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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100 아티스트 - 대한민국 음악의 발견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제작팀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9월
평점 :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500페이지 가량 되는 책은 들고 있기에도 버거울 만큼 묵직한 무게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 무게감은 단순한 책의 무게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속에는 우리나라 가요사의 전설이라 불리는 아티스트 100명의 음악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시대 미성으로 심금을 울렸던 남인수부터 최연소 레전드로 이름을 올린 보아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가 된 100명의 레전드 아티스트'라는 긴 부제를 가진 [레전드 100 아티스트]는 이들 100명의 레전드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가요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가요 프로그램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없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같은 듯 다르게 나오는 아이돌 그룹을 식상해하며 가요에 대한 기대감을 살짝 저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요즘 가요에 부쩍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두 딸아이가 알려주는 가수며, 음악에 조금씩 귀동냥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 약간은 적막한 마음으로 이 책을 봤을 때는 옛 친구와 주고 받았던 추억의 편지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Mnet에서 K-pop의 뿌리를 찾아 대학민국 음악사를 정리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이 '레전드 100-아티스트' 프로젝트는 시대에,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100인의 아티스트를 장르별로 나누어서 선정했다. 당연히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보다는 과거의 아티스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10년 이상 활동한 아티스트의 영향력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니 당여한 일일 수도 있겠다. 대신 그 이후의 활동을 하기 시작한 레전드급의 성장 가능성이 있는 가수나 그룹은 포스트레전드라는 페이지를 따로 할애해 소개해주고 있다.
암튼 그렇기 때문인지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가수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고, 내 부모님 세대를 풍미했던 가수들도 반갑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트로트가 주류를 이루던 시대보다는 장르가 다양해지기 시작하면서 팝송에 쏠렸던 관심이 가요로 넘어 오기 시작하던 80~90년대의 가수가 단연 많을 수 밖에 없다. 오랜만에 나의 성장기 통증을 함께 했던 가수들의 이름들을 보니 한국 가요사의 굵직한 흐름과는 또다른 나의 개인사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그렇게 책을 펼쳐 들었고,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앉은 자리에서 지루함도 모른 책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레전드 100-아트스트]는 음악 전문가 50명이 보컬, 싱어송라이터, 록&밴드, 퍼포먼스, 아이콘 5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Top20 아티스트를 선정했다고 한다. 뛰어난 보컬이면서 싱어송라이터인 '신승훈'은 어디에 속할 것인가 고민스러웠을 것이겠지만, 더 부각이 되는 '보컬'에 올려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사실 활동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았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구분함으로써 19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한국 가요사 흐름이 한 눈에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보컬'의 시작은 흑인 소울 감성으로 90년대 국민가수의 타이틀을 거머 쥔 김건모로 시작한다. '위대한 광대 뮤지션'이 그에게 붙인 타이틀이다. 타고난 정확한 음정과 흥에 겨워 무대를 즐기는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가 바로 김건모일 것이다. 사회 초년병 시절 테이프와 시디가 닳고 닳을 정도로 들었던 그의 노래들. 지금 들어도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그의 세련된 국보급 보이스 때문이 아닐까 싶다. 레전드의 문을 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가수임에 나도 강력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레전드급 가수 한 명을 소개하는 데는 한 권의 책도 모자라겠지만, 100명을 소개해야 하다 보니 가수당 한 장으로 그의 음악 역사와 가요계에 미친 영향력을 압축해서 소개한다. 글은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제작팀이 가수마다 돌아가면서 다르게 쓰고 있는데, 음악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과 명쾌하고 맛깔스러운 글은 아티스트, 음악을 만나는 즐거움과 함께 또다른 재미를 준다.
여기에 실사보다 상상과 특징을 은근하게 더 잘 드러내게 해주는 일러스트는 투박한 듯 세련되게 가수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어 마지막에는 실사 사진도 배치해 당시의 생생한 느낌과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을 읽노라면 자꾸 멈추고, 그들의 음악으로 가고 싶어진다. 글 속에서도 충분히 그들의 음악을 느낄 수 있지만, 원곡을 듣고 싶은 맘은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간절해진다. 그런 맘을 알기라도 하듯, 각 가수의 소개 페이지에는 Mnet으로 연결해서 가수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QR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수의 음악에 대한 생각이나 철학을 옅볼 수 있는 가수의 과거 발언들을 싣고 있으며, 주변 가수나 평론가들의 그에 대한 평도 함께 볼 수 있다.
보컬에는 불꽃처럼 살다간 가수 배호도 올라와 있는데 내 이전 세대의 가수다 보니 잘 몰랐는데 글을 읽노라니 그 시대 그의 팬이 되어 그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 든다. 배호라는 가수가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그가 왜 불멸의 레전드로 꼽히는 지 이전에는 잘 몰랐으나, 글을 보고난 후에야 그 이유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묘미는 이처럼 세대를 막론하고, 가요계를 뒤흔들었던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김광석, 송창식, 신승훈, 심수봉, 양희은, 이미자, 이선희, 이승철, 임재범, 조영남, 패티김 등 아직도 가요계에 굵직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가수들이 보컬의 레전드로 꼽혔다. 그럼에도 넘버원을 차지한 가수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가왕'이라고 불리는 바로 조용필이다. 각 분야별로 Top1을 선정하는데 조용필은 당당히 보컬의 1위로 그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보컬 뿐이 아니다. 레전드 100의 No.1의 자리 역시 그의 차지였다. 뿐만 아니라 5개 부문 모두에서 Top20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2013년 Bounce, Hello 등 신곡을 발표하며 젊은 세대와의 공감도 시도하는 그가 명실공히 가요의 제왕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을 없을 듯 하다.
노래와 작사, 작곡, 심지어 편곡까지 해내는 만능 재주꾼 싱어송라이터 부문에는 015B, 김동률, 김현철, 다이나믹 듀오, 유재하, 윤상, 윤종신, 토이, 패닉 등이 올랐다. 가수로서는 기억에 크게 남지 않으나 자작곡 독집 앨범을 가요사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김민기의 이름이 의미가 있고, 요절한 천재가수 유재하의 이름에는 한동안 시선이 꽂힌다. 그는 이 부문 1위로 랭크 되었다. 불현듯 청아하고 맑은 음색에 슬픔이 묻어나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듣고 싶어진다.
록&밴드 부문, 떠오르는 이름들 그대로다. 들국화, 시나위, 백두산, 부활... 한 때는 공중파에서도 볼 수 있었던 헤비메탈 그룹사운드의 음악이 아련하기만 하다. 그 중에 약간은 생경스러운 그룹이 눈에 띈다. '한국 모던 록의 자존심' 유앤미블루. 1994년 당시 음악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음악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모던 록을 개척한 뮤지션이라고 한다. 대중은 생소하게 받았들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레전드로 꼽힐 정도인데 처음 들어 본 이름이라는 것이 살짝 미안해진다. 음...음악을 찾아서 꼭 들어봐야겠다.
록&밴드 부문의 1위는 예상한대로 '록의 전설' 신중현이다.
"세계 최고의 기타메이커로 평가받는 미국의 펜서사는 2009년 에릭 클랩튼, 제프 벡, 스티비 레이 본, 잉베이 맘스틴, 에디 반 헤일런에 이어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신중현에게 트리뷰트 기타를 헌정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로, 그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드높이는 사건이었으며 우리 음악에 대한 세계의 인정을 확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p.281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김완선, 김추자, 나미, 박남정, 보아, 소방차, 비, 윤미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다음은 대중음악사의 아이콘이다. '새로움'으로 전설이 된 그들 중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며, 80년대 포크에서 발라드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던 이문세, 만능엔터테이너의 원조 전영록, 1세대 아이돌 H.O.T와 걸그룹의 원조 S.E.S가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90년대의 아이콘 중의 아이콘,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일 것이다. 퍼포먼스 부문과 아이콘 부문 동시 1위를 기록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가요계를 넘어 사회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던 문화적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지만 레전드급으로 성장 가능성을 가진 레전드 이후...(Post-Legend)로는 2NE1, 국카스텐,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등이 꼽혔으며, 산울림의 소울을 이어받았다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 장기하 얼굴들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숨가쁘게 둘러 본 가요사를 보면서, 우리의 정서의 변화 과정을 온몸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을 불사르는 그들의 노력 덕분에 지금처럼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의 위력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대중가요는 종종 흔해서,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그 음악의 가치가 종종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00년 우리는 그곳에서 뿜어나오는 감성으로 울고 웃으며 함께 부둥켜 안고 살아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트로트의 레전드 하춘화, 그녀의 말처럼...
"대중가요는 TV를 켜면 나오고 라디오를 켜면 흘러나오는 것이다 보니 그 귀함을 모르는 것 같아요. 만약에 오늘 하루를 대중가요 자체를 없애는 날로 하자고 하면 아마도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감성이 메말라 버리고 표현의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겠죠. 이렇게 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온 것이 바로 대중가요입니다." ---p.111
앞으로 더 많은 레전드가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개인적으로 오랜 만에 잊혀졌던 추억과 감성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잊고 지냈던 듣고 싶은 곡들이 너무 많아서 오늘 밤에는 쉬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