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독해 -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
유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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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독해]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인생독해?'

부제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읽다'를 보면서도 읽을 수 있는 대상이 다중적이기에 역시나 갸우뚱. '홀로 버려진 세대를 위한 유수연의 생존 독서' 띠지를 봤을 때에라야 비로소 '책'과 '독서'와 관련된 책임을 알 수 있었다. '독해'의 의미가 그러니까 진짜 글이나 책을 읽고 해석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쉽게 독서와 이 책을 연결시키지 못했던 이유는 저자가 영어로 유명한 토익강사라는 것 때문이었다. 나중에 보니 읽지는 못했지만 2030 젊은 세대의 멘토로서 전하는 『유수연의 독설』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었더랬다. 아마도 '독설'의 연장선 상으로, 책으로 접근하기에 '독해'라는 제목을 붙인 것 아닌가하는 나름대로의 추측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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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이라면 요즘 거의 홍수를 이루다시피 한다. 책을 알기 위해서 책과 관련된 책을 찾다가 다시 길을 잃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 책 역시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책을 읽어내는 방법을 에세이처럼 풀어낸 글이었다.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소유자답게 책을 읽는 방법도 치열하고, 치열한 인생을 헤치고 나온 만큼 책을 보는 관점도, 특히 인물을 보는 시선도 냉철하고 현실적이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시선으로, 관점으로 인물들과 책을 분석해나간다.

 

『데미안』 『이방인』, 『어린 왕자』는 물론 기형도의 시나 『콧수염 아저씨의 똥방귀 먹는 기계』와 같은 동화까지 선정한 책들은 공통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이 책들은 작가 자신을 성장시킨 작가 자신과 같은 책들이었다. 신기한 것은 적지 않은, 다양한 책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저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책이 통째로 저자에게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각기 다른 장르의 책임에도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내세울 스펙이 없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독하게' 살아낼 수 밖에 없었던 저자가 책들을 관통하면서 얻게 된 시선들이 여실히 드러난다. 시종 긴장하며 정신 바짝차리며 읽게되고,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는 '인생 독해(讀解)'가 '인생 독(毒)해'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 인생 독하지. 그럼에도 우린 살아내야 한다. 주인공이 아닌 주변에서 조용하게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소설 속 주변인들처럼.

 

"사람들은 흔히 이기는 방법, 성공하는 방법, 공부 잘하는 방법을 말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독종이 되는 방법'쯤이 될 것이다. 평범한 한 개인이 어떠한 고민들을 거쳐서 이 세상에서 질기게 살아남았는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독하게 자신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는가 정도이다. 그리고 독하게 삶을 이끌어가는 그 이면에는 나의 가치관과 성향을 만들어낸 책들이 있다.

나의 책읽기는 주입식 독서법이 아니다. 주인공보다는 현실의 모습에 가까운 주변인들의 삶과 태도에 더 집중하는 실전형 독서이며 책의 내용보다는 실제 현실에 어떻게 접목하고 응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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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두 파트로 나뉜다. '인생, 다른 방식으로 보기'와 '독해, 나만의 언어로 보기'.

 

첫번 째 파트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페스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그리고 기형도의 시,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의 말처럼 주로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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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미완의 '피스토리우스'에서로 옮긴다. 끝내 비상하지 못하고, 이상만 꿈꾸다가 현실에 주저앉아버린, 소설 속에서는 외면받는 인물. 저자는 그 인물을 통해 자신 속에, 그리고 어쩌면 대다수일 수도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마주한다. 대다수는 주인공처럼 돋보이지 않는다. 현실에 실망하고, 모순된 감정에 괴로워하며 그렇게 또 하루를 버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주인공을 바란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피스토리우스에 가깝다. 문학적인 의미를 넘어 평범한 인간을 조망하는 시선은 그렇게 살짝 비껴서 비추고 있다.

 

카뮈의 『이방인』에서는 어머니를 완벽한 한 타인으로 존중하고자 했던 '뫼르소'를 통해 희미해져 가는 자신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도 역시 깊이 묻혀 있는 진짜 자신과 직면하고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타인과의 관계 맺기도, 소통도 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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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주인공인 '어린 왕자'라는 인물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극히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어린' 왕자겠지만 저자는 이 어린 왕자를 어린이를 가장한 어른의 시각이라고 추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숙한 유아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규정하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음을 확고히 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반발하는 이유는 어린 왕자의 시선만이 고귀하다는 식의 평가에 피해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가슴 한 구석에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나 만족보다,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행복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문득문득 나의 삶은 어린 왕자가 보기에 괜찮은 삶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닐까, 불안해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면서 스스로를 불행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p.99~100

 

첫번 째 파트에서 '나'를 찾았다면, 두번 째 파트에서는 그렇게 다져진 '내'가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 독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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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던가. 책을 통해 세상의 이치, 경제, 경영, 마케팅 등의 속성을 들여다 본다. 동화 『콧수염 아저씨의 똥방귀 먹는 기계』를 통해 기업들이 끊임없이 신제품을 발표하는 이유를,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을 통해서는 불완전이 빈틈이 아닌 차별화의 기회임을 강조한다.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마이클 포터의 『경쟁우위』와 프리드리히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시야를 넓혀 재정의하고, 융합하여 컨버전스 시대에 맞는 능력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레드오션이었던 토익강사 시장에서 자기계발을 접목하면서 독특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낸 저자다운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 역시 독서와 자기계발이라는 평범한 조합에 자신만의 관점을 에세이 형식으로 버무려서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읽으면서 내내 '새롭다'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으니 분명 차별화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인생에 콕 박혀 저자를 만들어준 책목록에 내가 읽어 본 책이 많지 않아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함께 읽은 책이었다면 공감도 하고, 반론도 제기하면서 좀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특히 성장기에 꼭 읽었으면 좋았을 『데미안』이나 저자가 제시한 체크리스트의 대부분이 체크됨에도 아직 읽지 못한 『이방인』은 이번 휴가 동안에 읽을 도서목록 일순위이다. 시간이 된다면 다른 책들도 읽어 봐야겠다. 저자처럼 온몸을 관통하며 읽을 자신은 없지만,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면서 때로는 반론도 제기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나가며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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