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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기획자들 - 삭막한 도시를 살 만한 곳으로 바꾸고 있는 삶의 혁명가들
천호균 외 지음 / 소란(케이앤피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도시는 ○○이다'라는 도시에 대한 정의로 이 책 [도시기획자들]은 시작한다.
7명이 각기 다른 키워드로 도시를 정의하고 기획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꿈꾸는 도시의 모습은 한 곳으로 모인다. 현재 도시의 속도를 버리고, 그들만의 리듬으로 살맛 나는 도시를 조용히 그리고 함께 만들어 간다. 한 사람, 두 사람의 꿈과 열망은 그렇게 도시 한 구석을 사람냄새 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한 때 사람들을 집어 삼킬 것 같은 도시의 삭막함이 너무 싫어서 잠시 떠난 적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흙냄새가 그리웠고, 쉴새없이 가속으로 돌아가는 도시의 시간에 숨이 막혔었다. 그래서 나고 자란 도시를 떠나 농촌이라는 곳으로 갔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패잔병처럼 나는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워서가 아니라 익숙해서.
그리고 다시 꿈을 꾼다. 떠날 수 없다면 바꾸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떠나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운 지금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도시기획자들].
이 책을 만났을 때 피식 웃음이 났던 것은 나의 고민을 듣고 답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책을 읽고 당장 뛰어들 수는 없다. 그런 능력도 조건도.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그리고 한 구석에서나마 그렇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안도했고 행복했다. '희망'이 이상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마웠다.
재생지같은 종이에 흑백으로 인쇄된 사진, 그리고 투박스러운 서체로 디자인된 책은 혁명지 같은 인상을 풍긴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음성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거친 목소리처럼 들린다. 책의 구성 역시 인터뷰 형식이지만 최대한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살려 냈다는 필자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실패도 했다. 그리고 지금이 성공이라고 자만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바뀔 지 그들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충분히 즐기고 있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으며, 작지만 큰 걸음을 꾸준히 내딛을 것이란 것이다. 그렇게 그 작은 힘들이 모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같은 무생물체의 거대한 도시는 조금씩 생명을 얻고 움직이고 있다.
도시는 인문학이다 - 책 읽는 도시 풍경을 그려낸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기획자 이채관
도시는 농부이다 - 착한 생산과 착한 소비의 다리를 놓는 쌈지농부 창업자 천호균
도시는 숲이다 - 서울숲 운영자이자 서울시 그린 정책의 핵심 브레인 이강호
도시는 이야기이다 - 이야기를 통해 사람 사는 경관을 빚어내는 커뮤니티 플래너 오형은
도시는 욕망이다 - 도시의 욕망 에너지를 주목한 홍대클럽데이 창시자 최정한
도시는 청년이다 - 전주를 청년의 땅으로 바꿔 낸 사회적기업 이음 대표 김병수
도시는 예술이다 -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공공미술프리즘 대표 유다희
도시는 이들이 칠하는 일곱빛깔의 색깔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다. 단순한 열정이 아닌 철저한 계획과 실패를 통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들은 올곧게 성장해간다. 그리고 믿는다.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꿈꾸는 도시가 생각보다 조금 더 빨리 올 것이라는 것을.
재미있는 것은 7명의 도시 기획자들 중 누구도 처음부터 도시기획자를 꿈꾼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직업이나 직종이 없었으니 당연할 수도 있지만... 사투를 벌이며 지금 있는 곳까지 올 때까지도 도시기획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의식하고 온 이들은 없다. 마음이 끌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보니 공통 분모로 모이게 된 것이다.
"저는 도시기회자가 되어 이런 일을 하고 살 줄 몰랐습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죠. 미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설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설렘을 즐기고
한번 통 크게 살아 보는 것, 그게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 p.51 <도시는 인문학이다> 이채관
잠깐 짬이 나서 읽기 시작한 책을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 버렸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책을 읽는 내내 후끈한 열기가 가슴 속을 퍼져 나간다. 시작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꿈만 있다고, 열정만 있어도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각 인터뷰의 마지막에는 '미래의 도시기획자들에게'라는 코너에서 함께 동참할 꿈은 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 준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도시기획은 어떤 지역이든지 다
필요로 합니다. 직무가 정해져 있다기보다 로컬 안에 일이 있고
답이 있습니다. 자꾸 먼 곳에 시선을 두지 말고 자기가 살고 있는
범위 내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과 친근해져야 합니다. 인류가
밀어 올린 가치, 고귀한 것들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면 굉장히
많은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도전하고 경험할
만한 흥미로운 만남이나 재밌는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p.205 <도시는 청년이다> 김병수
그럼에도 '꿈'을 꾸고 싶다면 언제든지 뛰어 들어도 좋을 듯 싶다. 힘겹지만 그들이 한바탕 놀아 볼 판을 점점 크게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의 동참을 기다리면서. 이 책의 뒷날개 마지막에 있는 문구를 읽으니 앞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도시가 바뀌어 갈 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이 책의 저자 인쇄는 서울 공덕역 부근 경의선 폐선부지에 들어선 사회경제장터, '늘장'의 운영기금으로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