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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찌결사대 -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샘터어린이문고 40
김해등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김해등'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샘터 솔방울 인물 시리즈 중 근간 [책에는 길이 있단다]에서 였다. 사실 이름만으로 안 것은 아니고,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약력을 먼저 살펴보았는데 거기서 반가운 책제목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샘터 솔방울 시리즈는 여러 권 읽었는데 책마다 조금씩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물론 인물이 다르니 느껴지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느껴지는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글을 풀어낸 작가의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길이 있단다]를 읽을 때에는 부드러움과 격정, 그리고 잔잔한 고요가 그려지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몰입시키는 작가의 글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었다.
그런 작가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이 책 [발찌결사대]는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네 편의 단편 중 제목으로도 쓰인 <발찌결사대>는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하니 작품성에 대한 기대는 한껏 해도 좋을 듯 싶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발찌결사대>, <마술을 걸다>, <탁이> 그리고 <운동장이 사라졌다> 이렇게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동화집이다. 단편이니 배경, 인물, 사건도 각기 다르지만 책을 죽 읽어 가노라면 하나의 굵은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각 단편의 느낌은 다르지만 남겨지는 여운의 빛깔은 비슷한 채도라고나 할까.
첫 번째 단편 <발찌결사대>는 나는 것도, 알을 낳는 것도 잊어버린, '새'라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비둘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은 날개를 쓰지 않고 인간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며, 마름같은 존재인 검은혹부리의 눈에 벗어나지만 않는 다면 맛있고 통통한 벌레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며, 안전한 생활도 보장받을 수 있다. 편안해보이는 생활은 규칙만 조금 어겨도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공포의 상황으로 변하지만 그럼에도 공원의 비둘기들은 그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하지않는 지도 모른다.
날개를 절대 써서는 안된다는 터무니없는 법을 지켜야 하는 비둘기, 그들은 편안을 선물받고 그렇게 닭둘기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면서도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 사회의 온갖 구속에도 우린 낙오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 우리의 본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무섭게 돌아가는 체바퀴 속에서 그렇게 하루하루 통통한 애벌레를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수꽝스러운 닭둘기의 모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공원의 비둘기 무리에서 '초록목'은 '비둘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한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흰줄박이 등과 '발찌결사대'를 조직하여 함께 공원을 탈출할 날을 꿈꾸며 준비를 해나간다. 배란이 되지 않게 만드는 애벌레를 먹지 않고, 몰래 사냥을 하는가 하면 날기 위해 살을 빼고, 날개 죽지에 힘을 주면서 나는 연습을 해나간다. 그러나 계획은 발각되고, 초록목은 곧장 사냥개의 먹이로 던져진다.
한낮 비둘기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씁쓸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문득 또 한마리의 새가 떠오른다. 바로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이다. 그 갈매기들 역시 새임에도 높이 날 필요성을 못느끼고, 오히려 높이 나는 연습에 몰두하는 조나단에게 계속 연습을 할 경우 그들의 사회에서 퇴출될 것임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던 조나단은 결국 조직에서 쫓겨나게 되고, 스승을 만나 높이 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갈매기 사회로 다시 돌아와 자신이 배운 것을 전파하며 뒤따르는 갈매기들에게도 '자유'를 선물한다.
초록목 역시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다시 위험 속으로 돌아가 뜻을 같이 했던 동료들을 구해낸다. '초록목'과 '조나단'은 많이 닮았다. 그들은 혼자만의 변화를 꿈꾸지 않았다. '함께' 일 때 혹은 한 걸음이라도 손을 잡고 같이 갈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나'를 함께 찾으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함께 행복할 자유로운 숲 속도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다.
구구훨훨의 노래는 그래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 같다.
-이전 생략-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날개 힘차게 파닥이며
구구 훨훨 외쳐 봐
날개가 달린 새가 되어
구구 훨훨 날아 봐
숲 속 나라 우리 세상으로
두번 째 단편 '마술을 걸다' 역시 정체성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주인공 만수는 '이름' '늦둥이' '세탁소집 아들'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이들을 모두 잃어버리려 한다. 그래서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로 멋지게 포장을 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포장된 자신이 아닌 진짜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를 만난 후 포장을 벗고 당당히 '세탁소집 아들 만수'로 돌아간다. 반전과 웃음이 나오는 유쾌한 상황이 재미를 선사하지만 여전히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세번 째 단편 '탁이'는 부모의 보호를 잃어버린 아이가 자신처럼 '보호'가 필요한 암탉 '탁이'와 '알'을 지켜주게 되면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한다는 이야기이다. 또, 자신을 찾기 위해 대숲에 알을 낳는 '탁이'는 잃어버린 자신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초록목'과 많이 닮았으며, 정체성을 찾고자 양계장 탈출을 감행했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잎새'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네번 째 단편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갑자기 학교가 바닷물 속에 잠기는가 하면 땅 속으로 꺼지기도 하고, 또 하늘로 날아오기도 하는 등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된다. 공상할 시간도 없이 어른이 만든 경쟁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 수학경시나 오디션만을 고민하는 애어른 같은 아이들 모습에서 진정 우리 아이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배고파' '심심해' '보고파'를 외치며 신나게 뛰어노는 순수한 모습의 운동장 귀신은 우리 아이들이, 교장 선생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전에 잃어버린 '동심'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판타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에게 작가가 들려주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하나인 것 같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보자고 하는 것. 무엇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 지, 그로 인해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 탄탄한 스토리와 정갈하면서 담담한 글 속에 빨려 들어가 읽다 보면 어느 새 작가의 그 질문을 곱씹어보게 된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