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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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대중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영화나 드라마, 광고 음악으로 많이 사용되어 익숙한 곡이 많지만 어려서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던 나는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던 때가 중학교 음악 시간에서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도 들었을 수야 있었겠지만 알 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문화적인 차이는 거의 충격에 가까웠었다. 그 음악이 그 음악같고, 들으면 졸음이 몰려오는 음악...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 심취하는 지 음악보다는 그 느낌이 궁금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클래식 음악에서 위압감이 느껴진 것이. 그리고 동시에 언젠가는 그 벽을 넘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도. 나중에 느낀 것이었지만 클래식 음악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실은 내게 음악적 감수성과 감각이 무딘 것도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는 클래식 음악을 몰라도, 잘 듣지 않아도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금 클래식 음악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큰 아이가 태어날 즈음이었다.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연구 결과와 상술이 결합된 신드롬이 퍼지면서 나 역시 천재를 만들어준다는 클래식 들려주기 열풍에 휩쌓였었고, 아이에게 모차르트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기 바빴었다. 듣기 편하게 소품처럼 구성된 음반이나 곡들은 처음 클래식을 접했던 때와는 다르게 대중음악이 전해주기 어려운 깊은 편안함을 가져다 주었었다. 아이에게 들려주려고 듣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육아에 지친 심신을 힐링시켜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와는 달리 음악적인 감수성이 예민했던 큰 아이를 데리고 음악회도 종종 다니기 시작하면서 클래식을 통한 상상의 즐거움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저 느낌이 좋은 뿐인 것이지....클래식에 대해서는 처음 음악을 접했을 때나 지금이나 무지하기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클래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위압감이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음악을 좀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답답함이 들곤하는 것은 여전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클래식도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클래식과 관련된 책 주위를 서성인다. 그러다가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가 될 것 같아서...'관두고 그냥 내 방식대로 듣고 즐기자'로 늘 결론을 내리곤 했었다.
 
[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클래식 음악... 별 거 아니니 문외한이라도 편안하게 듣고 즐기라는 저자의 위로와 다독임이 느껴지는 것이다. 클래식 초보들도 편안하게 음악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음악가 혹은 연주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설명을 이야기 들려주듯 흥미로운면서도 차근차근 풀어서 들려준다. 음악가와 음악은, 작가와 문학이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작곡가에 대해서 몰라도 음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낯선 클래식이라는 세계로 들어와 음악이 전해주는 섬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작곡가가 그 음악을 작곡했을 때의 상황이나 에피소드를 안다면 좀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주자나 지휘자 그 사람 만의 독특한 해석이나 열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울려오는 감동을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단지 '음악'이라는 주제의 에세이를 듣노라니 한 곡의 음악, 한 곡의 연주가 쉽게 들리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평지풍파를 겪고 탄생시킨 그 곡들은 오롯이 작곡가, 연주가 그들의 인생 그 자체였다. 이 책에 실린 어느 한 사람 쉽고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없다. 어쩌면 쉽게 갈 수 없는 인생의 길이 그들을 더 담금질하게 해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곡과 연주를 남기게 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통해 들은 음악은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그러므로 인해 선율 하나 하나의 움직임에도 숨을 죽이고 듣게 되고 그만큼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이 책의 프롤로그 제목 '음악은 누군가의 인생이다'처럼.
 
 
불행하게 시작해서 화려한 열정으로 타올랐다가 갑자기 떠난 '카루소'가 그렇고, 평생 사랑에 목말라하며 결국 사랑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 버린 마리아칼라스가 그랬으며, 어렵게 시작해 최고의 명성을 얻었음에도 끝까지 조국 러시아를 품에 안았던 리히터가 그랬다. 저자의 글을 읽고 책에 수록되어 있는 QR코드로 연결된 음원을 들으면 음악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음악을 느끼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즐기는 음악은 클래식 뿐만 아니라 팝, 뉴에이지나 현대 음악까지 폭넓고 다양하다. 이렇듯 저자가 장르에 대한 별다른 편견없이 다가가 소개하는 음악들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인생이 느껴진다.
 
 
글을 읽고, 음악을 듣고, 감상에 젖고, 그리고 빠져나와 다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페이지는 더디게 넘어간다. 그래도 좋다. 아니, 오히려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만 했던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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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표류기 - 주강현 박사가 한 권으로 풀어 쓴 우리 대표 표류기
주강현 지음, 원혜영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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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 표류기] 이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표류기'라는 단어가 약간 낯설었었다. 기껏해야 학창 시절 달달 외웠던 '하멜 표류기' 정도?. 조선 시대라면 중국을 통한 길 외에는 배가 유일한 바깥 과의 교통 수단이었으니 '표류'는 심심치 않게 일어 났을 것이다. 지금처럼 배의 성능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비상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도 부족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어찌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글을 몰라 기록을 남길 재간이 없다면 그 경험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살아남은 '표류기'가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는 네 편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해외로의 여행이 어려웠던 그 시절 다른 문물을 접한 신기한 경험쯤으로 여기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항해기'와 '표류기'의 근본적인 차이를 머리말부터 느끼기 시작해서 네 편의 표류기를 모두 읽은 후에는 숭고하고 겸허한 마음마저 들게 되었다. '표류'는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망망대해에서 배 한 조각에 목숨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이 갑작스럽게 시작한다는 점에서 '항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사투의 기록인 것이다.
 
 
처음에는 조선 사람의 눈으로 본 다른 문물이 어떻게 보였을까 어떤 경로로 도착했는 지 등의 생소한 시각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읽다 보니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모습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환경에 놓여진 사람들의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런 극한의 위기 속에서 힘을 발하고 살아돌아올 수 있는 해주는 것은 결국 살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망망대해를 탈출해 육지에 도달해도 끝이 아니다. 무자비한 해적의 위협을 받고 겨우 버틸 수 있었던 식량마저 빼앗기는가 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기에 오로지 스스로 조선 사람임을 증명해가면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될 때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없는 것이 참 답답하기까지 했다.
 
물론, 조선 사람임이 증명된 후에는 조선과 교류가 있는 나라에서는 풍성한 대접과 함께 안전 귀국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느낌이지만, 그나마도 벼슬에 있지 않으면 그 비용도 고스란히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니 고향에 돌아왔다고 해서 마냥 좋아라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경험들은 분명 그들에게 이전 까지와는 다른 삶의 철학을 안겨 주지 않았을까 싶다.
 
책은 중국 역사상 3대 기행문의 하나로 꼽힐 정도의 명나라 당시 강남의 모습을 세세하게 기록한 최부의 <표해록>과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국을 다녀온 김대황의 <표해일록>,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 속해 있는 섬 <유구국>을 다녀온 장한철의 <표해록>, 마지막으로는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던 여송국과 당시 포르투칼 사람들이 살았던 마카오까지 다녀온 홍어 장사꾼 문순득의 이야기가 실린 <표해시말>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류는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위기로 시작되지만 위기의 순간을 넘긴 후에는 명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다른 문물을 접한 것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길 여유가 있는 가하면(최부), 끝까지 표류의 표류를 거듭하며 결국 수많은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장한철), 타고난 장사꾼의 기질을 발휘해 돌아갈 뱃삵을 스스로 벌기도 하는(문순득) 등 표류 이후의 과정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각 표류기는 새롭게 다가오며 각기 다른 여운을 남겨준다.
 
 
 
이렇 듯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표류'가 과연 무엇인지, 그에 대한 '정의'를 각 표류기의 제목은 말해주고 있다.
 
최부의 중국 표류기 "표류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김대황의 안남국 표류기 "표류는 갑자기 떠나는 여행입니다"
장한철의 유구국 표류기 "표류는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입니다"
문순득의 여송국 표류기 "표류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각자가 겪은 표류의 성격대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결국은 '표류'의 모습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표류'는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역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지 가끔은 알 수 없을 때가 있고,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표류'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바다'라는 현실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배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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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사 인물 이야기 - 십대를 위한 쉽게 읽는 한국사
김상훈 지음 / 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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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모여 만들어지는 역사"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사 인물 이야기]의 뒷표지에 쓰여 있는 이 책에 대한 설명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역사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이지만 앞 뒤 표지를 보니 좀 '색다르다'라는 생각이 든다.
 
"왜 역사는 어렵게 느껴지나?'에 대한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기억하기 쉬울까를 생각해본다면 답을 찾기 어렵지 않다. 역사서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사건 위주로 정리하는데, 그러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사건의 앞뒤가 헷갈리기 쉽고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라는 큰 흐름에 인물로 방점을 찍으면 훨씬 쉽게 역사 사건이 머릿속에 정리된다. 인물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사건이 떠오르는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역사교과서 속 인물 이야기의 꼬리에 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국사 박사가 돼 있을 것이다." --- 뒷표지에서
 
 
인물을 이용해 오천년의 역사를 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의구심도 들었다. 조선이야 어차피 하나의 나라니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여러 나라가 공존했던 고대국가는 과연 어떻게 연결을 시키면서 흐름을 잡아갈까 궁금했는데 같은 시대의 인물과의 연계성을 통해 부여부터 삼국의 성립 그리고 전성기와 멸망까지를 한 흐름으로 연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나면 한국사의 흐름이 머릿 속으로 정리가 된다. 특히 근대 역사는 시기적으로 짧은 데다가 워낙 사건도 많고 복잡하고, 더구나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많아서 헷갈리기 쉬운데 인물로 정리를 하고 나니 '아~' 하는 이해의 탄성이 나온다.
 
워낙 방대한 시간이다 보니 아이들 역사책이라도 한 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두 세 권은 기본이요, 그 이상 되는 책들도 요즘은 많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도 전체적인 흐름이 눈에 안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한 권으로 맥을 잡고 나니 역사의 바퀴가 어떻게 굴러와서 현재에 이르렀는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물론, 많은 양을 다룰 수는 없지만 이 책의 애초의 목표인 중요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통한 한국사 흐름을 잡음으로써 역사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본다. 학창 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지만 늘 흐름 정리가 되지 않아서 부족함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역사에 대한 자신감을 찾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방대한 책에서도 보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나 인과 관계가 구석구석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요 사건만 서술됨으로써 두 사건 사이의 관계나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기자 출신답게 그런 부분들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연결시켜줌으로써 사건 흐름의 이해를 높인 것이다.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았고, '아~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구나' 하는 탄성도 나오게 한다. 그냥 지나가도 무방했을 것을 꼼꼼히 찾아서 연결시키는 저자의 노력이 책 구석구석에서 느껴진다. 덕분에 이해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워졌으며, 역사에 대한 흐름 파악도 한층 높아졌다.
 
예를 들어, 태종 무열왕의 뒤를 이은 '문무왕'이 왜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려는 각오를 다졌는지는 자세하게 배우지 않았다. 만파식적과 대왕암으로 바다 위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사실만 부각되었을 뿐, 삼국의 유민이 연합해서 당나라를 물리치고 한반도에서 쫓아내면서 진정한 통일을 이루었다는 정도만 배웠을 뿐. 왜 문무왕이 그토록 결의에 차서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는지는 깊은 공감이 되지 않았었다. 김춘추라는 처음 통일의 왕만 기억할 뿐 완성을 했던 문무왕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던 역사 접근 방식도 원인이었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배경과 과정이 문무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그 과정을 따라 읽다 보면 왜 문무왕이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려고 했는 지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당나라는 웅진을 비롯해 백제 땅에 5개의 도독부를 설치했어. 도독부는 당이 정복지에 설치하는 통치기구야. 문무왕은 화가 났지만 고구려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어.
당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어. 663년에는 신라 땅에까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계림도독으로 임명했단다. 백제뿐 아니라 신라도 당의 식민지라고 여긴다는 뜻이지. 그래도 문무왕은 꾹 참았어.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지.
668년 고구려가 무너졌어. 당은 고구려에도 9개의 도독부를 설치했어. 평양에는 도독부를 총괄하는 안동도호부를 따로 설치했어. 당의 장수 설인귀가 우두머리인 도호부사에 임명됐지.
마침내 문무왕의 분노가 폭발했어. 삼한을 통일했으니, 더 이상 당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잖아? 670년 신라 군대가 옛 백제 땅에 주둔해 있는 당의 군대를 공격했어. 승리. 웅진도독부를 없애버렸어.
671년에는 사비를 빼앗은 뒤 신라의 행정구역에 편입시켰지. 이렇게 해서 나당 전쟁이 시작됐단다.
-중략-
675년 당나라가 20만 대군을 한반도로 보냈어. 예상된 침략. 문무왕은 이미 충분히 대비해놓았지. 매소성(경기 양주)에서 전투가 벌어졌단다. 신라의 대승! 자존심이 상한 당이 676년 다시 서해안을 거쳐 기벌포(금강 하구)를 통해 공격해왔어. 이번에도 물리쳤어.
-중략-
문무왕은 통일을 이루고 5년이 지난 후 세상을 떠났어. 그는 동해 바다에 자신의 유해를 안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단다. 죽어서도 용이 돼 한반도를 지키겠다는 뜻이야. 이 유언에 따라 문무왕은 화장된 후 바다에 안장됐어. 그게 오늘날 경주 양북면 앞바다에 있는 태왕암(대왕암)이란다." ---p.50~51
 
 
또 한 가지 고려 시대 하면 떠오르는 '서희 담판 강동 6주, 윤관 별무관 창설, 동북 9성'을 달달 외웠지만 그 내막과 결과를 자세하게 알기에는 교과서나 다른 역사서 역시 간단하게 기술되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986년 요가 정안국을 무너뜨렸어. 이어 여진을 격파하고 송을 제압했어. 동아시아 최고 강자로 우뚝 선 거지.
-중략-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은 강했어. 여러 성이 순식간에 넘어갔어. 고려도 맞서기 위해 움직였어. 고려는 북계(평안북도 지역)에 진지를 쌓고 서희, 최량의 공격에 대비했어. 바로 그때 소손녕이 빨리 항복하라는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어.
그 편지를 보는 서희의 눈이 반짝였어. 서희는 생각했어. '요나라가 진짜 원하는 것은 고려 정복이 아니다. 해결 방법이 있다!' ---p.83
 
"서희는 소손녕의 편지에서 요의 진짜 침략 의도를 읽어냈지. 만약 요가 고려를 정복하려 했다면 두 번씩이나 항복하라는 편지를 보낼 리가 없어. 그냥 밀고 들어오면 되지. 하지만 요는 항복만 권유했어. 맞아, 요는 고려가 송과의 관계를 끊길 원했단다. 요는 송을 집어삼킬 생각인데, 고려가 송을 지원하면 힘겨운 전쟁이 될 수도 있거든. 바로 이 때문에 요는 고려를 아군으로 만들려고 침략한 거였어."
---p. 83~84
 
 
윤관이 동북 9성을 쌓은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 후 윤관은 여진 부족들을 평정한 마을에 성을 쌓도록 했어. 동북 지역에 총 9개의 성이 완성됐어. 이게 바로 동북 9성이야. 이윽고 윤관은 고려 주민들을 그곳에 이주시켰어. 고려의 영토가 다시 넓어졌지?
하지만 동북 9성을 지킬 수 없었어. 여진족이 땅을 돌려달라며 계속 고려를 괴롭혔기 때문이야. 여진은 집요하게 고려 국경지대를 습격하고 약탈했어. 동북 9성을 돌려주면 다시 고려를 아버지의 나라로 모시겠다면 애원하기도 했어.
1109년 고려는 어쩔 수 없이 동북9성을 돌려줬어. 그러면서 모든 책임을 윤관에게 물었어. 관직을 빼앗고 역적으로 규정했단다. 어이가 없지? 윤관은 다시 중앙관직에 나가지 않았어. 그러다가 1111년 한 많은 세상을 마감했단다. ---p. 89~90
 
 
표면 위에 드러난 역사적 사실만을 앵무새처럼 암기하고 외웠었기에 서로 간의 연결이 되지 않으니 무조건 암기해야 할 부분이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역사는 외울 것 많은 어려운 과목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장보고의 위대한 성과도 말년 정치에 대한 과욕으로 인해 빛을 바래는가 하면, 윤관처럼 공을 세우고도 후에는 관직에서 쫓겨나는 어이없는 결과를 빚기도 했던 역사를 우리는 '해상왕 장보고의 청해진'과 '윤관의 별무관, 동북 9성'의 업적만을 기억하고 외운다. 왜 장보고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아 멸망의 길에 들어섰는지, 문벌귀족은 왜 윤관을 모함했는지...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다면 역사는 단순한 사건 나열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돌아가고 있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거대한 수레바퀴가 지나 온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인물과 연결이 될까 궁금증을 가지며, 혹은 예측해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 중에 하나이며, 본문의 내용을 코믹하면서도 상징적으로 압축해놓은 일러스트도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역사를 배우고 있는 초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이후 역사를 다시 배우게 될 중학생에게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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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캠퍼스를 가져라 - 이 책을 읽기 전에 대학 원서 쓰지 마라!
삐급여행(조명화) 글.사진 / 프레임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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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하면 참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지난 시절에 대한 감상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격세지감까지...그러나 지금 바로 떠오르는 것은 앞으로 아이들이 밟아야 할 미래의 공간이다. 이제는 나보다는 아이의 시각에서 먼저 대학 캠퍼스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캠퍼스를?' 하자면 딱히 떠오르는 대학이 몇 곳 없다. 그 대학마저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일까?

나 역시 대학을 진학할 때 '가보면 알겠지...', '캠퍼스가 뭐가 중요해....' 라고 생각하며 사전 답사는 고사하고 학교나 과에 대한 별다른 정보도 없이 원서를 들이밀었었다. 물론 그렇게 가서 사전에 알고 오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실망보다는 적성에 맞지 않는 과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많았었지만, 그런 이유라면 캠퍼스를 가본 들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가고 싶은 과와 그 과가 위치한 대학을 미리 살펴보고 목표를 정한다면 좀더 현실적인 동기부여와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낯설지 않은 '캠퍼스 투어'나 '캠퍼스 탐방'이 많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일단 가고 싶은 과를 정했다면, 그 다음은 인지도, 점수, 거리 등등을 고려해서 학교를 정해야 할 것이다. 조금 현실적으로 정할 수도 있고, 실력보다는 조금 높은 목표로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고 싶은 대학의 리스트가 나왔다면 비슷한 조건의 대학들이 있을 때 과연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 여러 가지 고려도 해봐야겠지만 4년 동안 지내야 할 공간이라는 점에서 대학의 캠퍼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직접 본다면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럼 이제 떠나야 한다. 일단 가는 방법부터 찾고. 그 다음은 무엇을 봐야 할까?
 
이 책은 [당신의 캠퍼스를 가져라]는 그렇게 캠퍼스 투어를 계획하는 이들에게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캠퍼스 탐방의 방법을 일러준다. 모두 가볼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가본 것 이상의 생생한 느낌을 전해 준다. 무엇보다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과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소소한 정보들, 그리고 깨알같은 자랑... 주변의 맛집 등의 정보는 직접 찾아가도 접하기 어려운 살아있는 정보들이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가장 특징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일반적인 캠퍼스 소개책과는 다른 구성이었다. 저자도 서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소위 명문대 위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과 지역의 특성을 묶어서 주제별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학교에 대한 형식적인 소개를 넘어서 학교의 문화까지를 소개하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시도는 그 대학의 분위기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캠퍼스 투어 맨처음 코스는 서울에 위치해있는 대학들이다. 아무래도 아직도 서울에 대학이 많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서울에서도 가장 첫번째 주자는 서울 명륜동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古대학 성균관대학교'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 '최古대학'이라는 표현처럼 제목은 물론 책 구석구석에서도 느껴지는 저자의 톡톡 튀는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상큼하고 발랄한 대학 캠퍼스와 잘 어울리는 표현들은 안그래도 지루할 틈없는 흥미로운 여행을 더욱 재밌게 해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서울, 명문대 위주가 아니라 지역별로, 그리고 전문화되거나 특성화된 대학들도 소개해주기때문에 잘 몰랐던 대학들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가 하면 궁금했는데 미처 가보지 못했던 이색 대학들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럼, '가장 세계적인 대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소개를 맛보기로 살펴보자.
 

 
대학 탐방은 대부분 해당 학교의 홍보대사의 도움을 받았는데 학교의 소개는 그들과의  인터뷰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어디부터 둘러보면 좋은 지 캠퍼스 투어의 코스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진다.
 
 
이제 각 건물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캠퍼스 투어가 진행된다. 
 
 
학교와 관련되어 색다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나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은 박스 기사 형태로 제공한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들어는 봤나~ 세종대에 있는 복불복 자판기!
 
 
성균관대의 인문관 엘리베이터는 1층이 표시되어 있지 않단다. 그 이유는 직접 확인하란다. -.-
 
 
고대 문과대 건물 꼭대기에는 지름 6척에 달하는 초대형 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매일 9시와 12시에 교과와 전래 동요가 울려 퍼지는데, 이 시계는 알바생 네 명이 자전거를 타는 힘으로 돌린단다...ㅎㅎ
 
 
'금강산도 식후경'.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학교 탐방 마지막에는 학생 식당은 물론 학교 주변의 맛집도 소개해주기 때문에 직접 탐방을 나설 때 이용해보면 좋을 듯 싶다. 대학가 주변이라 가격이 착한 곳이 많은 것도 매력 포인트.
 
 
캠퍼스 투어의 마지막은 학교가 자랑하는 유망학과의 소개가 장식한다. 47개의 학교에서 소개하는 과가 겹치기 않기 때문에 과의 보편적인 특성도 파악할 수 있을 뿐더러, 수많은 학과를 제치고 학교의 유망학과로 소개된 특별한 이유와 장점도 파악해볼 수 있다. 관심있는 과가 있다면 눈여겨보면 대학을 선택할 때 고려해보면 좋을 듯 싶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문화재청이 설립한 학교 답게 '문화재관리학과'가 유망학과로 꼽혔다.
 
 
다른 학교들은 어떤 과가 소개되었을까? 의대나 간호대, 예술대처럼 특성화된 대학은 대략 비슷한 관련과들이 소개된다.
그밖에도 가장 오래된 성균관대는 최첨단 '반도체시스템공학과'가, 공대가 강한 한양대는 역시 '미래자동차공학과', 숙명여자대학교는 발음하기 좀 어려운 '르 꼬르동 블루 외식경영학과'가 소개되었으며, 언어가 강세인 부산외대는 기계언어를 개발하는 '임베디드 소프트웨어학과'가 소개되었다. 기계언어도 언어니까...ㅎㅎ
 
 
학교 수업의 형태로 구성되었던 책의 마지막은 보충수업으로 마무리가 된다. 이제까지 둘러보았던 47개 학교의 캠퍼스를 테마별로 나누어 다시 분류해준다. 주제를 가지고 찾아갈 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캠퍼스 투어를 계획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무리 된다.
 
"경주에 살기 위해 경주를 여행하지는 않습니다만, 경주에서 살고 싶다면 반드시 경주에 가봐야 합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데 캠퍼스 투어는 단순히 진학을 목표로 캠퍼스에 가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대를 준비하기 위한, 10대가 반드시 경험해야 할 경험입니다. 캠퍼스 해설사 삐급 여행과 함께한 여행은 여기서 끝을 맺지만, 여러분의 캠퍼스 삐급여행은 이제 시작입니다"
---p.413
 
숨가쁘게 달려 온 캠퍼스 투어를 마치고 나니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많이 바뀐 캠퍼스의 풍경과 문화가 좀 낯선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청춘! 가슴 뛰는 꿈과 낭만과 열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꿈을 찾기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큰 아이와 하루에도 열 두 번씩 꿈이 바뀌는 둘째 아이의 손을 잡고 시간 날 때마다 다녀와야겠다. 앞으로 그 아이들이 누빌 꿈의 공간을 먼저 접해 보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미래를 위한 필수 준비 과정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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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곱째를 낳았어요 샘터어린이문고 41
김여운 지음, 이수진 그림 / 샘터사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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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자판을 놀리고 있는 내 옆에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가 슬쩍 다가온다. 그리고 무료한 듯 뒤척이다 책상 한 켠에 쌓아둔 책더미 속에서 책 한 권을 쓱 빼가더니 뒹굴거리며 읽기 시작한다.
 
"키득 키득.... "
 
워낙 감정 표현을 잘하는 아이라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그마음 그대로 표현한다. 정신없이 일에 빠져 있는데 몇 장을 넘겨 읽다가,
 
"엄마, 이 책 재미있어!"
 
그런다.
 
"인쇄소집 아빠가 딸이 여섯인데 딸을 많이 나을 줄 알고 이름을 미리 지어뒀대. 이름이 '동서남북가나다' 순서로 동희, 서희, 남희,,,, 이렇게 희'자를 붙여서. 북만 '북희'가 이상해서 '복희'라고 지었대. 웃기지. 킥킥"
 
한참 바쁘게 몰두하다 멈칫하고 들으니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하고, 제목과 표지만 보았던 터라 도대체 어떤 얘기가 들어 있을 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바쁜 일 끝내고 얼른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둘째가 선수를 치더니 더 궁금하게 만들어 버린다. 
 
책장을 펴고 읽어 내려 가는데 좀처럼 잘 안 읽히다. 상상력 부족은 여지없이 책장을 넘기는데 벽에 부딪치게 한다. 정경과 상황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어 내려가려니 어린이책임에도 속도가 더디게 난다. 인쇄소 풍경, 가족들의 모습, 마을의 모습....
70년대 쯤 되는 도시 외곽의 마을에서 내리 여섯 딸을 낳은 인쇄소집 사장 용팔이 이제 막 세상에 나올 일곱 째를 기다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예상되는 것처럼 일곱 째는 역시 '딸'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아선호 차별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물론 사건 발단의 배경은 거기서 출발하지만, 진짜 사건은 용팔의 친구가 건넨 어려운 부탁에서 비롯된다. 딸이지만 자식복 많은 용팔과는 달리 아이들 학교의 선생님이자 용팔의 손윗 친구인 여운봉 선생님은 슬하에 자식이 없다. 인력으로는 할 수 없어 안타까운 것은 딸만 내리 낳는 용팔이나 아이를 애타게 기다려도 생기지 않는 여운봉 선생님이나 매한가지 일 것이다. 그들 뿐이 아니다. 동네 식당 할머니의 사돈 동네 사는 이는 '아들'만 여섯이란다. 그 집은 일곱째는 반드시 '딸'이어야 한단다.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그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그럼에도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그 '운명'을 바꿔보려 한다. 사실 용팔은 딸이라 실망해서라기 보다 자식이 주는 행복을 느껴보지 못한 친구의 아픔에 대한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실망감으로 거나하게 먹은 술이 그 동정심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무거운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칠공주의 알콩달콩한 얘기일 것이라 예상하며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점점 무거운 돌덩어리가 가슴을 내리 누르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둘째 서희. '차진데기'라는 별명 그대로 빼앗긴 동생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 어린 아이다우면서도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언니의 지휘하에 대동단결하여 아빠가 바꾼 일곱 째의 '운명'을 다시 바꾸려 한다.
 
 
처음에는 재미있게 느꼈지만 생각해보면 '동서남북가나다....' 이름에는 '나'와 관련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아빠가 많은 딸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지은 순서에 불과한 것이다. 그 속에서 무지개처럼 각기 드러나는 개성이란 없다. 그들은 아들을 비껴서 어쩌다 태어난 여러 딸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가족 중심의 가치관에 작가는 과감히 반기를 든다. 여섯 딸의 각기 뚜렷한 장점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각기 꿈틀대는 특성과 개성이 있음을 작가는 책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특히 손이 많이 가는 인쇄소 일을 돕는 딸들의 장기를 일일이 열거할 때는 무리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서로 다른 특성들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동희는 조판을 곧잘 해요. 조판은 활자와 공목, 괘선을 넣어 서식과 똑같은 판을 짜는 거예요. 인쇄 일을 오래한 기술자가 하는 일인데 눈썰미가 있는 동희는 곁눈질 3년 만에 일류 기술자 못지않게 솜씨가 좋아졌어요.
둘째 서희는 채자와 입자를 잘합니다. 채자는 인쇄에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는 일이고 입자는 활자를 제자리에 꽂는 일을 말해요.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 글자랑 친한가 봐요. 활자판의 촘촘한 칸에 있는 수많은 글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외워요. 수십 개의 활자도 제자리에 금세 뚝딱 꽂아 넣는답니다.
셋째 남희는 해판을 잘해요. 조판을 하고 인쇄를 마치고 나면 활자와 공목, 괘선을 해체하는 걸 해판이라고 해요. 꼼꼼하고 정확한 남희는 각각의 규격에 맞추어 제자리에 딱딱 정리해 넣지요.
넷째 복희는 어린 동생들 데리고 노는 걸 잘해요. 언니들이 가게 일을 도울 때 훼방 놓지 않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지요." ---p.29~30
 
 
일곱번 째 딸을 낳은 일과 맞물려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사건. 그리고 일곱빛깔 무지개처럼 각기 다른 개성과 장기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일곱 명의 인쇄소집 딸이 아니라 각각이 세상의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역설하고 있다.
 
딸 셋 중의 셋째....나 역시 딸만 있는 집의 딸로 주위의 아쉬운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은 두 딸의 엄마가 됐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 주위의 아쉬운 소리를 거의 듣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잘못된 출생이라는 멍에도 없다. 단지 자매일 뿐이고, 남자 형제가 없을 뿐이다. 잊고 있던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 같은 씁쓸한 아픔을 느끼는 나와는 달리 둘째의 모습은 해맑기만 하다. 물론 슬픔이야 느꼈겠지만 이내 아이들 특유의 장난스럽고 유쾌한 모습으로 감정이 옮아간 듯 하다. 환영받지 못한 막내의 슬픈 출생에 대한 공감은 오롯이 내 몫인 듯 싶다.
 
책의 말미에 실린 '글쓴이의 말'을 보니 역시 여덟 남매의 둘째인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기반이다. 마지막에 그럼에도 씩씩하게 일어서는 아빠의 모습이 짠했는데, 극중 인물과 동일인은 아닐 지라도 실제에서는 막내 아들을 보신 것 같아 많이 기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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