이익에 따라 열강마다 포지션을 계속 바꾸어 나갑니다. 그 어느 열강에 대해서도 착각하지 말고 일관되게 지구(기후)의 관점, 그리고 모든 나라들의 모든 약자들의 관점, 탈 자본주의적 관점을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109, 2장 | 미국은 왜 그럴까, 적대적 공생의 역사

 이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다극 체제로의 과도기를 지나는 이 시점, 한국은 어떤 기조와 대외 정책을 다져야 할까. 저자 박노자는 기존의 미국과의 관계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언급한다. 더 이상 동맹과 우호의 관계가 아닌 지극히 이윤의 득실을 따지는 비즈니스 관계가 된 이상, 까다로운 고객 혹은 파트너가 될 것을 주문한다. 결국 미국과 혈맹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중립 노선을 취해야 하며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다자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여 외교 무대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 러·우 전쟁이나 이·팔 전쟁처럼 대리전에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반전反戰 평화주의를 견지할 것을 제언한다.




 (…) 관과 자본이 관방주의 시대로 퇴행하고 싶어도 거리의 민은 거기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에 나선 것이죠. 그런 가두 행동들이야말로 암흑의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p.348, 나가는 말, [관리자 국가 시대,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역사적인 흐름을 통해 거시적인 맥락에서 살펴본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포스트 아메리카'를 예견해 보는 시간. '위기는 기회'라지만 당장에 맞닥뜨린 지의 현실은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의 저항, 민의 행렬'을 말하는 희망은 근간에 한국 사회가 겪어내고 극복 중인 일련의 정치적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 모두 세계 시민으로서의 시각을 견지하며 그런 맥락에서 미약하게나마 일련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고견을 청취해 보려는 시도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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