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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책에 대한 책 역시 요즘
부쩍 많이 읽고 있다. 시간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시간 안에 꼭 읽어야 할 책이 무엇인지 먼저 앞서 간 선배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 책과
관련된 책을 유독 관심있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책들을 읽다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보석같은 책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있고, 책에
대한 소개나 감상을 읽노라면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은 것 같은 친근감도 들게 되는 것이다. 소개된 책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그중 정말 끌리는
책 몇 권 만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읽는 인간]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처음 봤을 때는 기존의 메타책이라고 예상했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니 얼마나 읽은 책이 대단한 책일
것이며, 무려 50년의 독서 내공은 과연 어떤 경지일 지 궁금했다.
사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지만, 이름 정도만
익숙하게 느껴졌을 뿐 저자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었다. 원래 소설을 잘 읽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일본 작가의 작품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정도로 거의 읽지 않았었기에 더욱 접할 기회가 없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너무 좋아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을 찾아 읽은 정도가
고작이다. 비록 저자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먼저 읽고 작품을 찾아 읽어봐도 좋을 것이라는 편안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책은 저자 인생에서 처음 강렬하게 만난 책, 그리고
성장시킨 책, 삶의 구비구비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50년 책읽기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1부와 책 읽기에서 시작한 치열한 소설쓰기의
과정이 담긴 2부로 구성되어 있다. 목차를 둘러보는데 언급된 책은 1부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과 2부의 「신곡」뿐이다. 순간 느꼈다. 이
책은 단순히 저자가 50년에 걸쳐 읽었던 책들에 대한 단상이 아니라 밀도가 상당히 높은 '책의 분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첫 장부터 책 페이지는 넘어갈 줄 모른다. 딱히 모르는
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표현도 아닌데 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저자가 출판을 목적으로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말로써 전달한
강연을 재구성한 책이기에, 오히려 전달을 목적으로 한 내용이니 만큼 더 잘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한 자 한 자 발걸음 떼기가 어렵다. 마치
모래사장을 걸을 때 한 발 한 발 힘을 주어 걷게 되는 것처럼 한 단어, 한 문장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고 계속 되뇌이며 곱씹게 된다. 그럼에도
저자가 표현하고, 전달하는 내용을 명쾌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된 이유는 아마도 저자의 작품을 읽지 않아서 일
것이다. 먼저 저자의 작품을 읽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저자의 생각과 과정을 따라 읽어 가야 그 깊이를 같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을
읽지 않았으니 창 밖에 서 있는 것처럼 겉도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저자가 왜 그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 그 배경의 책들을 서술하며,
인물과 연결시키는데 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이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여기에도 명확하게 적용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고통, 감내 그리고 승화까지의 과정이 오롯이 담겨져 있는 책읽기와 소설로 표출해내는 치열한 과정에 동참할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어쩌면 책을 읽었다고 해도 이해를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문장 한 구절에서, 시 한 줄에서 그는 영감을 얻고, 그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펼쳐 낸다. 아무리,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 봐도 이해되지
않는 시 두 행으로 농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함축적인 시를 파고 들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치열한 과정을 보노라면 역시 괜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아님을 책 한 장이 넘어갈 때마다 실감한다.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열여덟 살 때 내가 느낀 걸 노년에 들어선 지금 나의 언어로 쓴다면, 이런 게 아닐까. 개인을
뛰어넘는, 아울러 개인을 포함하는 '나의 영혼'의 빛이 모여드는 곳을 향해, 한 마리의 반딧불이인 나도 빛을 발하며 날아다닌다. 그런 이유로
앞으로의 나의 생이 존재한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의 영혼'과 이어진 내가 알고 있던 것이며, 그 이상의 것은 '나의 영혼' 밖에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고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 시를 읽고 이렇게 이해한 것은 제게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걸 알아냈을 땐 이미
대학생이었지만요. 그것은 문학을 통한, 보물과도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가까이 지나 저는 이미 소설가로 살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장애를 가진 장남이 태어나면서, 제 실생활에 또 한 번의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장애는 두개골 흠집에 의한 것이었죠.
아이와 함께 다소 이상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우리의 삶에 새소리가 끼어들게 되었고, 저는 이걸 소설에 썼습니다." ---
p.191~191
고전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한 줄 한 줄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다 이해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놓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으면 쉽게 사그라들지
않은 깊은 여운이 남고, 끝없는 되새김질을 하도록 가슴 한 구석 자리잡는다. 어느 순간 섬광처럼 그 의미를 깨닫기도 하고, 끝없는 숙제로 남기도
하지만 그렇게 식지 않는 무거운 울림을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읽는 과정도 천천히 눌러 읽어야 했지만, 읽은
후에도 쉽게 내려 놓지 못한다.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고. 문장 하나가 걸려 계속 되새김질 하게 된다. 아마도 한 번으로 책읽기를 끝내기는
어려울 듯 하다.
평생을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많은 수의 책을
읽었겠는가. 그럼에도 이 책에서 언급된 책이 제한적인 것은 작가의 책 읽는 방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3년 동안 한 책을 독파한다거나 시 한
구절, 번역본의 단어 하나의 뉘앙스에도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며 읽는다. 그렇게 시를, 책을 읽은 후에는 자신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이 어떻게 탄생하고, 왜 그런 배경을 갖게 되었고, 그 사람들의 행동의 이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 지 그 과정 속에 천천히
녹아들게 한다. 소설가라는 직업의 특성이 있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책읽기는 그야말로 혼을 바치는, 흡사 수도의 과정 같다.
책 중간중간 얘기하는 자신만의 책읽는 방법에서도
저자의 깊이 있는 책읽기 모습이 그대로 그러난다. 특히 번역서를 읽는 방법은 따라해보고 싶을 정도로 유용해보인다. 다만, 인내심이 많이 필요할
듯 싶다.
"한 권의 번역본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각각 빨강과 파랑, 두 종류의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약간 긴 구절이라면 선으로 상자를
만드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중략-
그렇게 책을 다 읽고, 영어 책이라면 '아마존' 같은
데서 금세 구할 수 있을 테니 원서를 사서 우선 감동한 부분을 원문과 대조합니다. 작가가 이걸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어요.
일 년에 한 권이라도 좋아요. 이런 방법으로 그리 많은
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또 번역된 문장을 외우려 들면 좀처럼 외워지지 않는데(예외도 있습니다만), 원문을 옮겨 적으며 외우면 글쓴이 마음의
변화나 리듬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에 외국어라도 외우기 쉬울 때가 많습니다.
다음은 파란색으로 칠해둔, 아무래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느낀 부분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원문을 꼼꼼히 읽어요. 이때 정성껏 사전을 펼쳐보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책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서, 어느 단어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걸 발견하면 사전을 팽개치고 곧장 달겨들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인내심 있게 사전을 펼쳐보고 즐거움마저 느끼며 천천히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것이 외국어 책을 읽는 수련법입니다.
번역을 읽다가 잘 모르겠다 싶으면 원문을 확인해요. 예를
들어 사전에 네 가지 의미가 실려 있다면, 첫 번째 항목을 보고 '아아, 이제 알겠다' 싶더라도 꾹 참고(그 단계에서 의미를 책에 적어두는 것도
좋겠지요), 두 번째 항목, 세 번째 항목까지 모두 읽는 습관을 들입니다. 훗날 '그 단어의 다른 뜻이 떠오를 때가 오리니'라고 기다릴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그런 방법으로 자신을 훈련하는 것이죠. 그렇게 자기 힘으로 읽는 노력을 하다 보면,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하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p.39~40
외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모국어의
깊이가 더해지는 방법일 듯 싶다. 낱말 하나의 차이에 민감해질 수 있고, 꼭 맞는 의미를 찾기 위해 오히려 더 모국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터이니 말이다. 일 년에 한 권이라도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책을 읽어내는 깊이가 깊어질 듯 싶다.
3년 동안이나 파면서 그를 소설가로서 성장시킨
책이 「신곡」이라면, 그의 인생에 책이라는 불씨를 처음 던진 작품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다. 아마도 저자의 50년 독서 인생의 첫 시작이자
소설가로서의 삶을 만든 발판이 된 작품일 것이다. 책 속에서 만난 한 문장은 강한 섬광처럼 다가왔고, 저자는 스스로 평생 그렇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알게 모르게 그렇게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평생의 지표를 삼을 수 있는 책을 어린 시절 만났다는 것이 부럽기만 하다. 물론, 스스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지만 말이다.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한 줄입니다.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기 시작한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돌아가신 해라, 저도 지옥이라는 곳이 가까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아이들도 이런 결심을 해야 하는 때가 있구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평생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겠어. 저는 다짐했습니다.
-중략-
당시 웬만해서는 손에 넣기 힘들던 공책을 구해서, 첫
페이지에 그 문장을 적었습니다. 문장 주변에 장식을 두르고는,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고...... 지금껏 이걸 원칙으로 살아온
듯합니다. 사실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지녀왔습니다. --- p.21

처음 맞대면은 조금 낯설게 어렵기만 했다.
중간중간 되돌아가서 다시 읽고, 다 읽은 후 다시 찾아서 읽다 보니 그제서야 조금씩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좀더 자주 만나 더
친해져야만 할 듯 싶다. 얼마 전 즐겨듣고 있는 위즈덤하우스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에디터 통신에 이 책의 에디터가 나와서 책을
소개한 부분을 들었다. 조사하나까지도 한 자 한 자 고민을 거듭하며 편집을 했노라는 얘기를 하는데, 책을 읽다 보니 그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책이기에 읽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장중한 울림을 주는 묵직한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