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클립 한주한책 서평단
책으로여는길입니다"
명상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오늘을 살아가다보면 하루에도 열 번씩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이 번잡한 마음을 제발 다스릴 수 있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다와 같는 마음이 있었으면.
주위의 상황에 갈대처럼 흔들리다 보면 마음은 허해지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숨을 크게 들이 쉬면서 다스려 보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경우가 허다하다.
명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들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이런 번잡스러운 마음때문이었다. 나이 40이면 불혹이라고 하지 않던가.
주위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의 불혹을 넘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쉽게 요동치는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 것이다. 너무 견디기 어려울 때 약식 명상을 두어번 따라 했더니 제법 효과가 있었다. 순간의 효과를 몇 번 느끼고는 제대로 명상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당연히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치유를 위한 명상, 수양을 위한 명상, 명상 그 자체를 위한 명상... 명상을 책으로 배울 수도, 배워서도
안된다고 하지만 정신을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는 그 원리가 너무 궁금했다. 앞으로 명상에 도전을 해볼 계획이지만 그 전에 과연 명상이 무엇인지,
명상의 원리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나를
넘다]는 아마도 그 해답을 내게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게 된 책이다. 명상의 대가인 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세계적인 신경생물학자이자 뇌 관련 권위자 볼프 싱어가 무려 8년 간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명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던 내게
'명상'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승려인 마티유 리카르 역시 승려가 되기 전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세포유전학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에 매진했던 과학도였다. 그가 설파하는 자아와 명상이라는 것이 미신처럼 터무니없는 존재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갔다. 한 사람은 몸으로 체험하고, 또 한 사람은 과학이론으로 접근해한 두 과학자의 대담은 생각한 해도 흥미진진했다. 과연
'명상'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으로도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과학자 모두 아직까지는 답을
구할 수 없노라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자아나 의식, 그 성질을 어떤 기준으로 정의해야 하는지조차 도출해내지도, 합의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있지만 유사한 부분 즉 접점이 된 부분도 많고, 그런
부분에서는 과학적 실험을 통한 증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벤치마킹하면서 낯선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티유의 경우는 불교철학으로 뇌, 자아, 의식을 풀어낸다. 실험으로 명쾌하게 증명해내야 하는 과학보다는 좀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눈으로,
실험으로 증명하지 할 수 없다는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둘의 대화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선을 타고 양면을 모두 고려하면서 전개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뇌가 명상을 만났을 때'는 명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룬다. 처음에 궁금했던 내용이 바로 1장에 그대로 실려 있다. 제대로 된
명상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요소가 갖추어졌을 때 극대화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명상의 대가다운 명쾌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볼프의 과학적인 이론과 실험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면서 명상의 실체를 규명해간다. 이러한 과학적인 근거는 명상이라는 행위와 상태를 좀더
구체화시켜주고 명료하게 해주며 신뢰감을 더해준다.
"볼프 보통 특화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뇌구조는 주어진 과제를 실행하는 초기단계나 학습단계에서
작용하는 뇌구조와 다릅니다. 이러한 뇌영역의 이동이 이루어지면, 그 과제는 자동적으로 신속하고 쉽게 수행할 수 있게 되므로 더 이상 인지기능의
통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중략) 감정에 대해서도 같은 전략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즉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각각 구분하고, 그 결과 감정의 역학에 친숙해지는 방법을 배운다면, 갈등이 생길 때 그것을 자동적으로 잘 다스릴 수
있게 될까요?
마티유 명상과 같은 과정을 설명하시는 거군요. 가르침에 따르면 한 명상가가 명상을 훈련할 때,
예를 들면 자비에 대해 명상할 때, 초반에는 어느 정도 강요되고 인위적인 감정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반복해서 일으키다 보면 제2의
천성이 되어,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된다고 합니다. 자비가 정신의 흐름과 하나로 일치되면, 더 이상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숙련된 명사가는 의식적으로 형식에 따라 명상을 하지 않아도, 명상의 상태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어떤 것에도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고, 다만 이 건강하고 자비심 가득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게 되죠.
볼프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기능방식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군요.
학습과 훈련을 통해 명상과정이 자동화될 때 이미 관찰된 것과 것과 같은 기능의 이동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단층촬영 결과에 따르면
처음에는 의식의 통제 아래 습득한 능력이 자동화되고 나면 의식적인 학습을 담당하는 부분과는 다른 뇌구조로 이동한다고 합니다."
---p45~46
2장은 '무의식과 감정의 실체'를 다룬다. 무의식과 의식의 본질이 무엇인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명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치유할 수 있는
지, 그 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주로 명상의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명상에 대한 원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명상을
하면서 명상이 과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단지 내 마음만 진정시킨다고, 외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까? 명상을 해서 진정시킨다고 하더라도 다시 외부의 문제와 접촉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궁금증을, 아마도
명상을 경험하지 않은 많은 독자들도 가질 법한 의문점을 마티유는 그림그리듯 분명하게 설명해준다.
"볼프 의식적인 처리로는 접근할 수 없는 수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명상이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저는 비판적 시각으로, 현실에서 영감을 얻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부 사이에 어떤 갈등이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불안한 감정과 반추가 일어났다고 합시다. (중략) 이들이 명상수련을 결심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들은 보호된 환경에서 혼자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문제를 해결해줄까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단둘이 있을 때 같은 문제에 또 부딪히게 되면, 다시는
싸우지 않을까요?
마티유 (중략) 진정한 명상은 문제에 대해 잠시 눈을 감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께서 언급하셨던
부부의 예를 든다면, 무엇보다 강박적인 집착의 파괴적 측면과 갈등을 일으키는 정신의 상태들을 모두 인식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파괴적인 요소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경안정제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명상수련은
다양한 종류의 치유책을 제시합니다.
(중략) 치유책에는 욕구나 분노를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대신,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분노에 대해 의식하는 우리 정신의 의식수준은 분노에 차 있지 않고, 다만 그것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의식은 그것을 지켜보는 감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한발 물러나 실제로는 그 감정이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면의 갈등이 저절로 사라질 수 있도록, 내면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열어두기만 하면 됩니다.
(중략)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은 상황이 어떻든 모든 감정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치유책입니다.
이 방법이 처음에는, 특히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정신의 평정을 유지하고 일상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감정들을 대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입니다."
---p.134~139
참고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의식의 공간에서 머물지 않고 흘러가도록 두라는 것. 그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 하지 말고, 그 감정이
일어났구나 하는 것에 집중하며 의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멸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의 파도가 되지 않고 바다가 된다면
흘러가는 감정들에 휩싸이지 않고 심연의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사람들과 얽혀 살다보면 순간순간 다양한 감정에 노출되면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발생한다. 감정에 떠밀려 살다보니 불행하다는 생각을 키워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부정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의식하면서 머물지 않고 흘려보내려고 노력해봤다. 감정을 쌓아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안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
실제도 그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갈등없이 그 상황을 풀어나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타인을 무조건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그 감정이 떠올랐구나를 생각하면서 그 감정의 깊은 뿌리까지 지켜보려고 하는 것,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를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평정 상태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이 책을 알게 된 것이,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단지 명상의 방법, 효과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러한 과정이 필요한지를 과학적인 근거와 함께 설명해주기때문에 납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장은 아는 것, 인식으로 확장되고, 4장에서는 '자아'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간다. 이를 토대로 5장에서는 자유의지, 책임감, 정의
등에 대해 정의한다. 마지막 6장에서는 초현실적인 현상들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과연 '의식'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
불교철학과 과학은 같은 견해도 있지만 결국 좁혀질 수 없는 한계도 있다. 특히 의식에 대한 견해는 내면 즉 1인칭 시점이라는 불교철학과
3인칭 시점이라는 과학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면서도 8년 간의 긴 대화에서도 결국 이견을 좁히지는 못했다.
"프란시스코는 어느 날 저에게 말하기를, 의식의 궁극적 속성에 관해 열린
정신을 유지하여 이로써 의식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해석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따뜻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깊은 우정을 나누며 유지했던 열린 정신
속에서 이 중요한 질문은 3인칭과 1인칭의 관점으로 동시에 진행될 앞으로의 연구에 맡겨야겠습니다." ---p.406
이렇게 8년 간의 긴 대담은, 더불어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도 마무리가 된다.
책 초입의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포트 앙드레'가 쓴 추천의 글에서 "지금 우리가 손에 든 이 책은 분명 '까다로운 책'이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일도 분명 조금은 수고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부터 심호흡을
하면서 각오를 했었다.
어렵고 힘든 책이겠구나. 분명 그랬다. 아마도 이 책 내용의 10분의 1도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금 당장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꾸준히 영향을 줄 것 같다. 당장 내 생활에 명상을 적용한 것도 있지만 인간의 심리,
의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에 대한 탐구를 할 때면 먼저 이 책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될 것이고, 이 책을 참고하면서 그
기반 위에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8년 간의 긴 시간을 두고 대화를 하다보니 개념 정리에 있어 중복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좀더 가지치기를 했으면
깔끔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싶고, 또 언제 어느 시점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시기적인 정리도 있었으면 흐름이나 구조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천의 글처럼 완독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욕심껏 읽었던 초독 때와는 달리 이제는 굵직한 틀
안에서 좀더 꼼꼼히 내용을 살피며 천천히 재독을 해야할 것 같다.