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 피해자의 자리와 억울함이라는 무기에 관해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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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8일은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이는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임금 인상,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참정권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시위에서 여성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외쳤는데 여기서 '빵'은 경제적 평등을 위한 생존권과 노동권을 의미하고 '장미'는 정치적 평등을 위한 인간답게 살 권리와 참정권을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로 여성의 날에는 전통적으로 빵과 장미를 서로 나누기도 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빵과 장미 대신에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을 건네받았습니다.





 '페미니즘'하면 어떤 생각과 기분과 느낌이 드시는지요. 미약한 고백이지만 솔직하게 개인적으로는 불온한 긴장감이 가장 먼저 느껴집니다. '페미니즘'을 발음하면 뒤따라오는 그릇된 이미지, 소모적인 논쟁, 서로에 대한 혐오 따위 등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죠. 마치 시한폭탄을 입안에서 굴리는 느낌이랄까요. '입 밖으로 내놓기만 해도 끝내 터지고야 만다'와 같은 불안과 끝내 따라오는 패배감. 물론 이런 감상이 그동안 안티 페미니즘, 남성 역차별 등과 같은 백래시 현상으로 오도된 것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여성을 찬양하거나 여성만을 위한다고 떠드는 일이 아니다. 젠더라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소수자와 약자가 딛고 선 땅이 얼마나 척박한지 이해하는 행위에 조금 더 가깝다. 이는 내 사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고정된 틀에 균열을 내고 서서히 스스로를 해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p.125 

 저자는 이런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을 지적하면서 사회 구조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지적합니다. 피해자의 자리와 역할을 자처하며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은 여성과 페미니즘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격적으로 비난합니다. 이런 인식은 다시 여성 혐오 정서를 부추기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들은 '왜' 페미니즘을 그토록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비난과 비판을 떠나서 본질적으로 저도 참 궁금한 지점이었는데요, 저자는 이를 오래된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지적하며 풀이합니다.






 가부장적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학습하며 자란 남성들에게 다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질서는 일종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가부장제 기득권으로 기존에 누리던 우월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러나, 특히 젊은 남성들은 딱히 누려본 적 없다고 느끼는 우월적 지위와 잠재적 가해자 취급에 대한 억울한 정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저성장 사회에서 취업난을 결부시키며 점점 더 활발해지는 여성의 사회적 행보와 커지는 목소리를 위협이자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적대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더욱 문제인 것은 점차 소실되어가는 가부장제가 요구하던 남성적 역할을 대안할 마땅한 남성적 모델이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여성의 대안적 삶을 제시하는 책이나 문화, 인물 등이 다양해지는 반면에 남성의 대안적 삶, 가부장제 이후의 새로운 질서나 정서를 제안하는 대안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죠. 문제의 원인은 가부장제의 구조적 모순이 초래한 편향된 남성적 역할에 있는데, 원인의 방향으로 해결의 길을 터야 하는데,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우려스러운 시점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남성 역차별의 '착시'를 취재 자료, 논문, 최근 통계와 같은 사회 구조적 지표를 근거로 들며 착실하게 타파합니다. 성별 임금 격차, 유리 천장, 돌봄 노동 및 독박 육아로 인한 저출생 문제, 교제 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의 비대칭성 등은 현재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젊은 남성들의 불안과 공포를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의 언어로 치환하며 왜곡된 피해자성을 부여하고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적 모략은 반대로 페미니즘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페미니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는 관점이자, 나의 '이상함'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해석의 틀이었다.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제도적 개선이,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견고한 유리천장을 부수고자 하는 시도가 어째서 '남성의 몫을 빼앗는 일'이란 말인가. p.6, 프롤로그, <포기할 수 없어서, 같이 살고 싶어서> 

 이런 대립은 결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성 불평등 구조 또한 여성에게만 유해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유해하다고 저자는 설파합니다. 특히 성찰적인 태도로 페미니즘에서 남성의 역할을 주장하는 점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부디 페미니즘이 건강한 공론의 장에서 건설적으로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해야 얻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의 주체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말이죠. 페미니즘도 한쪽으로 만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다시 '우리'가 되어야 하겠죠.




 사실 까슬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불편하기도 하고, 답 없이 꼬여만 가는 갈등과 혐오를 활자로 또다시 반복하는 기분이 들것 같았거든요. 읽으면서 그런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럴까에 대한 본질적인 궁금증에 많은 답을 찾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낙담과 피로감을 핑계로 한 비겁한 자세를 고쳐 앉을 수 있었던 문장을 골라보았는데요?





 연대는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다. 그건 어쩌면 낯선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환대이자 사랑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쉽게 낙담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다시 연대의 광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연대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p.278, <연대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책의 가장 마지막 글에서 골라왔습니다.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가장 큰 환대이자 사랑'이 곧 '연대'라고 말하는 그 마음. 어쩌면 '대 혐오의 시대'라고 조소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거든요. 여성의 날에 건네는 빵과 장미도 결국은 '연대'하자는 근사한 청유인 것처럼 결국은 이 책을 통해 건네고 싶은 말은 연대의 광장으로의 청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성의 날'이 있는 이 달, '연대'에 관해 한 번씩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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