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에서 케인즈까지 99권으로 읽는 3,000년
세계사'라는 부제가 붙은
[비밀의 도서관]은 책을 받아 본 순간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선 43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두께에 놀랐고,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 99권이
서로 연결된 흐름을 가지고 이어진 사실에도 놀랐다.
책 사랑꾼이라는 저자의 방대한 자료에도 놀랐다.
이미 알려진 유명한 작가라도 하더라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소개함으로써 신선함은 물론,
흐름의 맥락에 더 적절한 요소가 되게 하는
저자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책을 읽기 전 고전이나 영문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고전 몇 권을 읽었을까 말까.
그래서 책을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런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수준이나 상황에 맞게 효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기 위한 테스트를 준비한 것이다.
"삶이 문학과는 전혀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을 위한 간단 테스트!"
마치 잡지에 실린 심리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지고, 책에 대한 긴장감이 풀리면서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테스트 결과 6~10개.
"꽤' 문학적인 삶을 사는 당신! 신비로운 고대시대? 상상력과 감정을 중시한 낭만주의 시대?
철도, 전화 등이 도입되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빅토리아 시대? 흥미로운 시대를 기준으로 읽어보세요."
---
p.5
저자는 머리말에
이 책의 의미와 구성 등을 상세하게 풀어놓고 있다.
읽기 전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내용들이 모두 읽은 후에
다시 읽어보니 책의 흐름과 내용, 구성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비밀의 도서관》은 우리 삶과 연관된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간다. 이 여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쓰였다. 첫 번째는 잘 알려진 책의 덜 알려진 면을 밝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이 우리 주변의 세계와 놀라운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낯선 것에서 익숙한 것을
찾아갈 예정이다. 즉, 이제까지 기록되거나 타이핑되고, 어딘가에 새겨지고, 말이 글로 옮겨진 수많은 책과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
p.7~8
책을 읽는 내내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러기에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역사 속에서 외면당하고 있거나 사라진 진실이 그나마 작가의 노력으로
세상 빛을 조금은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동양에 대한 최초의 여행기를 쓴 사람이《동방견문록》의 '마르코폴로'가
아니라
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죽은 '지오반니 다피안 델 카르피네'라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사였음을 밝히는 식이다.
"몽골의 결혼 풍습,
그들이 먹는 음식, 의복, 법률과 관습 등 그 밖의 많은 것들에 관한 귀중한 정보도 제공했다. 그는 1240년대 말 이 여행기를 완성했고,
말년에는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최초로 몽골 세계를 소개한 유명인사가 됐다.
그로부터 50년 이상이 지나서야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p.78~79
또한 계몽주의
시대 현미경을 최초로 만든'로버트 훅(Robert Hooke)'이 쓴
《마이크로그래피아》를 소개하면서 현미경학과 관련된 이 책이
'과학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출판된 것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평가를 받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바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때문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훅은 뉴턴과 오랫동안 불합리한 경쟁을 해야 했고, 뉴턴은 음흉하게도 역사에서 훅에 관한 기록이
삭제되도록 만들었다. 그는 경쟁자의 초상화를 모두 없애기까지 해서 약 30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뉴턴의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인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분이다"라는 문장은 훅에게 쓴 편지에 들어 있었다.
12세기의 신학자 사르트르 베르나르의 글을 인용한 이 구절이 역설적인 까닭은, 뉴턴이 올라탔던 거인 중에 부분적으로나마 훅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 p.167
앞서 말한 것처럼 챕터와 챕터를 잇는 구성도 독특하다.
이 부분 역시 저자의 계산된 의도가 담겨져 있음을 머리말에 밝히고 있다.
"도서관 투어를 떠나기 전에 알아둘 게 하나
더 있다. 아홉 개의 장의 모든 항목이 이전 항목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때로는 두 책 사이의 연결고리가 명확하겠지만, 알아보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안에 역사, 그리고 책과 책을 잇는 고리가 존재하므로 필자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도 의미와
연관성을 찾는 즐거움을 느끼기 바란다." --- p.9
빅토리아 시대
탐정소설 작가 아서 이그나티우스 코난 도일의 책 《네 개의 서명》을 소개한 후,
바로 이어서 《진지함의 중요성》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를 소개하는데
그 시작의 도입문은 이렇다.

"1889년의 한 디너파티에서 코난 도일이 《주홍색 연구》의 후속 작품을 쓰기로 결정하고,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구상했다. 문학적으로 엄청난 역사를 지니게 된 이 식사에서 1890년대 두 거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
p.283
또는 미국 최초로 시집을 출판한 시인 앤 브래드스트리트와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에 대한 이야기 다음에 에밀리 디킨슨을 배치한다.

"1630년 앤 브래드스트리트가 매사추세추에 도착한 이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매사추세츠 출신 중 가장 이름난 여성 작가로 떠올랐고, 《작은 아씨들》과 그 속편들 덕분에 문학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이렇듯 올컷이 인기 소설로 인세를 거두는 동안, 같은 지역 출신의 또 다른 작가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 작가의 이름은 1830년에 태어나 1886년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디킨슨으로, 그녀가 쓴 약
1,800편의 시 가운데 생전에 발표된 시는 채 열 편이 되지 않았다." --- p.329
영문학에 대한 상식이 없어도, 심지어 그 책들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도 이 책에는 다른 책이 언급될 확률이 더 높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부담이 없었고, 역사 속에 묻혀 있었던
새로운 사실을 읽으며, 옛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들었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힐 수 있도록 쉽고 지루하지 않게 쓴 작가의 역량 덕분이리라.
처음 책을 들었을 때 느꼈던 무게감은
읽어갈수록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가 되었다.
워낙 방대한 양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기억 속에 지워진 것도, 정리가 채 안된 것들도 있다.
이제는 처음 들어가기 전에 했던 테스트 결과처럼
흥미로운 시대를 뽑아서 좀더 깊숙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기회가 된다면 소개된 책들 중 인상깊었던 책도 읽어보고 싶다.
그렇게 한권 한권 마주하다 보면 영문학에 대한
나의 무지도 조금씩 깨지지 않을까 싶다.
정말 오랜만에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깊이있는 멋진 책을 만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