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라파엘 로젠 지음, 김성훈 옮김 / 반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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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대학을 진학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더이상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징글징글하던 수학과 결별은 그후로도 오랬동안, 아니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게 수학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이상하게도 그런 수학과 관련된 책을 조금씩 찾아 읽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수학 자체가 싫었다기 보다 주입해서 배우면서, 시험의 당락으로까지 작용하게 되는 시스템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금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수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따금씩 쉽게 풀어쓴 수학 관련책을 접하기도 하면서 못내 해결하지 못했던 호기심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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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도 역시 그런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처음에는 수학과 관련된 책이라 어렵거나 읽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수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졌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학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과학이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사실은 익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수학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생활 속에서 물건값을 계산하고, 수학의 영역에 속해있는 수많은 도형들과 공존하고 있지만 좀더 구체적인 수학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나는 이 책에서 수업시간에 달달 외워 풀던 시험문제가 수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여기서는 외워야 할 것도 없고, 끝에 가서 시험을 보지도 않는다. 나는 수학이 실재 구조 안에 내재된 어떤 것임을 보여주고 싶다. 수학은 형태, 패턴, 숫자, 논증 그리고 약간의 보물을 모아놓은 집합체다. 수학은 당신이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도, 당신이 걷는 인도 위에도, 매일 아침 타는 버스에도 들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중략-

우리는 피자에서 도넛까지, 온라인 쇼핑에서 스마트폰 GPS까지, 우리의 일상세계에 스며든 수학을 찾으러 탐험을 떠날 것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마치 영원처럼 긴 시간 동안 오지 않다가 갑자기 동시에 버스 두세 대가 함께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음악을 어떻게 번역해 스마트폰에 집어넣는지도 배울 것이다. 그리고 도로를 더 건설하는 것이 오히려 교통난을 가중시키는 이유 같은 이상한 역설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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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은 '형태'로 일상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와 연결시켜 수학적인 이론을 소개한다.

첫번째로 소개된 주자는 암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마트의 야채코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브로콜리'다. 그 초록색의 야채가 수학이라고?

수학의 개념에는 '자기유사성'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전체 형태 속에 같은 형태가 축소되어 반복되는 것이 '자기유사성'이다. 브로콜리가 바로 이 자기유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 형태를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대하지 않았을 때와 똑같아 보인다고 한다.

이 자기 유사성은 '프랙털'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프랙털을 연구하고 대중화한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유사성은 자연 속에서 수없이 많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마무리한다. 들쭉날쭉한 해안선, 구름의 형태, 나무잎의 잎맥 무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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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 자기유사성과 관련있는 재미있는 정보를 추가로 제시한다. '수열을 무한으로 발산하지 않는 복소수로 이루어진 집합'인 '망델브로 집합'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그 모양이 자기유사성을 띤다는 것이다. 브로콜리로 시작했지만 수의 흥미로운 세계를 보는 듯해서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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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은 '행동'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 줄을 골라 서면 다른 모든 줄이 내가 서 있는 줄보다 빨리 빠지는 것 같다. 긴 줄을 빨리 빠지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학에서 이렇게 대기행렬의 행동을 다루는 분야를 '대기행렬이론'이라 한다고 한다. 텐마크의 공학자 겸 수학자인 아그너 크라루프 에를랑이 전화회선을 최소화시키는 연구를 하며 이 이론을 등장시켰다고 한다.

대기시간을 가장 최소화해주는 방법은 줄을 한 줄로 통일해서 기다리다 빈 계산대가 생길 때마다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흔히 화장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한줄서기' 방법이다. 이 한줄서기가 대기시간을 최소화시켜주는 이유는 여러 줄 서기 방식에서는 한 고객이나 창구직원이 느려지면 줄 전체가 지체되는 반면, 한줄서기 방식에서는 느린 사람이 한 창구를 잡아먹고 있더라도 나머지 고객들은 다른 창구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지체현상이 일어나도 그 영향은 훨씬 작다는 것이다. 앞으로 화장실에서 한줄서기를 할 때, 마트에서 여러 줄을 서고 있을 때도 이 수학적 원리가 생각날 것 같다.

 

여기에 한 가지 팁을 추가로 제공한다.

왼쪽과 오른쪽줄을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면 어느 줄을 선택해야 할까? 이 때는 왼쪽 줄이 유리하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90%는 오른손잡이라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번 시도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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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는 '패턴'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조합론을 다루었던 '바둑'이었다. 얼마 전 열렸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바둑은 수학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한다. 돌을 놓을 수 있는 수는 적어도 2곱하기 10의 170제곱보다 큰 값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주의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개수가 10의 84제곱 정도라니 바둑의 경우의 수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둑에서 일곱 수를 내다보려면 컴퓨터는 1조의 만 배나 되는 경우의 수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파고도 대단하지만 이세돌 9단도 대단하다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또 바둑은 수학에 중요한 기여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숫자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197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수학자 존 코웨이는 두 고수가 벌이는 대국을 연구하다가 초현실수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다. 초현실수란 일련의 위와 아래의 움직임을 이용해 수직선 위에 있는 특정 숫자를 찾아가는 명령의 집합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정수, 분수, 양수, 음수, 무리수 등으로 이루어진 모든 실수는 초현실수에 해당하지만, 일부 초현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초현실수는 본질적으로 유리수, 정수처럼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등 일련의 움직임을 이용해 수직선에서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숫자 집합이다. ---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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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은 무리수, 소수, 무한과 같은 특별한 숫자와 관련된 장이다. 막연하고 아리송했던 수학의 개념들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예들과 함께 풀어서 설명해준다.

 

이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만나게되는 사례는 책의 제목에서도 눈치챘겠지만 무려 100가지나 된다. 짤막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수학적인 현상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 새 수학이 익숙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이렇게 수학은 우리 피부와 맞닿아 있음을, 멀리있는 학문이 아님을 소개시켜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유독 흥미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좀더 관심을 갖고 공부해보라는 권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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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유럽으로 워킹 홀리데이
채수정.이종현.김아름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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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실패 사례가 종종 눈에 띄어서 사실 워킹 홀리데이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어학연수나 문화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노동 착취만 당하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서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되었구나하는 생각에 관심밖으로 밀어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나중에 꼭 아일래드 워킹 홀리데이에 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에 관한 책을 어디서 보고 와서는 꼭 다녀와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아일랜드가 어떤 나라인지, 그곳에서도 과연 워킹 홀리데이가 가능한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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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유럽으로 워킹 홀리데이] 를 본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책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일랜드, 덴마크, 독일에서의 워킹 홀리데이에 대해 떠나기 전 준비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고 담고 있다. 단순히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워킹 홀리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초점을 맞춰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한 독자에게 그야말로 갈증을 해갈시켜주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저자는 3명이다. 각각 아일랜드, 덴마크, 독일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경험과 정보를 풀어썼는데 저자가 3명임에도 공통된 포맷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일관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나라별 소개에 앞서 우선 세 나라의 인구, 면적과 같은 기본 정보부터 워킹 홀리데이 선발 인원, 1년 체류 비용, 구직 가능한 직업, 장단점 등을 표로 비교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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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의 비교를 통해서 봤을 때 아쉬운 점은 워킹 홀리데이의 가장 큰 목적은 워킹 즉 일자리인데 세 나라 모두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세 저자의 공통된 말은 열심히 발품을 팔고 노력을 한다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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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를 간단하게 비교한 후에 본격적으로 워킹 홀리데이 절차와 과정을 각 나라별로 각 저자가 소개한다. 가장 처음에 소개되는 나라는 아일랜드이다. 아일랜드는 일단 서류가 간단하고, 영어점수도 특별히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물론 실제 생활하기에는 해야겠지만) 접근성으로는 매력이 있어 보인다. 덴마크, 독일과는 달리 영어권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이다. 다만 다른 두 나라는 선발 인원이 제한 없는데 반해 아일랜드는 워킹 홀리데이 인원이 상반기, 하반기 각 200명씩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서 조금 아쉽다.

 

책은 비자신청서를 비롯 자세한 준비 과정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보험은 어떤 것을 가입해야 하는지와 같은 세부적인 내용부터, 예산 짜기와 거주지 정하는 요령, 심지어 짐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와 같은 경험자만이 해줄 수 있는 실질적이고 요긴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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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타국 생활의 시작. 낯선 풍경도 잠시 비자도 연장해야하고, 집도 구해야 하고, 휴대전화 개통, 은행계좌 만들기 등등 도착해서도 처리해야 할 일은 많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일자리 구하기. 책에서는 저자들이 경험했던 다양한 일자리를 비롯 현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하고, 구할 수 있는 팁도 전해준다. 가장 중요한 이력서 쓰는 방법도 각 나라에 맞게 포인트를 알려주고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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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교통과 같은 이동 수단을 파악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대중교통을 싸게 이용할 수 있는 팁은 물론 자전거를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도 아낌없이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병원이나 마트를 이용하는 방법, 심지어 택배를 받는 방법과 같은 소소하지만 모르면 처음에 많은 불편을 겪었을 수도 있는 것들도 놓치지 않고 전해준다. 무엇보다도 그 나라를 알고 경험하기 위해 간 만큼 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음식, 여행 등 각 나라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고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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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마지막은 각 나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난 저자들의 소감을 적고 있다. 세 저자는 공통으로 말한다. 워킹 홀리데이가 결코 만만하지 않다고. 그렇지만 젊은 날 한 번은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라고. 실패든 성공이든, 어떤 경험을 하든 그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다녀오길 잘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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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워킹 홀리데이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젊은이라면 한 번쯤 자신의 앞에 그 '기회'를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경험하고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를 다녀왔던 저자의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은 그런 도전을 했던 용기의 생생한 경험담처럼 들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더욱 아일랜드 생각이 간절하다. 낯선 나라로 떠나기 위한 가장 큰 준비물은 '마음'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좋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길."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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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암기력 - 합격을 부르는 공부법 합격을 부르는 공부법 시리즈
미야구치 기미토시 지음, 김지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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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험을 앞두고 있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지만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합격을 부르는 공부법' [미친 암기력] 그야말로 지금 꼭 필요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외울 내용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는데 진전이 없는 답답한 상황에서 '단 5분 투자로 하루 100페이지를 암기한다?!'라는 책 표지의 문구는 눈이 번쩍 뜨이기에 충분했다. 오늘부터 100페이지씩 외울 수 있다면야, 꿈같은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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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4스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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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1은 마음가짐,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이 암기법에 대해 이해하면 알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이 방법을 터득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믿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이 방법에 효과를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공부할 때 있어서 알아두어야 할 사항과 그동안 학습할 때 가졌던 잘못된 고정관념 등과 그러한 습관들을 왜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미친 암기법'의 핵심이 '이미지화'인데 이러한 원리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각 장의 내용이 끝나면 그 내용들의 핵심을 요약해 도해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텍스트로 읽을 때와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미지화 암기법의 효과를 미리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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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2에서는 이 책의 핵심, '미친 암기법'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미친암기법은 '장소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한다. 즉, 암기내용과 장소와 주제를 연결하여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미친 암기법은 다음 두 가지에서 더 뛰어나다고 한다.

 

-최단시간에 암기법을 습득할 수 있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자신의 학습목표에 맞춰 암기한 지식의 응용이 가능하다.

 

바로 '응용'이 포인트라는 것이다. 미친암기법은 컴퓨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의 '패턴인식 능력'을 끄집어 내어 활용하기 때문에 단순암기가 아니라 '응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의고사 최하위 성적까지 받을 정도로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지만 독자적으로 개발한 이 암기법을 통해서 도쿄대 약학부에 합격할 수 있었고, 도쿄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석 클래스로 졸업했다고 한다. 지인의 자녀에게 암기법을 가르치며 성적을 오르게 한 것을 계기로 많은 강연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강연들을 통해서 저자는 수강생들이 이 암기법을 수용할 때 있어 4단계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1단계는 '암기법 같은 것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하는 반신반의 레벨.

2단계는 '암기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마술처럼 잠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레벨.

3단계는 '암기법의 효과를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몇몇뿐이고 나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레벨.

마지막 4단계는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레벨이라고 한다.

 

초기에는 거의 예외없이 미친 암기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서 1단계에서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고 만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1, 2단계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여러 공부법 책을 봤었는데 이와 비슷한 장소법의 방법을 읽은 기억이 있다. 신체의 일부와 연결시켜서 외운다는. 나는 상상도 못해봤던 방법이라 새롭고 신기해했었다. 그래서 한번 시도해볼까도 했었는데 정확히 어떤 식으로 하는 지 몰라서 이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미친 암기법'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그와 같은 맥락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저자는 2단계는 일단 미친 암기법을 시험해보면서 차츰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 레벨인데 물건의 이름을 써넣은 30장의 카드를 무작위로 즉석에서 알아맞히는 게임을 며칠간 연습하다보면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3단계는 타인의 성공사례를 보고 자신의 진척 상황과 비교하면서 뭔가 부족함이 있음을 느끼는 레벨인데 '저 사람은 자격시험 준비에 미친 암기법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 나는 왜 잘 안되는 걸까'하고 고민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이 레벨을 뛰어넘으면 다음 단계 즉, '나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최종 4단계에 접어든다고 한다.

높은 산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지만 '연습에 연습' 외에는 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저자는 암기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을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이다. 암기법을 습득하면서 자신의 단계가 어느 즈음에 와 있는지를 인식해놓는다면 불안을 줄이고, 전념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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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본격적인 미친암기법 9단계를 시작한다.

준비단계는 이미지화 연습 -> 뼈대 준비이고, 실천단계는 목표 설정 -> 목표를 향하는 진로 선정 -> 목표의 중심이 되는 '크레도(Credo)' 설정 -> 부분마다 표시해가는 '80% 이해'를 통해 전체 윤곽 잡기 -> 이미지화 실천과 붙이기 -> 복습을 통해 기억을 정착시키기 -> 현실에 적응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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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암기할 핵심 내용을 추출하여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과정이 핵심인데, 사실 그 과정에 익숙해지는 것이 만만치 않다. 4단계로 넘어가는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하지만 3단계서 4단계로 넘어가야만 진정한 암기법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절대 '불안'에 휘둘리지 말고 연습을 해봐야겠다. 시험을 앞두고 있으니 그 단계를 넘을 수 있는지 시험삼아 적용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암기법은 시험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책을 읽을 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Step3에서는 미친암기법을 이용한 독서법을 소개한다. Step4는 미친암기법을 이용한 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인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다룬다. 마지막에는 특별부록으로 '미친암기법 실천노트'를 제공하여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행!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당장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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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범의 방학 공부법 박철범 공부법
박철범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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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범의 '하루공부법'을 알게 된 건 큰아이때문이었다. 교육계통에서 일을 하다 보니 각종 '공부법'에 관한 책들이 집에 널려있음에도 굳이 자신의 용돈으로 시리즈 2권을 구입해서 형광펜까지 쳐가면서 읽는 것이었다.

'공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 사실 접근방법이나 형식의 차이가 있을 뿐 핵심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또다른 새로운 책을 사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였기때문에 딸아이의 책장에 꽂혀있던 그 책은 들춰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보통 단권으로 마무리되는 다른 공부법책과는 달리 저자의 책은 계속 시리즈처럼 출간되는 것에 약간 의아했다. 그만큼 독자들이 많이 찾는가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학'동안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방학을 앞두고 갑자기 학원을 끊겠다고 선언한 둘째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차에 '방학공부법'이라는 제목은 내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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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범의 방학공부법]은 이렇게 어느때보다 불안한 상황에서 보게된 책이었다. 그리고 막연한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성적의 수직상승을 경험했을 뿐아니라 그 출발선이 바로 고1때의 방학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 아니 '하고 싶긴한데 잘 안되는'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한 처방을 현실적이고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공부를 못해보기도 하고, 잘해보기도 했던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경험한 지라 딱 그 상황에 맞는 정곡을 찌르는 멘트들을 날림으로써 아이들 스스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폐부를 찔린 아이들은 곧바로 저자의 말에 수긍하게 된다. 왜냐, 바로 서로 공유한 경험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제시한 저자의 방법에 진지하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실천에 옮기는 것도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앞뒤가 막막한 상황에서 확실한 '기준'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고 때론 좌절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직업 경험한 선배의 확실한 조언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한 믿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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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방학'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다루는 1장과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를 다룬 2장,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공부방법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방학에 대한 구체적인 궁금증과 흔한 실패의 원인을 사실적으로 분석한 1장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집어든 시점의 고민으로 돌아가서 그럼, 학원을 끊겠다고 선언한 둘째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고민 해결 요청이 많았나보다. 그 고민의 그대로 처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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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겠다. 중학생은 방학에 학원을 나가는 것이 좋다. 반면 고등학생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방학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무엇을 공부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얼마나 늦잠을 자지 않을 수 있느냐', '얼마나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느냐'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 말이 정말로 맞는 말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냈던 방학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학생의 방학을 생각해 보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방학에는 학교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몇 시에 일어나든 상관없는 삶이 펼쳐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늦잠을 자주 자게 되고, 학생 본인은 '나는 왜 의지가 부족할까?'라고 자책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폐인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전교1등이든, 꼴찌든,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 부족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중략-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 말고도 중학생에게 방학 동안 학원을 추천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중학생들은 아직까지는 의지가 약해서, 방학동안 공부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실천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원처럼 정해진 진도를 매일 나가고 거기에 맞춰 숙제도 꼬박꼬박 해야 하는 시스템 속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공부하기에 더 편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p.33~34

 

좀 길게 인용했지만 중학생 아이와 함께 상의해 볼 좋은 근거를 제시해주었다. 물론 이번에는 강한 의지를 보여 어쩔 수 없이 일단 수용을 하고 새학기에 다시 고민하기로 결론을 내렸지만 방학의 절반이 지나간 지금, 역시나 아이는 저자의 예언을 그대로 실천중에 있다. 아직은 고집을 부리고 있어 좀더 지켜보고는 있지만, 곧 다시 협상을 해야할 듯 싶다.

 

고등학생이 되는 큰아이는 이 책을 누구보다도 반가워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은 부분은 바로 자신이 늘 고민하는 문제였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자칫 늦어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이런 경우 가야할까, 아니면 그냥 포기해야할까? 흔한 실패 원인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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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지금이라도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거기 가서 30분이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할지 알고 있다. 솔직히 그건 좀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어차피 지금 가 봐야 밤 9시에나 도착할 것이니, 공부는 1시간밖에 하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나보고 그 1시간을 공부하자고 길거리에서 왔다 갔다 2시간을 허비하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다. 너무하다 싶겠지만 당신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면, 당신은 시간관리의 원칙들을 모두 깨달은 것이다.

-중략-

어차피 지금 공부를 시작해 봐야 조금밖에 못 하니까 그냥 내일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아마 내일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왜냐면 오늘 놀았던 여파가 내일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놀았던 기억이 내일까지 남아서, 내일 계획한 그 공부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흐름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단 30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일단 도서관을 가라는 것이다. 실천해 보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면, 마음이 완전히 새롭게 바뀐다." ---p.101~102

 

2장에서 소개한 공부법 역시 심플하면서도 체계적이다. 물론 처음에는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같다. 시간관리만큼이나 공부하는 습관 역시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방법대로 실천하려고 노력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방법은 시작이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단지 단계적으로 나아갈 실천적 의지를 키울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저자가 왜 60만 청소년들이 선택한 대표 공부 멘토였는지 이 책을 읽어보니 알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큰 아이의 책장에 꽂혀 있는 2권의 책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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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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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이 책의 저자 김정운 교수는(이제는 이 직함이 상관없을 터이지만 여전히 어울리는) KBS의 TV프로그램 <명작스캔들>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어디선가 봤을 테지만 워낙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보았기때문에 가장 기억이 생생하다. 개그맨 뺨치는 유머로 사회, 문화 심리학적 해석을 내놓을 때면 고급진 웃음이 절로 나오며 공감이 되었었다. 촌천살인으로 핵심을 짚어내며 듣는 사람을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었던 천상 이야기꾼이었다. 속물적이면서도 지적인 유머는 청량감과 신선함을 주며 대중에게 인기가 높아졌었다.

 

그렇게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가고 있을 때 돌연 그는 모든 활동(심지어 교수직까지도)을 접고 일본으로 떠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긴 했지만, 그래서 지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막 봇물이 터질 시점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수많은 경제적인 유혹과 보장된 사회적 직위를 내던지고 떠날 수 있을까, 정말이지 그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꿈을 꿀 수는 있다. 바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도시의 삶을 버리고 귀촌하여 슬로우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는.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싶다는. 그렇지만 대부분은 현실적인 욕망과 욕구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작건 크건 두손으로 움켜지고 있는 그 현실의 끈을 놓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떠난 것이다. 홀연이.

 

그런 그의 책이 갑자기 온라인 서점 메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

 

 

표지에서는 피톤치드가 팍팍 나올 것 같은 짙은 초록색의 남자 형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책은 갑자기 떠난 일본에서의 생활을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담은 에세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초록색의 남자는 저자 자신을 표현한 것 같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이러한 청량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떠나 있던 시간, 그는 일본 전문대학에서 2년간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갑자기 사라지면서 단절된 그의 일상과 그 시간을 통해서 깨닫게 된 이 생명의 에너지가 궁금하다. 제목이 첫번 째 단서를 주긴 한다. 자발적 고독으로 인한 삶의 변화, 그렇지만 '격하게'라는 표현이 드러내는 결코 그 쉽지 않았을 시간을 시간들. 어쨌든 읽어봐야했다.

 

도대체 왜 갑자기 떠났으며, 그 기간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책을 받아들었을 때 너무 설렜다. 고급스러운 종이의 재질의 느낌도 좋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잘 그린 그의 그림도 놀라웠다. 백마디 말보다 더 깊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흑백의 사진들도 빨리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이 책의 부제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이다.

그의 전공인 '문화심리학'이 뼈대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림과 사진이 어우러지면서 글은 더욱 풍성해진다.

저자는 글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념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어 더욱 좋았노라고 한다.

읽는 사람도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림이 훌륭해서가 아니다(물론 생각보다 너무 잘 그렸다). 말로 표현 가능한 것과 몸짓이나 소리가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의 차이인 것이다.

그림이라는 도구가 추가되면서 그 표현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다.

 

 

책은 처음부터 '푸핫'하고 웃게한다. 역시 저자답다.

 

"오늘도 또 부엌 한구석에 주저앉아 울었다. 외롭거나 서글퍼서가 아니다. 진짜 너무 아파서 울었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넣으려고 열어놓은 싱크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그런다. 아주 환장하게 아프다. 눈물이 쏙 빠진다. 부엌 한구석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 잡고 끙끙대고 있는데, TV에서 '고독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p.21

 

고독함에 대한 괴로움일까 잔뜩 기대하고 읽었는데 반전! 역시 가식없이 유쾌한 모습은 그대로다. 이후 이야기의 주제는 고령 사회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인간의 '고독'에 대한 여러 학문에 기초한 학자적 관점을 풀어낸다. 물론 아주 이해하기 쉽고, 재미나게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본문에서 다루었던 내용 중 핵심 키워드나 용어, 사조 등 배경지식이 필요한 내용을 아주 깨알같은 글씨로 설명해준다. 요즘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낯익은 개념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앞부분만 읽을까 했는데 배경지식도 쌓고 좋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읽었는데 그 부분도 저자가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각주처럼 참고자료인줄 알았는데 강의를 하듯 배경이 필요한 지식에 대해 그의 스타일대로 해설을 넣어준 것이다. 딱딱한 내용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저자 특유의 솔직한 표현이 깨알같이 들어 있다.

 

 

각 주제의 글마다 그에 해당하는 그림이 실려있고, 이어 일본에서의 그의 일상이 담긴 사진으로 마무리되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 책은 3년간 신문에 연재한 컬럼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신문 컬럼을 쓸 때 그림이 꼭 필요하니 함께 실어야 한다고 기자를 설득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림을 보는 눈은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담겨져 있는 그릇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더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문화심리학자의 깊고 복잡한 시선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 어떤 그림보다 풍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것이 진정한 융합 시너지가 아닐까 싶다.

 

프롤로그에서부터 그는 인간이 왜 격하게 외로워야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중략-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p.7~8

 

그는 '만 50세부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꼽아보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거기에 '강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단위 마감이 이뤄질만큼 인기교수였는데 '강의'가 하기 싫은 일이었다니. 그는 더이상 속이고 싶지 않아서 그 길로 모든 것을 접기로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지낸 4년 동안 참 많이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얻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생뚱맞은 학위를 하나 더 땄습니다. 교토 서쪽 끝에 있는 교토사가예술대학의 단기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이제 내 최종학위는 '전문대졸'입니다. 원래 만화를 공부하려 했습니다. 노인용 성인 만화, 변태만화를 그리려고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정상 체위'만 고집합니다. 그래서 삶이 지루한 겁니다"

 

에로틱한 상상력이 다양해야 문화도 다양해집니다. 그런데 내 지도교수이신 기타무라 마사미 교수님이 내 그림 솜씨를 보더니 정말 잘 그린다며, 일본화를 배워보라고 했습니다. 만화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일본화를 배울 기회는 다시 없을 듯해서 교수님의 추천대로 일본화를 전공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3월에 졸업했습니다. 나는 내 전문대학 학위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독일의 박사 학위보다 훨씬 신납니다. 내가 정말 좋아서 한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10년 후면, 정말 세계적인 화가가 될 겁니다. 이 책의 표지도 내가 그린 겁니다. 볼 때마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p.12

 

사람이니 후회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안정을 바라는 인간의 본능이 꿈틀거릴 때마다 헛헛한 마음을 다스려야 했을 수도 있다. 책의 층층이 쌓인 시간들 속에 그런 쓸쓸한 마음이 묻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글, 그의 졸업사진을 보니 이제 그는 그런 미련의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음이 느껴졌다.

 

 

타국에서의 외로움, 본질적인 외로움, 막막함의 외로움.... 그런 외로움들을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연 것이다. 앞으로는 여수로 내려가서 화실을 열고, 그림과 학문에 매진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여수일까?

아무런 연고없는 곳이 또다른 '외로움'을 만들어 낼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낯익은 서울은 함께 보낼 지인이 너무 많아서라는 것이다. 한번 견뎌낸 외로움의 공식을 다시 새롭게 적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는 또다른 삶을 얻은 것 같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부럽기도 하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음에도 예전처럼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책으로, 그림으로 만날 수 있어서 독자로서 여전히 반갑고 고맙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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