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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문장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2011년 처음으로 읽은 단편소설이다. 단편소설이 좋은 점은 많은 시간과 노고를 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내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애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도 일단 책을 읽게 되면 게임하며 노는 시간이 줄고 힘들게 한곳을 응시해야 하는 힘든 수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소설을 쓰는 작가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를 보더라도 일단 그 권수에 부담감이 앞선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지 않으면 일독하는 것도 힘들다. 읽는 것 자체도 힘든데 쓰는 것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오죽하면 토지 세번만 읽으면 소설한권쯤은 넉넉하게 쓴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런 측면으로 따져보면 단편소설읽기는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단편소설에도 엄연히 세계가 있다. 짧게 구연된 세계. 이 소설집도 아홉편씩이나 다른 세계가 구연되어 있다. 마음갈 때마다 한편씩 뽑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책을 읽기 전 먼저 작가의 이력이 궁금했다. 어디학교 출신이길래 남들은 한번하기도 힘들다는 신춘문예 삼관왕을 차지했을까. 확실한 문맥이 아니라면 타고난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다. 인터넷을 검색해 본 바로 작가는 서울출신으로 세종대학원을 나왔으며 나이 사십에 등단해서 현재 나이가 벌써 사십대 중반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상했던과는 반대로 소설들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생기발랄한 수채화같은 느낌이 아니라 진중한 유화를 보는 느낌이다. 가장 먼저 읽은 <빠삐루파, 빠삐루파>는 반신불구인 아버지와 난쟁이 아들이 주인공이고, 두번째 읽은 <K2 블로그>는 사촌지간에 결혼하여 혼자가 된 엄마와 딸이 주인공이며, 화자를 여자로 착각해서 읽은 <화이트 이웃>은 이혼하고 혼자사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단편집의 제목이 왜 <오후의 문장>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다른 아홉편에 비해 작가의 애정이 많이 갔을까. 아마도 신춘문예에 당선된 세편의 단편과 <백야>를 뺀 나머지 단편들 중에서 가장 비중있는 단편이었기에 제목으로 선정된 듯 하다. 아울러 여류작가임에도 주인공이 남자인 경우가 많은 점이 유독 눈에 띄였다. <백야>는 몸에 빛이 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고, <래퍼K>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선배를 찾아다니며 신동 래퍼K를 취재하는 남자이며, 빠삐루파의 주인공도 남자이고, <화이트 아웃>과 <실러캔스>의 주인공들도 또한 남자이다. 작품을 구상하는데 남자의 입장이 주제를 표현하는데 오히려 편했는지 아니면 작품속에서 나마 남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는지 작가의 의도가 자못 궁금했다.
연초 단편소설하면 신춘문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등용문이며 상상만해도 즐거운 아득한 꿈같은 무대다. 그 무대에 해마다 새로운 별들이 기지개를 펴고 떠오른다. 그러나 신춘문예는 유명 작가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며 피해갈 수 없는 좁은문이다. 그런 무대에서 한꺼번에 삼관왕이 된다는게 어디 이름처럼 쉬운 일인가. 그 자체로서 목표에 한 획을 그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회자되는 작품으로 다시 떠오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