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 예술지능 - 미래 기업의 성공 키워드
윤영달 지음 / 이아소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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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몇 년 전 양주에 있는 크라운해태 아트밸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었는데
과자 모양의 악기를 만들거나, 국악을 듣고 배우는 흥겨운 행사였었다.
가끔 지나가던 그곳을 방문하여 아이들이 체험하는 과정을 보노라니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이런 아트밸리를 만들어 예술적인 체험을 하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었다. 아이들이 주고객인 과자를 만드는 회사이다 보니
기업의 이윤의 일부를 다시 고객에게 돌려주려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겠거니 했었다.
기업의 사회적인 역할이 점점 강조되는 시대... 그런 측면의 사회적인 환원의 일환이겠지.
그러면서도 이상했던 것은 양주아트밸리는 사람들의 왕래가 그렇게 많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고객을 위해 꾸며놓은 것 치고는 약간 느낌이 색다랐다. 순수한 진지함이랄까.
암튼 그 이후로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크라운해태라는 회사에 대한 색다른 인상과 궁금함으로
한 번 정도는 더 쳐다보게 되었었다.
 
[AQ예술지능] 책 발간이 반가웠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궁금했던 의문이 풀리겠구나하는 생각과
크라운해태라는 회사는 도대체 왜 그렇게 예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
그것이 기업 경영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으로 '예술'과 '경영'을 접목하게 된 이유와 원리,
그리고 그 과정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책은 'AQ(Artistic Quotient)란 무엇인가?'부터 출발한다.
IQ가 전부이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다중지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AQ 즉 예술지능이 앞으로 기업과 경제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문학적 능력과 첨단 기술이 만나 세계를 어떻게 재패했는 지 우리는
애플의 아이폰을 통해서 똑똑히 목격했다.
아마 그런 충격이 없었다면 무슨 뜬금 없는 소리인가 했을 것이다.
이미 소비자도 시장도 기술에서 인간에게로 시선이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저자는 인간과 디자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의 시대가 될 것임을 주장한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 본능인 '예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예술지능'을 가진 기업과 국가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크라운해태제과에서 예술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창조본능을 넘어 예술본능을 키우기 위해서.
 
그 양주아트밸리에서 느꼈던 독특하면서 진중함은 그곳에 있는 예술 작품들이
전문가의 작품이 아닌 크라운해태제과의 임직원들이
직접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직원들이 국악을 배워 떼창을 정식으로 공연하는 가하면, 설치 작품 역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고 하는 과정을 통해 예술 본능을 자극하며,
이를 통해 예술 지능을 높이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 임직원이 아마추어를 넘어설 정도로 예술에 회사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창의성을 개인에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입사 랭킹으로 꼽히는 구글과의 또다른 차이가 느껴진다.
 
 
그러한 방법은 실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쓸데 없는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뚝심있게 밀고 나가 지금은 기반이 닦이고, 성과도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예술적 성과는 일반적인 성과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예술'이 가진 힘이요, 재미일 듯 싶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팽배한
과자 시장은 점점 축소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위기에서 저자가 찾은 것은 바로 '꿈'이었다.
헨델과 그레텔이 깊은 산 속에서 만난 '과자집'과 같은 꿈.
 
단순한 제품이 아닌 제품과 기업을 통해서 소비자가 예술적인 감성 자극을 받고
'꿈'을 꾸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창조적인 에너지를 예술지능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임직원 모두를 예술가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예술지능의 키워드로 다섯 가지를 꼽는다.
 
1. 미학-세상을 아름답게 정리하려는 욕구
2. 초월-낡고 평범한 현실을 넘어서려는 몸부림
3. 유희-때 묻고 꽉 짜인 세상과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유머
4. 몰입-과업과 자신의 혼연일치
5. 소통-다른 것끼리의 교류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를 성공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과 그 성공 비결을 분석한다.
 
-본질은 단순하다, 그것은 아름답다-애플의 '미학'
-완전히 빠져들게 하라-디즈니랜드의 '몰입'
-창조란 결국 노는 것이다-구글의 '유희'
-천상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할리데이비슨의 '초월'
-창조란 낯선 것들의 소통이다-레고의 '소통'
 
"예술은 창조 갈망을 자극하고 충족시키는 가장 보편적인 '미디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함께했고, 검증됐고, 발전해온 것이 예술이다. 기업은 그래서 예술을 통해 고객의 창조 본능을 자극하고, 고객을 예술가로 만드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누구나 예술을 하고 싶어 하고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편견과 공간의 기회와 돈과 기술 부족으로 인해 자신의 창조 갈망을 억누르고 살아간다. 기껏해야 감탄만 하면서, 탁월한 기업은 창조를 위한 조건과 기술, 계기를 고객에게 제공할 줄 안다.
아틀리에의 신비한 조각가인 애플, 오케스트라의 위대한 지휘자인 할리데이비슨, 고객을 성장시키는 스튜디오의 스승인 레고, 황홀경에 빠진 배우 디즈니랜드, 도시를 누비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글.
그들은 고객을 위해 도구를 바꾸었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 유저인터페이스를 우아하게 혁신하여 기술 피로감을 줄이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구글은 고객이 자유롭게, 아무 때고 자신들의 일상과 느낌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를 내놓았다. 또한 각종 콘텐츠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소유자 그룹을 통해 고객들이 평범한 일상을 넘어 가슴 설레는 꿈을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오토바이는 빠르고 강력한 운송기계가 아니라 일상의 꿈을 이어주는 날개가 되었다."
--- p.171~172
 
그렇다고 저자가 이 예술적인 능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강력한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주도권을 잃었다 해서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경쟁의 룰이 생존 본능이 아닌 창조 본능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센 것을 기반으로 아름답고, 유쾌하고, 신성하며, 나와 통하고, 푹 빠져드는 그런 체험을 고객과 함께 창조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 p.191
 
책의 마지막에는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현대 미술史'가 실려 있다.
이 내용은 크라운해태제과 임직원의 예술 교육 교재에서 발췌한 내용이라고 한다.
임직원에게 예술 교육을 시키고, 예술가로 만드는 회사.
예술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생각하는 것보다 천천히 올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한 명의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그리고 발전하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리 듯
그러한 시대가 도래했을 때, 필요한 역량은 단숨에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준비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고, 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술과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기업을 예술가의 집단으로 만들어 낸 이 회사...
그 성장의 과정과 열매를 주목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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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펜 일러스트 - 재미있게 따라 그리는
박영미 지음 / 미디어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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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그림을 정말 아기자기하게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참 부럽기 그지 없었다.
머릿 속에 이미 구도를 잡고, 자신감있게 슥슥 그려나가는 것을 보면
저런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겠지 했었다.
사실 지금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블로그나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는 정말
신기에 가까운 실력들을 보면 타고나지 않고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런 능력을 타고나긴 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주어진 재능에 좋아서 하다 보니 더 잘할 수 있게 된 선순환의 원리일 것이다.
 
늘 뭔가 그리고 싶은 갈증은 느끼는데 딱히 그릴 것은 없어 그냥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아이들도 뭔가 끼적이며 그리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그랬듯... 재능하고는 상관없이 뭔가 그리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아마도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 옛날의 조상들이 동굴에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놓은 것처럼.
어쨌건 간에 여기저기, 심지어 하기 싫어 몸을 비틀면서 푸는 학습지에도 뭔가를 그려 넣은 것을 보고,
'그래, 그리려면 제대로 그려봐라'라는 마음으로
이 책 [재미있게 따라 그리는 사인펜 일러스트]를 소개해주었다.
 
이 책을 보았을 때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사인펜'으로 간단하게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케치하고 덧그리고, 색칠하고 할 필요없이 그냥 사인펜으로 그리고 색칠하면 끝.
그래서 누구나 쉽게 도전해볼 수 있다.
 
 책을 받고 살짝 놀랐다. 이유는 책과 함께 사이펜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인펜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터 사인펜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도 당장 그려보고 싶은 충동이 느낀다.
이 정도는 뭐~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보는 도중에 따라서 그려봤으나 저자처럼 인쇄한 듯 깔끔하게 그리기는 쉽지 않았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거야 두 말하면 잔소리일 터이다.
 
 
책은 저자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사인펜의 특징과 굵기에 따른 차이,
그리고 사이펜 그림을 그리기에 알맞은 종이, 그리기 팁을 먼저 소개한다.
 
 
저자가 그린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 컬러가 수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22가지 컬러,
그것도 주로 사용하는 컬러는 12가지 정도라고 한다.
 
 
사인펜 일러스트를 그린 후에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을 보았을 때 가장 놀란 부분이다.
이렇게 다채롭게 이용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너무나 아기자기한 작품들을 다 따라해 볼 수는 없겠지만
포스트잇이나 달력부터 시작해볼까?
 
 
책의 뒷부분에는 여기에 소개된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하나부터 열 가지 친절하고 꼼꼼하게 소개해주는 저자의 정성이 느껴진다.
 
 
이제 준비 단계는 끝났다.
본격적으로 사이펜 일러스트 그리기 도전 시작이다.
가장 기본은 얼굴. 표정에 따라 얼굴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단계별로 하나씩 자세하게 설명해주어 따라 그리는 과정은 어렵지 않다.
단지 수준의 차이가 날 뿐.
 
 
끝에는 귀여운 원숭이가 그리는데 있어 주의해야 할 팁들을 소개해준다.
자연스러운 그림을 위해서는 조화도 중요한 법.
얼굴 하나에도 요소들의 방향과 위치는 중요하다고 한다.
가르마나 눈, 코, 입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얼굴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얼굴을 시작으로 머리 모양, 움직임을 비롯 동물, 장난감 등도 과정을 따라서 그려볼 수 있다.
 
 
옷과 화장품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얼마든지 따라 그려볼 수 있다.
큰 형태의 도형을 먼저 그린 후 특징을 살려 최대한 간결하게 그리는 것이
사인펜 일러스트의 핵심 포인트인 것 같다.
화장품 역시 같은 원리로 그려보라고 하는데 첨에는 아무 생각이 안날 듯하다.
우선은 보고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이 상책일 듯 싶다.
 
 
에펠탑, 피사의 사탑... 문화 유적도 문제 없다.
동화 속 주인공? 포인트를 찾아서 그리면 OK!
보면 볼수록 매력이 있고, 신기하기만 하다.
원리를 익히고 응용을 할라치면 정말 무한대로 활용해볼 수 있을 듯 싶다.

 
특별한 날, 장미를 선물하고 싶다면...?
장미를 그리는 요령도 배워볼 수 있다.
 
 
다양한 숫자와 도트, 패턴을 만드는 방법도 배워두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따라 그리다 보면 마음처럼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점점 비슷해지고, 요령이 생기면서 모양을 갖춰가는 그림을 보노라면
뿌듯한 것이 역시 인간에게는 표현의 본능이 있는 듯 싶다.
 
당장은 저자처럼 완성도있게 그릴 수 없겠지만
밋밋한 공간에 포인트를 주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라니...
저자의 말처럼 낙서하듯이 조금씩 따라 그리면서
손의 힘을 조절하는 요령도 익히고, 표현력도 키워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만의 스타일로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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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의 대화 - 끌리는 사람들의 색다른 대화법 48
김범준 지음 / 시그마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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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처럼 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와닿는 말은 없는 듯 싶다. 정말 그렇다. 정말 아주 미묘한 차이인데, 혹은 순서의 차이인데도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올 때면 가끔은 허무하기도 하고, 이미 뱉은 말 주워담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럽기도 하다.
안그래도 말을 하는 데 미숙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말을 하는 직업을 가졌으니 늘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는 기분이다. 도대체 말을 잘 하는 사람의 비결은 무엇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끌림을 대화]를 읽기 시작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법인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오래 한 그가 현장에서 체득한 대화의 방법을 풀어낸 것이다. 이 책의 소개 중에서 가장 강하게 끌렸던 부분은 바로 '한국형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는 한국사람의 특징이 그 어디보다 그대로 묻어나는 현장에서 배운 소통법을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정리해서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론에 머물거나 너무 이상적인 대화의 방법을 제시해 실제 활용하기 어려운 대화법 책들이 얼마나 많던가. 숱한 경험으로 터득한 토종 대화법이라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이 갔었다.
 
이 책의 부제는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이다.
생각해보니 늘 주먹구구식으로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대화 방식이 달라졌던 것 같다.
대화의 주도권을 쥔 상대에게 칼자루를 맡겨 두고, 그냥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대화를 하지 않았던가.
이 질문을 대하는 순간,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었는 지 한 발 떨어져서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내는 대화법과 내 방법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이 책은 대화의 기술 숙련도의 단계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단계를 제시한다.
생명이 시작되고, 싹이 트기 시작하는 봄은 대화의 시작 단계이다. 그 시작의 과정부터 대화의 질의 깊이를 더해주는 겨울의 단계까지 다룬다. 저자가 이 커뮤니케이션의 단계를 계절로 잡은 것은 계절이 봄에서 시작해서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탄생으로 계속 순환하는 것처럼 대화 역시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순환해야 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1장 관찰의 커뮤니케이션, 봄의 대화에서는 대화의 두 주인공 '나'와 '너'의 관찰부터 시작한다.
성급하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 대해서 준비하고, 상대에 대한 관심어린 관찰을 한 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눈에 띄는 것을 먼저 읽어 봤다.
 
'소통은 깨는 게 아니라 녹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흔히 대화나 강연의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때 그런 분위기를 깬다고 해서 아이스브레이킹(ice-break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저자는 대화에서는 깨지말고 상대에 대한 관심으로 마음을 녹여나가는 아이스멜팅(ice-melting)을 하라고 얘기한다.
절대 내 얘기부터 하지 말고 상대의 주변을 살피며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그것을 통해 느낀 점을 적절하게 던지는 것이 경직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는 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시작할 때 빼먹으면 끝까지 빼먹는다'
준비가 미비하면 허둥지둥 전달하기에 급급하게 되면서 분명 빼먹고 빠뜨리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저자는 '다음 기회는 절대 없음!'으로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준비를 강조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 '일단 만나보고'라는 생각으로 그냥 시작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대화가 끝난 후 다시 끼워 넣을 수 있거나 추가할 수 있는 기회는 제대로 된 모양새의 대화에서는 절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외에도 '유혹하고 있다는 착각을 주는 것이 유혹의 비밀이다', '중간에 끊고 반박하지 마라. 다 듣고 반응하라' 등 커뮤니케이션 시작 단계에서 필요한 팁들을 요소요소 집어서 제시해준다.
 
1장이 관찰이었다면, 2장 여름의 대화는 나와 상대를 어떻게 변화 시킬 것인가, 그리고 3장 가을의 대화는 나와 상대가 각각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따져 보는 승자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배운다. 마지막 4장 겨울의 대화에서는 그동안의 대화를 반성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순환의 대화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렇게 1장부터 4장까지 총 48가지의 단계별, 사례별 대화법을 배울 수 있다.
그 중에 재미있는 것은 요즘 서비스 업계에서 가장 큰 골치를 앓고 있는 소위 진상고객을 다루는 고급(?) 스킬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장에서 필요한 실질적인 기술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머릿 속으로 아는 것과 실제 몸이 움직이기까지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법. 우선 필요한 사례부터 시작하면 될 듯 싶다.
저자는 잘못된 방향의 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왜 실패를 하게 되는 지 실제 대화의 형식으로 제시를 해준다. 읽다 보면 진땀 흘리게 되거나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애석하게도 그 모습은 종종 내가 겪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모범 답안을 제시해준다. 그렇게 숙련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겠지만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해야하는 지, 어떤 단계과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를 느끼고, 조금씩 따라하다 보면 나만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다 보면 어느새 48가지가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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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력 - 비전을 실현하는 힘
최재웅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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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까지 나는 사람들의 앞에서 서서 무언가 강의하는 일을 했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소위 '강사'의 일이 나의 주업무 중에 하나였다. 물론 작년과 그 이전의 강의 대상은 달랐지만 누군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강의도 해보고, 칠판 강의도 해보고, PT 강의도 해보고...참 다양한 강의를 했었는데 정작 한 번도 강의가 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려 8년 간이나 일을 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어찌 그리 오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신기하지만 한 번 탄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렇게 계속 타고 갔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자책했다. 왜 늘 발전이 없는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 시간 동안 희열이나 보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칭찬을 들을 때면 으쓱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늘 원점으로 돌아와서 결국 '강의'는 내 적성이 아니라는 변명같은 결론을 내렸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이렇게 종점까지 갈 수는 없다고. 그리고 나는 질주하던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강의만 아니면 되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또다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지치고 힘든 그 과정이 두려워 1년 만에 다시 나는 도망쳤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허우적대던 '강의'를 벗어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앞에서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평가 받는(칭찬을 받든 비난을 받든), 그렇게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었던 것 같다. 준비하는 과정의 스트레스, 오르기까지의 긴장감, 무대에서의 살벌함. 그렇게 전쟁터에 나가는 듯한 느낌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그 '강의'와 관련된 책을 다시 펴 들었다. 파열할 것 같은 그 긴장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는 아니다. 솔직하게 다시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끔 다시 강의를 하러 무대에 선 다면 하는 가정은 해보긴 한다. 너무 재미있는 강의를 보거나, 너무 지루하고 의미없는 강의를 들을 때면.
그럼에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10년을 해도 발전이 없었을까? 왜 강의를 즐기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다. 명강사는 타고나는 것인가? 내가 호언장담을 해도 사람일은 어찌될 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프레젠테이션이 기본인 세상에 피하기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정말 꼭 필요한 순간이 오면 나는 또 정면 승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답을 찾아야 했다. 왜 나는 10년 동안 발전이 없었을까?
 
[강의력]은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강의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강의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나라는 관점으로 책을 읽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계속 그 방향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허탈하리만치 원인은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아니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었는 지 모른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책을 읽었다기 보다 강의 한 편을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열정적으로 기승전결에 맞추어 흥미를 유발하면서 청중에게 다가와서, 강의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였다가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실제로 강사를 양성하는 수업의 사진이 실려 있기 때문에 실제 강의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강약의 힘이 들어간 문체는 읽는 내내 저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어떤 재능보다 내겐 강사로서의 그 '열정'이 없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이 없으니 게을러졌고, 준비가 부족하니 자신감도 없어졌다. 자신감없이 강의를 하니 한 강의 한 강의가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 그냥 강의는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나 고지가 아니라 눈 앞에 해치워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들 발전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손짓, 동선도 섬세하게 생각하고 계획하면서 청중과의 소통을 하려는 강의와 어서 전달하고 빨리 끝내려는데 급급했던 나의 강의.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강의하는 법, 교수법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미 강의하고 있는 현역 강사들이 강의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 열망은 내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실제로 내 교수법 강의를 들으러 오는 고객은 대부분 기업과 현장에서 '괜찮은 프로 강사'를 자처하는 분들이다. 심지어 최고로 강의를 잘할 것 같은 방송 아나운서들도 내 교수법 강의에 찾아와 멋진 목소리로 잔뜩 긴장하면서 코칭을 받곤한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보통 10년 이상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는 분이 왜 나를 찾아왔을까?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중략-
 
 
이 여러 가지 질문에 공통으로 담긴 것을 추리면 딱 한마디이다.
"나는 강의를 하지만 배운 적은 없어요."
다시 말하면, 어쩌다 보니 강의는 하고 있는데 강의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하는 일 가운데 단 하나라도 배우지 않고 잘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ㄱ, ㄴ'도 모르는데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게 됐는가? 숫자도 모르면서 방정식을 풀고 있느냐는 말이다. 컴퓨터를 샀다고 모든 기능을 활용하지는 않는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10년, 20년 강의를 했지만 방법은 모른다. 하다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떨 때에 잘되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한다. PT를 읽어 내려가는 더하기 빼기 수준의 강의는 가능할지 몰라도 수준 높은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방정식 수준의 강의를 해내기는 어렵다.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p.67~69
 
프로 강사는 아니었지만(월급받고 했으니 프로인가?) 내가 겪었던 혼란 그대로가 느껴졌다. 차이는 나는 도망갔고, 저자를 비롯한 프로 강사들은 그것을 뛰어 넘으려 도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의 차이는 진정한 강사가 되고자 하는 '열정', '열망'에 있었다.
 
"나도 다 외우라는 이유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 일단 외워서 해봐."
압박감마저 느꼈지만 결국 15권이나 되는 매뉴얼을 한 꼭지씩 외우고 강의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방대한 양의 매뉴얼을 외우고 놀랐던 것은 매뉴얼의 기막힌 정교함이었다. 강사의 이야기가 먹힐 경우와 먹히지 않을 경우까지 대비해서 말할 내용, 청중의 반응에 따른 다양한 제안, 다른 방식으로 같은 내용을 전할 수 있는 방법들, 심지어 농담까지 온갖 지침이 담겨 있었다.
나는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매뉴얼의 내용을 실수 없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엘리자베스와 선배 강사들은 강의 1년 차에 접어든 나를 '베이비 강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즈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매뉴얼을 반복한 결과 나도 모르게 강의에 조금씩 응용하고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로 진화했고 나만의 색깔이 강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 p. 205~206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강의도 그렇다. 물론 아주 드물게 강의의 천재가 나타날 수도 있다. 아주 짧은 준비만으로도 주제와 대상에 상관없이 멋진 강의를 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당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오래 준비한 강사는 현장에서도 오랫동안 할 말이 많다. 급하게 현장에 뛰어든 강사는 생명이 짧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중략-
치열하게 준비해도 때로는 강의장이 강사에게 좌절을 안겨 준다. 그러나 충분한 준비와 노력 끝에 청중이 반응할 때 강사가 느끼는 짜릿한 전율과 감동, 청중의 변화를 눈앞에서 보았을 때 밀려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진짜 강의를 하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 p.208
 
강의의 뼈대는 저자가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프로 강사가 되기 위한 기능적인 스킬을 다룬다. 그러나 그 부분만 부각되었다면 아마도 건조한 이론서에 머물렀을 것이며, 이를 따라하고자 하는 독자의 욕구도 불러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얘기한다. 왜 강의를 잘하고 싶은가? 어떤 강사가 되고 싶은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으며 최고의 스킬을 가진 강사가 되기 이전에 최고의 뜻을 품은 진정한 강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청중과의 진실한 소통이 강사 그리고 청중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라는 것을 빨려 들어갈 듯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책 서문을 읽을 때 "이 책을 다 읽을 즈음 '나는 강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당신이 수많은 청중 앞에 선 모습을 슬그머니 상상하기 바란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괜시리 살짝 찔렸었다. 강의를 좀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좌절했던 그 괴물이 도대체 무엇이었나를 확인하기 위해 약간은 냉소적인 태도로 읽기 시작했었기에.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면서도 오로지 진정한 강사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견뎌냈고, 외적인 성공를 떠나 스스로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강사가 되기까지의 그 여정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나는 과연 그런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놓지 않을 꿈이 있는가?
강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눈 앞에 현실을 외면한 증거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강의를 피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 열정을 피해 달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 습성은 그 어떤 일을 해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 안의 강의 재능을 이끌어내라'고. 처음에 이 부분을 읽을 때는 패잔병 같은 나에게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있나 하며 쓴웃음을 지었었다. 그런데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관한 책을 본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일 것이다. 분명 내 안에도 그 재능을 이끌어내고 싶은 욕망이 아직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나니 문제와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라고 바라는 일을 대하는 태도.
깨지고 상처받아도 다시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용기.
만족을 모르는 끝없는 반복과 연습.
 
솔직히 강의에 대한 그와 같은 열정은 내게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최종 꿈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가 지금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겪었던 그 여정은 필요할 것이다. 모양과 색깔은 다를 지라도 본질은 하나다. 10년을 하고도 몰랐던 강의에 대한 스킬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얻은 것은 바로 그 펄펄 뛰는 열정과 끝까지 버텨내는 인내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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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 역사와 사회를 이끄는 30가지 사상의 향연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 문학, 역사, 음악, 미술.... 인문학과 관련된 책, 그중에서도 특히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을 때 맨처음 벽에 부딪치는 것은 것은 바로 그 사상적 배경이 되는 '용어'이다. 분명 우리말인데 외국어만큼 직관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읽어도 읽어도 흡수가 되지 않는 용어과 개념들은 책의 속도를 더디게 한다. 그 사상적 배경을 구체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사상에서 뿌리를 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해서 들어오는 과정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내 지식의 부족, 노력의 부족만 탓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말도 아니고 순전히 학문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조합한 용어들이 쉽게 인식되는 것이 더 이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용어도 용어지만 그에 대한 설명 역시 외국어처럼 이해 안되기는 매한가지다. 철학 용어를 비롯해 수학, 영문법 등등에는 정말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이 일본에서 번역한 일본어를 다시 번역하는 과정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그토록 이질감이 느껴지는 지 그제서야 납득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용어를 잘 알아도 깊이있는 이해를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이지만 용어와 개념 자체에서 오는 심리적인 장벽은 그 벽을 더 두텁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철학은 대중과 소통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형식으로 그 벽을 조금씩 낮춰가고 있는 것 같아 나 역시 조금씩 철학, 인문학 책들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아직 많이 어렵기는 하지만 말이다.
요즘처럼 많은 책이 쏟아지기 전에는 그래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청소년 대상의 철학, 심리학, 문학 등의 인문학 책이었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최대한 친철하게 설명이 되어 있고, 아이들이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재미도 가미가 되어 있기 때문에 딱 내 수준이라는 생각에 지금껏 즐겨 읽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 역시 청소년 대상의 인문학 책을 읽던 중에 만나게 되었다. 앞서 얘기했던 그 용어의 장벽을 이번에는 넘을 수 있을 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책을 받자마자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대한민국 1세대 철학 교사로서 현재에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겨레, 경향 신문을 비롯 조선, 동아, 중앙 일보에도 책과 사상에 관련한 다양한 글을 기고했었다는 것이다. 지면이 무슨 상관이겠냐 싶기도 하지만 주제가 사상과 관련된 글인데 보수와 진보 신문을 가로 질러 싣는다는 어째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았었다.
저자 역시 서문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한다.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격과 질타도 당했다고 한다. 보수 언론에 실을 때는 진보 쪽에서, 진보 쪽에 실을 때는 보수쪽으로부터. 그는 담담히 밝힌다.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사안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두고 고민한다고. 무색무취, 박쥐라는 비난이 쏟아져도 '철학하는 사람'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익숙한 편견이 아닌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냉철하고 최선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이념과 사상은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가치와 평가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쪽으로도 기울지지 않는 객관적인 시각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특히나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청소년 대상의 책이니 만큼 냉정한 서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싶다. 
 
 
책에서는 구조주의, 해체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개발 독재 등 아직도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내용도 그대로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결론이 아직 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어떤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인데 저자가 서문에서 단언한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입장은 시기적으로 양극이 극도로 분리된 요즘 민감하게 느껴질 부분에 대한 설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느 편이건 간에 우리가 무엇을 봐야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지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주는 것이다. 이는 현재 진행중이고 답이 아직 나오지 않은 부분에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2007년, 미국 기업 연구소(AEI)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보다 개발 독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미국 등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 성장률은 2.62퍼센트 정도지만, 같은 시기 중국·싱가포르·러시아 등 개발 독재를 한 나라들의 경제 성장률은 6.28퍼센트로 훨씬 높았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도 개발 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개발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나은 게 뭐 있는가? 선거 때마다 정치가들은 경제 살리기를 외쳐 댄다. 강력한 지도력으로 경제 성장을 일궜던 개발 독재의 추억은 그들의 주장에 솔깃하게 만든다. 그러나 철학자 김상봉은 "박정희 숭배는 돈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수능 성적을 올리는 데는 야간 자율 학습이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평생 야간 자율 학습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개발 독재도 마찬가지다. 개발 독재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한다. 성장은 공평한 분배와 민주주의라는 열매로 맺어져야 한다. 성장만 있고 분배와 민주화가 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제 뜻을 자유롭게 펼치지 못하는 부잣집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만 시끄러운 정치판, 주춤한 경제를 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진정 개발 독재는 사라져야 하는 악일까? 민주주의는 최상의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을까?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단순히 더 많은 수입을 바라기 때문일까? 민주주의를 한층 발전시키려면 이 물음에 대한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할 테다." --- p.224~225
 
길게 인용했지만 이렇듯 독재 정권의 음과 양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각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서술 형식이다. 시대 착오적인 낡은 사상처럼 치부되기 시작한 민족주의도 그러고, 극단적으로 달려가는 빈부 격차의 원흉 신자유주의 사상 역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질문 거리를 던지고 있다.
 
또한 각 장의 끝에는 철학적 화두로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서 생각해볼 거리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다.
 
"일부러 본문 내용과 조금씩 겹치도록 구성했다. 철학적인 사색은 한 번의 물음으로 끝나는 법이 없다. 거듭 묻고 다시 따져 볼 때 세상을 보는 눈은 조금씩 깊어진다.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내가 던진 물음보다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더없이 반가울 듯 싶다." --- p. 8 <책을 열며 中>
 
저자는 각 장마다 '더 읽어 볼 책'을 제시한다. 좀더 알아 보고 싶거나 깊이 있는 내용의 이해를 원한다면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이다. 이는 이러한 사상들이 교과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교과서에서는 이렇듯 사상의 성장, 발전, 그리고 결과 등에 대한 배경이 자세히 실려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개념과 사상을 달달 외우고, 시험의 답을 찾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닐 지... 세월이 흘러도 답보 상태에 있는 철학 교육은 아직도 온전히 개인의 노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에서 그나마 이렇게 아이들이 자주 접하고 있는 교과서에서 출발할 수 있는 철학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용은 힘들 수 있지만 다양하고 쉬운 예와 풍부한 인용, 그리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설명은 책을 읽는 내내 소설책 읽는 이상의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청소년 대상의 책임에도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얄팍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직은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지만 언젠가는 교과서에도 이렇게 다양한 시각의 철학을 학교에서도 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기를 안타깝게 그리고 간절히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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