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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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책을 받아 든 순간 느낀 첫 번째 느낌은 이 정도면 읽을만 하다 였다. 핸드북 사이즈에 2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은 '인문학'이라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확 줄여주는 요소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 아무리 소재가 애니메이션이지만 그를 통해 논하게 될 주제는 인문학적 내용이니 만큼 흥미와는 별개로 시작부터 주눅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의외로 작고 가벼웠다. 뭐, 이 정도쯤이야 하는 자신감이 들면서 당장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는 책 속으로 점점 몰입되어 들어가 결국 나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두껍지 않은 분량이 한 몫을 하긴 했으나 더 큰 이유는 저자가 '현대인'의 난해한 고민을 애니메이션처럼 간단하고 명료하고, 게다가 재미있게 풀어 낸 덕분이다. 그러고보니 처음에 느꼈던 분량이나 사이즈의 부담감 해소 역시 저자가 격의 없이 독자에게 다가가 소통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나 싶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철학'을 끄집어 내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지를 논한다면, 사실 영화 만큼이나 즐비한 무수한 애니메이션들을 언급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작정을 하면 주제별로 엮어서 수많은 사례를 집어 넣어 좀더 그럴싸해지는 포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로 이 책에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농축해서 중언부언하지 않고 핵심만을 얘기한다. 마치 신문 칼럼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제한된 분량 속에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추고,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게 쓰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긴 여운을 느끼게 해주는. 독자는 그래서 쉽게 읽으면서도 지적인 허영을 느낄 수 있다. 쇼펜하우어, 사르트르, 카뮈의 사상을 언급해도 어렵거나 거부감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돌아 보면, 내가 그 사상적 배경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잘 버무려서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충분히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것이다.
 
이처럼 에세이만큼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소재도 아주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현대인'의 영원한 숙제인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원인과 분석, 그리고 명쾌한 해결책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소비 중독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를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이 왜 그렇게 되었는 지에 대한 첫 번째 이유로 시대의 변화를 꼽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1990년 이후를 '현대'라고 규정한다. 그 이전은 근대요, 더 이전은 중세로 구분의 가장 큰 축은 바로 인간 '개인의 자아 정체성'의 주체에 있다고 설명한다.
중세가 절대 권력에 의해 '자아 정체성'이 부여되는 시기라면, 근대는 국가, 민족, 사회, 가족의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자아'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절대자도 집단도 아닌 개인 스스로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대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집단의 정의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오직 '나'라는 '자아'는 내가 획득하고 증명해보여야 하는 시대다. 자원의 한계와 인구의 증가가 치열한 경쟁의 원인이 아니라 국가, 조직이라는 보호막이 벗겨진 개인은 자유를 느낄 틈도 없이 불안과 공포에 떨며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견뎌내며 획득한 '자유'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 현대의 우리 모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노예를 해방시켜주어도 어떻게 살아갈 줄 모르고 다시 되돌아 가는 것을 보고 바보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해방의 아노미를 겪으며 다시 '조직'의 향수에 매달리는가 하면, 황폐화되어가는 내면을 화려한 겉치레로 채우려는 모습이 결코 그들과 다르지 않다. 자유는 주어졌으나 우리는 진정으로 그 자유를 누릴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과 화려한 소비의 구렁텅이 속에서 급증하는 자살과 갑자기 불어닥친 어색한 인문학 열풍은 이러한 현대인의 자아 분열을 탈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현대인도 지금 그 성장통을 겪고 있는 지 모른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반드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인 성장은 하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그 답을 인문학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세를 탈피한 최초의 인물로 '돈키호테'를 꼽는다. 그는 처음으로 개인적인 '자아'에 눈 뜬 인물이다.
 
 
그리고 국가와 조직, 집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근대의 인물들을 <그렌라간>에서 찾는다.
 
"<그렌라간> 이 특히나 더욱 근대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집단성'이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근대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전면적 긍정과 옹호 위에서 성립되었다. <그렌라간>에서 그렌단이 하는 것, 그들이 긍정하는 것, 그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의 핵심에는 결국 무엇이 있는가? 그건 인류를 위한 '역사적 행위'이다." ---p.47
 
 
한 때 어른과 아이들을 모두 매료시켰던 <원피스>는 바로 개인에게서 '자아'를 찾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원피스>가 그린 이상향의 모습만으로는 복잡한 '현대인'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강철의 연금술사>, <충사>, <진격의 거인>을 통해 현대인이 자아를 찾는 법을 제시한다.
 
 
"현대의 부정적인 측면 속에서, 어떻게 현대인으로서 삶을 보다 진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검토해봤다. 하나는 우애, 즉 더 이상 국가 같은 집단에의 함몰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과 인간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삶, 즉 우리가 늘 보고 살아가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 그 배후에 나만의 삶을 '지닐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 보는 것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타인에 대한 책임감을 지님으로써 보다 진정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를 통해서 인간은 진정 인간다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온갖 소비 생활과 현실의 강요에서 벗어나, 이 세 가지 차원을 복원시켜나가는 것이 현대인에게 걸린 중요한 과제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내달려온 '현대'라는 지점을 진정한 '현대인'으로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p.126~127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 현대인이 지향해야 할 모습을 찾았다면, 3부에서는 좀더 고차원적인 삶을 꿈꾼다. 저자의 애니메이션 감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지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 <초속 5cm>로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저자는 이 부분은 주관적인 관점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앞의 두 파트는 교양 삼아, 뒤의 한 파트는 구경삼아"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나 역시 인물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저 작품 전체가 주는 메시지와 감동에 마음을 맡기고 싶다.
 
 
인문학이 주는 위안과 힘에는 늘 공감을 한다.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난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 그러나 늘 현실에서의 접목이 숙제로 남는다. 현실과 이상의 갭으로 때때로 좌절감을 느끼게 하고 이전의 상태로 회귀되기 일쑤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도 이것을 모를 리 없다.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는 '현대인'에게 그는 분명하게 얘기한다.
그 메시지는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람 중에 하나다.
 
"현실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늘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그냥 살아가다보면 때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잊게 된다. 현실과 삶은 모두 우리 인생의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대체로 현실에만 장악되어 있는 현대인에게는 삶이 보다 강조되어야 한다.
삶의 추구란, 바로 우리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이며, 꿈을 잊지 않는 것이고, 매일 마주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것이며, 이 순간의 소중함으로부터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룬 애니메이션들은 분명 그 점을 중요하게 속삭이고 있다. 삶을 잊지 말라고,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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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프 패러독스 - 매번 스스로 무너지는 당신을 일으켜줄 멘탈 강화 프로젝트
스티브 피터스 지음, 김소희 옮김 / 모멘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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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정신을 강화시키고,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적지 않게 읽었다. 아마도 여러 가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명상책부터 심리책, 멘탈 강화책까지 종류도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을 발견했다. 내 생각이지만 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일종의 현실에 충실한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존재 때문에 나는 늘 괴롭고, 힘들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 관계'라고 한다.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니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피곤하고 힘들다. 나 역시 같은 하루에도 열번 씩 그러한 피곤한 상황에 노출되었는데 그러한 책을 읽으면서부터 나와 나가 아니라 나의 감정적인 부분과 상대의 감정적인 부분이 만나면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이성이 아닌 흥분 상태의 감정과 상대 역시 그런 감정 상태로 부딪치다 보니 서로가 이해하기 어렵고, 감정의 골은 깊어가게 되는 것이다. 서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서로가 잘못된 점만을 따지고 든다면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 부족함, 미완성적인 상태 [삶으로 떠오르기]에서는 이 존재를 '에고'라 이름 붙였다. 누구에게나 에고가 존재하며, 상대의 이상 행동은 이 '에고'가 시켜서 하는 일인데 상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의식한다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화를 부르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정신 시계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니 갈등의 순간을 넘기는 지혜가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침프 패러독스]를 읽는 순간, 그 '에고'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뇌를 분리시켜서 객관화 시킴으로써 그 감정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이 어떻게 작동을 하고, 그로써 결과는 어떻게 되는 지 명쾌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감정과 뇌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수많은 연구 끝에 그 특징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해서 단순화시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다름 사람을 이해하고, 제대로 소통하며, 두 존재가 서로 잘 화합해서 공존하는 나를 찾아서 건강과 성공을 통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왜 그랬지?' 순간적인 화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흥분을 하거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떨다가 중요한 순간 실수를 저지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은 그러한 행동들을 이 책의 저자는 내 안의 또다른 나 '침프' 때문이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뇌를 단순화시켜서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의 뇌는 흥분을 잘 하고, 감정적이며 비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침프'와 논리적이며, 이성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 그리고 판단은 하지 않는 지식의 저장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컴퓨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때때로 흥분하고, 감정적으로 일을 해결하다가 그르치는 이유는 바로 이 야생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 '침프'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인간의 사고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이나 행동들을 주로 하는 논리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침프는 반응 속도도 빠르고, 힘도 세다. 어떤 상황에 벌어지면, 인간보다 이 침프가 더 쉽게 반응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없이 발산하고 사라져버리면, 비로서 인간이 사고를 하게 되는데 때는 이미 늦은 뒤인 것이다. 결국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만 남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저자는 우리가 침프에게 납치되었다고 표현한다. 흥분 뿐만 아니라 정글에서 살아가야 하는 침팬지의 특성 그대로 늘 안정을 꾀하고, 불안에 시달리는데 그렇기 때문에 소모적인 걱정과 불안 등을 유발하는 것 역시 이 침프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를 이 침프의 영향력 안에 계속 나눌 수 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저자가 이 책을 쓸 리가 없을 것이다.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리는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강화 훈련을 주로 했던 저자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이 '침프'를 잘 다스려 행복한 공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생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이 '침프'는 없애고자 해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인식하지 못할 때, 나를 납치해서 자신의 방법대로 조정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 태세를 갖추면서 침프가 불안하지 않고, 행복할 수 있도록 계속 다스려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 방법을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침프의 특징을 잘 안다면 우리는 소통하는 방법도, 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도 나아가서 성공과 행복을 얻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하지만 '침프'를 관리하는 것은 오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존재를 의식하는 것만으로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나와 타인이 아니라 침프와 인간, 그리고 타인의 침프와 인간 이렇게 네 명이 만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갈등은 줄어들기 시작할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사회 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 관계'를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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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만난 우리 역사 - 재미있는 문명 교류 이야기 사회와 친해지는 책
박미란 지음, 김진화 그림, 정수일 원작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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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발굴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의 다양성은 평면적인 역사의 사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면서 역사를 접하고 배우는 새로운 재미 또한 선사한다. 최근 들어 그러한 노력들이 더 두드러진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대내외적 이유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역사'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기 때문이리라.
 
역사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늘 있었으나 사실 외우고, 익혀도 역사적 시기와 사실은 뒤섞이기 일쑤이니 역사를 즐긴다고 말하기는 민망하다. 을지문덕 장군이 싸웠던 전쟁과 강감찬 장군이 공을 세운 전투가 헷갈리는 정도이니 소소한 역사의 사건이나 인물들이 시대를 넘나드는 것은 애교일 정도이다. 기억력의 한계가 있다고 해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인데,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편적인 조각들만 배우다 보니 나무는 알아도 전체적인 큰 숲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세계사 시간에 간간히 한국사가 나오긴 하지만 같이 맞물려 간 역사의 그림을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세계와 만난 우리 역사]를 읽으면 세계가 서로 문화의 영향을 주면서 지금까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굴려왔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되어 있지 않으니 교류의 방법이나 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놀라울 정도로 문화는 생명력을 가지고 지구의 끝에서 끝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머물러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라와 나라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의 풍습과 비슷한 풍습이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오랜 교류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세계와 교류한 흔적을 찾으며 인류가 어떻게 문화 교류를 하며 지금에 이르렀는 지를 선사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대 순으로 따라가며 보여준다. 역사의 흐름과 단편적인 사건들에 집중하며 배웠던 역사의 관점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본 역사는 상당히 흥미롭고 신선했다. 중국에서 공부한 원작자의 시선인지, 원작을 토대로 이 책을 엮은 저자의 관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존의 역사를 다룬 방향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졌던 부분 또한 문화 교류의 사실이나 흔적보다 저자의 역사를 보는 시각이었다. 같은 얘기를 해도 얘기를 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재미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같은 사실도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가 하면, 역사를 알아가는 참맛을 느끼게도 해주는 것이다.
 
 
구성이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의 흥미를 이야기 속으로 끌여 들여 쥐락펴락하는 능숙능란한 이야기 구성력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많이 볼 수 없었던 유물이나 그에 대한 세밀한 소개 혹은 보편적으로는 잘 다루지 않았던 역사 속 이야기들을 여기서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역사이지만 다르고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늘 보던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어느 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과 같은 낯설은 신선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책의 특징은 머리말부터 그대로 드러나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 시킨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인도를 거쳐 우리나라의 맨 남단 신라에 정착한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면서 문화 전파의 위력을 보여주며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는 여신 헤라의 미움을 받아 열두 가지의 불가능한 임무를 받고도 끝내 해결해 내는 영웅 중의 영웅입니다. 첫 번째 임무로 네메아 골짜기에 사는 사자를 죽인 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녔던 헤라클레스는 서양 미술에서 가장 사랑받아 온 캐릭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헤라클레스가 인도로 건너와 부처님을 지키더니, 먼 동쪽 끝의 우리나라 신라까지 왔습니다. 기차나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도 없던 아주아주 오랜 옛날에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사자 이야기가 이처럼 먼 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려 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이를 위해 기꺼이 먼 길을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먼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는지, 다른 세계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생생한 유물을 통해 하나하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걸작들을 내놓기까지 우리 조상들의 뜨거웠던 열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p.8~9 머리말 中
 
 
각 장은 시대별로 나누어져 있고, 세계사와 한국사를 비교해볼 수 있도록 연표도 제공해준다.
 
 
이 책을 읽은 또다른 재미는 풍부한 사진 자료에 있다. 비교, 확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한 사진 자료는 그 자체가 또하나의 볼거리가 되는 것이다.
 
 
 
 
각 장의 끝에는 시대를 끝맺음하면서 그 시대의 문화 교류와 관련된 인물에 대한 소개를 한다.
그 중에서 고구려 고선지 장군에 대한 일화가 재미있다. 승승장구하던 고선지 장군은 제5차 서역 원정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부족의 배신으로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2만여 명의 포로가 발생하는 패전이었지만 여기서도 문명의 교류는 계속된다. 포로에 포함된 종이 기술자에 의해 유럽에 종이가 전파된 것이다. 그 때 전쟁에 패하지 않았다면? 서역으로 원정을 가지 않았다면? 종이 만드는 기술은 언제쯤 유럽에 전파가 되었을까? 가정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책을 읽다 보면 그 옛날 외국과 교류가 그렇게 활발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또한 한반도 끝에 있던 신라가 어떻게 로마와 교류를 할 수 있었는지 아직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계속 변하게 될 역사의 모습에 기대를 갖게도 한다.
 
조선보다 더 활발했던 통일신라, 고려의 문화가 그렇게 찬란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불교의 영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접목하는 과정에서 더 우수하고 뛰어난 문화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서 조선 역시 그러한 정책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된다. 역사를 통한 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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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찌결사대 -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40
김해등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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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해등'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 중 근간 [책에는 길이 있단다]에서 였다. 사실 이름만으로 안 것은 아니고,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약력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거기서 반가운 책제목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샘터 솔방울 시리즈는 여러 권 읽었는데 책마다 조금씩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인물이 다르니 느껴지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글을 풀어낸 작가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길이 있단다]를 읽을 때에는 부드러움과 격정, 그리고 잔잔한 고요가 그려지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몰입시키는 작가의 글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었다.
 
그런 작가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이 책 [발찌결사대]는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네 편의 단편 중 제목으로도 쓰인 <발찌결사대>는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작품성에 대한 기대는 한껏 해도 좋을 듯 싶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발찌결사대>, <마술을 걸다>, <탁이> 그리고 <운동장이 사라졌다> 이렇게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동화집이다. 단편이니 배경, 인물, 사건도 각기 다르지만 책을 죽 읽어 가노라면 하나의 굵은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 단편의 느낌은 다르지만 남겨지는 여운의 빛깔은 비슷한 채도라고나 할까.
 
첫 번째 단편 <발찌결사대>는 나는 것도, 알을 낳는 것도 잊어버린, '새'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비둘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날개를 쓰지 않고 인간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마름같은 존재인 검은혹부리의 눈에 벗어나지만 않는 다면 맛있고 통통한 벌레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며, 안전한 생활도 보장받을 수 있다. 편안해보이는 생활은 규칙만 조금 어겨도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공포의 상황으로 변하지만 그럼에도 공원의 비둘기들은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하지않는 지도 모른다.
 
날개를 절대 써서는 안된다는 터무니없는 법을 지켜야 하는 비둘기, 그들은 편안을 선물받고 그렇게 닭둘기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면서도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사회의 온갖 구속에도 우린 낙오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 우리의 본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무섭게 돌아가는 체바퀴 속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통통한 애벌레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수꽝스러운 닭둘기의 모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공원의 비둘기 무리에서 '초록목'은 '비둘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한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흰줄박이 등과 '발찌결사대'를 조직하여 함께 공원을 탈출할 날을 꿈꾸며 준비를 해나간다. 배란이 되지 않게 만드는 애벌레를 먹지 않고, 몰래 사냥을 하는가 하면 날기 위해 살을 빼고, 날개 죽지에 힘을 주면서 나는 연습을 해나간다. 그러나 계획은 발각되고, 초록목은 곧장 사냥개의 먹이로 던져진다.
 
한낮 비둘기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씁쓸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문득 또 한마리의 새가 떠오른다. 바로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이다. 그 갈매기들 역시 새임에도 높이 날 필요성을 못느끼고, 오히려 높이 나는 연습에 몰두하는 조나단에게 계속 연습을 할 경우 그들의 사회에서 퇴출될 것임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조나단은 결국 조직에서 쫓겨나게 되고, 스승을 만나 높이 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갈매기 사회로 다시 돌아와 자신이 배운 것을 전파하며 뒤따르는 갈매기들에게도 '자유'를 선물한다.
 
초록목 역시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다시 위험 속으로 돌아가 뜻을 같이 했던 동료들을 구해낸다. '초록목'과 '조나단'은 많이 닮았다. 그들은 혼자만의 변화를 꿈꾸지 않았다. '함께' 일 때 혹은 한 걸음이라도 손을 잡고 같이 갈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나'를 함께 찾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할 자유로운 숲 속도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다.
 
구구훨훨의 노래는 그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 같다.
 
-이전 생략-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날개 힘차게 파닥이며
구구 훨훨 외쳐 봐
날개가 달린 새가 되어
구구 훨훨 날아 봐
숲 속 나라 우리 세상으로
 
 
두번 째 단편 '마술을 걸다' 역시 정체성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주인공 만수는 '이름' '늦둥이' '세탁소집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이들을 모두 잃어버리려 한다. 그래서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멋지게 포장을 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포장된 자신이 아닌 진짜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를 만난 후 포장을 벗고 당당히 '세탁소집 아들 만수'로 돌아간다. 반전과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상황이 재미를 선사하지만 여전히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세번 째 단편 '탁이'는 부모의 보호를 잃어버린 아이가 자신처럼 '보호'가 필요한 암탉 '탁이'와 '알'을 지켜주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한다는 이야기이다. 또, 자신을 찾기 위해 대숲에 알을 낳는 '탁이'는 잃어버린 자신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초록목'과 많이 닮았으며, 정체성을 찾고자 양계장 탈출을 감행했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새'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네번 째 단편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갑자기 학교가 바닷물 속에 잠기는가 하면 땅 속으로 꺼지기도 하고, 또 하늘로 날아오기도 하는 등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된다. 공상할 시간도 없이 어른이 만든 경쟁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 수학경시나 오디션만을 고민하는 애어른 같은 아이들 모습에서 진정 우리 아이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배고파' '심심해' '보고파'를 외치며 신나게 뛰어노는 순수한 모습의 운동장 귀신은 우리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전에 잃어버린 '동심'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판타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에게 작가가 들려주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하나인 것 같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 무엇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 지, 그로 인해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 탄탄한 스토리와 정갈하면서 담담한 글 속에 빨려 들어가 읽다 보면 어느 새 작가의 그 질문을 곱씹어보게 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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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붕어빵, 홈런을 날리다 - 카페 아자부 역발상 창업 성공 스토리
장건희 지음 / 샘터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창업과 성공에 관한 책인 것 같기도 하고, 성공담을 담은 에세이같기도 하고 뭐라 규정짓기 애매한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책이다.
 
사실 처음 [명품 붕어빵, 홈런을 날리다]를 봤을 때는 도대체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가늠할 수 없어 궁금증이 증폭된 책이기도 했다. '카페 아자부 역발상 창업 성공 스토리'라는 부제를 보고 나서야, '명품으로 거듭난 붕어빵의 비밀, 카페 아자부의 신개념 성공 창업 전략 34'이라는 문구를 읽으면서 비로서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창업 성공 스토리'이며 '창업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 것이었다. 저자가 대학교에서 마케팅에 대한 강의를 했으니 그가 전해주는 비법이 결코 개인적인 경험에 한한 것은 아닐 것이기에 나는 '창업' 성공을 돕는 책이라고 규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분명 저자의 창업 성공 스토리를 기반으로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 스토리의 주가지임은 분명하지만 그 전달 방식에 있어서 저자는 다소 독특한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에, 한 때는 야구 해설까지 했을 정도로 야구에 관해서는 어쩌면 창업보다 더 전문가이다보니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성공이라는 열매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인생의 축소판 '야구'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없이 반가울 거고, 문외한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저자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설명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야구 해설을 한 경험 덕분인지 야구로 얘기하지만 그 위에 인생이 오버랩되어 보이는 것은 재담꾼으로서의 그의 탁월한 능력 덕분일 것이다.
 
제목부터 '홈런'이 들어간 것으로 볼 때 이 책에서의 야구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홈런이라는 말이 야구 용어를 떠나 이제는 크게 한 방 터지는 상활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도 있지만, 더그아웃부터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인까지로 묘사한 각 장의 제목은 야구를 배경으로 깔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성공 신화를 보면 대부분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시련을 거친다. 물론 어떤 일이든 시련이 없을까마는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시련의 골도 깊은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과감하기도 하고, 깊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더 큰 성장의 동력을 얻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저자는 한 때 총망받은 프로야구 선수였다. 국가대표를 지낸 것은 물론,OB 김인식 감독이 프로로 끌어들일 만큼 뛰어난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인생의 전부였던 야구를 떠나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공부에 매달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프로야구 해설 위원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나름 실력을 인정받는다. 승승장구하던 그때 다시 또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희귀병 판단을 받으며 죽는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런 암흑의 상황에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9회말 2아웃같은 위기의 상황을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 삶이 불만족스러울리 없었겠지만 어느 날 창업 컨설팅을 가르치던 학생이 교수님이 직접 해보시는 것은 어떻냐는 말에 들은 후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장고 끝에 드디어 그는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창업의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템 선정일 것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 '명품 붕어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붕어빵이면 붕어빵이지 명품은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거리를 누볐던 황금 붕어빵의 업그레이드 버전인가? 또다른 길거리 아이템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봤었는데, 실은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었다. 
 
 
까페에서 사계절 먹을 수 있는 고급 붕어빵이 그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성공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성공을 했기에 책으로 출판이 될 정도겠지만 어떤 부분이 소비자에게 어필이 되었고, 꾸준히 사랑받는 아이템이 되었나 그 과정이 궁금했다.
시장 조사부터 기술을 완성하기까지 거의 맨땅에 헤딩을 하며 저자는 국산 100%의 팥소를 사용하는데 성공해냈으며, 제품 없이 백화점 입점을 따내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가스불을 사용할 수 없는 백화점에서 사용해야 하는 전용 전기 기계를 수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성공해냈다.
 
 
머릿속에 있던 아이템이 세상 밖으로 나와 제품화 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유지하는 일 역시 일으켜 세우는 일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명품 붕어빵'은 100% 국산 팥소에 물이 들어가지 않고 우유만으로 반죽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모양이 유지되고, 굳지 않고 부드럽다고 한다. 그러나 원가가 워낙 높다 보니 수익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가를 조금 낮춰 보려했던 그의 시도에서 그의 그의 현실적인 어려움과 함께 그럼에도 스스로를 그 유혹에서 지켜내려는 노력이 그대로 전달이 된다. 어느 누군들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랴.
 
"도미빵 반죽에는 원래 물이 아닌 우유만 들어간다. 나중 그중 10퍼센트만 물로 대체해서 만든 반죽으로 한번 도미빵을 구워보았다. 완성된 빵을 먹어보니 기존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맛으로는 절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과가 이러니 유혹으로 빠져드는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한번 늪에 디딘 발이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듯 머리가 휙휙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우유를 10퍼센트만 더 줄여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유와 물의 비율을 8:2로 하자, 맛에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물을 섞은 반죽으로 만든 도미빵의 두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물을 10퍼센트만 섞은 빵도 마찬가지였다. 우유만 넣어 만든 도미빵은 식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물을 넣은 빵들은 전부 푹 껴져버린 것이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지?'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 채 그냥 서 있었다."
--- p.264
 
 
그렇게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와서 그는 얘기한다.
 
"성공이란 사회적으로 인정 받았을 때 성립된다. 그러니 그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정도가 성공의 양이라 할 수 있다. 번 돈은 액수일 뿐이다." ---p.283
 
앞으로 그의 목표는 100년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그 꿈 역시 그 특유의 집념과 끈기로 이뤄낼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국산 팥 100%이기에 잘 쉰다는 원성을 기쁨으로 받아 들이고,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며 뚝심으로 지켜내는 그 '가치'는 분명 100년 이상 발휘하기에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그의 성공 스토리가 보였으나 점점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인생스토리로 시선이 옮겨지게 된다. 처음 느꼈던 경계의 모호함은 아마도 인생과 사업을 야구와 잘 버무려 만든 책의 독특한 구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역시 발상의 전환으로 멋지게 홈런을 날린 저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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