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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 꿈만 꾸어도 좋다, 당장 떠나도 좋다 ㅣ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1
정여울 지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당선작 외 사진 / 홍익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럽은 가장 선망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곳. 동양과는 전혀 다른 삶의 색깔을 느낄 수 있는 곳. 낯섬이라는 감각으로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유럽'이 연상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행과 유럽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또한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곳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수록 심리적으로도 멀게 느껴지고, 그럴수록 여행이라는 단어의 느낌은 더욱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된다. 한번쯤 가고 싶지만 너무 멀어서 쉽게 엄두가 안나는, 그래서 쉽게 떠날 수 없는 곳. 유럽은 당장 떠나지 못해도 게으르거나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이기에 그런 것이라는 정당성도 확보해준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가볼 수 있는 현실적인 곳이기도 하다. 꿈같은 현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유럽'이다.
아직 그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나는 정보도 얻고, 대리만족도 하는 의미로 여행과 관련된 책을 종종 읽는다. 주로 주제를 가진 여행책을 많이 읽는 편인데 그것은 자주 회자되는 유명 관광지 코스보다 주제를 가지고 보았을 때 더욱 의외의 보석같은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간다면 그런 곳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음식, 빵, 책, 미술, 음악, 동화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 본 여행지는 어느 각도에서 빛이 비추느냐에 따라 느낌과 모양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조각상 같다. 그래서 내가 직접 건져 올릴 재간이 없는 이상 책을 통해 편하게 그 멋진 장소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멋진 보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여행책을 자주 보는 또다른 이유는 직접 볼 때 느낄 수 있는 내 느낌과는 또다른 전문가나 작가의 세련된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곳이라도 영화나 드라마,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면 그곳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타인의 감성을 살짝 빌려 비교해보는 재미는 혼자볼 때와는 또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이 책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읽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렸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나의 여행책 읽기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경의 땅 유럽 100곳을 마구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것과 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치고 있는 저자의 감성적인 시선으로 여행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마치 진짜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이 설레었다.
책은 '사랑을 부르는 유럽'과 '직접 느끼고 싶은 유럽', '먹고 싶은 유럽', '달리고 싶은 유럽', '시간이 멈춘 유럽',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그리고 '갖고 싶은 유럽', '그들을 만나러 가는 유럽', '도전해보고 싶은 유럽' 마지막으로 '유럽 속 숨겨진 유럽'까지 총 10개의 테마별 여행지를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100곳을 소개하고 있다.
각 여행지에 소개는 최소화하고 그 곳에 대한 저자의 경험이나 생각에 대한 에세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빨려들어갈 듯한 사진과 솔직하면서도 감성적인 글은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조금은 더 고급스럽고 품격있는 여행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사실 테마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더라도 100곳은 모두 아름다고, 멋지고 꼭 한 번 방문해보고 싶을 만큼 이국적인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곳의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연속이지만 낯선 이방인들에게는 순간의 한 컷으로 기억하게 되는 낯섬의 순간들. 어쩌면 그림같고 동화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그들은 이방인이 느끼는 그 낯선 시선이 부러울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책여행을 시작한 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다. 여행 그 자체의 즐거움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느껴지는 기쁨으로 시선이 자꾸 옮겨간다.
그 기쁨은 꼭 유명한 곳, 더 나아가 꼭 유럽일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진정한 여행의 궁극적인 의미에 대한 생각이 다다를 무렵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유럽을 한 바퀴 돈 것처럼 여독과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리고 여행을 왜 갈까라는 원론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직접 선정한 101번 째 여행지를 소개한다. 그리고 수많은 여행 끝에 깨닫게 된 진정한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풀어 놓는다.
"칼프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런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내 자신의 발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타인의 발소리로 '저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의 기분이나 상태는 어떤지', 이리저리 짐작해본 적은 많지만 내 발소리가 어떤 지를 가만히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칼프에서 나 자신의 발소리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보았다.
-중략-
내 발소리는 그제야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보고 싶어하는 욕샘쟁이 관광객이 다급함을 벗고, '좀 더 느리게, 좀 더 차분하게, 내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여행자의 미소로 바뀔 수 있었다. 타인의 발소리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발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발소리에는 표정과 입김과 정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의 발소리를 세상에 하나뿐인 음악처럼 들을 수 있는 이 희귀한 시간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간이 아닐까." --- p.342~343
처음에는 그림같은 경관에 사로잡혔을 테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낯선 곳으로 가서 만난 것은 결국 자기자신이었던 것이다. 아직 여행다운 여행의 시작도 못해봤지만, 그 여행의 성장 과정은 어렴풋 이해가 된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처음 여행은 그 호기심에 시선이 많이 뺏길 것이다. 그러나 나 또한 나를 들여다 보는 여행으로 성숙해 갈 것임을 안다.
100가지 경관이 하나처럼 어울어진 것은 저자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리고 솔직한 글 때문이요, 열 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많은 인용문 덕분일 것이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여행과 가슴 따뜻한 글이 너무도 잘 어울어진 근래들어 읽은 최고로 멋진 여행책이었다.
"두려워하는군. 산초야, 네 마음속의 두려움이 네가 올바르게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효력이 바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토록 무섭다면 나를 혼자 두고 저만치 물러나 있어라.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 나 혼자로도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러고는 창을 옆구리에 낀 채 로시난테에게 박차를 가하여 비호처럼 내려갔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 p.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