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식민지 사이 - 경계인으로서의 재조일본인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학술총서 1
이규수 지음 / 어문학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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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 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인 이규수 교수님의 학술 논문이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인으로 생활한 재조 일본인의 체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식민지 수탈론’과 대비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연구 내지는 재조일본인들에 의해 왜곡된 식민지론의 재생산에 대한 현주소를 연구한 논문이다. 제 1부는 재조일본인의 연구와 존재 양태로 ‘연구의 현황과 과제, 재조일본인의 존재 양태’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제 2부는 식민정책론과 재조일본인 사회이며, 제 3부는 식민자의 체험과 기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식민지 수탈론’이 한국 사학계의 통설로 자리매김하였는데, 1980년데 중반 이후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바로 볼 것인가를 둘러싸고, ‘식민지근대화론’이 민족주의 역사학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을 비판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저항’의 역사가 아닌 ‘수탈과 개발’의 역사로 바라보자는 ‘식민지 개발론’이나 이를 수정한 ‘식민지 근대화론’ 등장하고,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양자를 모두 비판하는 ‘식민지 근대성론’이 1990년대 중반이후 탈근대주의 입장에서 대두되었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아래 내용을 보면 그런 용어들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적 변화에 대해 변화의 주체 문제를 등한시한 채 경제적 측면에서 해방이후 한국자본주의 고도성장과 연관시킨다.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사회문화 측면에서 민족주의의 차별과 배제논리, 규율권력의 개인적 내면화를 근대성 일반이 이미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음에 주목하고, 이를 탈근대의 문제의식과 연관시킨다. 요컨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식민지 근대성론’ 모두 ‘식민지 수탈론’에 내표된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선진근대국가의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지상주의인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민족주의에 기초한 근대국가로부터의 벗어남을 지향하는 탈근대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이 지닌 최대 결함은 일제강점기의 ‘근대성’에 주목하면서 ‘식민성’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22p-

  

  일본인들이 처음 조선에 진출한 것은 1876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조일수호조규’에 의하여 부산이외에 원산과 인천에 개항장을 통해서였다. 이후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과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다양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한다. 이 재조일본인들은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전쟁에 적극 협력했으며, 러일전쟁 이후에 개항장 인천은 일본의 식민기지로 변화했다. 1904년 전북 군산에 설립한 군산농사조합은 개항장 군산을 거점으로 비옥한 곡창지대에 토지소유권과 저당권을 획득한 일본인 지주의 토지 집적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일본인 지주의 밀집지대인 군산 부근의 1단보당 가격은 상답 15~20원, 중답 10~15원, 하답 10원이었다. 또 전주는 상답 17원, 옥구는 중답 13.5원, 김제는 중답 8.3원이었다. 이런 한국의 매매지가는 일본 관서지방에 비해 약 10퍼센트에 불과한 것이었다. 1904년 일본의 1반보당 평균 매매 가격은 논 150원, 밭 86원이었다. 즉 일본인은 일본 국내의 토지를 처분하여 한국에 진출하면 토지 면적을 10배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한국의 저렴한 지가와 소작제 농장 경영을 통한 고율의 토지 수익률은 상업 자본가와 지주 계층의 토지매수를 가속화했다. 그들은 자본가의 임무를 내세우며 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임을 자부했다” -153p-

아울러 재조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 많은 갈등을 일으켰는데, 이 책에서는 전남 벌교에서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이 갈등은 일본인 지주의 소작제 농장경영과 가혹한 소작료 징수문제였다고 한다. 재조일본인들은 남아있는 자료만으로 판단한다 해도 관헌이상으로 아주 강렬한 식민지배자였으며, 조선인에 대해 국가의 논리로 무장한 냉혹한 에고이스트이자 편견의 소유자, 차별과 박해의 실행자였다. 이런 귀환자들은 지금도 자기 체험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평가의 기회를 상실한 채 왜곡된 기억과 역사인식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운동, 1894년~1895년 청일전쟁, 1895년 민비시해사건, 1904년~1905년 러일전쟁, 1905년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한일합병조약)부터 광복까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저번 주 8월 29일이 경술국치일인지는 생각한번 해보지 않고 지냈다. 신채호 선생님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재조일본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수많은 수탈과 핍박을 했지만 아직도 이 나라가 이렇게 건재한 것은 슬픈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저자처럼 연구하고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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