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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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라면 카드 놀이에서 코너에 몰렸을 때나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을 때 짜릿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이다. 이 조커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극적 반전도 이끌 수 있고, 그냥 허무한 승패로 끝나 버릴 수도 있다. 큰 변수가 되지 않더라도 이 ‘조커’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든든하니 게임을 할 맛을 느끼게 된다. 딱히 조커가 승패에 영향이 없더라도 ‘조커’가 들어오면 행운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다른 카드에 상관없이 게임을 적극적으로 즐기게 된다. 그 이유는 예상치 못하는 상황에 대한 기대감과 그 변수를 내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국 게임의 승패를 떠나 얼마나 내가 게임에 적극적인 개입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게임의 재미가 달라지게 된다.

 

‘조커’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바로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조커 (수지 모건스턴 지음, 미레유 달랑세 그림, 김예령 옮김/문학과 지성사)’에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 ‘조커’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곳이란 눈치를 챘겠지만 바로 ‘학교’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등장한 나이가 지긋하신 노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선물로 조커를 나눠주신다. 이 카드는 카드 게임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조커와는 사뭇 다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숙제를 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벌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은 선택의 권한이 없다. 수업 시간은 물론 휴식, 식사 시간마저도 정해진 규칙대로 따라야 한다. 만일 그 룰에서 벗어나면 가차없이 제재가 들어오는 숨막히는 공간이다. 즉 변수가 없는 예상이 가능한 어떻게 보면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게임인 것이다.
이 답답한 공간에 노엘 선생님이 ‘조커’를 넣어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주체적으로 게임을 주도하고, 상황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준 것이다. 물론 판을 뒤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지켜야 했던 틀을 자신들의 선택으로 한 번쯤 바꿔보고, 일탈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뻔하고 재미없던 게임은 이제 흥미진진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평소 같았으면 절실했을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나 ‘수업을 듣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가 필요 없어질 정도로 아이들은 이미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는 믿음이 같은 상황에서도 심리적인 여유를 가져다 주었으며, 그 상황을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엘 선생님이 전해 준 조커의 힘이었다.

 

조커의 존재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마다 성향에 따라 조커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베랑제르는 이 특권을 어떻게 해서든 많이 모으는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샤를르는 반에서 가장 조커를 먼저 사용할 정도로 원하는 순간순간 주저없이 조커를 활용한다. 심지어 원하는 조커를 얻기 위해서 갖고 있는 조커 3장과 맞바꿀 정도로 조커를 사용하는 행복감을 누린다.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조커를 모두 사용한 샤를르는 반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를 사용할 때 혼자만 학교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쯤 되면 흥청망청 사용한 샤를르의 조커 사용은 실패고, 차곡차곡 아껴 모은 베랑제르는 모범 답안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과연 베랑제르의 사용법이 옳은 것일까? 노엘 선생님은 단호하게 얘기한다.

 

“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희가 사용하지 않는 조커들은 너희와 함께 죽고 마는 거야.”

 

노엘 선생님은 혼자만 학교에 나오게 된 샤를르와 더 재미있는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조커를 함께 만든다.

 

“웃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자신을 기쁘게 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사람들을 돕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샤를르가 조커를 아끼며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면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조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 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을까? 샤를르는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의 결과는 또다른 조커를 만들어 주었다.
비록 당장에는 실패처럼 보일 수도 있고, 후회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우리는 샤를르가 그랬듯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조커를 더 많이 얻게 될 수도 있다. 조커는 결국 누군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찾아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그 조커를 써야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아무리 많은 조커를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으면 결국 그 조커는 종이에 불과한 것이다. 노엘 선생님이 퇴임하시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베랑제르의 조커 뭉치처럼.

노엘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강조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곧장 쿠스쿠스 루아얄 식당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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