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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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 양육과 돌봄'이라는 세계는 개인적으로 도통 접점이 없는 세계입니다. 자녀도 없고, 엇비슷하게 조카도 없으니 직접적인 양육 경험도, 그것을 멀리서나마 관찰할 수 있는 간접적인 경험도 없지요. 집 근처에 학교가 있는 터라 등·하교하거나 역시 근처 공원에서 노니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스쳐 지나가며 마주하는 것이 접점이라면 접점이랄까요. 그런고로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해의 영역에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가라앉을 걱정이요. 그러나 역시 쓸데없는 기우였고요,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카프카의 도끼'가 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각 가정마저 다음 세대의 인적 자본을 재생산하는 경제 현장이 되면서 결혼과 가족은 자연히 탐욕스러운 제도가 되었고, 자녀를 위해서라면 불법과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집착이 탐욕스러운 돌봄을 배태시켰다. p.36, 탐욕스러운 돌봄 

 《탐욕스러운 돌봄》은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양육 과정에서 저자가 경험하여 고민하고 갈등한 사유한 총체에 관한 기록에 더하고 나아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비평하고 대안을 제언합니다. 뉴스에서 종종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 문제, 일부 몰지각한 양육자의 태도, 이에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노 키즈 존'과 같은 혐오의 정서 등과 같은 다양한 현상을 '양육자'라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를 더 확장시켜 구조적인 해부를 시도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붕 뜨는 느낌이 없는 까닭은 저자가 직접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사유이기에 개연성과 설득력이 충분히 확보되기 때문이죠.





 아이와 아이를 둘러싼 안팎의 세계는 '돌봄'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며 왜곡되고 굴절되기도 합니다. 새삼 세상에 이토록 많은 해악의 요소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요. 이런 안팎의 세계와 교류하며 태동하는 불안이 결국 선행 학습, '키즈'가 붙은 각종 체험 활동, 초등 의대반 열풍 등의 '탐욕스러운 돌봄'으로 발현된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불안과 욕망, 공포가 부추기는 '돌봄'을 결코 해갈되지 않는 '갈증'으로 정의하고 돌봄의 영역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시킵니다. 개별 가정의 고립된 돌봄을 '우리'라는 사회 공동체의 영역으로 끌어오며 이로운 균열을 야기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라 해도 모든 부모는 부모이기 전에 시민이고 개인이다. 자식 또한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고유한 타인이다. 우리는 아이와 좋은 이별을 맞기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줄 수 있지만 생각을 심을 수는 없다. 부모이기 전에 각자의 '나'들이 먼저 자신을 들여다보고, 타인을 돌보는 그 마음을 돌이키기를 제안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이 사회를 함께 돌아보면 돌봄이 조금은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돌봄의 어려움은 나 혼자 애쓴다고 덜어지지 않는다. p.7, 서문, 혼자 애쓴다고 쉬워지지 않는다 




 아이와 저자의 에피소드에서 파생되는 꼭지들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빗금과 아이의 자존감 문제, 초등 교과서 속 다문화 가정 캐릭터 '샤오메이', 저출생과 과밀학급을 바라보는 신도시 엄마, 여성과 돌봄 노동, 사회적 참사를 아이에게 설명하는 방식, AI를 능란하게 활용하는 미래 세대, 학교에서 폭력과 젠더 문제를 다루는 방식 등…. 홀홀한 한 개인으로써 보다 양육자로써 이러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 날카로운 동시에 세심해집니다. 다종다양한 주제로 무람없이 확장하는 사고와 비판적인 성찰과 건설적인 비평은 또 다른 의미에서 무지렁이 독자의 세계에 균열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호흡하는 한, 우리는 세계를 공유한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들과 공유하는 세계를 공동체라 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위해 여기 함께 있음을 굳이 번거롭게 증명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p.80, 안녕, 샤오메이 

 읽다 보면 돌봄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같은 사회를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달까요. 모두의 돌봄이란 결국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를 바탕으로 정서적인 연대, 나아가 사회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포괄적인 영역을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아이 혹은 어린이'에서 '미래의 민주시민 동료'로써, 한 명의 온전한 주체로 인식을 전환하니 낯선 세계와 접점이 없다고 느꼈던, 존재를 향한 응시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12기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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