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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ㅣ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추천영상으로 뜬
TVN의 '유퀴즈온더블럭'을 보게 되었다.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이라
잠깐 시간을 내서 보고 있는데
마지막 퀴즈를 맞추는 시간이 있었다.
이 때 출제된 문제는 한국 화가 작품을
현재 경매 낙찰가가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제시된 작품은 이중섭의 대표작인 <소>와
김환기의 <Universe 5-IV-71 #200>, <고요 5-IV-73 #310>,
<3-Ⅱ-72 #220> 이렇게 총 4점의 작품이었다.
문제를 듣는 순간 당연히 이중섭의 <소>가
최고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 머릿속으로 순서를 정해보았다.
출연자들 역시 순서대로 낯이 익은 <소> 그림부터
배열을 했는데 결과는 오답이었다.
이중섭의 <소>는 47억으로 제시된 작품 중 가장 낮은 가격이었고,
김환기의 <Universe 5-IV-71 #200>가 약 132억,
<3-Ⅱ-72 #220>은 80억, <고요 5-IV-73 #310>은 60억 5천만원이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탓인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높은 낙찰가라면 뉴스에서라도 한번쯤 봤을 법도 한데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미술과 그림에 대해서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세계가 인정한 한국의 작가인데
정작 한국사람인 나는 이름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그림이 어떠한 의미인지,
왜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할 뿐더러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방구석미술관2 : 한국]는 딱 그 시점에 만나게 된 책이다.
고대를 비롯 중세, 근대미술과 관련된 책은
종류도 많고 심심치 않게 봐왔는데
현대미술과 관련된 책은 거의 읽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같은 문외한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김환기 화가의 작품에 궁금증이 딱 생길무렵
[방구석미술관2 : 한국]이 한국의 현대화에 대해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필요한 시점에 이렇게 딱 선물처럼 찾아와 주다니.
동명의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서양미술을 다룬 [방구석 미술관]에 이어
2편으로 한국미술편을 출간한 것이다.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김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까지
'20세기의 한국미술의 거장' 총 10명을 만난다.
사연도 있고 해서 이들 중 단연 궁금한 이는 '김환기'였는데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저자 역시 프롤로그를 '김환기'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일입니다.
사석에서 한 신사분과 미술에 대한 담소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반 고흐 그림을 좋아한다면 반 고흐 예찬론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런 그분께 저는 물었습니다.
"김환기는 어떠세요?"
그러자 그분께서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모르는데..."
궁금했습니다. 왜 우리는 서양미술에 열광하면서도
한국미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이상했습니다. 왜 우리는 미술이라고 하면
서양미술을 먼저 떠올리고,
무엇보다 먼저 서양미술'사'라는 역사를 공부하려고 할까?"
<중략>
<방구석 미술관2 : 한국>편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제는 좀 알고 싶은데 알기 어려운 한국 현대미술.
그 시작을 돕기 위해 이 책은 쓰였습니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1세기 동안 한국 현대미술은 어땠는지,
그 흐름의 맥을 짚어 보여주고자 한국태생 미술가 10명을
방구석에 모셨습니다.
그들과 함게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수다 떠는 중에
'한국의 예술'이 '세계의 예술'로 확장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동서양, 국경, 이념 등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며
오늘날 미술은 사실상 하나의 '세계미술'이 되어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 p.005~007 -들어가며 中-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민망함이 좀 줄어들었지만
한국미술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은 좀 슬펐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한국화가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탐구하며 온 생을 바쳐서 일궈 낸 작품들을,
한국미술의 맥을 우리는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책의 구성은 서양미술을 다뤘던 1편과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소개할 화가의 대표작과 그의 작품과 생을
아우르는 수식어로 시작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화가의 사진과 사진에 대한 설명,
이 장을 관통하는 키워드 혹은 문구가 던져진다.
저자는 이 키워드를 따라 화가의 생애부터
작품의 흐름과 발전, 미술사적 의미까지 시간순으로 추적해간다.
분기점이 되는 사건과 전환점이 되는 계기들,
파란만장했던 삶과 철학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어떻게 발전되어갔는지 의미를 짚어준다.
마지막에는 본문에서 미처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추가로 다루면서 마무리한다.
예를 들어 이중섭하면 '소', '아이'의 그림이 떠오르지만
'닭'도 그렸었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다루는 식이다.
현대 작가의 작품에 대한 책이 많이 없는 이유 중에 하나가
저작권의 부담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 책은 이우환의 작품(저작권 문제로 QR코드로 연결해서 감상할 수 있다) 외에는
화가들 작품의 섬세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낌없이 많은 작품을 싣고 있다.
심지어 작가가 어떤 작품에 영향을 받아 가면서
성장을 해왔는지 영향을 받은 작품까지 같이 비교해서 보여주면서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영향이 사조일 수도 있고,
전통적인 미일 수도 있고,
뮤즈와 같은 동료, 동반자이기도 하고,
장자와 같은 사상가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가져와 인용해 보여주면서
그 생생한 느낌을 실감나게 전달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화가들이 서양화라는 장르에서
작품활동을 주로 했지만
자신만의 세계가 구축될수록
한국의 미, 자연으로 귀결되고
결국에는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대나무에서 서양화로, 다시 한글로 점진했던,
모두, 함께, 어울려, 자유와 평화의 춤을 노래했던
이응노가 그러했고,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유영국의
극도로 단순해졌던 '산'의 세계가 그러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민족)은
영원한 공허함 속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였을 때 모방만 할 수 있을 뿐
자신이 가진 것과 통섭해 재창조해내지 못합니다.
문화유산이 있기에 우리는 어제를 소중히 기억하며,
현재를 지혜롭게 살아, 건강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한민족 미의 맥(脈)을 이어 '현재의 미'로 재해석해가며
극도의 무욕의 단순함을 추구했던 장욱진도 그러했다.
신과 인간의 매개와 같은 역할을 TV로 표현하면서
소통과 지구촌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우리는 하나라는 아우름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백남준,
다소 이름은 다소 생소하지만
돌과 철판으로 자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
사람, 자연은 물론 공기, 공간, 그 속의 울림, 떨림까지도
모든 것들의 관계를 조망하려고 했던 이우환 역시
관계를 통한 큰 하나의 어우름을 추구하려고 했다.
김환기 역시 궤를 같이 한다.
흔한 백자항아리를 끝도 없이 탐구하면서
한국의 미를 표현해내려고 했던 김환기는
고향 자연의 그리움과 백자항아리의 무심(無心)의 미를
투영한 '점의 우주'를 창출한다.
한점 한점을 채움으로써 이루어지는
우주는 역설적으로 모든 걸
비워내버린 무심의 공간이 된다.
역대 가장 비싼 한국작가의 작품 10점 중 9점이
김환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으로 저자는 말한다.
"우선(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환기의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한국 20세기 현대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유영국과 함께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이며 무엇보다
(1970년대 탄생해 현재 세계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화가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미술사적 가치를 공고히 인정받은 작가일수록
작품가는 고공상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환기의 경우 이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작품이 너무 좋습니다. 그저 그의 그림이 너무 좋습니다.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로 좋습니다.
작품이 가지는 미술사적 가치도 가치지만,
환기가 그린 그림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실 표현할 필요도 없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오직 그의 그림에서만
뿜어 나오는 순수의 에너지요.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모든 세계인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그의 그림은 '돈의 가치'마저도 무색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품고 있습니다."
--- p.227~228
"그렇게 마르지 않는 순수의 에너지를
무한히 발산하며 팽창하는 '점의 우주'를 세상에 선물합니다.
그런 환기의 점화를 꼭 몸으로 직접 만나보세요.
그가 창조한 무한한 점의 우주 속에서 유영하는 신비로운 체험,
꼭 체감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문자도 불필요함을 알게 되실 겁니다.
--- p.259~260
도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에너지와 기운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붓터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에너지와 경이로움이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환기미술관'이 꽤 지척에 있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니 새삼 억울하다.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당분간 휴관이라고 한다.
아쉽지만 다시 개관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책을 읽으며 미술책에 가볍게 한 두 줄로 표현되었던,
심지어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수많은 화가들이 얼마나 예술혼을 불태우며
치열하게 한국미술을 개척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그림을 자주 봐주고,
그들이 표현하고 싶었던 세계를 제대로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미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듯 무지몽매한 나에게
한국현대미술을 조금이나마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준
흔치 않은 현대미술 가이드이다.
앞으로도 이 책의 부제처럼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이후의 현대미술도 지속적으로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