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 가는 길 2 암자로 가는 길 2
정찬주 글,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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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불교와 관련된 책자는 산뜻하지 않다. 화려함을 어거지로 회피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화려할 필요성이 없어서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산뜻하다. 책표지도 산뜻하고 책 중간중간의 사진들도 한폭의 풍경화를 옮겨온 듯 선명하다. 책 내용 또한 수채화같은 "암자에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어둡거나 어렵지 않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내용이 너무 부드럽고 평이하여 다 읽고 난 후에도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서른 두개의 암자를 사계절로 구분하여 일정한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저자 마음가는 데로 소개하였다. 혹시 독자(내)가 가본 암자가 있나 유심히 읽었으나 유명한 산의 암자 두군데 밖에 없다. 역시 저자를 일러 스님보다 암자를 더 많이 다닌 암자 순례자라고 하는 이유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암자(庵子)와 산사(山寺)의 차이는 무엇일까. 산사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사찰(寺刹)을 말한다. 암자는 그 의미가 모호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큰절에 딸린 절, 도를 닦기위하여 만들어진 자그마한 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암자라고 생각하면 바위 암(巖)자를 떠올려 바위 틈에 있는 조그만 거처를 떠올리기 쉬운데 암자도 엄연한 절이다. 절에는 부처님이 있고 부처님을 따르는 불자가 있다. 그러나 암자는 작은 절인 만큼 많은 중생들이 드나드는 큰절에 비해 보다 한적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의 글에서도 그런 설명이 잘 들어나고 있다. 
  " 사람들은 수행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수행자들은 공해없는 물 마시고, 풍광 수려한 곳에서 사니 더없이 좋겠다고. 그러나 저잣거리 사람들의 관점일 뿐이다. 수행자들이 머무는 암자는 고독하고 가장 불편한 공간일 수 있다. 상백운암의 경우 전기와 전화도 없고, 식량도 등짐을 져서 날라야 한고, 그 어떤 문명의 시설도 누릴 수 없는 원시와 다름없는 수행공간일 뿐이다.(213p)"
  그러면서 한편으로
"중생은 습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습이란 분별하는 의식으로 생겨난 모든 생각이자 행위입니다. 습에서 벗어나 중도에서 사는 사람이 대자유인이자 부처입니다.(214p)"라는 말씀을 기억하는 저자는 머리를 깍으라는 선지식이 권유에도 아랑곳없이 속세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선택 또한 저자가 생각하는 자유인의 한 단편인지 내내 궁금했다.
 

  아울러 저자의 글에 유난히 눈에 띄는 두 구절이 있었다."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인도의 금언이 있다.(280p) 나그네는 어머니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나그네의 영혼을 지탱해 주던 뿌리 하나가 잘려나갈 것을 미리 생각할 때마다 인생은 고달픔(苦)이 아니라 슬픔(哀)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281p)" 지엽적인 면을 들어 저자의 생각에 반기를 들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독자는 부처께서 말씀하신 생즉고(生卽苦)란 말씀에 대하여 많은 세월동안 의구심을 가지고 생활해 왔다. 어째서 생이 고(苦)란 말인가. 생은 고(苦)도 아니고 애(哀)도 아니고 그 어느 것으로도 정의 될 수 없는 그 무엇일 진데 왜 구지 고달픔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그네에게 던져진 "중생은 무엇인가"라는 노승의 말씀처럼 "생은 무엇인가"라는 말은 중생들의 영원한 화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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