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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손보기 - 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 ㅣ 샘터 솔방울 인물 10
김향금 지음, 정경심 그림 / 샘터사 / 2012년 10월
평점 :
작년 전곡리 선사 유적지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었다.
그 때는 아직 박물관 개원 전이라 유적지와 기념관 같은 곳에서
전곡리 선사 유적지의 의미와 유적지를 발굴하게 된 과정,
그리고 발굴하면서 필요했던 물건들, 신문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유적 발굴이라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때만 해도 큰 아이가 고고학자에 관심을 보였었기 때문에
고고학자가 하는 일,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등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였다.
고고학이나 역사는 실은 내가 더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분야이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던 터라
자연스럽게 그 흥미가 아이에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암튼 끈기와 인내는 물론이고, 발굴 현장을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는
치밀한 성격이라는 데에서 큰 아이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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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고고학자 손보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였다.
첫번째는 고고학자라는 직함이 생소해서였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영화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 고고학자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데,
그 분야에서 애쓰신 분에 대한 책이 나왔다니 반갑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두번째는 '손보기'라는 분은 잘 모르지만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작년쯤인가 이 시리즈의 두번째 책 '간송 전형필'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우리 역사에 이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하며
한 장 한 장을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독립 운동이라고 꼭 총, 칼 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전형필 선생님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나라의 보물을 지키고, 되찾는 것과 같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애쓰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애국이요, 독립운동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숨은 곳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희생한 분들의 노고를 잘 알지 못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것이 참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늦게 나마 샘터에서 그런 분들을 찾아내어 그 분들의 노력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에 감사도 하고 믿음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인물 시리즈가 벌써 열번 째 권이 나온 것이다.
이름도, 분야도 참 낯설기만 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점을 찍으신 분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고고학자 '손보기 선생님'은 책 제목이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역사를 손보기 해 드립니다.
선생님의 성함과 동음어인 순우리말 '손보기'라는 뜻은
'어떤 일이나 물건에 결점이 없도록 보살피는 일'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에게
그 일은 어쩌면 타고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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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철없는 부잣집 막내 도련님이 왜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식민 치하에서 빼앗긴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 지를 보여준다.
지금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식민치하이기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그 억울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라를 잃은 설움 속에서도 역사를 배우고, 우리의 뿌리를 찾아 생각을 바로 세움으로써
민족의 자긍심과 정신을 이어나가려고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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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은 '고고학자 손보기, 우리 역사를 구석기시대로 끌어올리다'
손보기 선생님은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학자이다.
그런데 왜 고고학을 연구하게 되었을까?
1964년 봄, 미국인 앨버트 모어 부부에 의해서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고,
손보기 박사에게 연락을 취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구석기 유적 발굴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에는 고고학을 공부한 학자가 없었기에
외국 서적을 찾아가며 구석기 고고학을 연구해야 했고,
이로써 손보기 박사는 우리나라 고고학의 1세대가 되었던 것이다.
손보기 박사는 우리나라에도 구석기 문화가 존재함을 알려주는 '공주 석장리' 유적을
주도적으로 발굴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를 만 년 이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 같지만, 처음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을 당시의
그 떨림과 흥분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 것 같다.
책에서는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내가 처음 발견하는 것처럼
함께 흥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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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은 '역자학자 손보기, 역사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다'
손보기 박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것은 그가 바로
우리나라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린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가지고 있던 그 사실을
알린 분이 바로 손보기 박사였다는 사실은 큰 감동이었고,
또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의 일생을 보면 나라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리고 그 힘이 바로 우리나라 역사, 더나아가 세계의 역사를
들어올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마음 하나로 평생 쉴 틈 없이 연구하며
역사와 고고학을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던 손보기 박사.
공주 석장리 박물관을 열면서 평생 모은 연구 자료와 유물 1만 점을 기증하고
홀가분하게 떠난 그의 마지막을 보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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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줄 한줄을 늘려가고 고쳐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군가의 평생의 노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 역사를 접할 때면 그 숭고한 노력들이 떠오를 것 같다.
역사를 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인물을 통해 역사를 겪어나가는 것은 그 인물의 숭고한 정신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 무겁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샘터 시리즈도 좋고, 다른 시리즈도 좋으니 이렇게 역사의 뒷편에서
묵묵히 세상을 바꿔나가셨던 분들이 더 많이 알려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