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탱고 - 그림책 들고 너에게 사뿐
제님 지음 / 헤르츠나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최근 그림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깔깔거리고, 감동받고, 공감하고...

제각각의 그림책 판형처럼 그렇게 제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던

그림책의 그림들, 이야기들을 읽으며 한없이 그 세계에 빠져 살았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마치 졸업이라도 하는 양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갔었다.

그런데 요즘 부쩍 그림책이 다시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나 역시 일상의 여러 변화들을 겪으며 여유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럴수록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림책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그림책들을 다시 꺼내 읽노라니

마음이 울컥울컥 해진다.

한없이 넓고 깊게 펼쳐진 그림책 세상 속의

그림들을 응시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어렵게 해석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위안이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집처럼 그냥 그렇게 마음이 푹 퍼진다.

그림책은 쉬어가라고 넉넉한 품을 내어준다.

잊고 있었던 엄마의 품처럼.

그렇게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그림을 오래오래 바라본다.

 

한동안 그림책에 소원했더니 어느새 낯선 책들이 많아졌다.

모르는 책들이 많을수록 가슴은 더욱 두근거린다.

안보는 사이 그림책들은 더욱 다양해졌고

더욱 다채로와졌고 내용도 깊어졌다.

눈에 띄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들도 꽤 많아졌다.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림책 탱고]는 그림책 에세이를 두 권이나 출간한

'은재야 사랑해'라는 네이버블로그

(https://blog.naver.com/noirejn)​ 운영하고 있는

제님의 그림책 에세이다.

저자 역시 아이들과 뒹굴며 그림책의 세계로 들어가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멀어지고 잊고 살았던 나와는 달리

저자는 더 깊이 들어가 그림책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책까지 여러 권 출간했다.

블로그를 방문해보니 연도별로 그림책 이야기를

빼곡히 채워가고 있고,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그림책과 일상의 이야기,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꼭 맞는 그림책을 선물해주고, 추천해주는

저자의 일상이 소박하지만 그 어떤 삶보다 풍요로워 보인다.

 

 

책은 주제별로 묶어서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경계는 책을 만들기 위한 기준일 뿐

책을 읽다보면 그런 구분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림책 한권 한권,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 시작은 크빈트 부흐홀츠  글, 그림의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여러 번 봐도 별 감흥이 없다가

우연한 계기로 인연이 되는 책들이 있다.

저자에게 이 책이 그랬나 보다.

'그림'과 '여행' 그리고 몽환적이면서 섬세한 그림이

제법 인상적이지만 작가는 무려 네 번이나 만난 후에야

비로서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고 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꽤 잘 어울린다는 책.

화가와 소년의 우정을 다룬 스토리도

고전적인 구조이긴 하지만 흥미를 더해준다.

무엇보다도 세밀한 그림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첫 장부터 가슴을 두드린 작가는

'함께 선물하면 좋을 책선물 꾸러미'를 통해

못다한 이야기를 전할 책을 더 소개해준다.

이렇게 매 꼭지마다 끝에 이야기와 관련된 책을

추가로 소개해주어 책장을 넘기는 아쉬움을 달래준다.

여기에 소개하는 책들은 꼭 그림책에 국한되지 않고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소개해주어 더욱 풍성한 느낌을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저자가 구순의 아버지에게 그림책을

소개하고 싶어 안절부절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이야기 자체가 꼭 그림책같다.

생각이 많으셨던, 반듯했던 아버지가

치매로 무기력해진 모습을 봐야 하는 딸.

아버지와 꼭 닮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쑥갓 꽃을 그렸어」를 아버지에게 소개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는 저자의 마음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결국 그림책을 읽으시게 하는데 성공하고

섭섭해하실 것 같은 어머니에게도

책선물 꾸러미에 소개한「엄마의 초상화」를 선물해드린다.

 

 

두 분이 책을 읽으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마음을 훈훈하게도 하지만 그림책이 가지고 있는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준 에피소드였다.

 

 

손님들이 왔다가 싹 빠져나갔을 때의 느낌.

마음 한 켠의 아쉬움보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가 더욱

반가웠던 경험.

「우리 집은 시끌시끌해」는 그런 후련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던 주인공 피터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현자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현자는 소 한 마리를 들여놓으라고 조언한다.

더 시끄러운 것은 당연한 결과.

다시 찾아갔을 때는 당나귀,

그다음에는 양, 암탉, 개, 고양이를 들여 놓으라고 얘기한다.

온갖 동물의 소리가 집에 가득해지자

화가 치밀어 오른 피터 할아버지는 다시 현자를 찾아간다.

이 때 그는 다시 동물을 차례로 내보내라고 한다.

모든 동물을 내보낸 집은 그 어떤 집보다 평화롭고 조용해진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이렇게 멋진 유머로 풀어낸 책이

과연 아이들만의 책일까 싶다.

 

 

"미술평론가이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신문 컬럼을 읽다가 따뜻한 풍경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 칼럼은 덕수궁 관리소 직원에게 받은 휴대폰 문자로 시작했습니다.

"함녕전 꽃 계단에 모란이 만개했습니다. 이번 주말엔 덕수궁에 오셔야 볼 수 있어요. 올해는 일찍 개화해서 벌써 지려고 해요."

꽃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 주는 직원의 살뜰한 마음결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치 제가 문자를 받은 것처럼요.

모란꽃이 지기 전에 덕수궁 함녕전을 꼭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더불어 덕수궁 함녕전에 모란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p189

 

백지혜 작가의 「꽃이 핀다」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시작한 글이다.

나 역시 감동에 젖어 한동안 덕수궁 함녕전 꽃 계단에

모란이 만개한 광경을 상상해봤다.

이런 따뜻한 문자를 받았을 유홍준 작가의 모습도.

유홍준 작가는 과연 모란꽃을 보러갔을까.

사는데 꽃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의식주처럼 꽃이 없다고 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일도 없다.

그렇지만 자연이란 존재는 숨을 트이게 하는 존재다.

목을 조르는 듯한 일상의 압박이 느껴질 때

꽃은 모든 근심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하는

휴식처가 될 수 있다.

자연이 빚은 비대칭의 자연스러운 색감은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여유를 느끼게 한다.

찔레꽃, 민들레, 달개비, 모란꽃, 진달래꽃...

서사없이 각자의 공간에서 활짝 핀 꽃을 담은 그림책은

그렇게 잠깐이라도 숨통을 열어줄

자연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직장과 머지 않은 곳에 덕수궁이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보려다 몇 번을 주저앉았다.

추워서, 미세먼지 때문에, 바빠서...

함녕전의 모란꽃은 언제쯤 필까.

문자를 보내 줄 이는 없지만

그전까지는 꼭 다녀와 봐야겠다.

오는 길에는 근처 서울도서관에 들러

작가가 선물해준 책꾸러미를 한가득 안고 올 참이다.

오랜만에 그림책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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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다 - 뇌과학과 명상, 지성과 영성의 만남
마티유 리카르 & 볼프 싱어 지음, 임영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책으로여는길입니다"


명상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다보면 하루에도 열 번씩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 번잡한 마음을 제발 다스릴 수 있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다와 같는 마음이 있었으면. 주위의 상황에 갈대처럼 흔들리다 보면 마음은 허해지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숨을 크게 들이 쉬면서 다스려 보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경우가 허다하다.

명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들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이런 번잡스러운 마음때문이었다. 나이 40이면 불혹이라고 하지 않던가. 주위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의 불혹을 넘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쉽게 요동치는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이다. 너무 견디기 어려울 때 약식 명상을 두어번 따라 했더니 제법 효과가 있었다. 순간의 효과를 몇 번 느끼고는 제대로 명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당연히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치유를 위한 명상, 수양을 위한 명상, 명상 그 자체를 위한 명상... 명상을 책으로 배울 수도, 배워서도 안된다고 하지만 정신을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는 그 원리가 너무 궁금했다. 앞으로 명상에 도전을 해볼 계획이지만 그 전에 과연 명상이 무엇인지, 명상의 원리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나를 넘다]는 아마도 그 해답을 내게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게 된 책이다. 명상의 대가인 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세계적인 신경생물학자이자 뇌 관련 권위자 볼프 싱어가 무려 8년 간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명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던 내게 '명상'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 역시 승려가 되기 전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포유전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에 매진했던 과학도였다. 그가 설파하는 자아와 명상이라는 것이 미신처럼 터무니없는 존재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한 사람은 몸으로 체험하고, 또 한 사람은 과학이론으로 접근해한 두 과학자의 대담은 생각한 해도 흥미진진했다. 과연 '명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도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과학자 모두 아직까지는 답을 구할 수 없노라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아나 의식, 그 성질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해야 하는지조차 도출해내지도, 합의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지만 유사한 부분 즉 접점이 된 부분도 많고, 그런 부분에서는 과학적 실험을 통한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벤치마킹하면서 낯선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티유의 경우는 불교철학으로 뇌, 자아, 의식을 풀어낸다. 실험으로 명쾌하게 증명해내야 하는 과학보다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눈으로, 실험으로 증명하지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둘의 대화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선을 타고 양면을 모두 고려하면서 전개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뇌가 명상을 만났을 때'는 명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처음에 궁금했던 내용이 바로 1장에 그대로 실려 있다. 제대로 된 명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요소가 갖추어졌을 때 극대화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명상의 대가다운 명쾌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볼프의 과학적인 이론과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면서 명상의 실체를 규명해간다. 이러한 과학적인 근거는 명상이라는 행위와 상태를 좀더 구체화시켜주고 명료하게 해주며 신뢰감을 더해준다.

 

"볼프 보통 특화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뇌구조는 주어진 과제를 실행하는 초기단계나 학습단계에서 작용하는 뇌구조와 다릅니다. 이러한 뇌영역의 이동이 이루어지면, 그 과제는 자동적으로 신속하고 쉽게 수행할 수 있게 되므로 더 이상 인지기능의 통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중략) 감정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즉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각각 구분하고, 그 결과 감정의 역학에 친숙해지는 방법을 배운다면, 갈등이 생길 때 그것을 자동적으로 잘 다스릴 수 있게 될까요?

 

마티유 명상과 같은 과정을 설명하시는 거군요. 가르침에 따르면 한 명상가가 명상을 훈련할 때, 예를 들면 자비에 대해 명상할 때, 초반에는 어느 정도 강요되고 인위적인 감정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반복해서 일으키다 보면 제2의 천성이 되어,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된다고 합니다. 자비가 정신의 흐름과 하나로 일치되면,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숙련된 명사가는 의식적으로 형식에  따라 명상을 하지 않아도, 명상의 상태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어떤 것에도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다만 이 건강하고 자비심 가득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되죠.

 

볼프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기능방식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군요. 학습과 훈련을 통해 명상과정이 자동화될 때 이미 관찰된 것과 것과 같은 기능의 이동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단층촬영 결과에  따르면 처음에는 의식의 통제 아래 습득한 능력이 자동화되고 나면 의식적인 학습을 담당하는 부분과는 다른 뇌구조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p45~46

 

2장은 '무의식과 감정의 실체'를 다룬다. 무의식과 의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명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치유할 수 있는 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주로 명상의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명상에 대한 원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명상을 하면서 명상이 과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단지 내 마음만 진정시킨다고, 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명상을 해서 진정시킨다고 하더라도 다시 외부의 문제와 접촉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궁금증을, 아마도 명상을 경험하지 않은 많은 독자들도 가질 법한 의문점을 마티유는 그림그리듯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볼프 의식적인 처리로는 접근할 수 없는 수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명상이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저는 비판적 시각으로, 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부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불안한 감정과 반추가 일어났다고 합시다. (중략) 이들이 명상수련을 결심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들은 보호된 환경에서 혼자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문제를 해결해줄까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단둘이 있을 때 같은 문제에 또 부딪히게 되면, 다시는 싸우지 않을까요?

 

마티유 (중략) 진정한 명상은 문제에 대해 잠시 눈을 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께서 언급하셨던 부부의 예를 든다면, 무엇보다 강박적인 집착의 파괴적 측면과 갈등을 일으키는 정신의 상태들을 모두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파괴적인 요소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경안정제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명상수련은 다양한 종류의 치유책을 제시합니다.

(중략) 치유책에는 욕구나 분노를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대신,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분노에 대해 의식하는 우리 정신의 의식수준은 분노에 차 있지 않고, 다만 그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식은 그것을 지켜보는 감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한발 물러나 실제로는 그 감정이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면의 갈등이 저절로 사라질 수 있도록, 내면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열어두기만 하면 됩니다.

(중략)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상황이 어떻든 모든 감정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치유책입니다.

이 방법이 처음에는, 특히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정신의 평정을 유지하고 일상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들을 대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p.134~139

 

참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의식의 공간에서 머물지 않고 흘러가도록 두라는 것. 그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 하지 말고, 그 감정이 일어났구나 하는 것에 집중하며 의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의 파도가 되지 않고 바다가 된다면 흘러가는 감정들에 휩싸이지 않고 심연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사람들과 얽혀 살다보면 순간순간 다양한 감정에 노출되면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 감정에 떠밀려 살다보니 불행하다는 생각을 키워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부정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의식하면서 머물지 않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해봤다. 감정을 쌓아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안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 실제도 그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갈등없이 그 상황을 풀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타인을 무조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그 감정이 떠올랐구나를 생각하면서 그 감정의 깊은 뿌리까지 지켜보려고 하는 것,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평정 상태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단지 명상의 방법, 효과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과정이 필요한지를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설명해주기때문에 납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장은 아는 것, 인식으로 확장되고, 4장에서는 '자아'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간다. 이를 토대로 5장에서는 자유의지, 책임감, 정의 등에 대해 정의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초현실적인 현상들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과연 '의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불교철학과 과학은 같은 견해도 있지만 결국 좁혀질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의식에 대한 견해는 내면 즉 1인칭 시점이라는 불교철학과 3인칭 시점이라는 과학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면서도 8년 간의 긴 대화에서도 결국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프란시스코는 어느 날 저에게 말하기를, 의식의 궁극적 속성에 관해 열린 정신을 유지하여 이로써 의식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해석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따뜻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깊은 우정을 나누며 유지했던 열린 정신 속에서 이 중요한 질문은 3인칭과 1인칭의 관점으로 동시에 진행될 앞으로의 연구에 맡겨야겠습니다." ---p.406

 

이렇게 8년 간의 긴 대담은, 더불어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도 마무리가 된다.

책 초입의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포트 앙드레'가 쓴 추천의 글에서 "지금 우리가 손에 든 이 책은 분명 '까다로운 책'이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일도 분명 조금은 수고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부터 심호흡을 하면서 각오를 했었다.

어렵고 힘든 책이겠구나. 분명 그랬다. 아마도 이 책 내용의 10분의 1도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 당장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꾸준히 영향을 줄 것 같다. 당장 내 생활에 명상을 적용한 것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 의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에 대한 탐구를 할 때면 먼저 이 책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이 책을 참고하면서 그 기반 위에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8년 간의 긴 시간을 두고 대화를 하다보니 개념 정리에 있어 중복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좀더 가지치기를 했으면 깔끔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 또 언제 어느 시점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시기적인 정리도 있었으면 흐름이나 구조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의 글처럼 완독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욕심껏 읽었던 초독 때와는 달리 이제는 굵직한 틀 안에서 좀더 꼼꼼히 내용을 살피며 천천히 재독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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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릭 커피 & 바리스타 - 바리스타 카페 창업
허정봉.한준섭 지음 / 크라운출판사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바리스타나 까페 창업을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나 역시 하루에 5~6잔은 기본으로 마실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커피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고

아예 직접 제조하는 바리스타 과정을 배워보고 싶고

내친김에 자격증까지 따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퇴근 후 회사 근처에 다닐 만한 곳을 물색해두었었는데

아쉽게도 최근 회사일이 바빠지면서 잠시 보류한 상태이다.

여건이 나아진다면 언제든 시작할 마음의 준비는 항상 되어 있는 상태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아메리카노에도 만족해하고 있을 때

우연히 커피 전문점에서 다양한 원두 중에서 기호에 맞는

커피를 선택해서 마셔야하는 상황이 생겼었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의 커피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겨우 '오늘의 커피'로 주문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내가 마시던 커피의 세계와는

또다른 맛의 세계에 충격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후 어쩌다가 핸드드립 커피메이커를 구입하게 되면서

약식이지만 본격적인 원두의 종류에 따른

커피의 맛을 비교해가면서 마시게 된 것이다.

 

무조건 까페라떼를 마시던 내가

원두의 종류에 따른 맛의 차이를 느껴가며 마시는

재미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다.

아직은 커피를 내리는 온도나 양, 방법 등의

고려없이 마구잡이로 추출해서 마시고 있지만

그럼에도 원두에 따라 다양하게 느껴지는

커피의 맛은 알면 알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그전에 느낄 수 없었던 '산미'의 맛은 먹을수록 매력적이다.

이러한 맛은 원두가 다양한 커피전문점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어

집에서 자유롭게 내려 마시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알음알음 커피의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하니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홀릭 커피 & 바리스타]는 학원에 다니기 전에

먼저 보면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보게 되었다.

얼마 전 허영만 화백의 만화 '커피 한 잔 할까요?' 시리즈도 구입해서

열독했는데 커피의 세계는 정말 알면 알수록 재미있기도 하지만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다.

이 책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는 사람이나

카페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커피의 기본부터 자격증 준비, 창업 실무적인 부분까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part 1에서는 그야말로 커피의 기본부터 시작한다.

커피의 역사, 품종, 한 잔의 커피가 되기까지의 공정,

커피의 맛과 성분, 그리고 커피의 추출 방법까지

바리스타가 알아야 할 기본중의 기본을 담고 있다.

또한 커피와 관련된 직업, 자격증,

커피와 관려된 도구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알려준다.

 

 

저자가 실전에 경험이 많기 때문인지

초보자들이 간과하거나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한 조언도

예리하고 생생하다.

자격증을 취득할 때도, 까페에서 일을 할 때도,

까페 운영을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그라인더는 커피 맛에 대부분의 영향을 미치는 커피콩의 분쇄도를 조절하여 커피의 추출성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장비이기 때문에 적절한 사용뿐만 아니라 관리에도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라인더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

결론적으로, 커피를 만드는 재료는 커피원두와 물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전용 머신과 정수 필터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커피원두의 분쇄도를 조절하는 그라인더 구입에도 투자는 물론 분쇄를 잘 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p.58~59

 

 

part 2는 본격적인 커피 자격증 대비에 들어간다.

에스프레소의 추출 과정과 방법을

시험 기준에 맞춰 상세하게 알려주고,

그 추출 과정을 직접 사진으로 보여준다.

좋은 예는 물론, 좋지 못한 예도 보여주면서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한

원인을 명쾌하게 알려준다.

수험생들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part3은 까페 창업시 필요한 본격 메뉴 실무를 다룬다.

에스프레소의 다양한 응용 메뉴를

조리 방법과 과정을 사진으로 꼼꼼하게 보여준다.

또한 TIP 박스를 두어 추가적으로 조언해줄 만한 내용들을 살며시 전해준다.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되는 것은

커피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조금씩 주워들은 것들이 정리가 되고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백문이불여일행!!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지니

이론으로 준비한 내용을 실제 몸으로 익힐 준비를 해야겠다. 

세상을 잠시 멈추게 할 '한 잔의 커피'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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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 바로크 음악의 걸작을 따라서 떠나는 여행
에릭 시블린 지음, 정지현 옮김, 장혜리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틀어 놓고

이 책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를 읽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과연 바흐의 음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내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라도 느껴보자고 틀어놓았는데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함께 했다.

사실 음악을 직접 듣지 않아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긴 하다.

음악과 음악가가 소재이긴 하지만

저자가 초보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워낙 상세하게 풀어썼기 때문에

굳이 음악을 모른다고 해도 책을 읽는데는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장중하게 울려퍼지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함께

책을 읽으니 바흐가 살던 시대,

파블로 카잘스가 살던 시대가 재현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상황에 몰입하며 읽으니

책의 내용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영상처럼

배경이 생략된 오로지 피사체 하나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첼로 혼자 고독한 공간을 채우는 느낌을 준다.

작은 변화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고,

현란한 움직임은 더욱 깊은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책과 함께 첼로의 음색으로  꽉찬 공간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마음껏 향유했다.

 

 

책은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바흐의 일생을 토대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작곡되기까지 과정,

파블로 카잘스의 일생을 토대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필사 악보를

최초로 발견하고 최고의 연주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저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원본 악보를 찾기 위해

위 두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존재조차도 몰랐던

악보가 그것도 당시 잘 연주하지도 않았던 첼로 모음곡을

13살 소년이 우연히 중고악기점에서 발견하여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이야기도 극적인데,

여기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손으로 그린 원본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가미됨으로써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하지만 카잘스가 20세기 초에 연주하기 시작한 후로 우리는 운 좋게도 이 명작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바흐의 자필 악보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흐의 곡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바로 이 부분이 내 안의 저널리스트 본능을 일깨웠다. 그렇다면 바흐의 매뉴스크립트, 즉 손으로 그린 원본 악보는 대체 어디 갔을까? 바흐는 살아생전 수많은 협주곡과 칸타타, 솔로 바이올린곡 등을 작곡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바흐의 서명이 담긴 원본 악보  또한 매우 많다.

그런데 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악보도 존재하지 않은 채 역사의 틈 사이로 빠져나간 것일까?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7

 

 

책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구성 형식을 띠고 있다.

첼로 모음곡이 6개 악장까지 있는 것과 같이

책 역시 동일 제목을 6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각 장의 구성 형식 또한 첼로 모음곡의 구성과 동일하다.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저마다 6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렐류드로 시작해 지그로 끝난다. 그사이에는 옛 궁중 춤곡 알망드, 쿠랑트, 사라반드가 있고 그 후에는 미뉴에트나 부레, 가보트 같은 좀 더 '현대적인' 춤곡을 만날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모든 챕터마다 첫 두세 개의 춤곡에는 바흐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바흐의 생애를 따라가면서「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지금과 어떻게 달랐고,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추적할 것이다. 그 이후의 춤곡들은 파블로 카잘스를 위한 공간이다. 카잘스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먼지 자욱한 중고 악기점에서 끄집어낸 순간부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곡을 어떻게 세상에 빛을 보게 했는지까지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마지막으로, 각 곡을 마무리하는 지그에서 나의 여정을 담았다. 한 세기를 뛰어넘은 바흐와 카잘스의 생애, 그리고 그 시대의 음악사와 정치사를 총망라해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담긴 비밀을 추적했다.

---p.8~9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서 세상밖으로 나온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러나 바흐의 자필 악보는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그 악보를 찾아 긴 여정을 떠난다는 설정은

단순히 음악가와 음악을 소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장감을 준다.

얼마 전 상영되었던 영화,

고흐 죽음의 원인을 추적해가는 '러빙 빈센트' 역시

화가와 화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것보다

훨씬더 흥미와 몰입감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 또한 편안하게 펼쳤다가 과연 결말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다.

바흐와 카잘스의 일대기 못지 않게

가장 중요한 바흐의 음악에 대한 정보들은

음악을 듣지 않아도 눈으로 그려질 것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바흐 음악 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스토리를 가지고 상상해서 듣는 저자의 감상 방식은

어려운 음악을 느끼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연주가가 끝없이 자신만의 표현 방법으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에 따라 표현해내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자세한 연주 방법을 알려주는 매뉴스크립트의 분실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 형식 자체가 이제는 고유의 음악이 되었다.

우연이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이러한 열린 결말같은 자유로움이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의 음악과도 자연스러운 공존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출몰하는 여러 제보나 단서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필 악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바흐가 작곡을 하면서 사용했던

잉크가 산성 잉크라서 악보가 점점 손상되어 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더 손상되기 전에 찾아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바빠졌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그 원본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지금 등장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시대물 연주에서 낭만파, 재즈, 아프리카 음악,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기 등 광범위하게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p.335~336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시대와 악기에 따라 무한 변신을 할 수 있는 곡이 되었다.

청중 역시 이미 그렇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것이

연주자들이나 청중들에게 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여섯 번째 악장의 마지막은 '지그'다.

천장이 빙빙 도는 지그 춤을 추는 것처럼 휘청거리는

유쾌함과 소박함이 가득하 장이라고 한다.

수많은 화음의 씨앗이 흩뿌려지다가 마지막 음에 도달해서

악사는 깨끗하고 단순하고 아무런 꾸밈없이,

그리고 조금은 갑작스럽게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춘다.

 

숨가쁘게 달려온 이 책의 여정도 이 지점에서 그렇게

갑작스럽게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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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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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특히, 어려운 책을 읽을 때에는

책의 포문을 여는 '서문'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문학도 그러하지만 특히 이론을 전달하는 책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핵심 이론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 전체적인 조망을 해주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렵거나 지루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책을 읽다 보면

자칫 내가 어디쯤 있는지, 왜 있는지 조차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서문과 목차로 돌아가

다시금 읽어 보면서 방향을 잡곤 한다.

욕심껏 친절하게 풀어 쓴 저자의 서문은

핵심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친절한 안내문이 되고,

목차는 이정표가 되어 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읽기 전 서문을 읽고,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서문을 다시 읽는 습관이 생겼다.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읽기 전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구나 하는 감을 잡고,

책을 모두 읽은 후에는

'맞아~ 이랬었지', '아~ 이것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면서

다시금 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문은 짧은 지력의 나에겐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서문]이라는 책의 출간을 알게 되었을 때

눈의 번쩍 뜨인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토록 서문의 위력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는데

이를 공감이라도 해주듯이 서문만 묶은 책이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엮은이는

당대 최고의 독서가로 손꼽히고 있는 장정일 씨가 아닌가.

 

 

책에는 총 30권의 역사적 명저의 서문이 집결되어 있다.

시대를 따지자면 서기 300년대 로마시대부터 1900년대까지

천 년도 넘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출간된 책들이다.

유럽이라는 공간으로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치, 역사, 철학, 문학, 예술, 과학 등 책의 주제는

경계와 구분없이 총망라되어 있다.

사실 그렇기때문에 책을 모두 읽은 후에는

아주 조금 상식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지만

읽기는 매우 힘들고 진도도 잘 나가질 않았다.

배경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서문만으로

그 책의 의미나 가치를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문의 내용과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책마다 서문을 소개하기 전

저자와 책이 나오게 된 배경, 책의 가치를

상세하게 소개해준 가이드 글 덕분이다.

엮은이가 이 책을 왜 선택하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만큼

30권의 책은 시대와 역사, 각계 분야에 의미있는 영향을 준 저자와 책들이다.

발표 시대순으로 배치된 책들을 죽 살펴보면

그 자체가 커다란 역사의 물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서문'은 작가가 독자를 책의 입구로 안내하는 시작점이지만

여기에 실려있는 서문들을 보면 단순한 안내서 이상의

다양한 활용법을 볼 수 있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군사학 논고」의 서문처럼

오랜 세월 관습으로 굳어진 틀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형식이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서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서문이 갑론을박 논쟁의

반박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서문은 거의 논문 수준의 분량인 반면

어떤 서문은 시 한편을 던져 함축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한권 한권 산을 타듯 꾹꾹 눌러 읽은 후

이 책 역시 처음에 읽었던 엮은이의 서문을 다시 읽었다.

역시나 처음 읽을 때와 책을 읽은 후의 시야각의 차이가 명료하다.

'서문은 책의 작은 우주다'라고 강조한 엮은이나

소가 되어서 '되새김질'을 하며 서문 읽기를 반복하라는

「도덕의 계보학」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장은

한 독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증명해준 기쁨 이상의 묵직한 무게감을 준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서문의 역할과 중요성을

엮은이 '서문'의 일부로 대신한다.

 

"제목이 압축 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 서문은 이 책이 쓰여진 동기와 방법론을 설명해주며, 저자가 다루고 있는 지문의 윤곽과 주제를 명료하게 해준다. 많은 서문은 친절하게 내용을 요약해주기도 하는데, 이러한 저자의 수고는 특히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읽을 때 독자의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을 해설해주는 최고의 참고서는 비평가의 해설도 서평가의 독후감도 아닌, 서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서문은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참고서처럼 곁에 두고 매번 펼쳐 보아야 하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서문 끄트러미에서 "거의 소처럼" 되어라. "되새김"하라고 했던 말을 명심하고, 그것을 서문에 적용하자.

(...)

서문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사실은, 수많은 명저들이 자기의 수준을 서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헛소리나 늘어놓은 부실한 서문치고 뛰어난 명저는 없다. 이런 사실이 서문을 책의 작은 우주로 만들며, 본문과 따로 떼어 음미할 수 있게 한다. G.W.F. 헤겔을 비롯한 몇 명의 위대한 저자들이 그들의 서문만 따로 모은 서문집을 갖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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